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2화 (22/244)

# 22

7) 수원 화성의 안전 구역 – 3

한호의 아버지인 이정호가 주장하길, 시의 적절하게 ‘개척자’ 카드를 뽑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고스톱 경력 덕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 한호에게 조기에 화투 패를 쥐어주지 않은 게 일생일대 최악의 실수라고 말했다.

“이놈아, 손은 눈보다 빠른 것이다! 장차 나라를 뒤흔들 큰 도적이 되려면 이 애비 말 명심해라.”

“아빠······ 알았어요. 그만하세요. 고스톱으로 날리지 않았으면 진작 이뤘을 건물 주 꿈, 이제야 이루신 거잖아요. 근데, 엄마는 뭐 뽑으셨어요?”

“나는 조리사?”

- 조리사(★)

“아니? 조리사가 뭐예요! 싸울 수 있는 걸 뽑아야죠!”

“이 놈 자식아! 넌 이 늙은 엄마한테 나가서 싸우라는 거냐? 너랑 네 애비 밥상 차려주는 것도 등골 빠져!”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세 가족이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성우는 지수에게 어떤 연계 카드를 뽑았는지 물어봤다.

“저는 3성 히트맨 뽑았어요.”

‘히트맨(Hitman)’ 우리말로 풀면 ‘살인청부업자’ 정도가 되겠다. 그 결과, 지수의 기존 직업인 ‘착호갑사’와 연계 되어 ‘절묘한 감각’이라는 스킬이 나왔다고 한다.

“패시브 스킬인데, 난전 상황에서 감각이 대폭 확장된다고 하네요. 아직 뭔지 잘 모르겠어요.”

지수의 말대로, 그 자세한 기능은 전투가 벌어져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아저씨, 개척자 스킬 좀 설명해주실래요?”

성우는 정호에게 개척자 전용 스킬, 안전 구역을 만들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 물었다. 그 스킬이 다음 행보를 결정하게 될 결정적인 키 포인트였으니 말이다.

“그래 잠깐만, 꼼꼼히 알려주마.”

해당 스킬의 상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스킬 정보]

- 이름 : 개척 캠프 조성

- 등급 : 기초

- 분류 : 액티브

- 소모 : 10분당 10마나 소모

몬스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안전 구역 1곳을 조성합니다. 구역의 면적은 200m², 높이는 10미터로 제한됩니다.

안전 구역은 ‘쉴드’로 방어됩니다. 손상된 쉴드는 실시간으로 회복되지만 강력한 공격에 의해 파괴될 수 있습니다.

마나가 소진될 시 골드를 소비합니다. (10분당 10골드 차감)

앞선 안전 구역들이 흔히 말하는 ‘월세’를 받겠다는 이유가 있었다. 안전 구역을 유지할 마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골드는 다른 이들을 통해 수급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안전 구역을 만들어서 유지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골드를 물어다 줄 사람들을 잔뜩 구해서 큰 집단을 만드는 것 역시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고.’

성우는 건물 밖을 슬쩍 내다봤다. 어둠 속, 몇몇 와이번들이 비행을 준비하려는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일단 그 스킬은 정말 위급할 때 쓰도록 하죠. 안전 구역을 만들 수 있는 괜찮은 장소도 찾아봐야 하니까요.”

“선배, 그럼 그 수원 화성에 있다는 안전 구역으로 안 가는 거예요?”

“굳이 접촉할 필요 없지. 안전 구역을 조성할 수 있는 집단은 어떻게 해서든 갑질을 하려고 할 거야. 마주쳐봐야 피곤한 상대일게 뻔해.”

더 이상 인심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이를 갉아먹어야만 한다. 그걸 일찌감치 눈치 챈 이들이, 커뮤니티를 활용해서 착취할 대상을 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최대한 배타적으로 생각해야 된다. 그게 자기 방어다.’

동이 트기 직전, 와이번 무리가 날아올랐다. 성우 일행은 그럼에도 꽤 긴 시간의 여유를 가진 뒤에 상가를 나섰다. 와이번들이 충분히 멀리 가기를 기다린 것이다.

