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8화 (28/244)

# 28

10) 첫 번째 메인스트림 시작 - 1

성우는 기억의 파편을 통해 본 내용을 지수와 한호에게만 말해주었다.

“뭐야 그럼 전부다 세뇌 당한 거였어요? 그래서 얘들이 이렇게 사방팔방 퍼져서 깡패 집단을 형성할 수 있던 거구나? 무슨 저그도 아니고?”

지부장의 기억 속, 호프집에 둘러앉은 간부급 흡혈귀들의 표정은 정말로 끔찍했다. 하나 같이 사랑에 빠진 표정으로 로드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흡혈귀들은 로드를 동경하고 맹신한다. 권속들을 강하게 유혹하는 마성이 로드의 고유 능력 중 하나인 듯 했다.

‘그리고 놈과 직계에 가까울수록 그 증상이 심하다. 하급 흡혈귀인 유진인가, 걔는 혐오심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럼, 곧 화성에서 엄청난 학살이 벌어질 거란 얘기잖아요?”

지수는 대학살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흡혈귀들은 화성의 생존자들을 최대한 끌어 모아 한 번에 잡아먹을 작전 ‘대잔치’를 준비 중이었다.

물론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고 있겠지만,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벌어질 예정인 학살이란 건 느낌이 사뭇 달랐다.

“선배, 진짠데요? 커뮤니티 난리 났어요. 글도 여러 개 올라오는 거 보니까 작정하게 끌어 모으려는 것 같아요.”

한호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8] 수원 화성 안전 구역 정책 변경 아무나 오세요!

- 작성 : 구 과장 │ 조회 : 77,589

처음에 골드를 받는다고 했지만 내부 회의 결과 정책이 변경 됐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제부터 모든 생존자들을 포용하겠습니다. 저희는 3성 ‘개척자’ 2명과, 2성 ‘선교사’ 3명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그룹입니다. 장소는 충분하며 다수의 사냥 팀을 운영해서 골드 수급도 원활한 상황입니다. 물론 생존자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서 더 튼튼한 안전 구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도 군대도 우리를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많은 생존자 그룹을 토대로, 이 재앙을 극복해나갈 방법을 모색해나갈 생각합니다. 힘을 합쳐봅시다!

「댓글 : 115」

“와, 진짜 쓰레기 새끼들이죠?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게 굴까요? 사람 맞나?”

그 아래 115개나 달린 댓글은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거나, 지금 바로 가고 있다는 등 게시물에 호응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즉, 미끼를 문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저희도 글 써서 놈들이 흡혈귀고 피 빨아 먹을 사람들 유인하는 거라고 확 불어버리죠?”

성우는 한호의 말에 고민했다. 증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계략은 폭로해봤자 낭설로 치부될 뿐이다. 하지만 주요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커뮤니티라는 기능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건 일단 좀 신중하게 생각해서 올리자.”

한호는 답답해 미치겠는지 발을 동동 굴러댔다.

“일단 공장 안에 있는 아이템이나 찾아서 다 꺼내놓기나 해. 당장 쳐들어간다고 될 일도 아니고, 당장 벌어질 일도 아니니까 지수 씨도 진정하고, 자, 눈앞에 있는 일부터 처리합시다.”

일행은 성우의 말대로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흡혈귀 조직원들이 지난 며칠 간 공장에 쌓아둔 아이템 중에서 쓸 만한 걸 챙기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생각보다 노다지였다. 몬스터 사냥이 아니라 플레이어 사냥을 하던 놈들인지라, 꽤나 쓸모 있는 물건을 잔뜩 모아둔 것이다.

“이거 무슨, 다람쥐 소굴을 캐는 기분이네.”

한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장실의 캐비닛에서 종이 박스 하나를 꺼냈다.

“물약이 몇 개야?”

그 안에는 체력, 마나, 해독제 등 온갖 물약이 차곡차곡 채워져 있었다. 그 중에는 ‘치료제(중급)’라는 고급 물약도 몇 개 있었는데, 다양한 감염 상태를 완화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선배 이거, 좀비나 흡혈귀 상태에도 적용 된다고 쓰여 있는데요?”

“좋네, 잘 챙겨둬.”

그 외에도 온갖 생필품과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성우 씨, 이것 좀 보세요.”

이번에는 지수가 네모난 물건을 내밀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충전기(소)

- 등급 : 일반

- 분류 : 기타

- 효과 : 전력을 공급하거나 배터리를 충전합니다. (남은 용량 : 87%)

아무래도 지금까지 한 번도 선택한 적 없는 ‘기타 아이템’에서는 이런 게 나오는 모양이었다.

5일 차, 아직까지는 발전소가 돌아가고 있는지 전력이 공급되고 있었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하긴 했었다. 다른 물건은 몰라도 ‘플레이어 가드이북’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핸드폰 배터리가 필요하니 말이다.

