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7화 (27/244)

# 27

9) 폐공장의 인신매매 집단 – 3

‘공허의 안식처’의 부속 효과인 ‘대강령(大降靈)’은 다수의 권속을 일제히 소환할 경우에 그 일대에 저주를 퍼뜨리는 스킬이었다.

마침 10마리를 일제히 소환하는 게 스킬 발동의 ‘최저 조건’이었다. 그러자 이 작은 공장을 가득 매울 만큼의 검은 연기가 생성되었고, 곳곳에서 스켈레톤의 형체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으윽!”

“바, 방어 해!”

대강령 스킬의 등급이 낮은 만큼 연기는 금방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의 당황만으로도 이미 치명적인 틈을 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으악!”

“컥!”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비명과 함께 소름끼치는 뼈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왔다.

덜그럭! 덜그럭!

“정신 차려! 어차피 죄다 허수아비다! 그걸 조종하는 새끼만 죽이면 돼!”

지부장은 어느새 2층 난간에 매달린 채 소리쳤다. 연기가 퍼지는 순간, 엄청난 점프력으로 튀어 올라 난간을 붙잡은 것이었다.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자신을 비롯한 흡혈귀 세 마리가 일반적인 몬스터나 플레이어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니, 쥐새끼 한 마리쯤이야 충분히 잡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저 새끼!”

그리고 흩어지는 연기 속, 밧줄을 풀어낸 뒤 손목을 주무르고 있는 남자, 성우를 발견했다.

딱딱―

그 옆에는 고블린 스켈레톤, 오른이가 서 있었다. 녀석이 성우의 밧줄을 끊어준 것이다.

“저 새끼부터 족쳐!”

지부장이 외쳤지만 그 누구도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따를 수 없었다.

챙! 콰직!

이미 각자의 상대에 맞서 고군분투 중이었으니 말이다.

“저쪽에서도 온다!”

“젠장, 밖에 경비들도 전부 들어오라고 해!”

일반 플레이어들은 오크 스켈레톤에게 겨우 겨우 맞설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운 없이 웨어 스켈레톤 종류와 마주친다면······.

“으아악! 으가각!”

갈기갈기 찢겨져버렸다.

“오크! 오크부터 없애!”

물론 흡혈귀들은 오크 스켈레톤 정도야 어렵지 않게 박살냈다. 그러나 몇 마리를 부순다고 해서 역전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어? 사, 살아난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그들은 공장 안에 쌓아 둔 몬스터 사체가 되살아나는 기현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해체하여 고기와 뼈, 가죽 등을 얻을 요령으로 모아둔 사체들이 되살아나, 붉은 안광을 뿜으며 걸어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 이이이!”

지부장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성우를 노려봤다. 자신을 도와줄 부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저기요 지부장님? 지부가 사라지면 이제 무슨 직책 쓰실 겁니까?”

성우의 도발에 지부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난간을 박차며 성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우는 뒤로 물러서며 아직 옅게 깔려 있는 연기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지부장은 성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땅에 착지한 뒤,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향해 무언가 날아들었다.

퍽!

그 물건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와장창 깨져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액체가 지부장의 얼굴에 끼얹어졌다.

“어, 어어! 으아아!”

치이익!

지부장은 제 얼굴을 감싸 쥐며 뒷걸음질 쳤다. 그건 역시나 ‘슬라임 액체’였다. 엄청난 산성이 지부장의 머리카락을 녹이고 피부를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푹!

그리고 그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뼈로 만든 창이 날아와 왼쪽 어깨에 박혔다.

덜그럭! 덜그럭!

그 다음은 오른이가 달려들었다. 지부장이 서둘러 쿠크리(kukri) 나이프를 빼들며 맞섰지만, 두 칼날이 부딪치는 순간 놈의 몸이 미끄러졌다. 이번에도 <외팔 무사(完)> 시너지의 ‘흘려내기’ 판정이 먹힌 것이다.

촤악!

일본도의 칼날이 놈의 오른쪽 허벅지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딱딱!

놈은 만신창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앞뒤를 포위한 성우와 오른이를 노려보았다. 외관상으로 보이는 피해뿐만 아니라, 온몸이 온갖 저주에 오염된 상태였다.

