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8화 (8/244)

# 8

(3) 생존자를 사냥하는 오크 부대 – 1

로비의 분위기가 차갑게 내려앉은 가운데, 모든 이들의 시선이 성우에게 향해 있었다.

“네? 선배? 이리 와서 다시 말씀해보세요.”

“······.”

성우는 진석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진석은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야, 우리한테는 센 척 하더니······.”

“진짜 처음부터 별로였어. 잘난 척에, 센 척에.”

방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전혀 참지 않고 터뜨렸건만, 지금은 이상하게 침착해졌다. 등 뒤에서 일반 학생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왜인지 화가 나지 않았다.

“할 말 없으면 밖으로 나가죠. 그리고 앞으로도 좀 할 말 좀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

성우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마침내 인문사회과학관 밖으로 나왔다.

덜그럭― 덜그럭―

다섯 마리의 스켈레톤이 넓게 대열을 넓게 벌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지수와 한호도 경계 대열에 섞여 있었다.

“선배, 이 근처는 조용합니다.”

“저도 안보이네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 안쪽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장은 안전합니다. 그래도 조용히 나오세요.”

그러자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진석과 민수 역시 그 맨 뒤에 붙어서 엉거주춤 걸어 나왔다. 성우의 눈치를 보며 완전히 찌그러진 것이었다.

‘분명 고블린들이 무리지어 다녔다.’

성우는 4층 복도에서 창문으로 내려다 봤을 때, 십여 마리의 무리를 목격했었다. 그 정도 규모의 무리가 캠퍼스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저, 저기도 시체가 있어.”

“아, 어, 어떡해······.”

캠퍼스 곳곳에 몬스터에게 살해당한 시체가 눈에 띄었다. 운동장 한 가운데, 주차장, 수풀 사이에······. 드문드문 몬스터 사체도 보였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성우처럼 이 상황에 적응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뭉치면 고블린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게 될 것이다.

“선배, 저기 사람들 아니에요?”

때마침 운동장의 관중석 한 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 숫자가 약 스무 명쯤 되어보였다. 그쪽에서도 성우 일행을 발견했는지,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상당수가 무장하고 있네.’

성우가 쓱 훑어보니 열다섯 명 이상이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게 직업 선택으로 인해 주어진 게 아닐지라도, 각기 휘두를 수 있는 걸 들고 있었다.

‘싸워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무리와 가까워지자, 풀이 죽어있던 진석이 누군가에게 알은체를 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어, 혀, 형님!”

그 상대는 덩치 큰 남자였는데, 역시나 총학생회 점퍼를 입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점퍼 안에 사슬 갑옷, 일명 체인 메일(Chain-mail)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등 뒤에 길쭉한 대검까지 차고 있는 걸 보아하니, 레벨 업 좀 한 모양이었다.

“어, 진석아! 살아있었구나?”

“와, 형님은 살아계실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형님을 만나다니, 저 진짜 운수 좋은 날이네요!”

진석이 호들갑 떨며 그 남자에게 달려가 안겼다. 운수 좋은 날의 결말을 알긴 아는 건지, 아부를 위해 되도 않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총학생회장이네요.”

지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우 역시 몇 번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선거 포스터에 봤던 모양이었다.

진석은 총학생회장 옆으로 가더니, 그의 등에 손을 두르고 무어라고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총학생회장이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려 성우를 쳐다보았다.

“성우 씨 얘기를 하네요.”

“딱 봐도 그런 것 같네요.”

미담을 했을 리는 없다만, 총학생회장의 낯빛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성우와 함께 온 모든 일반 학우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총학생회장 박대성입니다. 모두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저희도 같은 일을 겪었고 괴물들과 싸운 끝에 이렇게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뒤로 무장한 이들이 십여 명 서 있었으니 말이다.

“저희와 함께 계시면 안전합니다.”

인문사회과학관에서 나온 생존자들은 총학생회 무리에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학생회장, 대성의 시선이 성우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성우 주변의 스켈레톤을 경계 가득한 눈으로 훑었다.

“그 괴물들은 뭐죠?”

“아시겠지만, 이건 제가 선택한 직업 카드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괴물을 선택했다고요?”

성우는 눈치 챘다. 이 자식, 말에 칼을 품고 있다. 의도적으로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단어를 선택한다. 주변 생존자들이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건 덤이었다.

‘나를 위험인물로 몰아가는군.’

싸가지 없는 건 진석과 똑같다만, 한 수, 아니, 두 수 위의 인물이었다. 사람을 휘두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간신배 같은 스타일이랄까?

“미안하지만 저희 무리에 들어오시려면 그 괴물들을 모두 부서주시죠.”

“그건 안 되겠는데요?”

성우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대성이 코웃음 치며 주변 사람들을 쭉 둘러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게 아닌가?

이 자식, 대중의 심리를 등에 업고 자신의 주장에 힘을 더하려는 행동이었다.

“그럼 지금 정체도 알 수 없고 사람을 죽이는 역겨운 괴물들을 우리 사이에 두시겠다고요?”

“뭐요? 역겹다고?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귀여워!”

“······한호야 넌 조용히 해.”

딱딱―

“너네도 조용히 해. 아무튼,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저한테는 무장 해체를 하라는 소리나 다름없거든요. 그쪽도 아시겠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맨 손으로 다니라면 그러겠습니까?”

“음, 잘 모르겠군요. 근데 저희가 지켜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 어설픈 괴물 몇 마리보다 안전할 겁니다.”