“한호야, 커뮤니티에 상점 위치 같은 게 올라오는지 확인 좀 해봐.”

“네, 잠깐만요.”

24,560골드, 성우가 가진 골드였다. 빨리 이 골드를 풀어서 한 층 더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 근처에는 안 나오는데······.”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모든 정보가 올라와 있을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부아앙! 부우우―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눈앞의 사거리에서 바이크 세 대가 나타났다. 소리는 요란하지만 도로에 정차된 차 때문에 그다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 쟤들! 어제 걔네 아니에요?”

한호의 집 앞으로 와서 모든 골드를 내놓으라고 했던 양아치 무리였다. 성우는 그 모습을 보다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쟤들한테 물어보자.”

“······네?”

“쟤들, 사람들한테 골드 털고 다닌다며? 그럼 그걸 사용할 상점 위치도 알고 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지.”

“아, 그런가?”

절묘한 타이밍에,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애송이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

어느 낡은 상가의 지하주차장, 형형색색의 바이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곧 세 대의 바이크가 더 들어오더니 그 맞은편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다섯 명의 남녀가 바이크에서 내리더니 지하주차장 구석의 상가 입구로 들어갔다.

“시발, 와이번 때문에 괜히 밤새 뺑이 쳤네. 우리 정육점에 몇 시간 갇혀 있던 거냐? 으, 피곤해.”

“덕분에 고기 좀 얻었잖아. 이득임.”

“야, 넌 이 시국에 삼겹살 얻었다고 좋아하냐?”

이들은 가출청소년과 폭주 서클로 구성된 동네 양아치들로, 평소에도 반사회성을 잔뜩 품고 지내던 아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게임이 벌어진 직후, 웬만한 어른들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늘 하던 비행을 곱절로 과감하게 행하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야, 태성아 너 이번에 실버 룰렛 돌릴 수 있지 않냐?”

이들 중 레벨이 가장 높은 이는 한태성이었다. 고등학교를 입학 일주일 만에 자퇴하고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운이 좋게도 ‘격투가’라는 직업을 골랐다.

그 결과 몸에 익은 복싱 기술로 고블린 따위의 몬스터를 쉽게 때려잡았고, 현재 6레벨에 도달한 상태였다.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골드를 벌고 있기도 했다.

“조금만 더 모으면 될 것 같다. 저번에 생존 패키지 나와서 죽 쒔는데, 제발 이번에는 쓸 만한 것 좀 나오길 바라야지.”

그들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지하에 위치한 아지트, 공판장으로 들어갔다.

우우웅―

널찍한 실내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는 중이었지만 형광등은 꺼둔 상태였고, 매대나 냉장고에서 나오는 음습한 불빛만이 곳곳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야, 얘들아! 우리 왔다!”

“우리 죽은 줄 알았지?”

하지만 실내는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 고요했다.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안쪽 구석, 사무실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쉿.”

불안함을 느낀 태성은 너클을 꺼내어 손에 장착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사무실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

“하.”

태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아홉 명의 친구들이 고개를 들어 태성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마치 초상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야, 다들 왜 그래?”

태성이 물었고, 그 사이에서 빨간 후드티를 입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아, 그, 아저씨가 왔어······.”

아저씨라는 말에 태성의 눈이 커졌다.

“뭐? 왜 또!”

“수, 수금이 적다고······ 그리고 유진이, 유진이까지······.”

“유진이를 왜!”

태성은 고함치며 사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문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지만 그가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며 퀭한 얼굴의 여자가 나타났다.

“시끄러워······.”

그녀는 반쯤 풀린 동공으로 태성을 바라보았다.

“······어?”

그런데, 그녀의 목덜미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태성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유, 유진아 너······.”

“시, 시끄럽다고! 입 열지 마, 네 살냄새 맡으면 나까지 배, 배고파지잖아. 머리 아파서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유진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더니, 울상을 짓곤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 사장실의 의자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년 성질 더러워서 원······ 어, 한태성이! 너 이리 와봐!”

그는 태성을 발견하고는 손짓을 했다. 태성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내 힘을 풀고 사장실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이, 태성이.”

“······예.”

“우석이 왜 죽였어?”

