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
316화
시간은 되돌아와 이틀 후.
교역 도시 하반의 현재.
뚫린 구멍에서 나온 남자가 내뱉은 생각지 못한 한마디 말에 대신관 카도몬은 너무 놀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해 보였다.
‘……교황님의 명령으로 왔다고?’
그의 입장에서는 라스푸틴은 클라리우에게 붙잡혀 지하뇌옥에 감금되어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다다다!
벌컥!
그러던 그때, 폭음에 놀란 신관들과 병사들이 문을 활짝 열었다.
“카도몬 님!”
“괘, 괜찮으십니까!”
“네놈들은 누구냐!”
그들은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는 바닥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가, 이내 수상한 인물들을 확인하자 제정신을 차리고 각자 얼른 자신의 무기를 들이밀었다.
그런 그들의 대처에 카도몬 또한 뒤늦게 머리가 맑아졌다.
‘넘어가선 안 돼. 허튼 수작이다! 분명히 알파드가 보낸 암살자들이 분명해!’
카도몬은 난처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브룩과 싱글벙글 웃고 있는 너클즈를 청익기사단이 보낸 적들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카도몬이 노기를 담아 크게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채챙!
처척!
신관들과 병사들이 당장이라도 창칼을 꽂아 넣을 기세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도 브룩은 어떠한 공격 태세도 갖추지 않았다.
스윽.
그저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투항하는 사람처럼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릴 뿐이었다.
그가 슬쩍 말을 꺼냈다.
“자, 자, 흥분들 좀 가라앉히시고. 못 믿으시겠다면 이것부터 확인하시죠.”
‘저건?’
들어 올린 브룩의 오른손에 정체불명의 서적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이어 카도몬이 고갯짓을 하자, 병사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큼성큼 브룩에게 다가가 오른손에 들린 서적을 집었다.
그러곤 그것을 곧바로 카도몬에게 건넸다.
‘……!’
이윽고 서적이 무엇인지 확인한 카도몬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책을 든 손이 경련이라도 난 것처럼 덜덜 떨려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다른 신관들과 병사들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데 그가 그렇게 놀랄 만도 했다.
이 서적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암흑성교의 ‘성서 진본’으로, 대대로 암흑성교의 교황에게만 물려지는 물건이었다.
‘아니야, 강제로 빼앗은 것일 수도 있어.’
그렇게 카도몬이 마지막으로 남은 의심을 버리지 못하던 그때.
브룩이 말했다.
“페이지를 넘겨 보시죠. 첫 페이지에 메모를 남겨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카도몬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성서 진본의 책장을 넘겼다.
슈아아아.
촤아아아!
진동음과 함께 검은 광채가 책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카도몬은 그것에 놀랄 겨를이 없었다.
‘흐흑, 교황 예하!’
정말로 첫 페이지에 라스푸틴의 필체로 적혀 있는, 그를 향한 메시지에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하반의 신관, 카도몬은 보시게. >
마신님의 형제여.
참변이 일어나고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이기에, 마신님과 그대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네.
다만 마신님께서 우리를 버리지는 않으신 것 같다네.
나는 진정한 마신님의 대리인인 ‘레온’ 님을 만나 목숨을 구원받았네.
그리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여 힘을 회복하기까지 했지.
레온 님은 마신님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영원불멸의 선택받은 존재이시네.
걱정하지 말게나. 이제 위대하신 레온 님의 힘으로 우리가 빼앗긴 모든 것들을 되찾을 날이 되었으니.
하반이 첫 시작이 될 것이네.
자, 교황으로서 명하노니 패악 무도한 황제 러셀과 그의 사갈 같은 수하 클라리우를 끌어내리기 위해 우리의 아버지인 레온 님께 충성을 바치도록 하게.
“크흑.”
성서에 적힌 메모를 모두 읽은 카도몬이 주르륵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다른 병사들과 신관들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연신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하고만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털썩.
카도몬이 바닥에 두 무릎을 꿇더니, 브룩에게 공손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교황님의 말씀은 곧 마신님의 명령과 동일하시나니. 마신님의 뜻을 받들어 저희 하반의 모든 이들은 레온 님을 따르겠나이다.”
이 메시지는 라스푸틴이 레온에게 주먹찜질과 전기 쇼크를 수차례 받아 가며, 피눈물로 적어 내려간 것이었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카도몬은 홀딱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털썩.
털썩.
“따르겠나이다!”
“따르겠나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다른 신관들과 병사들도 잇따라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다.
그 진풍경을 바라보며.
‘하. 유호, 이 자식의 계획은 정말 넘사벽이네.’
브룩은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 *
‘빌어먹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청익기사단의 단장, 알파드는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붉으락푸르락하는 그의 얼굴에 양쪽에 도열하여 있는 부하 기사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하나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여 침묵만이 감돌고 있던 그때.
쨍그랑!
결국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알파드가 술잔을 던져 깨뜨리며 정적이 깨지고 있었다.
“이잇! 떠들어 대던 말과 상황이 전혀 다르지 않느냐!”
이어 알파드가 전투지도 앞에 서 있는 부관에게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부관이 무언가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더듬으며 말을 꺼냈다.
