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1화 (21/244)

# 21

7) 수원 화성의 안전 구역 - 2

‘총 세 마리. 어딘가 더 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거대한 늑대 떼에 대한 목격담을 수차례 들어왔다. 김 병장의 경고는 물론이거니와 커뮤니티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 되어 왔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성우는 언젠가 놈들과 마주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막연했다. 대체, 그 거대한 늑대 무리에게 어떻게 맞서야 된단 말인가?

으르르······

사족보행을 하는 맹수와 근접 육탄전을 벌이는 건 위험하다. 단순히 이빨이나 발톱 혹은 완력의 차이를 떠나서, ‘균형 싸움’에서 불리하다.

“모두 안으로 물러나요.”

늑대들은 땅과 척추가 수평이다. 그렇기에 육탄전에서 뒤엉키더라도 몸을 뒤틀어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땅과 척추가 수직이다. 넘어지는 순간, 다시 균형을 회복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덮쳐지면, 그걸로 끝장이다.

저벅― 저벅―

일행은 천천히, 건물 안으로 뒷걸음질 쳤다. 물론 건물 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다.

놈들은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이었기에 좁은 복도를 손쉽게 헤집어 놓을 수도, 창문을 뜯거나 벽을 무너뜨려서 내부로 들어올 수도 있었다.

늑대 떼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말 듯,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고, 일행 역시 신중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이내,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추는데 성공했다.

킁― 킁―

선두의 늑대는 주둥이를 땅에 박고 냄새를 끌어 모았다. 사냥감이 눈에서 벗어났지만 어디에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한 동굴 안으로 접어들었지만 멀리 가지 않았다.

늑대는 궁지에 몰린 사냥감을 끄집어낼 준비를 하며, 좁은 건물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 순간

파앗!

늑대의 머리를 향해 무언가 날아와 산산조각 났다. 그건 오렌지 주스 상표의 유리병이었다.

“명중.”

문제는 내용물이었다.

치이익!

끈적이는 액체가 거대한 대가리를 흥건하게 적셨고, 이내 악취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물며 거친 털이 솜털처럼 녹아내리며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어제 담아둔 엘더 슬라임의 산성 액체였다.

깽! 깨깽!

늑대는 기겁하며 앞발로 제 얼굴을 벅벅 긁어댔다. 그러나 산성에 의해 물러져버린 털과 살점이 뭉텅뭉텅 떨어져나갈 뿐이었다.

“던져!”

그와 동시에 투창이 날아가 놈의 콧잔등과 목덜미를 꿰뚫었다.

이족보행 동물, 그 중에서도 곧은 척추를 가진 인간이 맹수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동작이 있다. 그건 바로 ‘던지기’다. 인간의 골격 구조는 그 어떤 동물보다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대 인류는 ‘투창’을 이용해 훨씬 크고 힘이 센 맹수들을 사냥했었다.

컹! 컹!

그러나 늑대들의 사기는 꺾이지 않았다. 다른 한 마리가 머리를 공동 현관문을 발로 긁어 박살내고, 건물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너, 돌진!”

성우의 명령에 오크 스켈레톤 한 마리가 정면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늑대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놈을 덥석 물었다.

콰득!

하지만 스켈레톤의 갈비뼈 안에는 슬라임 액체가 든 유리병이 들어 있었다.

켁! 켁!

놈은 입안 한 가득 쏟아진 역한 액체에 기겁하며 호흡곤란 증상을 일으켰다. 몸을 비틀며 뒤로 엉거주춤 물러나기 시작했으나······.

순간, 무언가 공중에서 낙하하며, 놈의 목덜미에 안착했다. 역시나 오른이었다.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푹!

녀석은 그대로 일본도를 내리찍어, 고통을 느낄 세도 없이 놈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 다이어 울프를 사냥하여 240골드를 얻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두 마리, 그 마저도 한 마리는 슬라임 액체를 뒤집어쓴 채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덜그럭― 덜그럭―

오크 스켈레톤들이 건물 밖으로 돌격했다. 언제나 그렇듯, 결국 기세가 넘어왔다. 한 번 꺾인 적들은 손쉬운 사냥감일 뿐이다.

으르르!

아직 멀쩡한 한 마리가 다친 제 동료를 보호하며 호기롭게 덤벼들었지만, 더 이상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수적 우위란 비율의 문제다. 방금 전까지는 기껏해야 4배 차이였지만 이제는 12배 차이가 났다. 사방에서 에워싸고 팰 수 있는 정도가 된 것이다.

콰직!

