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6화 (16/244)

# 16

5) 학교 밖, 지옥으로 - 2

고블린은 달리고 있었다. 겁에 잔뜩 질린 채 살아남기 위해서 미친 듯이 뛰었다. 조금만 더 가면 부락이 있으니 그곳까지만 가면 안전하다고 믿었다.

덜컹!

고블린은 유리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은 프랜차이즈 순대국밥 집이었다.

아니, 이제는 고블린들의 새로운 터전이었는데, 식탁에 온갖 천 조각을 붙여 마치 텐트처럼 만들어 놓았다. 나름 개인 공간인 셈이었다.

끼이! 끼이이!

문이 열리며 소란이 일자 몇 마리의 고블린이 식탁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도망쳐온 고블린의 등 뒤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덜그럭―

고블린이 고개를 천천히 돌리니······ 거구의 스켈레톤 두 마리가 유리문 앞에 떡 하니 서 있었다.

끽! 끼익!

고블린들은 기겁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본능이 경고했기 때문에 객기 따위는 부리지 않았다.

고블린들은 무기를 챙겨들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주방 구석에는 골목길로 이어지는 뒷문이 있었다. 선두의 고블린이 서둘러 문을 열었다.

“이럴 줄 알았지.”

그런데, 문 앞을 무언가 틀어막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건 큼직한 방패였다.

푹!

장검이 고블린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방패 뒤에서 나타난 얼굴은 역시나 성우였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방 안으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고블린들은 제 키만 한 방패를 어찌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놈들은 그대로 뒷걸음질 쳤고, 그러는 사이에도 성우의 세이버가 무자비하게 날아들었다.

촤악!

- 고블린을 사냥하여 10골드를 얻었습니다.

하물며 뒤에서는 오크 스켈레톤 두 마리가 퇴로를 막고 전진해왔다. 그러자 태생적으로 약자인 고블린은 감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사냥이 펼쳐졌다.

“이거 참······.”

성우를 따라 뒤늦게 들어온 한호가 입맛을 다셨다. 주방 타일이 온통 피 바다가 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선배, 혼자 다 해 드셨네요.”

“별로 먹을 것도 없더라.”

학교에서 탈출하고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그 이틀 간 잡은 고블린 수만 해도 백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이 저 레벨 몬스터는 어찌나 많은 지, 골목이고 상가 건물이고 벌레처럼 꼬여 있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LV. 6)

“더 이상 고블린만 잡아서는 안 되겠어.”

이틀 동안 그렇게 수도 없이 잡아서, 이제야 레벨을 1 올렸다. 속도가 너무 느리다. 게임의 관점으로 본다면 사냥터를 옮길 때가 된 것이었다.

- 레벨 업 카드를 선택하세요.

1) 능력치 (랜덤)

2) 스킬 (랜덤)

3) 아이템 (랜덤)

4) 기타 (랜덤)

5) 근력 수치 3만큼 상승 (확정)

성우는 이번에는 ‘5번’ 확정 보상에 눈독이 갔다. 지금까지 나왔던 확정 보상은 기껏해야 ‘근력 수치 1만큼 상승’ 정도에 그쳤었다.

‘근력 3이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그게 무려 3배나 뻥튀기 돼서 나왔다면 랜덤 선택을 통해서도 얻기 어려운 정도의 보상이 분명했다.

- 근력 수치가 상승합니다. (+3)

근력을 선택하는 순간, 온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근육이 달아올라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성우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느낌이 다르긴 다르네.”

설명하긴 어렵지만, 몸에 힘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충만했다. 근력 운동을 한 직후의 느낌이랄까?

[플레이어 프로필]

- 이름 : 유성우

- 레벨 : 6

- 직업 : 네크로맨서

- 능력 : 근력(8), 민첩성(5), 체력(5),

- 보유 골드 : 5,837

- 속성 : 악마

그러는 동안에도 성우의 눈앞에는 어떤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떠올랐다.

- 고블린을 사냥하여 10골드를 얻었습니다.

- 고블린을 사냥하여 8골드를 얻었습니다.

- 고블린 전사를 사냥하여 22골드를 얻었습니다.

벽 너머, 옆 가게에서 한 바탕 소란이 들려오고 있었다. 팀을 나누어 고블린 사냥을 전개한 것이었다.

성우와 한호가 옆 가게, 분식집으로 들어갔을 땐 이미 상황 종료였다. 난장판이 된 식당 한 가운데에서 지수가 행주로 칼날의 피를 닦고 있었다.

“오셨어요? 여긴 아홉 마리 있었어요. 다 잡았고요.”

