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
324화
서거걱!
“으아아아!”
소름 돋는 절삭음과 함께 누군가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살인이 밥 먹듯이 자연스레 벌어지는 암흑성국이지만, 이곳에서는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누가 감히 암흑성국의 황궁 안에서 살인을 저지른단 말인가.
하지만 완전 무장한 흑암기사단의 정예 기사들은 묵묵히 비명 소리가 새어 나온 곳의 문전을 지킬 뿐이었다.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짐승과도 같이 굴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 방은 그들의 주인인 암흑성국의 황제 러셀이 기거하는 침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침실 내부에는 두 명의 시녀와 러셀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제대로 서 있는 시녀는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바닥에 쓰러진 채, 흥건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명을 지른 시녀는 겁에 잔뜩 질려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러셀이 피가 잔뜩 묻은 검을 든 채,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순간 러셀이 바닥에 쓰러진 시녀의 시체를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 라스푸틴의 졸개 놈이 감히 나를 죽이려 해!”
그의 눈동자는 한눈에도 정상인의 것이 아니었다.
핏발이 선 눈동자에서 소름끼치는 광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암흑성국의 패배가 계속될수록 황제 러셀의 광증도 더욱 심해져 갔다.
그리고 결국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체를 만들어 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 러셀이 획 하고 살아남은 시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시녀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러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분명히 네년도 한편이렷다.”
“사, 살려 주십시오, 폐하.”
시녀의 간절한 부탁에도 러셀은 검을 질질 끌며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거의 기어가듯 하며 시녀가 러셀을 피해 움직였다.
“히익!”
어느새 번쩍 들어 올린 러셀의 검이 시녀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려 하고 있었다.
벌컥!
한데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때마침 누군가가 침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갑작스레 방문이 열리자 러셀이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며 패닉 상태가 되었다.
“으아아! 아,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그러곤 양팔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암흑성국을 이끄는 황제의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방문자가 터벅터벅 걸어가 러셀에게 말을 건넸다.
“……폐하, 진정하십시오. 신 클라리우이옵니다.”
그는 바로 다름 아닌 흑암기사단의 단장인 클라리우였다.
황제의 광증이 다시금 도졌다는 말이 나오자, 급하게 달려온 것이었다.
가장 신임하는 신하인 그가 곁에 있으면 황제의 정신이 금방 되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후, 이제 곧 안정이 되시겠지.’
자신의 발밑을 적시고 있는 시녀의 피를 보며 클라리우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이어진 다음 순간.
“으아아! 라스푸틴이 온다! 내 목을! 내 목을 베러 온다!”
갑작스레 공포에 질린 얼굴로 황제가 더욱 크게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생각지 않은 전개에 클라리우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조차도 황제의 광증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건 새어 나가선 안 돼.’
클라리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가 완전히 미쳐 버리고 말았다는 소식이 퍼진다면, 아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었다.
그때 생각을 끝낸 클라리우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끄으윽!”
살아남아 있던 시녀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시체가 되었다.
“크억!”
“큭!”
그뿐이 아니었다. 클라리우는 문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기사들까지 단숨에 해치워 버렸다.
단 하나의 목격자도 남겨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끼익, 쿠웅.
다시금 침실의 문을 굳건히 닫아 놓은 채, 클라리우는 굳은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차갑게 식은 표정의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그가 자신의 검을 매만지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쩔 수 없다. 이제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그에게 점점 살기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클라리우는 곧장 다른 곳을 향해 이동을 하고 있었다.
홀로 남은 침실에서 러셀은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으며 자그맣게 혼잣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뺏길 수 없어. 이 자리는 뺏길 수 없어.”
계속되는 그의 목소리에서 소름끼치는 느낌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가장 선명한 광기를 뿜어내며 러셀이 반복하던 말의 내용을 바꾸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어.”
* * *
콰아아앙! 퍼어어엉!
폭음과 함께 짙은 모래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곳은 ‘마몬드 성채’로 암흑성국의 황도에서 이틀거리 정도에 위치한 전장이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한데 섞여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막으란 말이야! 멍청이들아!”
“뭐 멍청이? 그렇게 쉬워 보이면 말만 지껄이지 말고 네가 막아 봐!”
“크어억!”
곡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수성을 하고 있는 암흑성국 쪽이었다.
의아한 일이었다. 본래 공성전은 수성하는 쪽이 공성하는 쪽보다 편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장에는 일방적인 학살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버스트 플레임. 에너지 스트라이크. 암석 낙하. 트리플 퓨전, 인페르노 메테오!”
공성군이 지닌 공성병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솟구치는 강대한 불꽃과 마법 구체 그리고 거대한 암석의 마법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휘우우우웅! 쐐애애액!
