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
313화
교황청 직속의 교역 도시 ‘하반’은 레온이 터널을 뚫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암흑성국의 남단의 도시 중 가장 풍요로운 도시였다.
성도 아마이몬으로 향하려는 수많은 장사꾼들과 광산에서 채굴된 보석들을 수수료로 가져가며 엄청난 폭리를 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레온의 터널이 생겨나며 그 모든 영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레온의 터널이 하반을 거쳐 갈 이유를 아예 없애 버리면서 교역 도시가 지닌 가치가 폭락한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수수료를 낮추는 등 후속 대처를 하려 했지만, 그동안 하반의 신관들이 벌였던 행동들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사람들은 발길을 끊고 레온의 터널을 이용하였다.
뿌린 것을 백배, 천배로 거두고 말았다.
결국 하반은 이전의 생기를 잃어버리고, 거대 신전만이 덜렁 남은 황량한 도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나마 하나 잘된 일이 있다면, 그렇게 쇠락한 일 때문에 암흑성국 전역에서 일어났던 ‘신관 학살’에서 가장 적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신관 학살이란 황제파가 교황파의 싸움에서 승리하자, 황제 ‘러셀’이 혹여나 일어날 반란에 대비해 기사들을 동원하여 전 지역에서 신관들을 대규모로 숙청한 것이었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최소한의 기사들만이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시에 남아 있던 신관들은 힘을 합쳐 기사들을 처치하였다.
그리고 성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황제는 격분하여 후속 병력을 보냈지만, 하반은 혹여나 황제파가 힘으로 교역 도시를 빼앗을까 요새처럼 만들어 놓았었기 때문에 여태껏 오랜 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수성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보유하고 있는 식량의 양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반은 자체적으로 농업 생산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창고에 비축된 식량만이 유일한 먹을거리였다.
한데 방어를 위해 성문을 걸어 잠근 탓에 식량을 얻어 낼 어떠한 방법도 없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황제가 보낸 청익기사단 단장 ‘알파드’는 병력으로 하반 시를 포위한 채 버티고 있었다.
잔혹한 결말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분명 오늘까지만 해도 말이었다.
* * *
하반의 신전.
하반의 신전을 이끌고 있는 대신관, ‘카도몬’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시름이 가득해 보였다.
‘……마신이시여, 이걸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제발 부족한 저에게 나아갈 길을 알려 주십시오.’
그의 기도 내용은 단 하나였다.
서서히 말라 죽어 가고 있는 이 도시와 신관들을 살려 낼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된 기도에도 마신은 어떠한 응답도 내려 주지 않았다.
똑똑.
심려가 깊어 가던 그때, 그의 방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오십시오.”
그러자 카도몬이 기도를 멈추고, 방문자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꽤나 야심한 시각이었기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그를 보필하는 부신관이었다.
예를 갖추는 부신관의 낯빛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후우, 무슨 일이십니까.”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카도몬이 말했다.
그러자 부신관이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다가,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크리올 님이 마신님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부신관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카도몬이 아, 하는 짧은 신음성을 흘렸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죽음을 맞이한 크리올은 하반의 모든 전투 신관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카도몬은 전투를 지휘하는 것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전투를 지휘하는 것은 그가 맡고 있었다.
하지만 저번 마지막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쓰러져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목숨을 잃고 만 것이었다.
가뜩이나 힘겨운 상황에서 치명적인 전력의 이탈이 아닐 수 없었다.
카도몬은 마치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를 않는구나.’
한데 그때, 부신관이 그런 그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꺼내었다.
“……신관들의 동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빠르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자신들을 이끌어 주던 지휘관이 죽었으니, 남은 신관들이 심적으로 혼란스러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알겠네. 걱정 마시고 그만 돌아가 보시게.”
부신관은 애써 괜찮은 척하는 카도몬에게 정중히 예를 갖춘 후 떠나갔다.
‘마신이시여!’
그러자 카도몬은 곧장 다시금 무릎을 꿇고 마신에게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상황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저희가 살아갈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제발 저희에게 작은 신호라도 내려 주십시오!”
그의 온몸에서 절실함과 절박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가 한 번 더 큰 소리로 소리를 내질렀다.
“제발 신호를!”
……한데 그때였다.
두두두두!
드그그그!
그가가가!
정말로 그의 기도에 마신이 응답이라도 한 것일까.
갑작스레 천둥벼락이 내리꽂히는 것과 같은 굉음이 공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자신이 신호를 달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으나, 별안간 알 수 없는 일이 생기자 카도몬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그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퍼어어엉-!
카도몬이 자리하고 있던 집무실의 바닥이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그와 함께 폭발로 인해 바닥에 깔려 있던 대리석들이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그에게 쏟아졌다.
“흐억!”
그에 카도몬이 신음성을 흘리며 재빨리 성법을 사용하였다.