그녀가 칼날로 한쪽 구석을 가리키니, 멀뚱하게 서 있는 오크 스켈레톤의 발아래에 고블린 시체가 여럿 보였다.

“수고했어요. 한호야, 단검 좀 챙기고.”

고블린을 잡으면 보통 ‘조잡한 단검’을 얻을 수 있었다. 종종 ‘고블린 전사’나 ‘고블린 십부장’ 같은 고 등급 개체를 잡으면 ‘조잡한 창’ 같은 것도 얻을 수 있기는 했다만, 그건 부피만 클 뿐이지 영 쓸모없었다.

다만 단검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원거리 견제용으로 꽤나 위력적인 무기다. 그렇기에 등한 시 하지 않고 충분히 챙겨두는 중이었다.

“가방, 낚시용 하드 케이스 열어.”

어차피 짐을 운반할 인력은 충분하다. 아홉 마리의 스켈레톤은 길에서 노획한 각기 다른 가방을 매고 있었고 그 안에는 편의점을 털어서 챙긴 식량과 생필품, 고블린에게 얻은 단검 등이 들어 있었다.

특히 뾰족한 단검을 보관하기에는 하드 케이스 재질인 낚시용 가방이 제격이었다.

“아, 그리고 이제부터는 고블린은 적당히 무시하고 지나가죠.”

성우가 분식집을 나오며 말했다.

“네? 왜요? 고블린은 이제 질려요?”

“더 센 몬스터를 잡으려는 거죠?”

지수가 성우의 판단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맞아요. 오크 한 마리가 주는 골드는 혼자 잡았을 때 80원이죠. 하지만 고블린은 10원에 불과합니다. 지금까지는 고블린 밖에 안 보였지만 어딘가에 더 큰 보상을 주는 놈들이 모여 있겠죠.”

일행은 더 큰 사냥감 찾기 위해 상가 단지를 벗어나 대로변으로 나갔다.

시야가 확 특이는 곳으로 나오자, 언제 어디서 와이번과 같은 괴물이 덮쳐올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만, 깊은 물에 빠질 게 두려워 강으로 나가는 게 두렵다면 월척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뭐랄까, 좀비 영화 한 장면 같네요.”

한호의 말처럼, 4차선 도로를 가득 매운 채 그대로 멈춘 차량 행렬은 이질적이다 못해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하물며 곳곳에 널린 시체들은 기괴한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악취를 풍겨대 속을 매스껍게 했다.

“어, 저건 군대 차 아니에요?”

한호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오른쪽 차선으로 일렬로 선 국방색 트럭이 보였다.

병력을 수송하는 차량인 모양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주변으로 군인 시체가 여럿 보였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라면 아무도 소총을 장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야전삽으로 싸운 건가?’

반면 이곳저곳에 야전삽이 떨어져 있었다. 전부 펼쳐져 있는 걸 보아하니 군인들은 그걸 무기로 몬스터와 맞선 게 분명했다.

“쓸모 있는 물건 있나 찾아봅시다. 군용 물품이 생각보다 건질 게 없겠지만, 혹시나 총이라도······.”

트럭으로 다가가던 성우는 순간 멈칫했다. 군용 트럭의 운전석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온 것이다.

그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병사였는데, 역시나 야전삽을 꼭 쥐고 있었다.

“어, 그······ 사, 사람 맞죠?”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여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되나?

“뒤, 뒤에 그건······.”

성우는 그제야 그런 질문이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행의 뒤를 바짝 따라오는 스켈레톤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하얀 악마들의 정체가 뭔지 구태여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등병의 얼굴에서 긴장이 조금 가시는 듯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차 안, 조수석 쪽을 바라보았다.

“기, 김 병장님? 사람들입니다.”

그러자 안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럼 딱 봐도 사람이지 이 새끼야. 넌 저게 고블린으로 보이냐?”

성우가 다가가서 확인하니, 조수석에 병장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성우를 쳐다보며 고개를 까닥했다.

“보시다시피 제가 다리가 불편해서 못 나갑니다.”

그의 오른쪽 허벅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블린 단검에 찔리셨군요.”

“예, 시발 초등학생만한 새끼한테 난도질당하니 기분 좆같네요. 이러려고 군 생활 18개월 했나 싶습니다. 저도 나름 주특기 우수자인데······ 윽, 시발.”

“어떻게 된 겁니까? 군대가 고블린에 당한 겁니까?”

성우의 질문에 김 병장이 피식 웃었다.

“고블린한테 털리기도 했고, 사실 고블린 정도야 어떻게든 다 때려잡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때려잡다니 실탄 배분이 안 된 겁니까?”