“그, 그것이 절대로 이럴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분명히 파악한 바로는 지금쯤 군량미가 바닥을 쳤어야 하는데-.”
부관의 말을 듣자 더욱 화가 뻗치는지, 알파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시끄럽다! 네놈은 눈알이 똥구멍에 붙어 있는 모양이구나! 저 봐라, 대충 보아도 우리 병사들보다 때깔이 좋지 않으냐!”
그랬다. 부관의 예측대로라면 지금쯤 모든 식량과 보급이 소진되어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야 했는데.
이게 웬걸, 하반의 병사들은 쌩쌩한 것도 모자라 점점 더 체력이 강해져 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던 것이었다.
그들은 몰랐지만 부관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땅굴을 개통한 레온의 계획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브룩은 개통된 땅굴을 통하여 부족한 식량들을 포함해 갖가지 군수물자들을 끝없이 날라 주고 있었다.
드는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쏟아부어 버리라는 레온의 명령에, 하반 도시는 이전의 활기를 빠르게 되찾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바깥에서 지지부진한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청익기사단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알파드가 뿌득,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이를 갈았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멍청한 놈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더니. 흥, 웃기는 소리!’
알파드는 다혈질에 매우 호전적인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 전투에서 막무가내 식으로 전투를 벌이다 큰 피해를 입힌 까닭에, 여기서는 탐탁지 않지만 부관의 조언을 억지로 받아들인 것이었는데 이 순간 그 고삐가 풀려 버리고 말았다.
그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모든 병사들에게 알려라! 이제 더 이상의 농성은 없다.”
“……네? 그 말씀은?”
부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알파드가 충격적인 전략을 꺼내 들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각부터 전면전을 선포하겠다. 모든 병력을 쏟아부어 성문을 박살 내라!”
그로부터 잠시 후.
성곽을 에워싸고 있던 암흑성국의 대규모 병력들이 한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알파드의 명령에 따라 일점돌파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병사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략을 조금만 안다면, 하반과 같은 요새 도시에 이렇게 무모하게 정면 돌파하는 계획이 얼마나 개똥같은 짓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아군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었다.
‘후후, 좋아. 전쟁은 바로 이런 거지.’
하지만 병사들의 그런 불만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알파드는 늘어선 자신의 대군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아까 전 엉망진창으로 깨졌던 부관이 슬그머니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단장님, 전군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옹졸한 구석이 있는 알파드는 부관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복부에 힘을 꽉 주며 크게 총공격을 알리는 소리를 내질렀다.
“자, 전군 돌겨어허……?”
한데 무슨 이유에선가 그의 목소리가 힘 있게 울려 퍼지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염소의 울음소리처럼 내뱉어지고 말았다.
‘……뭐지?’
그의 눈앞에 전혀 생각지 않은 광경이 펼쳐진 탓이었다.
웅성웅성.
암흑성국의 병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시끄럽게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라? 저놈들 뭐야?”
“미친 거 아니야?”
“……성문이 열었다고?”
그들이 놀랄 만도 했다.
철옹성처럼 닫혀 있던 하반의 성문이 쿠웅, 하는 거대한 소음과 함께 활짝 내려왔던 것이다.
모두가 도무지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고 어리둥절해하기만 하던 그때.
알파드가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그럼 그렇지. 이놈들이 투항을 하려는구나.”
그는 성문을 연 행동이, 구름 떼처럼 모인 병력에 겁을 집어먹고 결국 백기를 든 것으로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전쟁은 위압감을 주면 끝인 거라고!’
알파드는 자신의 앞에 선 병사들에게 휘휘 젓는 손짓을 하며 말을 꺼냈다.
“끌끌, 길을 터라. 어디 사자의 말을 들어나 보자꾸나.”
부관이 위험하다며 극구 만류했지만, 그는 단칼에 뿌리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후방에 자리하고 있던 그가 최전방의 성문을 마주 보는 곳에 도착하였다.
“뭣들 하는 거냐! 얼른 튀어나와 바닥에 머리를 처박지 못할까!”
그러자 곧이어 열린 성문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으하하하.
하하하하.
알파드의 조롱에 뒤편에 서 있던 병사들 또한 깔깔거리며 비웃어 대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였다.
쐐애애애액!
타아앙!
웃음소리를 뚫고 어디선가 한줄기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어진 다음 순간.
“흐익!”
완전히 방심을 하고 있던 알파드가 갑자기 자신의 코앞으로 한 발의 마력탄이 날아드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신음성을 내뱉었다.
쿠다당탕!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피한 그가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었다.
“크억!”
털썩.
그리고 곧이어 알파드의 뒤에 서 있던 애꿎은 병사가 마력탄에 맞아 꿰뚫린 가슴팍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시끄럽던 웃음소리가 일순간 사라졌다.
“에계. 영감님, 진짜 명사수 맞아요?”
“어허, 원래 저놈을 맞히려고 한 것인 것을 모르는구먼.”
그러던 그때, 내려온 성문에서 두 남자가 티격태격하며 서로 말을 나누고 있었다.
방패를 슈트 모드로 장착하고 있는 브룩과 헥스테크 건틀릿의 총구에서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다크 드워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