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
331화
앞서 흑암기사단장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군을 하고 있는 병사들은 기쁜 기색이 없었다.
표정들이 모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데 어쩔 수 없었다.
마침내 마신 마몬이 강림하였다는 소식이 병사들에게 쫙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암흑성국의 병사들이 검은 연기로 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며, 그들은 악몽과도 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으으, 이거 갑자기 게임 심의 기준이 확 올라간 느낌인데…….”
그러던 그때, 브룩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 저으며 말을 꺼냈다.
병력은 황도 근방의 마을을 지나치고 있었는데, 마신 강림 의식 때문에 마을은 폐허가 된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브룩의 곁에 있던 레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또다시 레온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암흑성국의 황제 러셀이 사망하였습니다.
-‘강림한 마신을 도와 대륙을 피에 물들여라’의 퀘스트 내용이 변경됩니다.
그건 바로 황제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가장 높은 것은 역시나.
‘마신에게 죽었다는 건가?’
강림한 마신에 의해 죽었다는 것이리라.
강림 의식을 막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며 빠르게 이동을 했건만, 아무래도 한발 늦은 듯했다.
레온은 주변에 들키지 않게 표정 관리를 하며 변경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려 했다.
“어라?”
“저놈은 누구야?”
……하지만 그보다 불청객의 갑작스런 방문이 더 빨랐다.
‘으응?’
레온이 진군이 멈추자, 의아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병력이 걸어가는 전방의 큰 길을 한 남자가 떡하니 가로막고 서 있었다.
“어이,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얼른 비키지 못해?”
최전방에 있는 병사들이 어이가 없어 하며 말을 꺼내었다.
하지만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는 흑발의 남자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릴 뿐이었다.
한데 그때 엄청나게 먼 거리를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온과 의문의 남자의 눈이 서로 정확히 교차했다.
오싹.
그 순간, 레온은 왠지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레온은 집중하지 않았음에도 남자의 입이 자그맣게 달싹이는 모양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 설마!’
그는 ‘찾았군.’이라 말을 하고 있었다.
곧이어 레온의 귓전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신, 마몬과 조우하였습니다.
-천신 퀘스트 획득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천신 퀘스트, ‘강림에 성공한 마신을 처치하라.’를 획득하였습니다.
“모두 조심-!”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레온이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소리치던 그때.
슈아아아!
파앙!
레온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악신 마몬이 먼저 공격을 시작하였다.
마치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는 것과 같은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마몬이 수없이 많은 잔상을 만들며 빛의 속도처럼 움직여 병사들에게 접근했다.
그와아앙!
마몬의 손에서 칠흑의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쐐애액!
콰가가가!
콰아아앙!
마몬이 가볍게 주먹을 뻗자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병사들이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적이 나타났다!”
“방어 태세를 갖춰라!”
그에 아슬란 연합 측의 지휘관들이 커다랗게 목소리를 높였다.
매우 빠른 조처였지만.
으아아아아!
끄아아!
안타깝게도 병사들의 비명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콰아아앙!
콰가가강!
마몬 한 명이 병력을 아무렇게나 헤집어 놓고 있었다.
단순한 마몬의 일반 공격 한 번, 한 번이 말도 안 되는 대미지를 쏟아 내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감히 그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힘은 정상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크하하하! 즐겁구나, 즐거워!”
그때, 피의 비를 뿌리던 마몬이 광소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그의 전신에서 클라리우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마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파바바밧!
그때, 병사들로는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한 레온이 앞으로 미친 듯이 돌진했다.
그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였다.
‘처음부터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해!’
여태껏 상대했던 그 누구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격이 다른 상대의 강함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우우우웅!
촤아아아아!
순간 레온이 자신이 보유한 모든 힘을 발동시키기 시작하였다.
먼저 최대로 강화를 마친 오토마톤이 레온의 온몸을 휘감으며, 강철의 갑옷으로 변형되었다.
이어 타락 천사의 것과 같은 여러 장의 날개가 레온의 등에 돋아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웨폰 퓨전이 완료되며, 그의 오른 손에 아크 데몬즈 플레어의 광검(光劍)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레온의 뒤를 쫓아 어비스 드래곤과 마루를 비롯한 그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소환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슈아아아!
촤아아아!
-크르르르!
-크와아앙! 죽인다낭!
가장 먼저 도착한 어비스 드래곤과 마루가 마몬에게 공격을 쏟아 내기 시작하였다.
퍼어어어엉-!
쐐애애애액!
어비스 드래곤에게서 쏘아진 두 개의 드래곤 브레스와 마루가 쌍검으로 만들어 낸 가공할 참격이 파공성을 내며 마몬에게 뿌려졌다.
아슬란 연합의 병사들이 투사체의 폭발에 휩쓸릴까 재빨리 몸을 날렸다.
“흥! 어디 하찮은 미물 따위가!”