- 배터리 충전 중 (10분 남았습니다.)

충전기 아이템에 핸드폰을 가져다대니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충전 속도가 꽤나 빠른 편이었다.

‘배터리(소)라면, 더 큰 사이즈가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한참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라면 건물에도 전력 공급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서 ‘기타 아이템’도 중요하게 여기고 확보해나갈 필요가 있었다.

경수는 공장의 생존자들과 함께, 획득한 아이템들을 버스 짐칸에 실었다. 학교의 생존자들 역시 첫 날의 어벙한 면에서 꽤나 탈피한 모습이었다.

“저, 직업이 ‘치유사’라 상처 회복 스킬이 있어요. 거기 다친 분, 팔 이리 주세요.”

“여러분! 여기 먹을 거 많이 있으니까 나눠서 드세요. 이 자식들 잔뜩 쌓아 놓고 있었네.”

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저 재난 앞에 당황하여 방황 했을 뿐이지 인간은 원래 이런 동물인지도 몰랐다.

‘나름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몇 명이 끝까지 운이 좋을 수 있을까?

밤이 왔다.

생존자들은 공장 안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어느새 태성을 비롯한 양아치 무리들까지 우르르 몰려와버렸고, 공장 안은 꽤나 북적북적해졌다.

바이크의 등장에 성우가 눈살을 찌푸리자, 친구들을 몰고 온 당사자인 태성이 성우의 눈치를 보며 어기적어기적 다가왔다.

“저, 혀, 형님?”

“내가 왜 네 형님이야.”

“어······ 대장님?”

“그냥 용건만 말해라 아부 떨 생각하지 말고.”

성우의 싸늘한 반응에, 태성이 머쓱하게 치켜세웠던 입 꼬리가 천천히 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억지로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희도 여, 여기서 지내도 될까요?”

성우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자신의 주변에 무력한 생존자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내일 와. 난 내일 갈 거거든.”

“아, 그게, 대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 갈 곳이 없어요······. 공판장도 그 늑대인간 같은 몬스터가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고······.”

태성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흡혈귀 친구는?”

“아······. 혈액 팩을 조금 먹고 나니까 괜찮아졌어요. 괜찮을 거예요. 폭주할 일은 없을 거예요. 정말로요.”

“네가 뭔데 확신해? 더 믿을 수가 없는데?”

“아, 그게······.”

성우는 옆에 서 있는 지수를 슬쩍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태성에게 하얀 물약을 내밀었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먹여 봐요.”

“아? 이건?”

방금 찾은 ‘치료제’였다. 흡혈귀 감염에도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효과가 있다.’고 하는 걸 보면 100퍼센트 완치는 아닌 듯 했다.

“그래도 발광하면 바로 죽일 거야. 로드가 빙의해서 정보를 캐거나 그래도 죽일 거야. 그러니까 예의주시 해.

“예!”

“그리고 공짜는 아니다.”

“······예?”

“너희 지금까지 흡혈귀 개 노릇 했으니까, 이젠 주인 바뀌었다고 생각해.”

언제나 그렇듯 혼자가 압도적으로 편했다만, 다양하게 써 먹을 수 있는 수족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쇼!”

“아주 양아치 같은 대사가 입에 배었네.”

“하하······.”

한편 태성 일행이 본래 아지트인 공판장을 떠나온 이유는 웨어 울프, 웨어 베어 같은 ‘수인(獸人)’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카드를 뽑지 않은 이들이 변한 그것들은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활동 반경이 굉장히 넓은 건 물론이거니와, 건물 안까지 자유자재로 들쑤시며 생존자를 사냥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여기서 시작해주세요.”

성우 역시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기 위해 한호의 아버지, 정호의 능력인 ‘개척 캠프 조성’ 즉 안전 구역을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슬슬 테스트 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우웅!

스킬을 사용하자 반투명한 일렁거림이 정호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뻗어나갔다.

- 해당 구역이 ‘개척 캠프’로 지정됩니다.

* 중심지로부터 일정 구역이 ‘쉴드’로 방어됩니다.

* 캠프 내에서는 모든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 관리자는 출입 제한 조건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높이 10미터, 면적 200미터 지점에서 고정되었다. 다행이 공장 전체를 포함하는 면적이었다.

“어, 뭔가 더 포근해진 기분인데요?”

“뭐랄까, 싸우나 갔다 온 것 같다?”

이로써 57명의 생존자는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비축된 식량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공장 내 화장실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씻을 수 있었다.