김우석······ 한때 이들의 리더였던 아이의 이름이었다. 못 배우고 가난했지만, 언제나 밝고 의리가 있었기에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이 의지했던 대상이었다.

“······.”

그런데, 그런 녀석이 괴물로 변했다. 저 ‘아저씨’라는 사람을 만난 뒤로 말이다.

그 이후, 우석은 피를 갈구했다. 그렇기에 골드만 갈취한다는, 자신이 만든 룰을 깨버리고 생존자들의 생명까지 빼앗기 시작했다.

“응? 왜 죽였냐고 새끼야.”

그게 끝이 아니었다. 녀석의 갈증은 도를 넘고 말았다. 이성을 상실한 채 친구들의 목덜미까지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태성이 직접 죽였다. 우석이 다른 친구를 공격하는 순간, 뒤를 노려서 머리를 으깨어버렸다.

“······그 새끼가 우릴 공격하는데 어떡해요.”

“오, 그럼 다음번에는 유진이가 공격할 텐데?”

“······.”

“내가 말했잖아. 참으면 독 된다고. 적당히 피를 마시게 하면 현상 유지 된다니까? 하, 이거 참, 애새끼들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골치 아파.”

“적당히, 그게 도대체 얼마인데요? 우석이 그 새끼가 몇 명을 죽인 줄 알아요?”

“어쭈? 지금 개기는 거야?”

아저씨라는 남자가 씩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표님께서 사업 확장하시는데 너희도 껴 주겠다는 거 아니야. 너희가 우리 말 안 듣고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응? 말해봐.”

“그냥 내버려두시면 저희끼리 알아서 한 번······.”

“땡. 틀렸어. 말 안 들으면 우리가 찾아가서 깡그리 다 죽일 거라는 소리인데 뭘 놔둬, 나두기는? 아직도 상황파악 못하지?”

태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무력감이었다.

“야, 태성아.”

“예.”

“이틀 뒤까지 일만 골드다. 아니면 다음은 네 목이다. 눈앞에 상점 있다고 돈 허투루 낭비하지 말고. 차곡차곡 쌓아서 기다려라. 도망 못 가는 거 알지?”

태성은 감히 항변하지 못했다.

쿵! 쿠궁!

그런데, 문밖에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부서지고 엎어지는 둔탁한 소리였다.

“응? 뭔 소리야?”

그때, 사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바가지 머리를 한 아이가 뛰어 들어왔다.

“태, 태성아! 누, 누가 왔어!”

다급한 목소리에 아저씨는 코웃음을 쳤다.

“아직 마트에 손님도 오니?”

“그게 아니고 해, 해골이!”

그때, 누군가 아이의 어깨를 잡아당기고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장검을 든 남자였다.

“······.”

그는 말없이 사장실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정면에 선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손님, 뭐 필요하신 거라도?”

그러자 남자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다 내놔.”

“응?”

“가진 거 다 내놓으라고. 너희가 뺏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태성은 이 난데없는 상황 앞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당장, 아저씨가 저 낯선 남자의 목덜미를 노리고 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곧, 이곳은 피 바다가 될 것이란 걸······.

“으흐흐······.”

아저씨가 웃으며 이빨을 드러냈다. 뾰족한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 역시 그 괴기한 이빨을 봤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이빨······ 너냐?”

“······응?”

“H아파트 패거리의 보스라는 놈이?”

아저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아파트 애들을 죽인 게······.”

“그래 나다.”

남자의 마지막 말이 끝나는 동시에, 아니 그 전에, 아저씨가 달려들었다. 어느새 그의 손톱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콰직!

그때, 사장실의 얇은 가벽이 무너지며, 그 사이를 뚫고 하얀색 덩치들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덜그럭!

2미터의 거구들은 순식간에 쇄도해서, 양쪽에서 아저씨의 어깨와 팔을 붙들었다. 남자 역시 허리춤, 칼자루 위에 얹어 있던 팔을 뻗었다.

푹!

“혹시 너는 가능하냐?”

남자의 칼날이 아저씨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끅! 끄륵!”

“······두개골 재생하는 거?”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만, 태성은 주먹의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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