- ‘죽음의 저주’에 걸려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 ‘악마의 피’에 오염되어 생명력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대강령’의 저주는 물론이거니와 오크 추장을 죽이고 얻은 ‘악마의 혈석’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상대의 마나를 태우고, 마나가 없을 시에는 생명력을 갉아먹는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흡혈귀는 종족 특성 상 애초에 마나가 없다. 성우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흡혈귀에게는 그야말로 천적에 가까운 아이템인 것이다.

“이것도 오랜만에 써 볼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성우는 오른 손목의 붉은 팔찌를 작동시켰다.

- 야생의 광기가 발동합니다!

* 10분 간 ‘고블린 계열’ 용병을 대상으로 공격력 상승(+10%), 공격 속도 상승(+20%) 효과가 부여됩니다.

고블린 스켈레톤을 대거 끌고 다닐 때 요긴하게 썼던 아이템이었는데, 이제 적용 대상이 오른이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언제나 제 몫을 다해준다.

딱!

엄청난 버프를 두른 쪽과 엄청난 디버프를 당한 쪽의 싸움은 불 보듯 뻔했다. 성우와 오른이는 놈의 앞뒤를 둘러싸고 서서히 조여 갔다.

그리고 그 사이, 공장 문을 열리고 여섯 명의 경비병이 들어왔다. 본진이 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지원을 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으로 목격한 건, 2미터 50센티미터의 흑색 스켈레톤이 동료의 잘린 팔 다리를 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어······.”

그들은 입구에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멈춰 선 건 실수였다.

곧장 뒤돌아 도망쳐야만 했다.

덜그럭!

뼈로 만들어진 맹수, 웨어 베어 스켈레톤이 그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으니 말이다.

퍽!

내리치는 앞발에 선두의 상체가 으스러지고, 어깨에 부딪쳐 튕겨나간 이는 콘크리트 바닥을 사정없이 굴렀다.

“컥! 저, 저 건 뭐······.”

으적!

한편, 이렇게 공장의 경비도 사라지고 난장판이 된 사이, 버스 한 대가 공장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쾅! 끼이익!

버스는 문을 반으로 접어버린 뒤 공장 안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중간쯤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고, 문이 열리며 지수, 한호, 경수 등의 일행이 내렸다.

“저쪽이에요!”

그들은 곧장 달려가 묶여 있는 인질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한편, 한호의 부모님들은 성우가 미리 만들어 놓은 뼈 무기를 창문 밖으로 집어던졌다.

“움직이세요! 다친 분들은 바로 버스에 타세요!”

“경수야 나, 난 싸울 수 있어!”

“그럼 자, 무기 받아.”

이게 모든 게 성우의 작전이었다. 홀로 잡혀 들어가 대강령을 통해 내부를 교란 시킨 뒤, 경비가 사라진 틈에 돌파하여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존자들이 무기를 쥐는 순간, 머릿수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승기가 완전히 넘어왔다.

“크으······.”

지부장은 주변을 두러보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잡아 놓은 사람들이 모두 풀려났고, 제 부하들은 하나 같이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으니 말이다.

성우가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어라? 진짜로 지부가 사라졌네?”

패배와 죽음을 목전에 둔 채, 적장의 빈정거림을 당하는 기분은 어떨까?

지부장은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가슴 속 어디에선가 끌어 오르는 꿈틀거림, 자신 의지가 아닌 움직임이 온 몸을 지배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어왔다.

‘뭐야, 저 정도였어? 좀 센데? 너에게 내 힘을 나눠준다. 반드시 처리해라.’

달콤한 목소리였다.

“크억!”

그는 피를 토해냈다. 이어서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어깨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오고, 두개골이 녹아버린 얼굴가죽을 비집고 쏟아 올랐다.

“저게······ 뭐, 뭐야?”

“여, 역시 사람이 아니었어!”

성우는 등 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기괴하게 변해가는 지부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으로 스켈레톤들을 끌어 모았다. 심상치 않은 위협을 감지한 것이다.

“그으으―아아!”

놈의 몸은 흑갈색으로 부풀어 올랐고, 군데군데 날카로운 뼈가 튀어나왔다. 팔 자체가 거대한 흉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얼굴 역시 기괴하게 뒤틀려서 인간보다 몬스터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게 본 모습이냐?”

영화 속 흡혈귀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괴물과 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이 게임 역시 그런 클리셰를 따르는 걸까?

- 상급 흡혈귀가 폭주합니다.

