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6화 (26/244)

# 26

9) 폐공장의 인신매매 조직 - 2

경수는 의아했다.

유성우, 이 남자는 모든 게 계산된 것인 냥 행동했다. 세상이 게임으로 변한 첫 날부터, 냉정하게 핵심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분명 평범한 대학생이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랬다. 5명의 조직원 중에서 어떻게 정확하게 흡혈귀부터 노릴 수 있단 말인가?

푹! 푹! 푹! 푹!

통성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4개의 투창이 흡혈귀의 몸 곳곳에 처박혔다. 미처 대응할 수 없는 기습이었다.

“으윽!”

이어서 나타난 짐승 머리를 한 스켈레톤들이 흡혈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장면은······ 아무리 원수라지만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폭주에 이어서 재생을 해버리니, 가장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한 명만 살려둬.”

성우는 순식간에 조직원들을 처리하고 경수를 비롯한 노예들의 구속을 풀어주었다.

“선배, 그 변태 로드 새끼가 우리라는 걸 눈치 챘겠죠? 곧 나타나는 거 아니에요?”

뱀파이어는 제 동족의 죽음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난데없는 죽음의 원인을 성우로 추정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태성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뱀파이어 로드는 이 지역에 없다고 한다. 성우 일행이 공격할 곳인 인신매매의 중심지, ‘폐공장’은 그 휘하의 흡혈귀가 관리 중이라고 했다.

“이렇게 또 성우 씨의 도움을 받네요.”

경수는 탈진 직전이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말씀드리기 부끄럽네요.”

그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수원 화성 안전 구역’을 찾아서 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중고차 매매단지에 있던 인신매매 패거리였다.

놈들은 경수 일행을 버스 째로 납치해서 ‘폐공장’에 말 그대로 납품해버린 것이다.

“그 안에서 온갖 흉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착취는 물론이고 강간, 식인······ 믿기지가 않아요······ 아무리 세상이 미처 버렸다지만, 고작 며칠 만에 그런 짓을 벌이는 게 말이 됩니까?”

“이해해요.”

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미친 게 아니에요. 미친놈들이 사회 속에 숨어 있었을 뿐이죠.”

적응과 해방은 다르다.

놈들은 해방된 것이다.

성우는 유일하게 살려둔 조직원을 돌아보았다. 이십대 초반쯤으로 어려보이는 놈은 겁에 잔뜩 질린 얼굴이었다.

“자, 살 수 있는 기회를 줄게. 아니면 저기 저 멍멍이 보이지?”

성우가 가리킨 멍멍이는 웨어 울프 스켈레톤이었다.

딱! 따―닥!

녀석이 엇박자로 이빨을 부딪치자, 조직원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그는 바들바들 떨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뭐든! 뭐든 말씀드릴게요!”

“공장 안에 몇 명이 있지? 흡혈귀 몇 명, 플레이어 몇 명, 정확하게 말하고 레벨이 몇인지도 말해.”

“흐, 흡혈귀는 넷인데 바, 방금 하나 죽었고 프, 플레이어는 열두 명 있습니다! 레벨은 5레벨이 하, 한 명 4레벨이······.”

“제일 높은 애로만 말해.”

성우의 말에 놈의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아, 알기로 5레벨이 제일······.”

그 외에도 성우는 폐공장의 진입 방법이나 경비 수준 등, 이것저것 도움이 될 만한 걸 캐물었다.

“성실하게 잘 대답하네.”

“가, 감사합니다!”

성우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리는 사이······.

푹!

“커, 컥!”

경수가 달려들어 조식원의 목덜미에 창을 처박았다.

“하아, 하아······.”

경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 쳤다.

“저 새끼 사, 살려두면 안 됩니다. 저 개새끼가! 제, 제 동기를······.”

“잘하셨습니다.”

어차피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성우는 경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경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분노와 당황과 자책을 넘어서, 어딘가 이유 모를 안정감이 느껴졌다.

해방된 것들보다야 느리지만, 어느새 누군가는 적응하기 시작했다.

“경수 씨도 폐공장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알 텐데, 저희에게 조언해줄 거 없습니까?”

경수가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경비가 삼엄합니다. 몬스터 접근을 막기 위해서이긴 한데, 사방에 상시 경비가 있어요. 어설프지만 돌담에 철조망까지 쳐놔서 돌파가 안 될 것 같은데······.”

경수가 느끼기에는 폐공장을 치는 게 무리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성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일행을 둘러보았다.

“작전이 있습니다.”

***

폐공장의 부지는 꽤나 넓었다. 아주 오래전 공산품을 만드는 제조 공장이었다가 회사가 도산한 뒤 물류 창고로 쓰였고, 그 이후 현재까지는 텅 빈 상태였다.

인근 주민이었던 흡혈귀 무리는 그 넓고, 폐쇄된 공간을 아지트로 삼았다. 5일 사이에 쓸모 있는 물건과 식량, 연료 등을 모아서 이곳을 요새화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들의 그들의 뱀파이어 로드, 일명 ‘대표’의 명령이기도 했다.

