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
317화
“허억, 헉.”
‘이, 이게 무슨.’
간발의 차이로 겨우 마력탄을 피해 낸 알파드는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엄청난 위력을 지닌 마력탄에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던 것이었다.
식은땀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그러던 그때, 말장난을 하고 있는 다크 드워프들의 대장로 라분과 브룩을 바라보며 알파드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스웰에 있던 다크 드워프들은 모두 작업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들었지 않았던가.
갑자기 이런 곳에서 적군으로 튀어나올지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 고민을 할 수 없었다.
웅성웅성.
뒤편에 서 있던 병사들이 내는 말소리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알파드는 그제야 자신이 아직까지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력탄을 피하느라 바닥을 뒹굴어 흙투성이가 된 채로 멍하니 적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얼굴이 불이라도 난 듯 화끈거려 왔다.
항복을 권유하러 병사들을 제치고 홀로 성문 앞으로 나왔었던 터라, 모든 병사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빠득.
그러곤 뒤늦게 치밀어 오르는 창피함과 분노에 소리 나게 이를 갈며 브룩을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아주 정신이 나갔구나. 마지막으로 자비를 내려주었더니, 그것을 걷어차다니.”
하나 그의 말에 브룩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앉았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몸에 붙은 흙이나 마저 터시지그래?”
‘이, 이 개자식이!’
레온과 다니다 보니 어느새 말빨이 일취월장한 브룩의 조롱에 다혈질인 알파드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러던 그는 이내 하늘 위로 번쩍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며 병사들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좋다, 네놈들이 그토록 원하니 하반을 피로 물들여 주마! 전군, 돌격하라!”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 순간.
우아아아!
투다다다다!
뒤편에서 기다리던 병사들이 거대한 함성 소리를 뿜어내며 일시에 열린 성문으로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침투할 기회다! 모조리 죽이자!”
“난쟁이부터 처치하자!”
채챙!
슈아아아!
알파드가 앞서 보인 추태 때문에 사기가 떨어질 법도 했지만, 군사들은 금세 자신들의 컨디션을 되찾아 있었다.
확실히 알파드가 이끄는 청익기사단과 병사들은 쉽지 않은 상대인 듯했다.
숱하게 치른 전투의 연륜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적들이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분의 얼굴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철컥.
위이잉!
빠르게 헥스테크 건틀릿의 재장전을 마친 그가 혀를 차며 말을 꺼냈다.
“쯔쯔,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우우우웅!
거친 진동음이 울려 퍼지며 그의 총구에서 다시 한 번 푸른빛의 마력이 끓어 넘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쏟아지는 적들에게 당장이라도 발사할 기세였지만.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
옆에 선 브룩이 조용한 목소리로 어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투다다다!
넓게 산개하여 있던 적들이 성문을 돌파하기 위해 한 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다 죽여!”
“황제 폐하를 위하여!”
그리고 곧이어 적들이 한계까지 밀집된 그 순간.
“바로 지금!”
브룩의 한마디가 전장에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흐앗!”
타앙-!
그러자 라분이 드디어 헥스테크 건틀릿을 발사하였다.
한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마력탄을 적에게 쏘는 것이 아닌 난데없이 하늘 위로 쏘았던 것이다.
파아앙!
마력탄은 하늘 높이 올라가 마치 폭죽처럼 터졌다.
‘뭐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던 알파드는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 이어진 당혹스러운 전개를 통해 어째서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슈아아아아!
스르르르륵!
병사들의 귓전에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릴 것과 같은 소름 끼치는 느낌에 그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던 그때.
쑤욱.
푸욱.
“뭐, 뭐야?”
“어어?”
“모래?”
“아, 안 빠지잖아!”
그들은 순식간에 모래로 변해 버린 땅에 늪처럼 발이 빠진 것을 깨닫고는 당황에 찬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이런! 방금 그건 신호탄이었나!’
알파드는 방금 전 다크 드워프의 총탄이 이 기현상을 만든 자에게 보내는 신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슈아아아아!
“으윽!”
“크으으!”
공포에 휩싸인 병사들은 빠져나가기 위해 거칠게 몸을 움직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도리어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질 뿐이었다.
“사, 살려 줘!”
“이이, 붙잡지 마! 꺼져!”
“으아아아!”
게다가 좁은 성문을 돌파하기 위해 빽빽하게 모여 있던 통에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너도나도 살아남겠다며 서로의 팔다리를 붙잡아 끄는 통에 지옥과 같은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끔찍한 장관 속에서 브룩이 혀를 내두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미리 말은 전해 들었지만, 저 녀석이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대지 마법을 사용하게 될 줄이야.’
스윽.
곧이어 그의 시선이 하반의 성벽 위에 서 있는 한 소녀에게 닿고 있었다.
갈색 로브를 걸치고 있는 의문의 소녀는 많이 보아도 중학생 정도의 가냘픈 체격과 아담한 키를 지니고 있었다.
앳되고 귀여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지만, 너무나 창백해 보이는 피부 탓에 생기가 없어 보였다.
위이이잉!
그녀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길이의 지팡이에서 음험한 초록빛이 계속해서 점멸하고 있었다.
그때,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가 입을 달싹였다.
“……주인, 님에게 거역, 하는 이에게는 오로, 지 죽음뿐.”
그녀가 말하는 주인이란 레온을 뜻했다.
