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
307화
비좁은 숲길을 수많은 병력이 줄을 지어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닌 깃발에는 흑풍회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던 그때, 가장 선두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흑풍회의 간부 ‘라울’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부관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라울 님,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가 이렇게 혼자서 공격을 전개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혈질인 라울이 혹여라도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까 눈치를 계속 보고 있었다.
하지만 라울은 부관의 말이 지겹다는 듯한 태도로 대답을 건넸다.
“흥, 또 그 소리냐. 별것도 아닌 놈들한테 쫄아서 대치만 하고 있는 놈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니까.”
부관은 더 말을 이어 가려 했지만, 라울이 호랑이처럼 뜬 눈을 부라리자 더 이상을 말을 못 한 채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연합군의 모든 전력이 파악되기 전까지는 섣불리 전투를 벌이지 말고 방어만 하고 있으라는 레온의 명을 어기고 독단적인 행동을 벌이고 있었다.
라울이 그런 행동을 벌인 이유는 간단했다.
‘영지를 두 개나 먹었으면 만족을 해야지. 우리는 기다리게 해 놓고 지들이 또 좋은 보상이 떨어질 전투들을 선점하려는 것이 눈에 훤하다 훤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사심이 전혀 없는 레온의 명령을 제멋대로 곡해해서 들은 것이었다.
‘영상들 보니까 극적으로 연출하려고 노력을 꽤나 한 것 같던데. 흥, 그래 봐야 내 눈은 못 속이지.’
게다가 흑풍회 길드는 모즈구스와 벌였던 이전의 전투에 참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암흑성국이 지닌 힘에 대해 과소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본인들이 지닌 병력으로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후, 이렇게 전공(戰功)을 위해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다음 순간.
흑풍회 길드는 암흑성국을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쿠콰아아앙-!
“뭐, 뭐야!”
갑작스레 그들이 걷던 숲의 곳곳에서 엄청난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라울이 어리둥절해하고만 있던 그때.
“끄아아악!”
“크억!”
폭발에 휩쓸린 흑풍회의 병사들이 영문도 모른 채 비명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와중에.
촤아아악!
쐐애애액!
우거진 수풀 속에서 칼날들도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라울이 암습자들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검은 갑옷! 저들이 왜 여기에!’
그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암흑성국 최강의 기사단으로 일컫어지는 흑암기사단과 고위 신관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들의 병력보다 배는 더 많은 듯한 숫자가 잠복하여 있었다.
“후, 후퇴……!”
명확한 승패의 결과를 예측한 라울이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죽어 가고 있는 병사들에게 후퇴를 명령하려던 그 순간.
푸우욱!
“끄억!”
흑암기사 중 한 명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파고들어 라울의 가슴을 검으로 뚫어 버렸다.
실력 격차가 엄청났는지, 라울은 그대로 사망하여 버렸다.
그 뒤로 숲속의 녹음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흑풍회가 저지른 실수는 눈덩이가 굴러가듯 급속도로 커져 갔다.
전선 하나를 붕괴시킨 암흑성국은 노련하게 그 한 곳에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기사단과 신관들이 완벽히 조합된 암흑성국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흑풍회는 정신을 못 차리고 어어, 하는 찰나에 지니고 있던 수많은 중부의 영토들을 연속적으로 빼앗기고 말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중부의 왕국들과 연결되는 길목까지 빼앗기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로인해 암흑성국의 본토를 침공하려 했던 아슬란의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지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이 단 며칠 만에 이루어졌다는 것에, 유저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쏟아 내고 있었다.
-흑풍회 트롤 짓 실화?
-……와, X바. 적은 내부에 있다더니 몰라 뵀네.
-왜 지 혼자 꼬라박고 승천한 거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네?
-자, 엑스맨의 밤이 왔습니다. 숨어 있던 엑스맨은 고개를 들어 주세요.
아무도 예상을 못 한 흑풍회 사태가 일어나자, 연합군의 모든 이들이 이제는 ‘해결사’로 불리는 레온을 찾아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레온의 막사를 찾아간 이들은 텅 빈 방 안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 * *
“아니, 이 자식들은 왜 갑자기 또 트롤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웹진의 기사 글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던 레온이 황당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꺼내고 있었다.
[레온, 또다시 행방불명!]
[때 아닌 용사의 휴식기?]
[아슬란 길드의 부영주, 브룩. ‘나도 모른다.’고 못 박아.]
[아슬란 연합, 흑풍회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개.]
휴식을 취하러 갔다, 또 다른 히든 아이템을 얻으러 갔다, 여자 친구가 불렀다 등등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예상과는 달리, 레온은 그 누구도 생각지 않은 곳에 도착하여 있었다.
그의 눈앞에 마몬교의 대신전과 거대한 황성이 보이고 있었다.
순간 레온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꺼냈다.
“젠장,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복귀해야지 안 되겠네.”