한 마리 오크 스켈레톤이 물린 채 좌우로 휘둘러지며 처참하게 부서지는 사이, 다른 스켈레톤이 좌우로 넓게 퍼지며 목덜미와 몸통에 뼈로 만들어진 창을 박았다.

깽!

- 다이어 울프를 사냥하여 240골드를 얻었습니다.

- 다이어 울프를 사냥하여 240골드를 얻었습니다.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7)

“후······.”

성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순발력을 발휘해 상대했지만, 막상 이게 통할지는 몰랐다.

용도가 불분명함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슬라임 액체를 챙겨두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좁은 통로 안에서 분전을 하다가 괴멸 당했을 게 뻔했다.

“와, 와우······. 얘들이 세계관 최강자인 거죠?”

“아니.”

“그럼요?”

“일체형 책상이 더 세더라.”

“아하?”

이어서 성우는 레벨 업 카드를 선택했다. 이번 선택 역시 ‘스킬’ 항목이었다.

- 최대 권속 수가 (+1)만큼 증가합니다.

“······.”

겨우 하나? 뭐, 이게 잘못된 건 아니었다만, 계속 운이 좋았다보니 새삼 아쉬웠다.

어쨌든,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자 한호는 놀란 부모님을 추슬러 나왔다.

그런데 한호의 부모님은 스켈레톤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한호가 미리 언지를 해두었기 때문일까?

“계속 보니 좀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얘 좀 봐라? 큰 형들 사이에 껴서 앙증맞게 걸어 다니는 것 좀 봐라?”

한호의 어머니는 오른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치 엄마? 근데 걔가 대장이다?”

“어머 얘가? 장하네? 넌 언제쯤 대장 같은 거 해볼래? 어릴 때 내내 반장 한 번 못해보고.”

딱딱―

성우는 심미안도 유전인가 싶었다.

이제 중요한 절차가 남았다. 성우는 ‘다이어 울프’의 사체 앞에 섰다. 그리고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불어넣었다.

- 망자가 당신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 레벨이 낮아서 ‘대형’ 몬스터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성우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 네 발 괴물을 일으킬 수 있다면 아주 효율적인 이동수단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빨리 자리를 뜨죠. 주변에 더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더 큰 무리를 마주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일행은 수원 화성의 안전 구역을 향해 출발했다.

***

“젠장. 아직도 건물 위에 앉아 있어요. 영원히 안 가는 건 아니겠죠?”

수원 화성까지 몇 시간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10분 안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약 15분 전······.

두두두두!

프로펠러 소리가 하늘을 가득 채웠고, 이내 머리맡으로 군용 수송기 네 대가 스쳐지나갔다. 일행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 군대네요! 군대에서 뭔가 조치를 하려는······.”

한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체 후미의 개폐된 램프 도어(Ramp Door)에서 다급하게 움직이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후방을 향해 무언가를 발사하고 있었는데, 그건 총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석궁과 활 따위의 조악한 무기를 어딘가를 향해 쏘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물이 나타났다.

카아악!

“미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일행은 다급하게 근처 상가로 몸을 숨겼다.

수십 개의 거대한 그림자가 수송기의 뒤를 맹렬하게 쫓고 있었다.

광풍을 몰고 나타난 피막의 날개, 학교에서 탈출했을 때 목격했던 바로 그 괴물들······.

- 필드 보스 ‘와이번 알파메일’이 출현했습니다.

와이번 무리를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 것이다.

놈들은 엄청난 속도로 수송기를 따라 잡더니 램프 도어 안으로 머리를 우겨넣었다. 군인들은 좁은 통 속에 갇힌 벌레 떼처럼 무력하게 학살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와이번은 말벌 떼처럼 집요하게, 동체의 이곳저곳에 달라붙어 발톱과 이빨로 창문을 뜯고 장비를 망가뜨렸다. 결국 수송기는 균형을 잃고 말았다.

쾅!

근방에서 추락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어느새 프로펠러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

일행은 상가에 딸린 작은 핸드폰 대리점에서 와이번 무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포식을 마친 놈들은 인근 건물의 옥상에 내려앉아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무려 6시간이 지났지만, 놈들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긴 날개를 가지런히 접고 잠에 빠진 개체도 있는 걸 보면 이 자리에서 오래 머물 모양이었다.

“안전 구역이 코앞인데······.”

“결국 움직일 거야. 저 놈들을 뚫고 갈 수는 없어.”

그런데, 육중한 몸으로 비행하는 게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일까? 놈들의 휴식은 한없이 이어졌다. 어느덧 밤이 왔고, 일행도 하는 수 없이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정이 지났을 때······.

-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에 가장 좋은 직업은 무엇일까요? 지금 바로 선택하십시오.

