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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무한전직-312화 (312/332)

# 312

312화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경멸의 눈빛을 띄고 있는 클라리우에게 보로미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못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그 말로만 듣던…….’

순간적으로 클라리우와 그의 뒤에 서 있는 흑암기사단에게서 뿜어지는 위압감에 완전히 압도당했던 탓이었다.

투다다다!

그러던 그때, 벙어리가 되어 있는 보로미르의 뒤편에서 발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보르미르 님!”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간 그를 쫓아온 수하들이 속속들이 도착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헉!”

그들은 표정이 좋지 않은 보로미르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말을 꺼내다가, 이내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동료들의 시체들을 확인하고는 놀란 반응을 쏟아 내었다.

상황을 파악한 수하들이 웅성거리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돼.’

그러자 뒤늦게나마 제정신을 차린 보로미르가 자신의 창대를 꽉 움켜쥐었다.

흔들리고 있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보로미르가 사자후를 내뿜듯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모두 전투태세를 갖춰라!”

그 말이 끝난 순간, 확실히 흑풍회 길드의 본진이라는 것일까.

채챙! 챙!

눈빛이 살아난 수하들이 무기를 뽑아 들며 각자의 포메이션에 맞춰 흩어졌다.

그런 그들은 하나의 잘 벼려진 칼과 같은 모습이었다.

수없이 많은 혹독한 연습과 훈련을 거친 결과였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클라리우는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는 눈앞의 적들이 그저 우스울 따름인 것 같았다.

후화아아아!

화르르륵!

그때, 보로미르의 창날에서 불타오르던 화염이 더욱 거칠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합을 겨뤄 보지 않았지만, 상대의 강함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화력을 내고 있었다.

마치 불의 정령왕이 그의 창에 강림이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보로미르의 등 뒤에 서 있는 병사들이 경외감이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병사들의 떨어졌던 사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보로미르가 재빨리 속으로 생각을 마쳤다.

‘병력의 수는 우리가 더 우위에 있어. 몰아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왠지 모를 자그마한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계속 느껴지고 있었지만, 그는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흐앗!”

파밧!

타다닷!

그러곤 거친 기합 소리와 함께 클라리우를 향해 맹렬히 돌격해 가기 시작하였다.

“보로미르 님을 따르라!”

“적군을 쓰러뜨려라!”

곧이어 수하들도 그런 그를 뒤따랐다.

“여신의 가호!”

“파워 헤이스트!”

“전사의 결의!”

보로미르에게 수없이 많은 보조 마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로지 근접 격투계의 기사밖에 존재하지 않는 흑암기사단의 직업 구성에 비해, 흑풍회의 병사들은 밸런스가 상당히 잘 잡혀 있었다.

보로미르와 흑풍회 길드의 돌격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클라리우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가 이어 말했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오러 스피어군.”

처척!

클라리우가 자신의 등 뒤에 있던 묵빛 창을 꺼내 들었다.

그가 지닌 사도 아이템 중 하나인 ‘흑마후의 장창’이었다.

한데 그가 발을 뒤로 빼며 공격 자세를 취하자, 이상한 일이 이어졌다.

100인의 흑암기사단들이 모두 자신의 검을 회수한 후, 다들 한 발짝씩 클라리우의 뒤로 물러선 것이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부하들이 상관을 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달려들던 흑풍회의 병사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우우우웅!

지이잉!

‘뭐지, 이 불안감은…….’

하지만 그중 단 한 사람, 보로미르만이 낮은 진동을 발산하는 그의 창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퀘이크 스트라이크!”

“멸화의 참주!”

“쿼트로 나인 스피어!”

수백의 인원이 동시 쏟아 낸 최강의 스킬들의 투사체들과 풀 오러 블레이드들이 클라리우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웬만한 보스 몬스터라 할지라도 분명히 치명상을 입을 공격이었다.

촤아아악!

그러던 그때, 클라리루가 나지막하게 스킬명을 내뱉으며 창을 가로로 휘둘렀다.

“……천마창(天魔槍).”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일격이었지만, 그 후폭풍은 거대했다.

그와아아아앙!

쐐애애애애액!

묵빛의 창에서 검은 초승달의 모양을 띤 풀 오러 스피어가, 악마가 내는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콰가가가가!

쿠아아아아!

흑풍회가 쏟아 낸 수많은 스킬들과 검은 초승달이 격돌했다.

그리고 발생한 놀라운 광경에 흑풍회의 병사들과 보로미르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공격이 빨려 들어가?’

그랬다. 마치 포식자가 먹잇감을 집어삼키듯이 검은 초승달이 그들의 모든 스킬들을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킬을 먹어 치울수록 검은 초승달의 크기는 점점 더 거대해져 갔다.

엄청난 속도로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참격에, 일순간 보로미르의 등 뒤로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이, 이건 위험해!’

“크윽!”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긴급히 창을 회수하며 재빨리 바닥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러자 그는 전신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엉망진창의 모습이 되었다.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곧이어 직감을 따른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었다.