그리고 이 변신이 꽤나 큰 위협인 건지, 모두의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출력되기까지 했다.

“그아아아!”

놈은 고함을 지르며 성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단 한 번 땅을 박차, 수 미터를 좁혔다. 믿을 수 없는 탄력이었다. 그 앞을 오크 스켈레톤이 가로막았고, 성우는 오른쪽으로 돌아나갔다.

콰직!

오크 스켈레톤이 마치 레고 블록처럼 으스러져 내렸다.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괴력이었다.

그런데 놈의 몸 구석구석, 뼈가 피부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에서 피가 부글부글 끓어 나오는 게 보였다. 온몸이 피로 물든 걸 넘어서 지나가는 곳마다 선혈이 낭자했다.

‘저 상태로는 오래 못 간다.’

성우는 또 다른 오크 스켈레톤 뒤로 달려갔다. 흡혈귀는 오로지 성우만 노리려는 듯 급선회하여, 다시 한 번 팔을 휘둘렀다.

콰직!

오크 스켈레톤은 더 이상 탱커 역할을 할 수 없는지, 단번에 작살나버렸다.

‘놈은 오래 못가겠지만, 그 시간 안에 당할 수도 있다.’

성우는 속도가 빠른 웨어 울프 스켈레톤을 조종해서 놈의 움직임을 바짝 따르게 했다. 곧 두 마리가 놈의 좌우를 포위했다.

퍽!

하지만 왼손에 맞은 웨어 울프 스켈레톤이 그대로 튕겨져 나가, 공장 벽면에 처박히고 말았다. 다행이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웨어 울프를?’

이쯤 되자 궁금해졌다.

‘대체 뱀파이어 로드는 몇 성이야?’

놈은 나머지 한 마리의 웨어 울프 스켈레톤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그대로 골반 뼈를 잡고 들어 올려, 반대쪽에 달려오는 웨어 베어 스켈레톤을 향해 집어던졌다. 두 마리가 뒤엉킨 채로 나가떨어졌다.

“크아아!”

놈은 집요하게 성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우는 오크 스켈레톤을 지속적으로 희생시키면서, 놈의 앞을 가로막아 거리를 벌렸다.

어느새 창고 한쪽에 쌓여 있는 몬스터 사체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나가 동 나기 전에 쓸 만한 사체가 떨어진 판이었다.

그때, 오크와 고블린 시체 사이에, 비쭉 튀어나온 검은 털가죽을 발견했다.

‘저건 설마?’

마치 고슴도치처럼 온 몸에 화살이 박혀 있는 그 사체는, 무려 웨어 울프였다.

여기 조직원 놈들이 모든 화력을 퍼부어 간신히 잡은 모양이었고······.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이제는 성우의 권속이 되었다.

- 팀플레이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부여됩니다.

[시너지 목록]

4) 지옥의 파수꾼 케로베로스(完)

- 구분 : 종족 시너지

- 조건 : 개과 생명체 3마리 이상

- 효과 : 공격 속도 상승(+10%), 근력 상승(+10%), 하나의 적을 동시에 공격할 때 근력 상승(+50%), ‘좁은 길목’을 지킬 때 방어력 상승(+50%)

개 대가리가 세 개라서 케로베로스 시너지? 이 시너지라는 게 참 오묘한 면이 있었다. 아무튼······.

‘굉장한 시너지다. 그나저나 근육이 없는 뼈다귀라고 근력이 안 오는 건 아니겠지?’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지만, 그 효과만큼은 탁월했다. 흡혈귀의 공격에 나동그라졌던 녀석들이 다시 몸을 일으키고, 세 방향에서 동시에 달려들자,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연출 됐다.

우득! 우득!

“그으으!”

더 이상 힘겨루기에 밀리지 않는 것이다. 물론, 세 마리가 동시에 붙잡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서 웨어 베어 스켈레톤까지 가세하자, 결국 놈의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우드드―

“그아아!”

놈은 네 마리의 짐승에게 짓눌린 채 괴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곧, 사방에 펼쳐져 있던 오크 스켈레톤들이 달려들어 놈의 몸 곳곳에 날카로운 무기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여느 흡혈귀 때와 마찬가지로, 성우의 칼날의 놈의 목덜미를 비집고 들어갔다.

“대표한테 전해. 화성 사업 철수한다고.”

