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7화 (7/244)

# 7

(2) 인문사회과학관의 보스 몬스터 - 3

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최악의 발명품을 만들었단 말인가?

일체형 책상에 대한 의문과 원망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분노의 여론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성우는 바로 오늘 절실히 느꼈다.

‘이건 최고의 둔기이자 방패다.’

이미 이걸로 고블린 세 마리를 때려잡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던 고블린 백부장을 향해, 이 육중한 걸 집어 들고 돌격하고 있었다.

끄, 끄으으?

불도저처럼 달려드는 책상이라니? 백부장의 눈에 당황이 어렸다. 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잘못 움직였다가는 지수나 외팔의 무사에게 틈을 내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오히려 악수(惡手)였다. 차라리 칼에 맞는 게 낫다는 걸, 놈은 그때까지 몰랐다.

우웅!

상판과 철제로 이루어진 육중한 기물이 놈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놈은 그제야 깨달았다. 감히 받아낼 수 있을 만한 무게가 아니란 걸······.

뻑!

끄윽!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막아냈지만, 적지 않은 충격이 고스란 전해졌다. 놈의 몸이 휘청거렸고 지수가 그 틈으로 쇄도했다.

스윽!

칼날이 오른쪽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놈은 허둥지둥 오른쪽으로 돌아섰고, 그 때문에 벌어진 왼쪽 틈으로, 이번에는 스켈레톤이 파고 들었다.

촤악!

옆구리에서 피가 쏟아졌다. 온몸 곳곳에서 피가 흘러내려 놈의 발밑을 붉게 물들였다.

마치 덩치 큰 먹잇감을 상대하는 늑대 떼처럼, 상대의 살점을 야금야금 뜯어내는 움직임이 먹혀들고 있었다.

끄아아!

놈은 이성을 잃고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하지만 허망하게 허공을 휘저어댈 뿐이었고······.

쉬익! 푹!

“나이스 샷!”

이제는 한호의 단검 투척까지 먹혀들었다. 한 뼘 크기의 칼날이 놈의 어깨에 처박히자, 왼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그리고 그 한 방으로 놈의 가드가 완전히 열렸다.

‘지금이다. 희생해라.’

성우는 세이버를 고쳐 쥐며, 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외팔의 스켈레톤이 백부장의 사정거리 안으로 과감하게 전진했다.

‘잘 가라. 고마웠다.’

딱딱.

처음부터 지금까지 꽤나 오랫동안 버텨왔고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했던 녀석이었지만, 승리를 위해서 죽음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끄아아아!

만신창이가 된 백부장이 포효하며 스켈레톤의 머리를 향해 큼직한 공격을 휘둘렀다. 저 녀석은 그 한 방으로 산산조각 나겠지만, 성우와 지수에게는 완벽한 찬스가 될 것이었다.

둘은 그 틈을 노리고 동시에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챙!

“······어?”

외팔의 스켈레톤이, 큼직한 몽둥이를 부드럽게 쳐냈다. 아니, 마치 무협지의 고수처럼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게 아닌가?

“아!”

<외팔의 무사(完)> 시너지가 발동한 것이었다. 88퍼센트의 확률로 상대의 첫 번째 공격을 ‘흘려내기’ 판정으로 막은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무게가 실린 큰 공격을 흘려보내자, 중심이 흐트러진 백부장이 휘청거렸고······.

푹!

“······어어?”

외팔의 칼날이 백부장의 목덜미를 쑤시고 들어갔다.

켁, 켁······.

그리고 근육질의 몸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쿵―

- 보스 몬스터 고블린 백부장(百夫長)을 사냥하여 255골드를 얻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LV. 3)

“······.”

칼을 쥐고 달려들던 성우는 떨떠름하게 멈춰 섰다. 건너편에서 뛰어들던 지수 역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뭐야, 끝난 거예요?”

“선배, 저 해골 친구······ 생전에 뭐하셨답니까?”

“몰라······ 내가 일체형 책상으로 찍어 죽였거든? 내가 봤을 땐 일체형 책상이 세계관 최강 템이다.”

딱딱―

팔이 잘리고 수차례 걷어차이면서도 끝내 살아남아 보스와 정면 대결에서 승리할 만큼 끈질긴 놈, 그런 놈을 생전에 단 한 방으로 보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런 녀석의 몸이 붉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 ‘고블린 스켈레톤’이 ‘고블린 백부장(百夫長)’의 마력을 흡수하여 격이 상승합니다.

* 방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지휘관’ 특성이 추가됩니다. (팀 구성 수에 따라 ‘편제 시너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응?”

성우가 녀석을 바라보니 언뜻 봐도 골격이 두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마에 붉은색 고리 문양이 새겨지는 게 아닌가?

“그건 뭐냐? 왜 멋대로 괴상한 타투를 새겼어?”

딱?

녀석이 대답할 리는 없었고, 성우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권속 목록’을 열어보았다.