“응?”

“시작 됐다.”

두 번째 플레이어 선발이 시작되었다.

“엄마, 아빠! 제발 아들처럼 되지 마세요. 저를 반면교사 삼아서 별 많은 걸로 고르세요!”

“으이그! 아들처럼 되지 말라니, 그게 자식이 부모한테 할 말이냐?”

한편, 이미 직업 카드를 뽑은 성우, 한호, 지수의 눈앞에는 다른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직업 연계 카드를 선택하세요!

“연계?”

이내 눈앞에, 강의실에서 처음 봤던 그 장면이 펼쳐졌다. 다양한 색깔의 카드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

- 15초 남았습니다!

그때는 당황했지만, 지금은 신중할 수 있었다.

‘연계 카드라고 하면 지금 직업과 조합이 되는 건가?’

팟!

역시 카드 한 장이 사라졌다. 그렇다는 건, 이 결정 과정이 성우에게만 독립적으로 부여되는 게 아니라, 많은 이들과 공유된다는 뜻이었다. 방금 누군가가 카드를 뽑은 모양이었고, 이 조차도 경쟁인 셈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조급해지지 않았다.

‘연계라면 무조건 별이 많은 걸 뽑는 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네크로맨서와 조합될 때 가장 효율적일 수 있는 게 뭘까?’

그는 빙글 빙글 돌아가는 카드를 하나씩 살폈다.

- 방패 전사(★★)

- 협객(★★)

- 닌자(★★★)

- 팔라딘(★★★★)

- 달변가(★★)

- 재블린 스로(★★★)

이 외에도 여러 장의 카드가 순차적으로 눈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와 어울릴만한 키워드는 보이지 않았다.

- 8초 남았습니다!

성우의 눈이 더 빨라졌다. 그때, 저 멀리 보라색의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 워록(★★★)

워록(Warlock), 그 의미가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지만 쉽게 생각하면 ‘흑마법사’였다. 그런데 흑마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지 않은가?

‘체육관의 오크 추장, 그 놈이 흑마법을 썼었지?’

놈은 제물까지 바쳐서 흑마법을 부렸지만, 결과적으로 성우의 능력치를 대폭 강화시켜 주는 꼴이었고, 성우는 물 만난 고기처럼 ‘1차 각성’에 도달해 놈을 도륙했다.

그때는 어부지리로 맛본 흑마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직접 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성우가 손을 뻗었다.

- 연계 카드를 선택하셨습니다.

* 워록(★★★)

이어서

- 기존 직업 카드(네크로맨서)와 연계되어 새로운 스킬이 부여됩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죽음의 아우라

- 등급 : 기초

- 분류 : 액티브

- 소모 : 1분당 10

스킬 사용 시 ‘죽음의 아우라’를 방출하여 휘하의 언데드를 강화합니다. 강화 효과는 랜덤으로 부여됩니다.

강화된 언데드는 접촉한 적에게 저주(쇠약)를 부여하여 지속적인 피해를 가하며 주변의 언데드 숫자가 많을수록 피해량이 증가합니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으아아!”

하지만 한호는 이번에도 아닌 모양이었다.

“왜 그래?”

“미친!”

“왜, 왜.”

한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 제가 뽑으려는 걸······ 어떤 놈이 낚아채는 바람에 손이 미끄러졌어요······. 4성짜리였는데······.”

“그래서 뭘 뽑았는데?”

“프, 프리스트······.”

“프리스트면 성직자잖아? 도적이랑 성직자라? 전혀 안 어울리는데?”

“망했다. 잡캐 키워버렸다.”

하지만 이 게임은 어떻게든 직업을 섞어주는 모양인지, 나름 그럴 듯한 스킬이 나왔다.

- 기존 직업 카드(도적)와 연계되어 새로운 스킬이 부여됩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신념의 처단자

- 등급 : 기초

- 분류 : 액티브

- 소모 : 10

적의 숨통을 끊는 순간, 10초 간 성스러운 방어막을 얻습니다.

그 사이, 성우는 지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떤 연계 카드를 선택했을지 물어보려는 순간······.

“야, 한호야. 이거 좋은 거지?”

한호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뭔데요?”

“개척자.”

“개, 개척자요? 헐 아, 아빠 대박인데?”

그 말에 한호의 아버지가 씩 웃었다.

“그림이 예뻐서 뽑았지. 이놈아, 너는 그렇게 손이 느려서 어디서 도적질을 할 수냐 있겠냐?”

개척자, 안전 구역을 설정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이렇게 되면······.

“수원 화성으로 갈 이유가 사라졌네요.”

직접 안전 구역을 만들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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