- 특수한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머리를 완전히 잘라내기 전에 눈깔이 먼저 뒤집어졌다. 상처가 심하기도 했거니와, 폭주한 다음의 출혈을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걸 스켈레톤으로 만든다면?’

성우는 지금까지는 인간의 시체를 스켈레톤으로 일으킨 적이 없었다. ‘오크 스켈레톤’이 인간의 뼈보다 훨씬 우수했기에 굳이 인간의 뼈를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흡혈귀는 오크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였지만, 재생력이 워낙 좋다보니 단번에 죽이기 위해서 머리를 쳤었다. 그리고 그렇게 훼손된 뼈는 스켈레톤으로 일으킬 수도 없었다. 처음으로 머리통이 멀쩡한 흡혈귀 시체를 얻은 것이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기형적인 뼈 구조를 가진 흡혈귀 스켈레톤이 몸을 일으켰다. 체격은 큰 편이 아니었지만 돌기 같은 게 튀어나온 어깨와 팔뚝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 망자의 ‘기억 파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을 일으킨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역시도 네크로맨서의 능력인 모양이었다.

‘앞으로 써 먹을 일이 많겠군.’

그리고 성우의 눈앞에 ‘기억 파편’으로 보이는 영상 한 편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누군가의 시점이었다. 아마 지부장의 기억일 것이다.

“한 번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자고? 이 게임은 뭘 의미할까? 응? 정답 말해볼 사람?”

장소는 프랜차이즈 호프집, 사방이 난장판에 선혈이 낭자한 걸 보아하니 게임이 시작된 이후였다. 그 가운데, 총 네 명의 남녀가 마카로니와 생맥주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크······.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생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상석에 앉은 안경 쓴 남자였다. 그는 마카로니를 으적으적 씹으면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1도 모르겠어. 근데, 뭘 해야 될지는 알겠어. 우린······ 진화를 해야 되는 거야. 그치 김 지부장?”

그가 성우의 시점인 지부장의 어깨의 손을 얹었다.

“아, 예! 맞습니다!”

“이 한심한 종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 초월자? 우주적 존재? 아무튼 어떤 존재가 엄청 스펙터클한 방법으로 기회를 준 거지.”

안경 쓴 남자는 그렇게 자신만의 사상의 장황하게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앞에 앉은 세 사람은 그 말에 경도 되어, 상기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가 느끼기에, 그들의 얼굴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 대상은 상석의 안경 쓴 남자······.

‘너구나. 뱀파이어 로드.’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에게 퀘스트가 하나 부여됐어. 그리고 너희에게는 이 퀘스트를 함께 수행할 의무가 있으니까, 이거 명심해.”

퀘스트? 무슨 퀘스트를 뜻하는 걸까?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쇼.”

불과 5일 만에 이 말도 안 되는 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권속들의 이상하고 야릇한 충성심, 그건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왜지? 물리는 순간 세뇌되는 걸까?’

이내, 뱀파이어 로드가 자신의 끔찍한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성우 역시 어느 정도 경험한 일이었다. 핵심은 안전 구역 조성을 미끼로 생존자들을 끌어 모아 그들의 피를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전조에 불과했다. 이들은 상상 이상의 미친 듯을 꾸미고 있었다. 성우는 그들이 계획을 세워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때? 우리끼리 파티 한 번 크게 여는 거야. 음, 작전명은 ‘대잔치’로 하자. 좋아. 첫 번째 장소는 어디보자······ 그래, 화성이 좋겠어. 이 동네 사람들 다 초대해서 즐겨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기억 재생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사건은 이제 시작이었다.

성우에게도 퀘스트가 주어졌다.

[전용 퀘스트]

- 제목 : 죽음 조정자

- 유형 : 대학살 ‘구원’ 혹은 ‘활용’

- 목표 : 예정된 대학살을 막거나, 활용하거나

- 보상 : 전용 스킬

당신은 대학살을 직면했다. 사실 이 세계에서 대학살이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이벤트일 수도 있다. 앞으로도 번번하게 벌어질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된다. 죽음의 고삐를 쥔 거룩한 자로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방치하여 망자가 된 이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운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전용 퀘스트,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학교에서 교수님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였다. 아무래도 무언가 거대한 흐름 앞에 선 것 같았다.

“대학살이라······.”

뱀파이어 로드의 퀘스트, 성우의 퀘스트 두 개는 어떤 대척점에 있는 걸까?

점점 더 스케일이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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