그랬다. 소녀의 이름은 ‘땅땅이.’
레온의 메이지 스켈레톤이 호문클루스로 다시 태어난 모습이었다.
암흑성국이 키메라 연구를 위해 필요한 재료는 어떤 것이든 조달해 주는 것을 역이용하여, 레온은 호문클루스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모두 손에 넣었고, 곧바로 추가로 제작을 완료했던 것이었다.
우우우웅!
그때 땅땅이가 새로운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처척!
처처척!
그러자 그녀의 뒤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던 수많은 다크 드워프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순식간에 썰렁했던 성벽 위가 헥스테크 건틀릿을 착용한 다크 드워프들로 채워졌다.
모든 총구가 거대한 개미지옥에 발이 묶인 알파드의 병사들에게 향하였다.
그러자 라분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전원 사격 개시!”
피유융!
타타탕!
수많은 마력탄이 하늘을 뒤덮는 폭우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병사들의 머리통으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에 병사들은 경악을 하며 헛된 움직임을 멈추고, 얼른 머리 위로 방패를 들어 올리거나 방어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퍼엉!
퍼억!
“끄아아아!”
“크억!”
“끅!”
다크 드워프들의 마력탄은 그 모든 방어 수단을 꿰뚫어 내며 박살을 내고 있었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모래가 붉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며 알파드가 입을 쩍 벌렸다.
‘무, 무슨 이따위 무기가 다 있어!’
이전에 유스웰에서 그들이 보여 주었던 헥스테크 건틀릿의 성능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파괴력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현재 헥스테크 건틀릿을 사용하는 다크 드워프들조차 놀라고 있었다.
‘하, 레온 님이 해 주신 초월 강화라는 것이 이렇게 엄청날 줄이야.’
‘크흑, 정말 레온 님은 대장장이의 신이시구나!’
미리 레온이 ‘대장장이 천신의 찬란한 황혼의 망치’에 붙어 있는 ‘초월 강화’ 스킬을 사용하여, 그들이 지닌 모든 헥스테크 건틀릿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던 것이었다.
[초월 강화]
신의 경지에 이른 대장장이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진 초월 강화는 무기에 존재하는 잠재력을 폭발시켜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초월 강화 시, 장비 아이템에 달린 기본 능력치를 큰 폭으로 상승시키고, 특수 효과를 부여합니다.
-잠재력을 보유하지 않은 무기에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그때 수하의 피로 물들어 모래가 굳은 것을 틈타 알파드가 빠져 나왔다.
모래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는 바닥을 뒹굴었을 때보다 더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크윽.”
‘이대로는 안 돼!’
순간 온몸에 퍼지는 치욕감에 신음성을 흘리던 그는 이내 이곳저곳에서 죽어 가고 있는 자신의 병사들을 보고는 정신을 붙잡았다.
“블랙 스웜 블레이드!”
촤아아아!
스르르릉!
그래도 암흑성국의 기사단 중 하나인 청익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이라는 것일까.
뽑아 들은 그의 검 위로 검게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선명하게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타앗!
파바바밧!
모래지옥을 번쩍 뛰어넘은 알파드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브룩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적의 지휘관을 베어 버리면서 아군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의도였다.
진득한 살의를 내뿜으며 알파드가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지만.
‘감사할 따름이구먼!’
브룩은 씨익, 하고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쓰레기 놈이 감히!’
그에 참을 수 있는 분노의 한계치를 넘어선 알파드가 이를 악물며, 자신이 지닌 가장 강력한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다.
“커스드 드라이브!”
콰아아아아!
슈아아아아!
칠흑 같은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검에서 방출되었다.
어림잡아도 2m는 넘을 것 같은 엄청난 크기에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브룩을 산산조각을 낼 기세로 쏟아 낸 참격이 맹렬하게 날아오고 있던 그때.
후아아아!
브룩의 머리 바로 위에 있던 성벽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곧이어 그것이 지면에 착지를 마치자,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리고 있었다.
‘……저놈은 또 뭐야?’
난데없이 나타난 또 다른 인물에 알파드가 얼굴을 구겼다.
브룩의 덩치에 두 배는 가뿐히 넘을 것 같은 거한이 별안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브룩이 의문의 거한을 향해 명령을 하달하였다.
“단단아, 쳐 죽여!”
그러자 ‘단단이’의 눈빛이 살기로 물들었다.
단단이 또한 호문클루스로 개조가 완료되어 있었던 것.
두려움도 없이 앞으로 돌진한 단단이가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오러 블레이드를 향해 들고 있던 거대한 철퇴를 휘둘렀다.
그아아아앙!
쿠아아앙!
한데 놀랍게도 그 철퇴에 알파드의 것보다 더욱 거대한 오러가 뭉쳐 있었다.
판테라 최초의 ‘오러 플레일’이었다.
쐐애액!
퍼어엉-!
콰아아앙-!
두 오러가 맞부딪치자, 흡사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겨우 모래지옥에서 빠져나와 숨을 돌리던 병사들이 마른침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쪽의 반응을 보면 어느 쪽이 승자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내, 내 커스드 드라이브가. 이건 말도 안 돼.’
뻣뻣하게 몸이 굳어 버린 알파드는 당혹감이 흘러넘치는 반면, 단단이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적. 약하다. 박살. 낸다.”
단단이의 가뿐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