지이이잉!
티팅!
팅!
곧이어 그의 몸 주위를 감싸는 칠흑의 방어막이 나타났고, 날카로운 대리석 파편들이 보호막에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뭐지 대체?’
겨우 제정신을 차린 카도몬이 사방을 뒤덮은 흙먼지에 콜록콜록 기침하며 폭발이 일어난 바닥 부근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러던 그때, 난데없이 분위기와 맞지 않는 쾌활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예, 도착했다! 헤헤, 아부지가 기뻐하시겠어!”
이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카도몬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있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해 보였다.
‘……두더지?’
그의 눈앞에 느닷없이 거대한 두더지가 모습을 드러내어 있었던 것이었다.
완벽히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일반적인 몬스터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제야 청익기사단이 땅굴을 뚫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은 카도몬이 급하게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슈와아아!
그의 한쪽 손에 검보랏빛의 마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치솟아 오르는 공포심을 힘겹게 참아 내며, 카도몬이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감히 들어왔느냐! 정체를 밝혀라, 알파드의 잡졸이냐!”
하나 그의 말에 대답을 한 것은 두더지가 아니었다.
“워워, 진정하시지요. 저희는 카도몬 님의 적이 아닙니다.”
뚜벅뚜벅.
두더지의 등 뒤에서 한 명의 남자가 투항을 하듯 두 손을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흙투성이인 남자의 등에는 장정만 한 크기의 커다란 방패가 매달려 있었다.
‘저자는 누구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였기에, 카도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체를 밝혀라!”
섣불리 의심을 거두지 않고 전투태세를 그대로 취한 채, 카도몬이 다시금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남자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그에게 꺼내기 시작하였다.
“저희는 라스푸틴 교황님의 명을 받고 카도몬 님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 * *
그로부터 이틀 전.
자신의 아이디어와 스킬들로 키메라와 엠브리오 호문클루스의 연구를 성공적으로 진행시키고 난 후, 레온은 곧장 지하 연구실을 빠져나와 있었다.
벽 내부를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투영환신 스킬을 사용하여, 레온은 빠르게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큰 만족감이 떠올라 있었다.
‘후후, 좋아. 내 생각대로만 진행되면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소환수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될 거야.’
그건 당연하게도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될 역대 최강의 소환수들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해도 자꾸만 소환수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지를 않아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순간 레온이 입맛을 다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쩝, 최대한 빨리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야겠어.’
그가 그런 속마음과 달리 연구실을 빠져나온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두 가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지하 연구실에서 가까운 비밀 공간에 숨겨져 있는 ‘마신의 대장장이’의 사도 아이템을 손에 넣는 것이었으며.
‘……도착했군.’
두 번째는 바로 이곳. 대신전 ‘지하뇌옥’에 수감되어 있는 한 존재를 만나는 일이었다.
으아아아!
끄아아아!
고통에 가득 찬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뇌옥에 수감된 이들이 지르는 비명이었다. 지하뇌옥은 간수들에 의해 잔혹한 고문이 서슴없이 행해지는 끔찍한 곳이었다.
‘어우, 이 자식들 눈빛 살벌한 거 보소.’
레온이 벽 너머에서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쏘아 내고 있는 간수들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곤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 올린 후,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레온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한 층, 한 층 더 내려갈수록 경비가 삼엄해졌지만, 레온은 조금의 의심도 사지 않고 성공적으로 잠입해 가고 있었다.
‘와, 이 칭호 진짜 대박인데?’
가장 최근에 획득한 첩자류 칭호인 ‘스파이 넘버, 제로제로세븐’이 지닌 강력한 효력 덕분이었다.
[스파이 넘버, 제로제로세븐]
스파이계의 최고의 요원만이 얻을 수 있다고 전해지는 칭호.
이 칭호를 장착하면 젓지 않고 흔든 마티니를 마시고 싶을 것만 같다.
-칭호 장착 시, 어떠한 NPC에게서도 선공을 받지 않음.
-은신 스킬 사용 시, 어떠한 탐지 스킬에도 감지되지 않음.
-적에게 공격을 가할 시, 효력이 사라짐.
(단, 적을 첫 공격으로 암살 성공할 시 효력은 그대로 유지.)
은신 스킬 사용 시, 어떠한 탐지 스킬에도 감지되지 않는다는 사기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레벨 때 사용했던 허수아비 검술의 상위 호환 버전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움직여도 전혀 들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레온은 최대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군!’
드디어 그의 목적지인 지하뇌옥 최심층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완전 무장한 수십 명의 간수들이 단 하나의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그 안에는 폐인 같은 모습의 한 남자가 두꺼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 순간.
‘라스푸틴, 드디어 만났구나.’
교황 라스푸틴을 발견한 레온의 눈이 먹잇감을 발견한 매처럼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