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
325화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던 레온 측의 병사들은 새롭게 등장한 키메라들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키메라들이 또 저렇게나 많이!”
“크윽, 역시 쉽게 가는 일이 없군.”
하지만 그들은 예전처럼 겁을 집어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스피릿츄얼 키메라도 처음에는 대처 방법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었지만, 여러 번에 걸쳐 싸워 오며 이제는 충분히 상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모든 병사들의 마음 한편에 자신들의 뒤에는 투신 레온이 있다는 든든함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때, 흑풍회의 병사들이 전의를 뜨겁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좋아, 가뜩이나 전공 점수나 필요했는데 저놈들은 내가 잡는다!”
“어딜! 저놈들은 내 거라고!”
흑풍회의 길드원들은 아슬란의 병사들에 비해 활약이 저조해 대부분이 전공 점수가 매우 낮은 상태였다.
그렇게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시점에서 달달한 먹잇감으로 보이는 키메라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 탐욕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기회로 여기는 것은 병사들뿐이 아니었다.
병사들을 이끄는 흑풍회의 길드장인 쿠할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앗, 저놈은 분명히 흑암기사단장인 클라리우잖아! 좋아, 이건 기회다! 여기서 맹활약하면 바닥에 떨어진 내 평판을 되찾을 수 있어!’
생각을 마친 그가 자신의 한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건방지게 우리의 앞길을 막는 저놈들을 모두 해치워라! 대장은 내가 맡겠다!”
그러곤 곧이어 자신의 창을 높게 들어 올리며 병사들에게 힘차게 소리쳤다.
우아아아!
쿠할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흑풍회의 병사들이 일제히 돌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과는 달리 아슬란의 병사들은 하던 전투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제자리에 멈추어 있었다.
허공에서 레온이 진격을 멈추자, 그 모습을 확인한 아슬란의 병사들 또한 눈치껏 빠르게 뒤따른 것이었다.
“모두 정지!”
“섣불리 달려들지 마라!”
역시나 곧이어 브룩과 지휘부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는 따로 명령이 없어도 레온의 몸짓 하나만 보고도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손발이 척척 맞아 가는 아슬란 길드였다.
처척.
아슬란 길드의 병사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철저하게 방어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레온은 안심을 하며 이내 죽을지 모르고 횃불로 달려드는 부나방 같은 모습의 흑풍회 병사들에게로 제 시선을 돌렸다.
-키에에에에!
-크와아아앙!
포효를 내뿜는 20기의 키메라들과 각자가 지닌 최강의 스킬을 사용하는 병사들이 어지럽게 얽히고 있었다.
“불꽃의 정령이여, 적에게 엄벌을!”
“프로즌 스트라이크!”
“대지의 힘이여. 칼날에 깃들어라! 가이아 블레이드!”
일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병사들은 마법이나 정령 마법을 사용하거나, 일반 대미지를 속성 대미지로 바꿀 수 있는 스킬을 사용하였다.
콰아아앙-!
꽈아아앙-!
키메라들의 거체에 갖가지 스킬들이 적중하며 거대한 폭발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었다.
-끄에에에!
-쿠에에!
쩌렁쩌렁한 폭음 속에 키메라들의 고통에 찬 신음도 뒤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지면에 착지하여 거침없이 돌진하던 키메라들이 흑풍회 병사들의 공격에 완전히 막혀 있었다.
‘흐흐, 좋아! 먹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쿠할란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낙승을 자신했던 자신의 예상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자 쿠할란은 아직도 허공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는 레온을 슬쩍 흘겨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그냥 저놈은 운이 좋았던 거야. 키메라들의 약점을 빨리 찾아냈던 것뿐이라고! 칫, 그까짓 것 때문에 그런 망신을 당할 줄이야. 흥, 투신은 무슨!’
사실을 따져 보면 그는 키메라가 아니라 흑암기사단의 일원인 나이저에게 처참히 발린 것이지만.
쿠할란이 레온에 대해 가지고 있던 커다란 자격지심은 그 명백한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분명히 흑풍회의 우세가 점쳐지던 그때.
‘쯔쯔, 못난 지휘관 만난 게 죄다. 너희는.’
레온은 혀를 차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결코 그들은 현재 유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그들은 클라리우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나 저평가를 하고 있었다.
파바밧!
타앗!
그러던 그때, 쿠할란이 지면을 박차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는 가장 거대한 키메라에게 달려들었다.
최상위 등급의 몬스터인 아크 데몬과 불사조 피닉스가 융합된 형태의 데몬 피닉스였다.
데몬 피닉스는 초월 등급보다 딱 한 단계가 낮은 최상급의 등급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등에 바로 흑암기사단장 클라리우가 타고 있었다.
후아아아-!
스르르르릉!
순간 쿠할란의 창이 엄청난 공명음을 토해 내었다.
그리고 곧이어 창 위로 검붉은 풀 오러 스피어가 솟구쳐 올랐다.
레온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조잡하고 자그마한 크기였지만, 그래도 상당한 위압감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다크 팔콘 스피어!”
촤르르르르르!
쐐애애애액!
양팔을 쭉 뻗음과 동시에 쿠할란의 창에서 검은 매의 형상을 오러 스피어가 클라리우에게로 쏟아졌다.
‘좋아! 제대로 들어갔다!’
자신의 허를 찌른 쾌속한 공격에 당황한 듯한 클라리우가 아직도 창을 뽑지 않은 무방비 상태로 있자, 쿠할란은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 한 방에 쓰러뜨리진 못하겠지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그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눈앞까지 투사체가 도달하였음에도, 클라리우는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버러지 같은 놈이.”
