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5) 학교 밖, 지옥으로 - 1
성우가 검은 진주를 집어들자, 사방으로 뿜어대던 기분 나쁜 연기가 멎었다.
우우우―
동시에, 그 모든 기운들이 성우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윽.”
마치 뱀 한 마리가 손가락 끝부터 꿈틀거리며 기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 감각은 심장에 이르러 멈췄다.
- ‘악마 속성’이 부여되었습니다.
‘악마 속성, 이 역시 지휘관 속성처럼 히든 시너지를 발동시킬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당장은 그 어떤 시너지도 발동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지 몰랐다. 지휘관이 <분대 편제(히든)> 시너지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악마의 혈석
- 등급 : 전설
- 분류 : 오브
- 효과 : 소지자에게 악마 속성 부여, 공격 시 마나 강탈(+2%) * 상대 마나가 고갈 될 경우 체력을 갉아 먹는다.
“······.”
그나저나 또 전설 등급이라니? 전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너무 쉽게 나오는 듯 했다. 하루아침에 2개째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강화된 보스 몬스터에 ‘하급 흑마술사’라는 수식어가 붙더니 그와 관련된 아이템이 나온 모양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이득이지.”
흑마술사와 악마 그리고 심연의 호흡, 성우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기억했다. 이상하게도 그 어둡고 칙칙한 단어들에서 뭔가 달콤한 향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할까?
‘분명 그쪽 업계가 네크로맨서와 관련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광역 저주가 나에게 버프를 줄 리가 없지.’
성우는 ‘악마의 혈석’을 주머니에 넣었다.
“선배, 혹시 이 게임 운영자랑 친분 있으세요?”
한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지금까지 겪어 온 모든 상황이 새삼 의아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선배인 성우가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펼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건 모르겠고, 너는 나랑 친분 있어서 다행이겠다?”
“진심 그거 인정합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골 녀석들을 저렇게 많이······.”
한호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등 뒤의 스켈레톤 무리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스켈레톤들의 몸이 붕괴되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딱 9마리만이 남았다.
“······어?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방금 퇴근했어.”
- 체내의 축적된 ‘심연의 숨결’이 모두 소진되어 ‘1차 각성’ 상태가 해제됩니다.
‘1차 각성이라? 꽤 좋은데.’
짜릿한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아쉽지만, 성우는 이 단맛을 기억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 드는 것 같았다.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또 한 번 그 감각을 경험하고 싶다고 할까?
“으으······.”
이내 심연의 호흡에 의해 상태 이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머, 머리가 너무 아파.”
“욱! 우욱!”
“나,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어, 그 남자는?”
그리고 그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성우부터 찾았다. 벌서부터 주변에 성우가 없으면 불안함을 느낄 정도인 모양이었다.
“고, 고맙습니다! 제가 민폐는 안 끼치려고 했는데······.”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영웅이십니다.”
성우는 온갖 찬양을 들으면서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칭찬들을 당연시 여기는 건 아니었고, 자신에게 빌붙을 지도 모르는 그들을 떼어 놓기 위함이었다.
‘역시 다른 사람은 불필요하다.’
성우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하며 묵묵히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학교 밖이 어떤 꼴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역시 많은 이들과 엮이지 않는 게 생존에 적합했다.
어느새 교문의 봉인이 해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학교 밖의 상황은 역시나 고요했다.
평소라면 시끌벅적 했을 대학로와 차로 붐볐을 교차로에는 먹먹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아, 우리······ 나가도 되는 거 맞아?”
“그러게 차라리 여기 그대로 있는 게 날 수도 있겠어.”
교문 밖 도로는 멈춰 선 차량들로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하물며 사방 천지에 사람 시체와 몬스터의 시체가 뒤섞여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생존자들은 교문 앞에 선 채,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성우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기도 했다.
“저 분은 어디로 가려나?”
“그러게······ 저 사람 따라가는 게 안전할 것 같아.”
성우는 그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젠장, 진짜로 전 세계가 똑같은 상황이군요. 부모님은 괜찮으시려나······.”
한호의 얼굴에 새삼 그림자가 졌다. 역시 가장 걱정인 건, 핸드폰이 먹통이 된 상태에서 가족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성우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오래 전에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게 일생의 트라우마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걱정은 없으니 말이다.