대성은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가슴을 쭉 내밀었다. 뭐지? 지가 입고 있는 체인 메일을 보라는 건가?

하지만 성우는 코웃음을 쳤다. 스켈레톤이 어설픈 괴물이라니, 역시나 한참 모르는 소리다.

“내가 당신을 뭘 믿고? 그리고 방금 그 말 때문에 신뢰가 확 사라지네요. 똑같은 소리 하는 사람과 방금까지 같이 있었거든요.”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진석을 쳐다보았다. 기가 죽어서 꼬리를 말고 있던 녀석의 얼굴에 노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주인 옆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개새끼 같다.

“그럼 죄송하지만 저희 무리에는 들어오실 수 없을 텐데요? 잘 생각하세요.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닙니다. 마지막 기회를 드리죠. 우리, 정신 차리고 침착하게 생각합시다.”

그때, 무슨 일인지 지수가 앞으로 나섰다.

“아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시네? 우리가 언제 그쪽 무리에 끼고 싶다고 했어요? 총학이라고 지들이 뭔 대단한 역할인 줄 아나? 그거, 병이에요.”

그녀의 일갈에 대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경찰행정학과 학회장님이시죠?”

“아닌데요? 학교가 망했는데 그딴 게 뭔 상관인데? 스물여섯 살 박대성 씨, 언제까지 직책 놀이 할 거예요.”

“······.”

아무래도 지수는 오래 전부터 총학생회장을 증오했던 모양이었다. 아니고서야 이렇게 사납게 나설 리가 없었다.

“학회장님, 침착하고 이쪽으로 오세요. 아니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그 말에 지수가 콧방귀를 뀌었다.

“제발, 제발 위선 좀 떨지 마세요. 겉으론 학교를 위해 헌신하는 척 하면서······ 축제 때, 무대 업체 쪽이랑 영수증 조작해서 수백만 원 빼돌린 거 모르는 줄 알아? 대나무 숲에 제보한 거, 그거 나야.”

대성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듯 했지만, 지수의 일격에 얼굴을 구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옅은 웅성거림이 번져나갔다.

대성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어쩔 수 없죠. 그럼 가주세요. 소란 피워서 괴물들 꼬이게 하지 말고.”

“네네, 시발.”

지수가 먼저 돌아섰고 성우도 후회 없이 등을 돌렸다. 한호는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성우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등 뒤에서 대성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그 목소리에는 은근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후회할 겁니다. 이 상황은 뭉쳐야 좋습니다. 시너지 효과라고 아십니까? 소수로 다니는 걸 후회하게 될 겁니다. 죽기 직전에 말이죠. 병신들······.”

다른 학생들은 총학생회 무리에 남았다. 아무리 성우가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들, 다수의 무리를 등지고 성우에게 붙겠다고 나설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지수 씨, 실례겠지만, 총학생회장하고 무슨 일 있었나요? 들어보니까 지수 씨가 경찰행정학과 학회장이라고······.”

성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그냥 여러모로 재수 없는 놈이에요. 원래 집 좀 잘 산다고 여자 꼬시려고 학교 오는 놈이었는데, 제 후배 여럿이 저 놈한테 당해서요······ 어쩌다가 감투 쓴 이유로 위선 떨어대고 있네요. 그래도 본성 어디 안 가죠.”

“그렇군요.”

“순 나쁜 놈이네!”

성우 일행은 일차 목표를 ‘캠퍼스 탈출’로 잡았다. 그리고 안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한 최적의 루트를 고민했다.

“사람이 많은 곳은 몬스터도 많을 거예요. 애초에 사람 잡으려고 나타난 것들 같아서요.”

지수의 의견은 타당했다.

“그럼 건물을 최대한 피해서 뒷산 산책로로 돌아나가죠. 정문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쪽은 오전에 사람 거의 없잖아요.”

일행은 캠퍼스를 에두르는 뒷산으로 향했다. 낡은 나무 계단에 벤치가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는 산책로였다.

“고요하네요.”

아무리 뒷산이라고 하지만 전교생이 만여 명에 달하는데, 이렇게 고요할 수가 없었다. 그 정적은 평온함이 아니라 불안함이었다.

“잠깐만······.”

오르막을 오르던 성우의 발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앞서가던 스켈레톤들도 일제히 정지했다.

스스스―

옅은 바람이 언덕을 넘어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선배, 왜요?”

“쉿······.”

성우는 자세를 낮추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의 검지는 나무 사이, 그늘진 어딘가를 가리켰다.

부스럭―

그곳에 무언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주변이 핏물로 얼룩지고 고블린 시체가 몇 구 보이는 걸로 봐서는 한바탕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고블린 시체 한 구의 머리통에 큼직한 도끼 한 자루가 처박혀 있었다.

그르르―

그리고 그 싸움의 승자로 보이는 놈이 기척을 느꼈는지, 도끼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이쪽을 향해 슬며시 돌아섰다.

“······힉!”

한호는 기겁하며 단검을 빼들었다.

“뭐, 뭐야 저건······. 고블린 보스 보다 더 크, 큰데요?”

녹색 피부와 툭 튀어나온 엄니를 가진 얼굴에 2미터에 달할 것 같은 덩치, 저건······.

오크(Orc)다.

우어어!

놈이 도끼들 들어 올리고는 포효했다. 그리고 그건 전투를 알리는 신호였다. 놈은 도끼를 치켜들고는 무작정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성우는 세이버를 뽑아들었고, 스켈레톤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좋아. 새로운 스켈레톤 재료가 나타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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