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321화
나이저가 머리 위로 꺼내 들은 의문의 보석의 효과로 인해, 하늘은 당장이라도 폭풍이 휘몰아칠 듯이 먹구름이 가득하게 변화하여 있었다.
흑풍회의 병사들은 초점이 사라진 멍한 눈으로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들은 머릿속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린 망했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여 있었다.
한데 어쩔 수 없었다.
그 하늘 속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병사들이 절망에 가득한 표정으로 속으로 생각했다.
‘……저딴 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기습 때문에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하, 됐고 그냥 죽여라.’
그들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적군이 전장에 다름 아닌 ‘드래곤’을 불러내었기 때문이었다.
넉 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전장 속으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드래곤은 온몸에서 거대한 위압감을 쏟아 내고 있었다.
한데 그 드래곤은 두 개의 특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하나의 몸체에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특이하게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비늘의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잿빛 드래곤이라고?’
‘그레이 드래곤……인가?’
그랬다. 비늘이 재와 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판테라 공식 설정집에 저런 색깔의 드래곤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길게 이어 가지는 못했다.
-쿠오오오오오!
그 순간, 점차 가까워 오는 의문의 드래곤이 드래곤 피어를 쏟아 내었기 때문이었다.
쿠아아아아아!
파아아아앙!
단순히 울음소리를 내는 것에 불과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전장에 거대한 파장이 일었다.
유저들이 당혹해했다.
마음속으로 제발 아니기를 빌었건만, 정말로 드래곤이었던 것이다.
판테라에서 드래곤이라는 몬스터가 가지는 의미는 일반적인 몬스터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드래곤은 판테라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아직 유저들이 감히 사냥을 시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존재 말이다.
물론 투신 레온이 다루는 본 드래곤이 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뼈만 있는’ 드래곤이었다.
온전한 드래곤이 아닌 것이다.
드래곤을 확인한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그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와, 암흑성국 다시 봐야 겠네. 드래곤으로 키메라를 만든 거냐.
-마, 이건 밸런스 붕괴 아닙니까?
-투신, 이거 보고 본 드래곤으로 곰국이나 끓여 먹는답니다~.
-R.I.P 흑풍회.
모든 이들이 흑풍회의 패배를 점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기습을 당해 길드장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데다가, 키메라 드래곤이라는 최악의 적이 나타났으니 말이었다.
반면 이제는 대놓고 주둔지로 밀려든 암흑성국 측의 병사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레이 드래곤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들이 방방 날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크하하! 망할 이교도 놈들아!”
“깜짝 놀랐지?”
“끌끌, 뒈질 준비하고 있어라!”
“나이저 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그들은 곧이어 그레이 드래곤을 소환했다고 생각하는 나이저를 바라보며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진 다음 순간.
‘어라?’
‘왜 저러시지?’
‘……나이저 님?’
나이저의 반응을 확인한 병사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인 나이저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나이저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야, 저건 내가 소환한 게 아니라고.’
슈우우우웅!
지이이잉!
그러던 그때, 나이저가 사용한 보석이 지닌 진정한 효과가 발휘되며 지면에 거대한 공간이동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
파아아앗!
그러면서 검은 빛줄기와 함께 그 속에서 연구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상급 스피릿츄얼 키메라 10기가 소환되기 시작하였다.
그 광경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이저가 드래곤은 그들의 편이 아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려 했다.
“저건 우리 편이 아-!”
-그르르릉!
-크아아아아!
-까우우웅!
-그롸라라!
하지만 때마침 스피릿츄얼 키메라들이 동시에 포효를 내질러 목소리가 묻히고 말았다.
우아아아아!
게다가 스피릿츄얼 키메라들에 사기가 더욱 올라간 병사들이 곳곳에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리의 뒤에는 키메라 군단이 있다!”
“적들을 섬멸하자!”
투다다다다!
쿠웅! 쿠웅!
암흑성국의 병사들과 키메라들이 날뛰려던 그때였다.
쩌어어억!
지근거리에 도착하여 떠올라 있던 그레이 드래곤의 두 머리가 거대한 이빨이 보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앙!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곧이어 나이저의 두 눈동자에 그레이 드래곤의 벌어진 아가리에 미친 듯이 공명하고 있는 마나의 폭풍이 담기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이저의 등줄기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고, 모골이 송연해져 왔다.
전신의 모든 세포가 그에게 경고를 해 주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 끔찍한 사태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이다.
‘머, 멈춰! 멍청이들아!’
“……!”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저의 생각은 입을 통해 발설되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콰가가가가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레이 드래곤의 두 개의 입에서 드래곤 브레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 드래곤의 것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숨결이라는 연약한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화르르르르륵!
콰그그그그그!
공기뿐만 아니라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리며 브레스는 허공에서 일직선으로 뻗어 갔다.
쏟아진 두 개의 브레스는 서로 맞물리며 더욱 거대하고 강렬하게 변화해 가고 있었다.