그저 쿠할란을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비릿한 비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러던 그때, 클라리우가 무장하고 있는 칠흑의 갑옷이 마기를 폭사시키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그와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지옥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 소리와 같은 것이 시끄럽게 사방에 울려 퍼졌다.
갑작스런 정체불명의 소음에 쿠할란은 당황했지만.
퍼어엉!
콰아아앙-!
곧이어 자신의 공격이 제대로 적중한 것을 확인한 쿠할란이 쾌재를 불렀다.
‘됐, 어라……?’
삐이!
삐이!
하지만 곧이어 뾰족한 경고음과 함께 자신의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에 그저 입을 쩍, 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흑암기사단장, 클라리우의 ‘혈마신의 플레이트 아머’의 특수 효과, ‘데몬스 블레스’가 발동됩니다.
-일정 대미지 이하의 공격이 강제적으로 무효화됩니다.
-‘다크 팔콘 스피어’가 소멸됩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자신이 쏟아 낸 비장의 공격이 한낱 아이템의 효과로 일시에 소멸되어 버린 것이었다.
7인의 사도 중 하나 ‘마신의 성기사’의 직업 아이템인 ‘혈마신의 플레이트 아머’의 효과가 발휘된 것이었다.
폭발과 함께 피어올랐던 먼지 구름이 사라지고 나자, 자그마한 생채기조차 나지 않은 클라리우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자 지근거리에서 다른 키메라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던 흑풍회의 병사들이 한숨을 푹 내쉬며 푸념 섞인 한마디를 내뱉기 시작했다.
“……뭐야, 아무런 피해도 못 준 거야?”
“하아, 우리 길드장은 왜 이리 약한 거야.”
매우 시끄러운 전투 상황에도 뼈를 때리는 그런 말들은 쿠할란의 귓가에 쏙쏙 박히고 있었다.
“이잇! 이럴 리가 없어!”
그때 눈앞에 펼쳐진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쿠할란이 빼액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파바밧!
촤아아앗!
쐐애애액!
모멸감에 완전히 정신이 나간 그는 마나의 소모도 생각지 않고, 자신이 지닌 스킬을 마구잡이로 클라리우에게 퍼붓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공격은 클라리우에게 자그마한 피해조차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생떼를 부리는 듯한 한심한 전투를 바라보며, 레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호오, 성기사의 갑옷은 스킬을 무효화할 수 있는 방어력을 지니고 있는 건가.’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니 정확한 효과를 파악하지는 못하였지만, 여태껏 쌓인 경험치 덕에 어느 정도 효과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쓰읍, 얼른 회수해야겠구먼?’
레온은 군침이 맴돌았다.
한데 그때였다.
“어, 저건?”
무언가를 확인한 레온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되고 있었다.
그와아아앙!
화르르륵!
클라리우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온의 시선이 닿은 것은 꽉 움켜쥐고 있는 클라리우의 두 주먹이었다.
플레이트 아머와 같이, 그의 주먹에서도 마신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레온은 그 이펙트를 보자마자, 한눈에 클라리우가 사용하려는 스킬이 자신이 이전에 보았던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 순간, 클라리우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쿠할란을 향해 오른 주먹을 힘껏 뻗어 내고 있었다.
“흑마지저권!”
콰아아앙!
콰가가가-!
클라리우의 주먹에 깃든 마몬의 힘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쿠할란을 맹렬히 강타하기 시작했다.
“꾸이이!”
마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숨을 헉헉대던 쿠할란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랬다. 놀랍게도 클라리우는 페가수스 길드의 수장이자 마신의 몽크였던 리로이가 사용했던 기술을 시전했던 것이었다.
레온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리로이의 ‘마신의 몽크’를 클라리우가 빼앗은 모양이었다.
순간 레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리로이에게 욕지거리를 쏟아 내었다.
‘아오, 이 등신 같은 놈이 나한테 지고 암흑성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더니 사도 직위를 빼앗겼나 보네.’
그 당시 리로이를 확실히 잡았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나간 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곤죽이 되고 있는 쿠할란을 바라보며, 레온이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후, 좋게 생각하자. 이제 저놈만 잡으면 모든 사도의 힘을 손에 넣게 되는 거니까.’
대장장이, 검투사, 소환술사, 프리스트는 그의 손에 있었고 마창사, 성기사, 몽크는 클라리우가 지니고 있었다.
단 한 번에 세 사도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좋아, 얼른 박살 내 줘 볼까!’
레온이 전의를 불태우던 그때.
때마침 레온의 눈앞에 그가 참전을 해야 함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동맹 길드 ‘흑풍회’의 길드장 ‘쿠할란’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동맹 길드 ‘흑풍회’의 길드장 ‘쿠할란’이 사망하였습니다.
-동맹 길드 ‘흑풍회’에 소속된 병사들의 사기가 150포인트 하락합니다.
쿠할란이 결국 피떡이 되어 리타이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때 클라리우가 커다랗게 목소리를 높였다.
“적장을 물리쳤다! 모조리 죽여 버려라!”
그러자 암흑성국 병사들이 내는 환호성이 쩌렁쩌렁하게 전장에 울려 퍼졌다.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아무래도 호문클루스 한 마리로는 감당이 안 되겠군.’
레온이 입을 달싹였다.
“엠브리오 호문클루스 소환, 투아왕(鬪牙王) 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