사실 총만 있다면 고블린, 오크 할 것 없이 싹 쓸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총이 발사가 안 됩니다.”

예상외의 대답이었지만 놀랍지 않았다. 이 게임 시스템이 인류의 군사력으로 극복해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총이 작동이 안 될 줄이야.

“기능 고장은 아니고 간부들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보시다시피 죄다 야전삽이나 대검 가지고 싸운 겁니다. 뭐, 고블린까지는 상대할 만 했죠.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요.”

그때, 성우의 뒤에서 한호가 다가왔다.

“선배, 저, 물약이 있긴 있는데······.”

한호에게는 체력 회복 물약이 있었다. 그 말에 병장의 눈동자가 슬며시 커졌다.

“뭔지 압니다······. ‘플레이어’가 된 후임 놈이 가지고 있는 걸 봤거든요. 혹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김 병장은 성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성우의 표정이 꽤나 냉정하다는 걸 느꼈다. 이내 성우가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생존과 직결된 물건을 선뜻 쾌척하기가 어렵군요.”

하지만 김 병장은 당황한 기색 없이 또 다른 제안을 해왔다.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정보를 모두 제공하죠. 물약도 물약이지만, 이 좆같은 상황에서 정보만큼 중요한 게 없죠. 몸으로 배우려고 하다가는 저처럼 다시 병신이 되니까요.”

“그 정보가 가치가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네요.”

“장담컨대, 가치가 있을 겁니다. 이 길 앞으로 고블린이나 오크만 있다고 생각하시진 않죠?”

성우는 거기까지 들은 뒤, 한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호가 성우의 손 위에 작은 병 하나를 얹었다.

“그럼 들어보고 판단하죠. 먼저 달라는 둥 말꼬리 잡으면 당장 그냥 지나갈 겁니다.”

“······.”

성우의 단호한 태도에 김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대 병력을 쓸어버린 건 늑대입니다.”

“늑대요?”

“······예. 한 마리도 못 잡아서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황소만한 늑대였습니다. 그리고 늑대는 떼로 다니기 마련이지요. 제가 멍청하게 고블린한테 허벅지를 찔리지 않았더라면, 저도 놈들 밥이 됐겠죠.”

“음, 끝입니까?”

“하나 더 말씀드리죠. 벌써 아실 수도 있지만, 혹시 파란 QR코드를 보셨습니까?”

성우가 지수와 한호를 바라보았다. 둘 다 고개를 저었다.

“······아, 이건 물약 하나로 넘기기 어려운 정보인데.”

김 병장은 쓸모없는 생색을 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까지 두 개 봤습니다. 이 길로 쭉 가면 나오는 수영오거리 정류장에 하나 있고, 나머지 하나는 수원역 환승센터에 있습니다. 그걸 핸드폰으로 스캔해보세요.”

“뭐가 나오죠?”

“어플리케이션이 하나 깔립니다. 단파 무전기도 안 터지는 이 좆같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생존자와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제 핸드폰이 박살나서 증명할 수가 없겠네요. 이거, 구라 아닙니다.”

커뮤니티라?

성우는 거기까지 듣고는 김 병장에게 물약을 던졌다. 김 병장은 낚아채더니, 급히 입에 쏟아 부었다.

“시발, 딸기 맛을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오······.”

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지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이 게임은 병 주고 약 주고 지랄이네요. 댁들은 어디로 가십니까? 저희는 부대로 복귀할 겁니다.”

“부대라고 안전할까요?”

“처음 플레이어가 나왔을 때, 간부들이 무기를 전부 수거했습니다. 멍청한 새끼들. 그래 놓고는 야전삽으로 싸우라고 했죠. 아마 부대에 남은 병력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무기를 쓰고 있을 겁니다.”

김 병장은 그렇게 말하며 군장 하나를 끌어내렸다.

“······아실 것 같지만, 군대는 원래 사건이 터져야 바뀌는 법이죠.”

“저희는 달리 갈 곳이 있어서.”

“그렇군요. 그럼, 행운을 빌죠.”

이제는 그 말이 공통 인사말이 된 듯 했다.

“그쪽도요. 아, 그리고 하늘을 조심하세요.”

성우의 조언에 김 병장은 의아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요?”

“황소만한 늑대라고 했습니까? 하늘에는 버스만한 악어가 날아다닙니다.”

“신기하게도 믿겨지네요. 공짜 정보 감사합니다.”

두 군인은 성우 일행 작별 인사를 한 뒤,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성우 일행은 김 병장이 말한 대로 수영오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파란색 QR코드를 발견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