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9
319화
남부에서 아슬란이 돌풍을 만들고 있는 것과 달리 흑풍회를 필두로 한 길드 연합은 속수무책으로 암흑성국에 당하고만 있었다.
흑암기사단과 클라리우는 정말로 강했다.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장식했던 흑풍회의 정예 병력이 손도 대지 못할 정도였다.
그에 많은 이들이 이쯤 되면 길드장인 ‘쿠할란’이 직접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을 꺼냈지만, 쿠할란은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라도 쿠할란이 클라리우에게 패배하게 되는 순간, 정말로 1위 길드의 자리를 아슬란에 빼앗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여론이 아슬란을 최고로 치고 있는 이었기에, 어떠한 사소한 빌미라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흑풍회는 다른 방향으로 선택을 하였다.
[전체 랭킹 1위, 대마법사 포프, 흑풍회 길드의 용병으로 전격 참전!]
[전체 랭킹 4위, …….]
[전체 랭킹 8위, …….]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자금에 각종 전설 급의 아이템들과 희귀 스킬까지 모조리 쏟아부어 순위권에 있는 랭커들을 용병으로 섭외한 것이었다.
공격적인 영입에 흑풍회의 전력이 상당히 강력해지고 있었다.
다만 이것은 정말 길드의 모든 것을 갈아 넣은 도박수였다.
만일 이 전쟁에서 충분한 보상을 얻지 못한다면, 흑풍회는 파산하고 말 정도로 말이었다.
하지만 흑풍회의 길드장도 간부들 어느 누구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잠시 주춤하는 것일 뿐, 분명히 왕좌를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클라리우가 날뛰는 곳마다 영입한 랭커들을 배치하자, 열세이던 기세가 숨을 돌릴 정도는 될 정도로 회복되었다.
한데 그때, 흑풍회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기사단장인 클라리우가 전장에서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복귀를 명하는 황제 러셀의 명을 받은 것이었지만, 흑풍회 길드는 그 사실을 알 만한 라인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그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찬스였다.
이때다 싶었던 흑풍회의 간부들은 모든 병력을 모아 방어를 포기하고, 총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초의 예상과 달리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흑풍회 길드는 유리한 고지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빠지고 나서 혹시나 판세가 뒤집힐 것을 걱정한 클라리우가 흑암기사단 전원을 놓고 홀로 복귀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2병단 단장인 ‘나이저’가 임시로 그들을 이끌며 전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자 길드장과 간부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 * *
암흑성국 남동부 전선.
흑풍회 병사 주둔지.
흑암기사단이 이끄는 병력과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병사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복귀를 하고 있었다.
“후우.”
“……죽겠군.”
그들은 하나같이 피곤에 쩔어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승리를 취했다면 기뻐 날뛰겠지만, 그들의 반응으로 보아 오늘도 똑같이 패배를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병사들은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괴물 같던 기사단장이 빠졌음에도, 순위권에 드는 유명 랭커들이 합류했음에도 승기를 잡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반등을 해야 함에도 지지부진하단 사실이 오히려 절망감을 배가시키며 그들의 사기를 깎이게 하고 있었다.
‘젠장,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어.’
그러던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흑풍회의 부길드장, ‘미하비’는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바닥에 떨어진 사기를 어떻게 상승시켜야 할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를 않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게 다 그놈 때문이야.’
한데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하더니, 도끼눈을 뜬 채 성큼성큼 한 막사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도착한 것은 일반적인 병사의 막사와는 달리 매우 큰 크기를 지닌 막사였다.
이곳은 ‘특급 용병’이라 불리는 섭외한 랭커들이 사용하는 막사였다.
화악!
미하비가 허락도 없이 천막을 벌컥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내부가 펼쳐졌다.
그나마 한 가지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막사 내부가 한줄기의 빛도 없이 어두컴컴하다는 것이었다.
드르렁.
드러렁, 커억. 드르렁.
그러던 그때, 적막을 뚫고 어딘가에서 커다란 소음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의 코골이 소리였다.
‘세상 편하구먼, 이 작자는.’
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미하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리의 근원지로 빠르게 다가갔다.
“라이트.”
화아악!
그가 발광 마법을 실현하자, 막사 안이 형광등을 켜 놓은 것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으으.”
그러자 막사를 지탱하는 양쪽 기둥에 걸어 놓은 그물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가 팔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신음성을 내었다.
하지만 결코 눈을 뜨고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물 침대에서 허우적거리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미하비가 몸을 흔들어 깨우며 크게 소리쳤다.
“일어나십시오! 언제까지 그렇게 잠만 자실 겁니까!”
그렇게 미하비가 난리를 피워 대자, 뒤늦게 남자는 멍한 얼굴로 눈을 떴다.
그물 침대에서 벗어나 제대로 선 남자의 키는 180cm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맹한 인상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잘생긴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음냐, 아직 덜 잤는데.”
곧이어 아직까지도 비몽사몽한 채로 남자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미하비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하, 전쟁이 끝난 여태껏 잠을 자 놓고 졸리다고 투정을 하는 겁니까? 포프 님은 양심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군요.”
