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
330화
클라리우가 목숨을 잃은 순간, 두 세력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와아-!”
“이겼다! 투신 만세!”
아슬란 연합의 병사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 날뛰고 있는 반면
“……말도 안 돼. 단장님이 졌다고?”
“……X됐다.”
“도, 도망쳐!”
“……항복합니다.”
암흑성국의 병사들은 사색이 된 채, 꽁지 빠지게 도망을 치거나, 두 손을 번쩍 들고 백기투항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숨을 바쳐 싸우려던 암흑성국 정예병들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신들을 이끌던 수장은 레온에게 처참한 꼴로 박살이 났고, 굳게 믿었던 스피릿츄얼 키메라들은 마루에게 모조리 물어뜯기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종교적 구심점이었던 교황 라스푸틴이 숨겼던 모습을 드러낸 채 그들을 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겹게 늘어지던 전투는 아슬란 연합 측의 완벽한 승리로 빠르게 마무리가 되기 시작하였다.
뒤늦게나마 전공을 취하려는 NPC들과 유저들이 난리를 치고 있었다.
모두가 승리가 주는 행복감에 취해 있던 그 시점.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주인공인 레온은 이제 이후의 일들은 다른 간부들과 병사들에게 맡기고 최후방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의 전공 점수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 불가할 정도로 쌓여 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레온은 자신의 인벤토리 창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음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일곱 종의 무기가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마신의 사도들이 사용하는 직업 전용 아이템들이었다.
클라리우를 처치하고 획득한 전리품으로 나머지 세 개의 아이템마저 모두 회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행복한 순간에 레온의 표정이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기쁨보다는 무언가 미묘해 보이는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때 레온이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을 만들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정말인가?’
그런 그의 눈앞에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올라 있었다.
-퀘스트 ‘마몬의 사도들을 처치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유 영지에 ‘여신의 가호’가 깃듭니다.(자세히 보기.)
-보상으로 명성 100,000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명성 100,000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명성이 기준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자신의 영지를 ‘왕국’으로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일단 처음 적혀 있는 내용은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보유하고 있던 여신 퀘스트 중 하나가 완료되며, 또다시 막대한 명성을 손에 넣어 유저 최초로 왕국을 만들 수 있는 기준치를 달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크나큰 희소식에도 레온이 쉽사리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그다음에 적힌 내용 때문이었다.
-히든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칭호, ‘최후의 사도’를 획득하였습니다.
-마신 퀘스트, ‘강림한 마신을 도와 대륙을 피에 물들여라’를 획득하였습니다.
[강림한 마신을 도와 대륙을 피에 물들여라 / 마신 퀘스트]
자신의 마지막 보루였던 흑암기사단장 클라리우가 패배했다는 소식이 황실에 도달하였다.
그러자 광증이 극에 달한 황제 러셀은 멸망의 순간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을 금단의 비술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건 바로 암흑성국의 모든 신민들의 목숨을 제물로 삼아 마신을 강림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미 비술은 시작이 되었고, 곧 황도에 마신이 강림할 것이다.
당신은 최대한 빨리 황도로 돌아가 마신을 도와 대륙을 정벌해야 한다.
퀘스트 난이도 : SSSSSSSS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의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앞서 자신의 상대가 되려면 마신이 와야 된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정말로 마신이 강림할 줄은 몰랐다.
클라리우를 처치하며 마신 강림을 마침내 저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클라리우가 사망하며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되자, 동귀어진의 수를 발동한 듯했다.
레온은 다시 한번 황제가 발동한 비술의 내용을 보고 어이가 없어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잖아.’
암흑성국의 모든 신민이라면, 말도 안 되는 숫자의 NPC들이 제물로 희생이 될 터였다.
레온이 선인(善人)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면 자연스럽게 느낄 동정심이 차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황제를 향한 분노가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이어 레온이 끄응, 하는 깊은 신음성을 흘렸다.
그러곤 바쁘게 대책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비술은 시작되었다고 했어. 최대한 빨리 황도로 가야-.’
끄아아아악!
끄아아아아!
그러던 그때, 끔찍한 비명 소리가 그의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레온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생하고 있는 기현상을 확인한 레온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것은 포로로 잡힌 암흑성국의 병사들과 멀리서 연합군과 싸우고 있던 잔당들이었다.
그들은 피부에 핏줄이 선명하게 솟아오른 채, 고통에 겨워하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 이놈들이 왜 이래.”
“뭐, 뭐야. 이거.”
갑작스러운 상황에 연합군의 병사들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슈아아아아!
파아아아아!
암흑성국의 병사들에게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몸이 점점 녹아내리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피어오른 검은 연기는 모두 허공에서 한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저곳은!’