한호의 어머니, 은희는 자신이 뽑은 직업 카드인 ‘조리사’답게 음식을 만들었다. 공장 주방에 있는 큰 냄비에 이런 저런 재료를 넣고 무언가를 끓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호가 기겁하며 말하기로는, 그 안에 공장에 쌓여 있던 다이어 울프 고기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꽤나 향긋한 향기가 공장 전체를 가득 채웠고, 마른 식량으로 배를 채운 생존자들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자, 모두 한 국자 씩 떠서 맛봐요. 지쳤을 땐 뜨끈한 거 먹어야 돼요.”

한호가 커다란 냄비를 뒤뚱뒤뚱 들고 와 공장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모두에게 종이컵을 나눠줬다.

“자, 선배. 첫 국자 뜨시죠.”

성우 역시 정체불명의 국? 스프? 아무튼 그런 음식을 받아들었다.

다이어 울프 고기가 들어갔다는 말이 은근히 신경 쓰기인 했다만, 어차피 빠른 시일 내에 몬스터를 잡아먹어야 할 때가 올 것이었다. 그때를 위해서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음, 괜찮은데?”

- 특별한 요리를 섭취하여 효능이 발휘됩니다.

* 체력이 급속도로 회복됩니다.

* 20분 간 체력이 상승합니다. (+2)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일시적이지만 다양한 효과가 나타났다.

능력치를 올리는 게 레벨 업 때 가능한 걸 생각하면, 음식으로 올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기능이었다. 즉, 단순히 요리를 해서 조리사인 게 아니었다.

“크, 죽여주네요!”

“와, 정말 맛있어요.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다른 이들도 맛있다고 아우성이었다.

성우는 은희가 명명한 끔찍한 이름의 ‘늑대 찌개’를 한 잔 더 들고, 왁자지껄한 작업장을 벗어나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지수가 따라 들어왔다.

“저, 성우 씨.”

“네?”

“······대학살이요.”

“저도 고민 중이었어요.”

지수는 성우에게 대학살에 관한 정보를 들은 이후, 그 재앙을 막아야 된다는 생각에 잡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도 성우에게 얹혀 있는 판에 쉽사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지수 씨, 혹시 전용 퀘스트라는 거 받은 적 있으세요?”

다소 난데없는 물음이었을까? 그녀가 눈을 끔뻑였다.

“네? 전용······ 아니요.”

성우는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성우가 두 차례나 받은 전용 퀘스트는 어떤 조건 하에 발동 되는 걸까? 뱀파이어 로드의 퀘스트는 무엇일까? 이런 건 모든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걸까?

‘그리고 최종 목적은 뭐지?’

퀘스트는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 그 수많은 갈림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단 말인가?

당장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지금 필요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건?

‘뱀파이어 로드의 머리.’

놈의 머리를 자르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악연이다. 그것부터 조속히 처리하는 게 정답이었다.

“지수 씨, 대학살을 막는 건 우리의 의무가 아니죠?”

“아, 그렇죠. 하지만······.”

“그럼 우리가 왜 대학살을 막아야 될까요?”

성우의 물음에 지수의 입이 닫혔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누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니면 흡혈귀 새끼들한테 언젠가 죽을 테니까요.”

그 순간, 둘의 시선이 허공으로 교차했다.

- ( ! )

“응?”

“어, 성우 씨도 이거 보여요?”

모두의 눈앞에 붉은 느낌표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장문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인스트림 시작 안내]

- CHAPTER 1 : 여전히 길고 어두운 밤

모든 생존자 여러분께, 큰 줄기의 이야기 메인스트림에 당도하신 걸 환영합니다.

멸망이 찾아오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많은 이들의 숨결이 사그라졌으며, 변화에 따르지 못한 이들은 ‘수인(獸人)’이 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 재앙 속에서 끝내 살아남은 여러분의 노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시련은 지금부터입니다. 최악의 생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투쟁이란 걸 잊지 마십시오. 그 대상이 세상이든, 몬스터든, 사람이든 생존을 위해서는 조금 더 과감해져야만 할 것입니다.

[주의사항(중요)]

1) 해당 이벤트는 7일간 진행되며, 기간 내에 지역 이동이 제한됩니다. (현재 통행 가능 지역 : 수원, 화성)

2) 골드 획득이 ‘2배’가 됩니다.

3) ‘2차 플레이어’는 ‘수인’을 사냥할 때마다 랜덤의 연계 카드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4) 지역별로 보스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상점에서도 구할 수 없는 강력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기회!

“······저도 지수 씨가 말한 게 정답인 것 같아요. 갈 길이 정해졌네요.”

“아, 이러면 진짜로 링 위에 오른 상황이네요?”

지역 이동이 불가능하다. 지수의 말처럼 흡혈귀와 링 안에 갇혀서 죽음의 결투를 벌어야 되는 사생결단의 상황이 온 것 같았다.

이 미친 게임이, 이제야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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