[권속 목록(1/4)]

1) 고블린 스켈레톤 엘리트 (LV.2)

* 무기 : 일본도

* 종족 : 고블린

* 속성 : 언데드 + 지휘관(1단계)

그러자 처음과 대폭 달라진 정보가 눈에 띄었다. 이름 뒤에 ‘엘리트’라는 수식이 붙었으며 속성에도 ‘지휘관’이 추가되어 있었는데, 앞선 설명에 따르면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게 아닐까 했다.

‘지휘관 특성에 의한 편제 시너지라? 그렇다면 분대, 소대, 중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그럼 몇 명 이상이면 분대 시너지가 생기거나 그러려나?’

자세한 건 앞으로 권속을 늘려봐야 알 수 있을 터였다.

“오! 선배, 저 레벨 업 했는데요?”

“저도 했네요. 저는 이제 3레벨이에요. 성우 씨는요?”

한호와 지수 모두 레벨이 오른 모양이다.

“그럼 지수 씨는 원래 2레벨이셨군요? 저도 방금 전에 3레벨 됐습니다.”

“네. 아까 3층에서 레벨 업 했는데 정신없어서 보상을 막 고른 것 같네요. 뭐가 좋을까요?”

“대부분 랜덤이니까 선택도 선택이지만 운이 따르길 기대해야죠.”

한호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레벨 업 카드’를 보는 게 처음이었다.

“선배, 선배도 이런 카드 보여요?”

“맞아. 다섯 개 중에 하나 선택하면 돼.”

성우 역시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며 고심했다.

- 레벨 업 카드를 선택하세요.

1) 능력치 (랜덤)

2) 스킬 (랜덤)

3) 아이템 (랜덤)

4) 기타 (랜덤)

5) 민첩성 수치 상승 (확정)

이전에 ‘스킬’ 항목을 선택했을 때는 랜덤으로 권속 수 상승이 떴었다. 그 결과 다룰 수 있는 스켈레톤이 1마리 증가했다.

성우는 이번에도 2번, ‘스킬’ 항목을 선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켈레톤을 많이 부리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웬걸, 전혀 다른 스킬이 나왔다.

- <뼈 무기 제조(기초)>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뼈 무기 제조

- 등급 : 기초

- 분류 : 액티브

- 소모 : 마나 10

사체의 뼈를 이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제작합니다. 현재 제작할 수 있는 무기 유형은 아래와 같습니다.

* (1) 도검 (2) 둔기 (3) 창 (4) 활

재료의 종류와 품질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며 숙련 등급이 올라갈수록 보다 완성도 있는 구성의 무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뼈로 무기까지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바닥에 널린 고블린의 뼈를 이용해서 실험해보기도 전에 또 다른 메시지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 전용 퀘스트 <망자의 원한을 위하여>를 ‘구원’ 방식으로 공략하셨습니다.

* 보상이 주어집니다. (전용 스킬)

* 당신의 운명이 미세하게 변합니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함으로써 김 교수님의 원한에 얽힌 전용 퀘스트를 공략한 것이다. 이거, 완전 일석이조라고 해야 될까?

그리고 그로인해 원하던 보상을 얻었다.

- 최대 권속 수가 (+1)만큼 증가합니다.

이로써 총 5마리의 스켈레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운명이 변한 건 또 무슨 뜻이야?’

성우는 마지막 문장에서 멈칫했다. 당신의 운명이 미세하게 변했다니? 설마 선택지에 따라서 성향이 바뀌는 건가? 그렇다면 그 결과물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당장 추측할 수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앞으로 선택에 신중할 필요가 있겠어.’

그 사이에 한호와 지수 모두 레벨 업 카드를 선택했다. 둘 다 아이템 항목을 선택한 모양인지, 허공에서 떨어지는 물건을 받아들었다.

“도적 후드?”

한호가 얻은 건 칙칙한 색깔의 후드였다.

“그건 기능이 뭐야?”

“음, 몬스터한테 기척을 숨길 확률이 50% 증가한다는데요? 흠······.”

“생긴 건 꼭 판초 우의 같다. 이야, 도망갈 때 좋겠네? 딱 알맞은 거 받았네?”

“저 이제 도망 안갑니다. 저도 싸울 줄 알거든요?”

“뒤에서 단검 깔짝대는 거?”

성우가 비웃으며 말하자, 그게 나름 특출 난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한호는 발끈했다.

“까, 깔짝? 선배야 말로 해골이들 앞세워서 아무 것도 안 하잖아요!”

“뭐? 저 무식한 책상 들고 돌격하는 거 못 봤어? 목숨 걸고 들어간 거다.”

“참나, 생색은? 군대에서도 후임들 해골처럼 부려 먹고 공은 혼자 다 가로채셨죠? 이거, 안 봐도 클리셰다.”

한호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풉, 하고 웃었다. 그러자 성우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한호의 얼굴을 검지로 가리켰다. 한호는 그 검지 끝자락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왜, 뭐요.”

“얘들아, 이 새끼 죽여.”

“······뭐, 뭐라고요?”

딱딱―

그러자 다섯 마리의 스켈레톤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더니 한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호는 새삼 이 해골바가지들의 텅 빈 눈이 소름끼친다는 걸 깨달았다.