허공을 뜨겁게 타오르는 수많은 유성들이 수놓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그 웅장함에 감탄을 보였겠지만, 현재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자 암흑성국의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비명만을 내지르고 있었다.
“으아아! 유성이 떨어진다!”
“피, 피해!”
하지만 유성은 엄청난 속도로 그들이 있는 성벽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이곳에 그들이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꽈아아앙! 콰아아앙!
귀가 먹먹한 폭발음과 함께, 유성들은 마몬드 성채의 성벽에 내리꽂혔다.
집채만 한 크기의 유성들이 사정없이 두들기자, 흑풍회 길드의 공성 전차가 아무리 두들겨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던 성벽들이 종잇장처럼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병사들이 들어갈 만한 커다란 구멍들이 송송 뚫리고 있었다.
‘저 자식, 꽤 쓸 만하단 말이지.’
한 방에 적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 것을 확인하며, 포프를 바라보던 레온이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마법사라는 그의 별명이 아깝지 않은 능력이었다.
그를 얻은 것은 정말 예상외의 수확이었다.
나이저와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입단을 하고 싶다고 말을 건네서 얼마나 놀랬던가.
당연히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 없었으니, 흔쾌히 받아 준 레온이었다.
그러던 그때, 스킬을 마무리한 포프가 고개를 돌려 레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언가 의도가 분명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또 저러네, 저놈 저거.’
그것을 보며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다만 영입을 하던 그때는 예상치 못했던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참 나, 저놈은 시도 때도 없이 싸워 달라고 하냐. 귀찮아 죽겠네.’
모 격투 만화의 카카로X에게 집착하는 베지X처럼, 포프는 아슬란의 소속이 된 순간부터 매분 매초 레온과 결투를 하자고 조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 몇 번은 정말 가볍게 발라 주었다.
포프는 레전드리 등급의 직업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에픽 등급의 직업을 가진 레온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계속된 연패에도, 포프는 포기하지 않고 결투 신청을 해 왔다.
물론 그 때문에 레온은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고 말이다.
결국 레온은 포프와 대타협을 했다.
자신이 암흑성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나면, 그때부터 쉬지 않고 싸워 주기로 말이다.
‘……라고는 했지만.’
그러나 물론 레온은 약속을 지켜 줄 생각이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부서진 공간으로 파고들어라! 전군 진격하라!”
브룩의 커다란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우아아아!”
그와 함께 수많은 병사들이 레온을 가로질러 뚫린 성벽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흑풍회와 중부 왕국들의 뛰어난 실력을 갖춘 병사들의 숫자도 많았지만, 역시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아슬란의 병사들이었다.
스르르륵! 파바밧!
“모든 암살단원들이여! 우리의 주인께 적군의 목숨을 선물하자! 섀도 스플린트!”
“샤먼들의 왕께 영광과 축복을! 빙의!”
암살자들과 샤먼들이 앞장을 섰고.
“새롭게 열어 주신 네크로맨서의 진정한 힘을 보여 주자!”
“소환, 본 데스 나이트!”
“소환, 본 아크 리치!”
본 네크로맨서들이 소환수들과 함께 뒤따랐다.
게다가 암흑신관들을 비롯해 다크 드워프, 연금술사들까지 레온의 모든 병력들이 총출동해 있었다.
어느새 레온이 이끌던 흑풍회의 병력과 남부에서 진격하던 병력이 한곳에 합류하여 있었던 것이다.
선두에서서 진격하는 자신의 병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레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곤 가볍게 몸을 풀며 말을 꺼냈다.
“자, 그럼 슬슬 나도 가 볼까.”
레온의 말이 끝난 그 순간.
-캬오오오!
-크와아아아!
레온의 등 뒤에서 넉 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어비스 드래곤이 그 흉포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촤아아아! 쐐애애액!
어비스 드래곤의 등 뒤에 올라탄 레온은 엄청난 비행 속도로 적군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엄청난 속도로 목표 지점에 도착하여, 허공에서 허둥지둥하고 있는 적 지휘부를 향해 그대로 드래곤 브레스를 꽂아 넣으려 했다.
“자, 그럼 드……?”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어라, 저건?’
말문이 막힌 그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반대편의 허공을 확인하였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하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점들이 보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이라면 알아채지 못하였을 테지만, 레온의 초월적으로 상승된 시력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점으로 보였던 것은 점점 크기가 커져 가고 있었다.
이윽고 선명해진 의문의 존재들의 정체를 확인한 레온의 얼굴 표정이 묘하게 변화하였다.
-키에에에에!
-끼에에에에!
그러던 그때, 전장에 키메라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랬다. 허공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스무 기의 스피릿츄얼 키메라들이었던 것이었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레온이 보았던 스피릿츄얼 키메라 중에 가장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레온은 키메라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키메라의 등 위에 올라타고 있는 한 사람만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그의 시선 너머에 기사단장 클리리우가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