그랬다. 레온은 바로 암흑성국의 수도인 ‘아마이몬’에 도착하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모든 일들을 뒷전으로 미뤄 두고 곧장 이곳에 온 까닭은, 사흘 전 그에게 도착한 클라리우의 연락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이틀 후, 우리는 교황이 있는 대신전을 습격할 예정이네. 거리 탓에 합류하지는 못하겠지만, 수집한 정보가 있으면 보내 주게.
다시금 사실을 떠올리자 레온의 낯빛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순간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후, 서로 반목이 심화될 건 예상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너무 급전개란 말이지.’
전날에 이루어진 교황 습격의 성공 여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동을 하고 있던 어젯밤, 시스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퀘스트 대상인 모즈구스의 사망, 라스푸틴의 실권으로 인해 ‘흑암 기사단에 스파이로 침투하라’ 퀘스트가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그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한 순간, 레온은 보상들이 날아갔다는 슬픔과 함께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하였다.
그건 바로.
‘모즈구스가 죽고 신전기사단이 죽기는 했지만. 교황의 힘도 만만치 않을 텐데. ……클라리우는 어떻게 하루 만에 제압을 끝낸 거지?’
이러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가 이중 스파이로 맹활약하며 정보를 수집한 결과, 그들 세력은 호각, 아니 조금은 신전 측이 우위에 있는 느낌도 있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이 한꺼번에 뒤집힌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때, 레온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클라리우가,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 새로운 힘을 손에 얻었다는 것 말이었다.
처척.
목적지에 다다른 레온이 걸음을 멈추었다.
음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대신전이 모습을 드러내어 있었다.
순간 레온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 직접 만나 보면 작은 단서라도 알 수 있겠지.”
* * *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리온 님.”
신전 앞에 서 있던 흑암기사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원래는 교황이 사용하던 처소였다.
레온은 고개를 끄덕인 후 기사를 돌려보냈다.
그러곤 문을 열기 전에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신전의 곳곳에 아직 지우지 못한 핏자국과 부서진 흔적들이 보이고 있었다.
‘완전히 박살을 냈구먼.’
레온이 전신의 긴장감을 고조시킨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이 사용하던 화려한 장식이 달린 의자에 클라리우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레온이 곧장 예를 갖추며 말을 꺼냈다.
“리온, 그동안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눈을 마주친 클라리우가 약간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호오, 리온인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군?”
그의 물음에 레온은 순간적으로 ‘네가 교황을 족쳤다는데 얼른 와 봐야지, 인마.’라고 대답할 뻔한 충동을 꾹 참았다.
그러곤 특유의 접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단장님께서 부르시는데 당연히 서둘러야지요.”
“후후, 그런가.”
자신의 말에 자그마한 미소를 짓는 클라리우의 반응을 보는 레온의 눈이 반짝였다.
여태껏 보아온 그는 아부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날카로운 칼 같았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최대의 정적이자, 숙적이라고 생각했던 교황 라스푸틴을 끌어내렸기 때문인 것 같았다.
‘상사가 기분이 좋은 날에는 이용해 먹기 쉽다는 명언이 있지.’
속마음을 숨기며 레온이 다시금 말을 내뱉었다.
“먼저 축하 인사를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눈엣가시 같던 라스푸틴 놈을 드디어 처치했군요.”
“지금 비밀 예배당에 만들어 놓은 감옥에 감금시켜 놓은 상태라네, 하하. 끝까지 발악을 하던 꼴이 어찌나 웃기던지 말이야.”
“그렇습니까.”
폭소를 터뜨리는 클라리우에게 레온이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아, 그리고 자네가 비밀 통로를 알아내 준 덕분에 놈들이 숨기고 있던 모든 연구 자료들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네. 그동안 수고했네.”
이어진 클라리우의 말에 레온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클라리우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레온은 신전을 습격하는 전투에는 먼 거리 때문에 참전하지 못하니 공적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던 비밀 예배당의 위치를 답신을 보내며 알려 주었던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목숨을 걸고 신전에 잠입해 정보를 찾는 데에 열중한 것이 성과를 보았습니다.”
순간 레온은 은근슬쩍 목숨을 걸었다는 수식어를 붙이며, 자신의 공로를 과대 포장 하였다.
클라리우가 현재 기분이 좋은 상태여서 그런지 그 효과는 상당히 뛰어났다.
그의 입에서 레온이 원하던 말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후후, 그대에게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인데. 혹시 원하는 것이 있는가?”
띠링.
띠링.
레온의 귓전에 경쾌한 효과음이 잇따라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퀘스트 ‘믿기 시작하는 순간 속기 시작하는 것’을 성공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클라리우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클라리우가 당신을 ‘심복’으로 생각합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기사단 명령서’를 획득합니다.
-조건을 만족하여 히든 칭호 ‘스파이 넘버, 제로제로세븐’을 획득합니다.
-(……중략……)
메시지의 내용을 빠르게 훑고 난 레온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클라리우에게 한마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흐음, 원하던 직책이 한 가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으응? 부담 갖지 말고 말을 해 보게.”
클라리우가 독이 든 줄도 모르고 덥석 집어삼켰다.
그에 레온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저를 지하 예배당의 보안 책임자로 삼아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