“지부장님, 침입자가 생길 수도 있으니 경계 확실하게 하라고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박 팀장이 죽은 겁니까?”

“그래. 나도 느꼈고 대표님께서도 직접 언지를 주셨다. 정신 연결이라는 게 ‘피’가 많이 들어가는 일인데도 연락 주신 걸 보면 확실하다.”

공장 2층, 철제 난간에 서 있는 ‘지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발 아래로 펼쳐진 공장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어느새 온갖 물건들과 몬스터의 시체로 부산했다. 심지어 그 물건 중에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흡혈귀의 능력치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험치이자 식량이었고, 대표는 주요 사업으로 ‘사람 확보’에 초점을 맞추라고 지시했다.

“저, 지부장님, 그런데 대표님께서는······ 어떤 생각이신 겁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사람을 잡아 들어야 되는 거죠?”

적지 않은 수의 조직원들이 여전희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 이 집단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사실 앞으로 뭘 해야 갈지, 모든 게 막연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지부장 역시 대표라는 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왜 각 지역에 권속과 거점을 두고 있는지, 아직까지는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믿었다.

“이건 생존 경쟁이고 진화 사업이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선두가 되어야 돼. 나는 대표님의 통찰력을 믿는다. 그분에게는 철학이 있어.”

사실 철학 같은 건 잘 몰랐지만, 아무튼 그렇게 느껴졌다. 지부장이 느끼기에 대표라는 사람은 아름답고 신비한 존재였다. 하물며 공장과 물류창고를 전전하던 자신의 비루한 신세를 하루아침에 뒤바꿔준 은인이기도 했다.

드르륵!

그때, 공장의 육중한 문이 열리며 낯선 얼굴이 들어왔다. 경비 두 명이 젊은 남자 한 명을 끌고 나타난 것이다.

“지부장님!”

경비가 결박된 남자의 등을 떠 밀었다.

“지부장님 말씀대로 침입자를 잡았습니다!”

벌써 잡았다고?

사냥을 나갔던 ‘박 팀장’을 살해한 자, 그 자가 침입할 수도 있는 상황을 경계하라고 지시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잡히다니······.

“큭, 참나. 대표님께서 괜한 걱정을 하셨군.”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는 난간 아래까지 끌려온 침입자를 내려다봤다. 평범한 인상의 젊은 남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남자는 어딘가 여유가 넘쳤다. 자신을 올려다보기는커녕, 마치 견학이라도 온 듯 공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이!”

지부장이 그렇게 소리치고 몇 초 뒤에야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지부장은 그 꼬락서니가 괘씸한 걸 넘어서 황당하게 느껴졌다.

“너는 누구지? 네가 박 팀장을 죽였나?”

그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박 팀장?”

“그래.”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정확히는 비웃음이었다.

“그 죽은 놈이 이마에 명함이라도 붙이고 다녔나보지?”

“뭐?”

“지들끼리만 아는 직책으로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알아? 어설프게 사업 흉내 내는 새끼들 아니랄까봐 허세만 잔뜩 들어가지고, 그럼 넌 직함이 뭐냐?”

“······지부장이다!”

그 말에 남자는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어디 지부장인데?”

“······.”

“이 새끼, 상상 속 지부장이었네.”

이런 대화가 오고가자 공장 안이 싸늘하게 식었다. 조직원들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지부장 눈치를 볼 뿐이었다.

지부장은 지금, 관자놀이에 핏줄이 곤두서고 이를 박박 갈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씩 웃었다.

“연락 못 받았어? 너희 대표한테?”

박 팀장을 죽인 자가 침입할 거라는 대표의 경고는 정확했다. 그런데, 이런 식일 거라고는 아마 대표조차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공장 안에 잡혀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번져나갔다.

“저 남자 마, 맞지?”

“맞아. 학교에서 봤던 그 남자야.”

“누군데요?”

“우리 전부를 학교에서 구해줬던 사람이에요.”

남자를 알아본 사람들의 목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지부장은 어딘가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닥쳐! 저 새끼들 조용히 시켜!”

그는 씩씩거리며 철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와 정면으로 마주섰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침입하신 거다?”

“에스코트까지 해주던데?”

지부장은 눈을 돌려 그의 팔을 바라보았다. 분명 등 뒤로 완전히 결속된 상태였다.

“이 미친 새끼가 지금 어디서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어? 그래, 네가 침입한 거라고 치자, 너 혼자 와서 뭐하겠다고? 응?”

지부장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이 게임처럼 변해버린 지옥에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대표라는 인물을 맹신했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대체 왜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난 혼자가 좋더라고.”

그리고 남자의 말이 멎는 순간,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

그리고 지부장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이내, 검은 연기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공장 안을 가득 메웠다.

“큭!”

“헉!”

사방에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 죽음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능력치가 대폭 감소합니다.

그 메시지와 검은 연기 뒤로 보이는 건······.

“스킬 좋네.”

난데없이 나타난 하얀 악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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