하지만 마몬은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자신에게 내리꽂히고 있는 투사체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저 자신의 양손에 마기를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와아아앙!
우우우우웅!
그의 양쪽 손에서 피와 같은 진홍색 기운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수라파황권!”
마몬의 외침과 함께 그의 힘과 마루와 어비스 드래곤의 투사체가 허공에서 격돌하였다.
쿠아아아아-!
그그그그극!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과 함께 빛줄기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맞붙은 두 힘은 너무도 쉽게 승패가 결정 나고 말았다.
‘……!’
‘마, 말도 안 돼!’
곧이어 병사들의 경악한 반응이 쏟아졌다.
마루와 어비스 드래곤의 투사체가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먹어 치워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적의 기운을 집어삼키고 더욱 비대해진 마몬의 힘이 병사들에게 쏟아지던 그때.
“크로스 슬레이브!”
슈파아아앙!
콰아아앙!
뒤늦게 도착한 레온이 쏟아 낸 풀 오러 블레이드로 겨우 마몬의 공격을 진압시킬 수 있었다.
그러자 식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루가 버벅대며 말했다.
-저, 저놈 왜 저리 센거낭. 저거 인간 맞낭?
레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적의 공격을 보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건 어떻게 봐도 무공(武功)아냐? 마신이 왜 저런 스킬을…….’
마신은 레온이 전혀 생각지 않은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수많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던 그때.
우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는 자신의 팔에서 거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건-!’
팔에 새겨진 인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공명을 하고 있었다.
뒤덮고 있는 오토마톤 덕에 다른 유저들에게는 들키지 않았지만, 레온은 느낄 수 있었다.
벌써 인장의 경험치가 충족이 되었을 리는 없기에 레온의 표정에 의아함이 잔뜩 떠올랐다.
그런데 그때였다.
곁에 소환되어 있던 파크가 마몬을 바라보며 충격적인 내용의 말을 내뱉었다.
-……주인님?
‘뭐?’
단 한 단어에 불과했지만, 레온은 번개를 정통으로 맞은 듯한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파크는 마몬을 인장의 전 주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때, 레온의 귓전에 효과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눈앞에 일련의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특수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연계 퀘스트, ‘?의 흔적을 쫓아 보자’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랬다. 레온이 상대해야 하는 최후의 적 마몬이 바로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인장의 전 주인이었던 것이다.
레온이 충격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마몬이 자신의 기운을 주변에 폭사시키며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오랜만이구나. 영계의 파수꾼이여.”
파크는 마몬이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자,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싸우게 되는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탓이리라.
미묘한 대치가 계속되던 그때, 마몬이 시선을 레온에게 돌리며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역시 네놈은 ‘그 힘’을 물려받은 후계자겠군.”
“…….”
레온은 마몬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변에 듣는 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촤아아아!
파아앗!
레온은 아스트랄 코팅을 전력으로 발휘하며, 마몬을 기습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레온의 모든 소환수들 또한 동시에 자신이 가진 모든 필살기들을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아아!
파아아아아아!
수많은 스킬 투사체들이 마몬에게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흥! 벌레들의 몸부림 따위!”
그러나 소환수들의 공격은 어떤 것도 마몬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마몬이 힘을 흩뿌리자 신기루나 허상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보며 레온은 이를 악물며 공격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래, 잘 만났다! 전 주인 망할 자식아, 이걸로 죽여 주마!’
레온은 그랜드 건 블레이드 마스터의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르르르릉!
촤아아아아!
아크 데몬즈 플레어의 빛의 칼날이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평상시보다 최소 서너 배는 더 커져 있었다.
파밧!
레온이 펄쩍 뛰어오르며 자신이 지닌 최강의 스킬을 시전하였다.
“크로니클 블레이드, 멸절!”
쐐애애애애액!
그르르르르르!
화르르르!
아크 데몬즈 플레어를 떠난 빛의 칼날이 닿는 공간을 모조리 살라 먹으며 마몬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제대로 들어갔다!’
제대로 된 방어 자세도 취하지 못한 마몬을 보며 레온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 방으로 해치우진 못하겠지만, 최소 치명상은 입힐 수 있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다음 순간, 마몬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꺼낼 뿐이었다.
“끌끌, 고작 내 실패작으로 얻어 낸 힘 따위로 나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는 ‘실패작’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를 내뱉고는 곧장 반격을 시작했다.
마몬의 온몸에서 앞서 보았던 진홍빛 마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내리꽂히는 크로니클 블레이드를 향해 마몬이 정면으로 뛰어 들었다.
“수라파천격!”
그러곤 흉포한 마기를 휘감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크로니클 블레이드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파스스스스!
치지지직!
강대했던 레온의 검격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레온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껏 적과 싸워오며 이렇게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한 상대는 없었다.
‘……이 녀석은 에픽 직업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건가.’
레온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