“어, 어어? 저기······선배님? 얘들아?”

딱딱―

“우, 우리 친하잖아?”

······그러는 사이, 지수 역시 아이템을 확인했다. 그녀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나무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으, 해골들이 다 같이 쳐다보니까 으, 은근 살벌하네······ 저, 누님, 그건 뭡니까? 돌멩인가?”

“돌멩이? 이 새끼 하여튼 말에 매너가 없어.”

“아, 왜요?”

성우와 한호도 이내 그녀의 아이템에 관심을 보였다.

“발화 숫돌이라네요.”

“오, 발화요? 부싯돌 같은 건가요?”

“아뇨······. 이걸로 칼을 갈아두면 피격 시에 불이 붙을 확률이 생긴다고 하네요?”

“오, 그거 좀 멋있겠다.”

한호는 진심으로 부러운 눈치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템을 슬쩍 내려다보더니 입맛을 쩝쩝 다시며 어깨에 후드를 걸쳤다.

한편, 성우는 새로운 스킬인 <뼈 무기 제조(기초)>를 실험해보지 못했다. 5마리의 스켈레톤을 일으키는데 모든 마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테스트는 나중에 하고······ 자, 이제 밖으로 나가죠.”

보스 공략을 마친 일행은 다시 1층으로 향했다.

***

그 시간, 1층 로비에는 침울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보스 공략으로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특히 진석은 복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카페 입구를 지킨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언제든지 바로 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기······. 진석 선배······.”

그때, 민수가 검을 어설프게 쥔 채 카페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었다.

“어, 왜.”

“지, 진짜로 여기 계속 있어도 될까요?”

“······.”

그 물음에 진석이 얼굴을 팍 구겼다. 조금 전부터 카페 안에서도 들려오는 온갖 불만의 목소리를 진석 역시 한쪽 귀로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꾸 성우 말처럼 보스 잡으러 가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난리네요. 서, 성우 말 들었어야 한다고, 지금이라도 막 가자고······ 저도 그 말 듣고 있으니까 막, 좀······.”

“아, 시발.”

진석이 쌍욕을 내뱉자 민수가 입을 다물었다. 진석의 얼굴은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본래 쉽게 욱하는 성격이었다만, 총학생회 점퍼로 잠재운 상태라고, 스스로를 진단하고 있었다.

“시발, 개 같은 새끼들이 지켜주겠다고 해도 좆도 모르고 진짜······. 헛소리나 하고 있어.”

사실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튈 궁리를 하고 있던 진석이었지만, 분노하는 순간 그런 기억은 싹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고민하는 사람들이 상황 파악도 못하고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로 비춰졌다. 진석은 결국 제 화를 참지 못하고 카페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성질부터 내기 시작했다.

“아니, 시발! 저기요? 다들, 뭐가 그렇게 말이 많습니까?”

맥락 없는 분노에 카페 안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시발, 나도 더 이상 희생해서 지켜줄 생각 없으니까 갈 사람은 가세요! 나가라고요!”

그러자 키 큰 남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기요.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어딜 가라고요?”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게 불만인 사람은 여기에서 나가라고요. 옥상 가서 성우 그 새끼랑 같이 뒈지시던가.”

“······여기가 무슨 당신 겁니까?”

“내가 보호하고 있잖아!”

“당신이 뭘 보호해! 우릴 보호해준 건 옥상으로 올라 간 그 남자고!”

“맞아요! 갑자기 왜 화를 내요? 당신이 뭘 했다고?”

“이, 일단 모두 좀 목소리 좀 낮추세요······ 그리고 그쪽이 지금 우릴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거 모르겠어요?”

여기저기에서 원성이 터져 나오자 진석은 결국 이성을 놓고 말았다.

“시발, 내가 고등학교 이후로 성질 죽이면서 살려고 했는데 이 병신새끼들이······.”

“뭐, 뭐? 벼, 병신?”

“그래 이 병신 개새끼야! 나한테 와서 말해봐라. 뭐? 유성우 그 새끼가 너희를 지켜? 그 새끼는 지금 병신 같이 옥상 뛰어 올라가서 뒈졌어! 나대다가 뒤진 거라고!”

“······.”

“왜 말이 없냐? 쫄았냐? 나한테 와서 말하라니까 이 새끼들, 입 꾹 다물고 있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은 진석의 등 뒤로 향해 있었다.

“죽긴 누가 죽어요?”

등 뒤의 목소리에 진석이 숨을 고르고 돌아보니······.

“헉!”

스켈레톤 다섯 마리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성우가 서 있었다.

“제가 죽길 바랐어요?”

“······.”

“선배, 진짜 보면 볼수록 꼴불견이네?”

성우는 정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유리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종전까지 꿈쩍도 안 하던 문이 아무런 저항 없이 얼렸다. 성우는 완전히 개방된 문 앞에 서서 진석을 돌아보았다.

“왜, 할 말 있어요? 나한테 와서 말해보시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