우우웅―
그때, 뒤에서 셔틀 버스 두 대가 다가오더니, 운전석 창문이 열리고 경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타시죠. 도로가 개판이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 버스가 안전하지 않을까 해요. 제가 운전병 출신이라 근처 군 부대 위치를 아는데, 거기까지 어떻게든 끌고 가볼까 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따로 갈 곳이 있어서요.”
“······근처에 집이 있으신가요?”
“예.”
거짓말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경수는 교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생존자들을 대부분 태웠다. 그러면서도 성우와 함께 가지 못한다는 점이 영 찝찝한지, 마지막까지 정말 안타겠냐고 물었다. 성우의 대답을 일관적이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하하하 참, 영화에서나 보던 작별인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요. 경수 씨도 행운을 빌죠.”
그렇게 버스 두 대가 어지럽게 꼬인 도로를 힘겹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교문 앞에는 성우, 한호, 지수 그리고 스켈레톤 9마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제 어디로 가죠? 아, 지수 누님은 집이 어디세요?”
이 상황에서 집으로 간다는 것도 정상적인 발상은 아니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달리 물어볼 질문도 없었다.
“저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어요. 집이 제주도라······.”
“아.”
제주도로 가는 건 진짜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수는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이내 성우를 쳐다봤다.
“저기, 성우 씨, 저······ 계속 같이 가도 되죠?”
그녀는 사실, 성우가 다른 이들과 함께 다니는 걸 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상태였다. 하지만 당장 성우와 함께 하는 것보다 안전한 건 없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수 씨 정도면 당연히 도움 되죠.”
“아······. 고마워요.”
생각 외로 단번에 떨어진 허락에 지수는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배, 저는 물어볼 것도 없이 필수 옵션이죠?”
“음, 조건이 있어.”
“뭔데요? 말만 하세요.”
“너, 외팔의 무사가 되자.”
“······.”
“외팔의 무사 두 마리면 더 좋은 시너지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들의 농담은 거기까지였다.
별안간, 지수가 성우의 팔을 강하게 잡아 당겼다.
“숙여요!”
육중한 차량들을 뒤흔드는 광풍과 함께 수십 개의 거대한 그림자가 하늘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우우웅!
“저, 저게 뭐야!”
“나무 사이로 숨어!”
장막의 날개를 가진 생명체들이 머리 위 상공을 헤집고 지나갔다.
거대한 몸뚱이와 날카로운 발톱, 긴 목 끄트머리에서 번뜩이는 악어 같은 아가리가······ 그 비현실적으로 끔찍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드, 드래곤?”
- 필드 보스 ‘와이번 알파메일’이 출현했습니다.
흔히 드래곤의 하위 종으로 알려진 와이번(Wyvern)이었다.
일행은 나무 아래에 바짝 엎드린 채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이도 와이번들의 눈에 띄지 않았는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멀리 가지도 못한 셔틀 버스는 아니었다.
경수가 운전하는 버스는 일찌감치 멈춰 서서 표적이 되지 않았지만, 끝내 도망가려고 노력했던 다른 한 대는 와이번 무리의 눈에 포착되고 말았다.
카아악!
와이번 두 마리가 순식간에 하강했다. 한 마리의 크기만 해도 버스보다 더 커보였다.
끼기긱!
그런 괴물 두 마리가 버스의 천장을 움켜쥐고 날개를 홰치자, 버스가 통째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으아아!”
“아아아! 사, 살려줘!”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버스의 차체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그러자 와이번의 대가리가 그 틈 사이로 파고들어가, 마치 새가 벌집의 애벌레 뽑아먹듯, 사람들을 하나 둘 빼내어 먹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창문을 열고 과감하게 뛰어내렸지만, 그대로 공중에서 낚아채져 악어 같은 입 속으로 사라졌다. 그건 일방적인 학살, 아니, 포식이었다.
성우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자신은 강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지수 씨, 함께 가는 조건 생겼어요.”
“뭐, 뭔데요?”
지수는 긴장한 상태로 물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몬스터를 피하는 게 아니라 적극 사냥할 겁니다.”
“······네?”
“제가 적응해야 된다고 말했죠?”
“아, 네.”
“적응으로만 끝나면 안 돼요. 그럼 그저 손쉬운 먹잇감에서 까다로운 먹잇감이 될 뿐이니까요.”
인류가 비로소 지구를 지배하게 된 건, 자연에 적응하는 걸 넘어서 자연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성우는 더 넓은 무대에서의 사냥을 준비했다.
- 튜토리얼을 완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