한데 그때, 미하비의 입에서 놀라운 이름이 내뱉어져 있었다.
방금 그는 잠에 취한 남자를 판테라의 랭킹 1위인 대마법사 포프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비꼬는 말에도 별다른 대답 없이 흐암, 하고 크게 하품을 한 포프는 미하비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빠직.
포프의 말에 미하비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섰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으며, 미하비가 말을 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계속 잠만 자고 대체 왜 전쟁에는 참여하지를 않는 건지 물어보러 온 겁니다.”
하나 쌓인 게 많은지, 울분을 토하는 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포프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내가 왜 싸워야 되는데?”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합당한 페이를 받고 용병으로 참전하셨으면 당연히 적과 싸워 주셔야 될 것 아닙니까!”
황당한 대답에 열을 올리는 미하비에게 포프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너도 내가 너희 길드장이랑 계약을 할 때 옆에 있었잖아. 길드장은 나한테 흑암기사단 단장인 클라리우인가 뭔가를 잡아 달라고 말했다고. 근데 여기에 녀석은 없잖아.”
“아니, 그건!”
반박을 하려던 미하비는 분노를 못 참고 부들부들 몸을 떨 뿐, 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히 계약상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미하비가 속으로 천불을 삭히며 생각했다.
‘아오, X발. 분명히 그렇게 말은 했지만, 정말로 그 자식만 죽여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잖아!’
포프는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지만, 사회성이 완전히 결여된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미하비가 아무런 말없이 서 있자, 조용히 지켜보던 포프는 다시 한 번 크게 하품을 하며 축객령을 내렸다.
“흐암, 몰라. 할 얘기 끝났으면 졸리니까 얼른 나가-.”
한데 그때였다.
쿠아아앙!
퍼퍼펑!
갑작스레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의 강렬한 소음이 그들이 위치한 주둔지에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연속된 폭음과 함께 코끝에 매캐한 냄새가 느껴졌다.
‘습격이다!’
미하비는 적이 기습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막사를 후다닥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막사 안에서 뒷머리를 긁적이던 포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하아. 이거 곱게 자기는 글렀군.”
* * *
끄아아악!
아아악!
미하비가 포프의 막사를 나서자,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염계 마법이 강타했는지 수많은 병사들의 천막이 불꽃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평범한 길드였다면 아수라장이 펼쳐졌을 테지만.
“적의 습격이다!”
“전투태세를 갖춰라!”
흑풍회라는 이름값처럼 병사들은 빠르게 습격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백인대장, 천인대장들이 크게 소리를 내며 소요를 잠재우고 있었다.
파바밧!
그것을 확인한 미하비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길드장인 쿠할란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대체 어떤 놈들이지.’
그러는 동안 그는 내부에 파고든 암흑성국의 병력을 추려내고 있었다.
피해를 종합해 보는데, 아무래도 그리 많은 숫자가 침투한 것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철저하게 세워 놓은 경계병들의 방어 라인을 뚫고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던 이곳에 이렇게 쉽게 파고들 실력이라면, 결코 쉽게 볼 이들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설마.’
가슴 속의 한구석에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그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고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흑암기사단이다!”
“흑암기사단이 나타났다!”
미하비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크윽, 왜 이놈들이 여기에!’
최악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상대의 최정예 병력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허억, 헉.”
숨이 차오를 정도로 스태미나를 급속도로 소진해 가며, 미하비가 쿠할란의 막사 코앞까지 도착한 그 순간.
콰아아앙-!
퍼퍼어엉-!
꽈아앙-!
이전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크윽.”
폭발의 충격에 휩쓸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던 미하비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곧이어 눈앞을 확인한 그는 얼굴에 차오르는 당혹감을 숨기지를 못하고 있었다.
‘쿠, 쿠할란 님.’
방금 전의 폭발로 쿠할란의 막사가 흔적도 없이 전소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타다닷!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그가 앞으로 달려갔다.
“읏!”
……아니, 달려가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뒤편에서 누군가가 그런 그의 목덜미를 덥석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미하비가 뒤를 돌아보자, 포프가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말을 꺼내려던 순간!
촤아아아아-!
퍼퍼퍼어엉!
“히이익!”
강렬한 마기를 품고 있는 풀 오러 블레이드의 파편이 그가 발을 디디려던 자리를 박살을 내고 있었다.
1초만 늦게 포프가 그를 잡았더라면, 미하비는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로그아웃을 할 뻔한 순간이었다.
휘이익!
쿠우웅!
그러던 그때, 미하비의 눈앞에 덩어리 같은 것이 날아들었다.
형체를 확인한 미하비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쿨럭, 끄으.”
“쿠할란 님!”
반으로 부서진 창을 든 채, 만신창이가 된 쿠할란이 널브러져 있었다.
장송곡과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오, 쓰레기 중에도 쓸 만한 녀석이 있었군.”
2병단 단장인 나이저가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