연기가 향하고 있는 곳을 확인한 레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곳은 바로 암흑성국의 황도가 위치하고 있는 방향이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모두 황도로 진격하라!”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레온은 곧바로 모든 병력을 황도로 이동시켰다.
* * *
황도에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고통에 찬 시민들이 내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칠흑 같은 검은 연기가 캄캄하게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황제 러셀이 있는 황궁도 마찬가지였다.
‘크윽,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러던 그때, 황실의 호위를 담당하고 있는 기사단장이 극통에 비틀거리면서도 황제 러셀이 자리하고 있는 대전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검을 목발처럼 삼아 힘겹게 한 발 한 발을 내디뎌 갔다.
눈앞이 흐릿해져 왔지만 오로지 주인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정신력으로 버텼다.
“쿨럭.”
겨우 문 앞에 도달하였지만, 입에서 시커먼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소매로 피를 닦은 그가 대전의 문을 활짝 열었다.
끼이익. 쿵!
‘……!’
그 순간, 그는 눈앞에 펼쳐진 생각지 않은 상황에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문이 열린 대전에는 거대한 소환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소환진으로 자욱한 검은 연기가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끼히히! 드디어 마신님이 나에게 오신다! 흐흐, 오시고 나면 적들을 모두 해치워 주실 것이야!”
소환진 앞에서 황제 러셀이 광소를 터뜨리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때, 기사단장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아아. 오늘로 암흑성국은 끝이로구나.’라는 것이었다.
쿠웅!
기사단장의 몸이 힘을 잃고 바닥에 허물어졌다.
슈아아아!
곧이어 그의 시체 또한 검은 연기로 변하여 소환진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우웅!
우웅!
소환진에서 흘러나오는 진동음이 더욱 과격해지기 시작하였다.
우르르르!
쿠르르르!
쏟아지는 힘에 황성이 무너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황도 전체에 지진이 발생하여 있었다.
황도 자체가 커다란 소환 마법진이 된 것이었다.
후아아아!
쿠우웅!
자신의 주위로 거대한 파편들이 연이어 떨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두려운 기색도 없이 황제가 기뻐 날뛰며 소리쳤다.
“오오, 오신다! 드디어 마신님께서 오신다!”
파아아앗!
촤아아아!
소환진에서 흘러나온 어둠의 광채가 대전을 뒤덮었다.
이어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마신의 기운이 파도처럼 대전에 차올랐다.
이윽고 잠시 후.
촤아아아.
쿠아아아.
거짓말처럼 그 모든 것이 가라앉아 있었다.
싸아-.
싸늘한 정적만이 감도는 대전에 한 존재가 제 모습을 드러내어 있었다.
소환진 위에 검은 흑발의 남자 하나가 눈을 감고 서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동자에 감격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때, 황제가 제 몸을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크게 소리쳤다.
“미천한 종이 지고하신 마신님을 뵈옵니다!”
그러자 마신이라 불린 그 남자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허무가 가득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심장을 차갑게 얼어붙게 하는 지독한 마기가 대전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끄으윽.”
황제가 바닥에서 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현세에 강림한 마신, 마몬은 그런 황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코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흐음, 현세의 공기는 오랜만이로군. 역시 좋아.”
그러곤 이내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이어 마몬은 폐허가 된 대전을 바라보고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슈우우우!
콰가강!
그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거대한 파편들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폭발하며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대전에 있는 황제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30대 정도의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견이었지만, 그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의 패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끄윽, 끄으.”
황제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몬은 그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자신을 강림시켜 주었다는 고마운 감정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황제는 어떻게든 입을 열어 쳐들어오고 있는 적들을 해치워 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아까부터 시끄럽군.”
딱!
퍼어엉!
황좌에 앉아 있던 마몬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앞서 파편처럼 먼지가 되어 터져 버렸다.
한 제국을 다스렸던 황제의 마지막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비참한 말로였다.
“흐음.”
그때, 마몬이 황좌에서 일어나 뻥 뚫려 바깥이 보이는 대전의 한쪽 벽면에 우뚝 섰다.
그리고 그는 먼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보였다.
매우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지만, 그 방향은 레온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는 곳이었다.
그 순간, 지그시 바라보던 마몬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혼잣말을 꺼내었다.
“호오, 역시 연이란 우습군. 재밌는 녀석이 있어.”
파바밧!
그 말을 끝으로 마몬이 뚫린 벽면으로 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앙!
파아앙!
수직으로 낙하하던 그가 허공을 지면처럼 사뿐히 밟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온의 것보다 더욱 뛰어난 속도로 대군이 몰려오는 곳을 향해 이동을 해 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