콰가가가가아!

콰아아앙!

“크아아아!”

“끄아아!”

땅이 흔들리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병사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긴급히 회피한 보로미르와 달리 상대가 하나라는 사실에 방심을 하고 있던 병사들은 클라리우의 공격에 직격당해 있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이 깊게 파여 있는 지면 안에 병사들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너무나 처참한 광경에 보로미르가 할 말을 잃었던 그때.

삐이!

삐이!

귓전에서 아까 전 들었던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 대고 있었다.

-길드원 ‘히칸’이 사망하였습니다.

-길드원 ‘기샤룬’이 사망하였습니다.

-길드원 ‘댄트’가 사망하였습니다.

-……중략……

보로미르를 제외한 모든 이의 사망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격이 달라.’

흙먼지로 엉망진창이 된 보로미르의 눈동자에는 전의가 완전히 상실되어 있었다.

그러던 그때, 클라리우가 절대자의 패기를 내뿜으며 그에게 말을 건네 왔다.

“자, 위대하신 마신님의 은총을 눈앞에서 목도한 소감이 어떤가. 여신의 개여.”

진득한 마기가 넘실거리는 창을 꼬나 쥔 채, 서서히 한 발짝씩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악마와 다름없었다.

‘……도, 도망가야 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보로미르가 속으로 생각했다.

흑풍회의 3인자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으아아!”

투다다!

보로미르는 자신의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다는 것도 잠시 잊은 채, 꼴사나운 소리를 내뱉으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어딜!”

엄청난 속도로 전장을 벗어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클라리우가 들고 있던 자신의 창을 던졌다.

쐐애애애액!

칠흑의 기운을 담고 있는 창은 파공성을 내며, 쏜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들었고.

푸욱!

곧이어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정확히 보로미르의 등가죽을 뚫고 깊숙이 박혔다.

털썩.

쿵.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보로미르의 몸이 힘없이 지면에 무너져 내렸다.

꼬치처럼 꿰인 그의 시체가 점차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클라리우가 웃음을 터뜨리며 커다랗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크하하, 마신님께 직접 이어받은 이 힘! 얼마나 아름답단 말인가! 나는 비로소 사도조차 뛰어 넘었다!”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참극의 현장에 광기에 가까운 클라리우의 웃음소리만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그때.

하늘의 상공에 등 뒤에 뼈로 된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아슬란 길드의 간부인 ‘네기’였다.

네기는 망원경처럼 생긴 아이템으로 보로미르와 클라리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싸움에 참전은 하지 않은 채, 정찰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클라리우가 자신들의 기사들을 이끌고 전장에서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제야 네기가 망원경을 눈에서 떼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그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역시 형님의 말대로 기사단장이 나타났군.”

그랬다. 그는 미리 레온에게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 중이었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 드디어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갈 차례군!’

곧이어 눈에 이채를 띤 네기가 모든 간부 길드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러했다.

-모든 길드원에게 알립니다. 드디어 기사단장이 전장에 나타났습니다. ‘플랜 A’를 가동해 주십시오.

* * *

흑암기사단의 단장, 클라리우가 흑풍회의 3인자 보로미르를 박살 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각종 커뮤니티에 퍼져 나갔다.

보로미르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가다가, 창에 꿰여 죽은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더 빨리 번져 갔다.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보여 준 클라리우의 강함에 유저들은 혀를 내둘렀다.

-모즈구스가 제일 강한 줄 알았더니……. 암흑성국에는 괴물만 있는 거임?

-엣헴, 이로써 마신 쪽에 승기가 넘어갔다. 이 말이야.

-팀 갈아타러 갑니다.

손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것 같던 중요 요충지, 헤니스를 얻지 못한 것은 매우 뼈아픈 타격이었다.

이제 드디어 암흑성국의 본토로 돌격하는가 싶었는데 그 길이 딱 막혀 버린 것이었다.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흑풍회의 모든 인원들은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더 큰 문제가 그들을 찾아왔다.

-흑풍회 연전연패!

-파괴적인 흑암기사단의 맹공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어.

클라리우가 이끌기 시작한 병력에 그동안 빼앗았던 암흑성국의 영토들을 다시금 빠르게 돌려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흑풍회의 이런 모습에 비웃음이 가득한 시선을 보이고 있었다.

-흑풍회는 샌드백 포지션임? 뭐 맨날 얻어맞기만 하냐.

-……지나가던 흑풍회 길드원인데. 윗님, 너무 뼈 때리지 마세요ㅠ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여신 측에 가담한 모든 유저들이 아슬란 길드를 찾았다.

하지만 아슬란 길드는 이런 상황임에도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레온이 없으니 아슬란의 간부들은 일을 안 하는 거냐고 마구잡이로 욕을 해 댔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은, 아슬란 길드의 간부들은 어느 누구보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 *

같은 시각, 대륙의 모처.

“아씨, 무슨 계획이 이래! 이거 언제까지 파야 하는 거야!”

……아슬란의 간부들은 다름 아닌 삽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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