‘아아, 끝이구나.’
‘강제 로그아웃되면 뭐 먹지…….’
‘그래, 짬뽕라면에 밥이나 말아 먹어야지.’
상상을 초월한 드래곤 브레스의 진정한 모습을 확인한 흑풍회의 모든 병사들은, 저것에 닿는 순간 자신들이 끝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들은 최후를 직감하고 두 눈을 찔끔 감았다.
쐐애애애애애액!
콰가가가가가!
하지만 드래곤 브레스는 그런 그들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도달하는 포격 지점에 서 있던 암흑성국의 병사들과 흑암기사단 소속의 몇몇 기사들이, 무방비의 상태로 있다가 제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어라?’
‘……근데 저거 방향이 좀 이상한데?’
‘……조준하고 있는 곳이 꼭.’
‘……우리 쪽인 거 같다?’
어어, 하며 당황해하던 그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표적임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피, 피!”
“……!”
하지만 피하려고 몸을 날릴 때에는 이미 드래곤 브레스가 그들이 서 있던 공간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브레스가 도달한 순간.
찰나의 정적이 감돌다가.
퍼퍼퍼퍼퍼펑-!
꽈아아아아아아앙-!
카가가가가가가강!
언제 그랬냐는 듯, 핵폭탄이 떨어진 듯한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임팩트였다.
브레스가 강타하고 나자 엄청난 모래먼지가 안개처럼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짙은 안개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쿨럭쿨럭, 마법사들은 먼지를 걷어 내라!”
그러던 그때, 완전히 먼지 범벅이 된 나이저가 기침을 하면서도 명령을 내뱉었다.
쉬이이잉!
부우웅!
그의 명령을 들은 마법사들이 바람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하였다.
나이저 또한 풀 오러 블레이드가 넘실거리는 검을 휘둘러 먼지를 날려 버리며 도왔다.
그의 노력에 곧이어 가려진 시야가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먼지가 걷히고 나자.
‘마, 말도 안 돼.’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암흑성국 병사들의 시체로 이루어진 지옥도였다.
깊게 뚫려 있는 구멍에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는 회색빛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드래곤 브레스가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지만, 공격 범위에 속해 있던 어떤 병사도 살아남지 못하여 있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끄, 끄에에에.
-꾸어.
-크에에에.
고통에 찬 비명 소리를 흘리고 있는 상급 스프릿츄얼 키메라들뿐이었다.
그것도 10기 중 3기는 즉사해 있었고, 나머지 7기 또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겨우 죽음만을 모면한 것이었다.
분명히 자신들에게 좋은 일이 벌어진 것이건만, 흑풍회 길드의 병사들은 기뻐하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보았던 모든 것들 중 가장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목격하고,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대체 저 괴물은 뭐야…….’
‘……적이야, 아군이야.’
그들은 공포와 경외심을 담은 눈빛으로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드래곤은 종말을 알리는 나팔수처럼 허공에서 그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암흑성국의 병사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털썩.
털썩.
“끄어어어!”
“으어어!”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는 이들부터, 괴상한 비명 소리를 내며 도망가는 이들까지. 진영이 엉망진창이었다.
그 소요를 지켜보던 나이저가 피가 배어 나올 만큼 세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상상도 못 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대로 회군을 해야 할지 그가 고민을 하며 그레이 드래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한데 그때였다.
“어우, 이거 생각보다 너무 세잖아? 응, 개꿀이고.”
그레이 드래곤에게서 상황에 맞지 않는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어리둥절해하는 것은 나이저뿐만이 아니었다.
삼중 결계로 쿠할란과 미하비를 지켜 낸 포프 또한 의아해하고 있었다.
슈우욱!
처척!
그때 갑작스레 그레이 드래곤의 등에서 의문의 남자가 지면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누구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모두는 드래곤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을 하였다.
그 말인즉, 저 밸런스를 파괴시키다 못해 찜을 쪄 먹어 버린 드래곤이 유저의 소환수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한데 더 이상 커질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눈동자가 더욱 확장되었다.
‘저자는!’
‘마, 말도 안 돼!’
‘저분이 여기에 왜?’
모든 이들이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의 등에서 내린 것은 다름 아닌 투신 레온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정체불명의 드래곤의 정체는 연구가 완료된 첫 번째 엠브리오 호문클루스인 ‘트윈 헤드 어비스 드래곤’이었다.
기사단장이 돌아오는 것으로 확정되자, 레온은 연구를 빠르게 끝마치고 황도를 벗어나 지지부진한 흑풍회를 돕기 위해 이곳으로 곧장 출발을 하였던 것.
우아아아아아!
“투, 투신님이다!”
“레온 님이 우리를 도와주러 오셨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것도 잠시. 전장이 떠나갈 것처럼 시끄러운 탄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그들의 환호성을 즐기며 한마디를 툭 내뱉고 있었다.
“자, 이 전쟁을 끝내러 제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