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300화
모즈구스와의 전투를 바라보던 수많은 아슬란 연합군 병사들의 얼굴들에 허망함이 떠올랐다.
그들이 여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최악의 사태였다.
레온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던 다섯 명의 간부들이 한꺼번에 리타이어된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자신의 산성 브레스에 시체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린 적들을 보며 모즈구스가 웃음을 토해 내었다.
“크하하하! 마몬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교도들은 이런 꼴을 당하는 겁니다!”
우아아아!
그의 말이 끝나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페가수스의 병사들은 축제가 난 것과 같은 분위기가 펼쳐졌고.
가뜩이나 힘들어하던 아슬란 연합군의 사기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우리 뒤에는 촉수 신관이 있다! 다 죽여라!”
“호우호우!”
“마신님이 최고시다!”
페가수스 측의 병사들이 신이 난 상태로 아슬란 연합의 병사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후방 지역마저 다른 전장들처럼 엉망진창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마신의 힘이 이렇게까지 강력할 줄이야…….’
그런 혼란한 상황에서 모즈구스의 가공할 위력에 경악한 노마룬은 머릿속으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전하,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이대로 두었다가는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왕국의 백성들이 받을 것 같습니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전투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사로서 주인의 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문제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마신의 괴물에 의해 죽어 나가는 병사들을 바라보는 그의 주먹이 꽉 움켜지고 있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촤아아아아-!
파아아아아!
“읏!”
갑작스레 폭발하듯 사방에 터져나온 순백의 빛줄기에 노마룬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눈을 가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재빨리 제정신을 차리고 빛을 뿜어내고 있는 근원지를 확인했다.
‘저, 저건!’
그리고 그는 눈앞에 펼쳐진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에 그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말았다.
“……이런 꼴을 당하는 겁니다!”
눈앞에서 모즈구스가 시끄럽게 지껄이는 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레온은 눈앞에 떠오른 동료들이 죽었다는 시스템 메시지만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한데 그의 표정은 곁에 선 다른 병사들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레온의 얼굴에는 절망이 아닌 원인 모를 자신감이 떠올라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레온이 이채가 떠올라 있는 두 눈을 반짝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좋았어! 이로써 판은 다 깔렸다!’
스윽.
그러곤 조용히 지원군들을 이끄는 각 왕국들의 지휘관들을 살폈다.
예상대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그들은 아까 전과는 전혀 다른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좀 상황이 와닿나 보네, 망할 자식들.’
그것을 바라보며 레온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입니다!”
한데 그때, 마지막 남은 레온을 향해 모즈구스의 촉수와 날카로운 다리가 날아들었다.
쒸이이익!
촤아악!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창날과 같은 촉수들은 엄청난 속도로 레온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아아!”
“안 됩니다, 레온 님!”
간부들을 모두 잃은 아슬란의 병사들은 레온마저 같은 결과가 펼쳐질까 안타까움에 신음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윽고 산성 액이 뚝뚝 떨어지는 쇠꼬챙이 같은 촉수들이 레온의 코앞까지 직면한 그때.
레온이 조그맣게 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그 순간.
촤아아아아-!
파아아아아!
노마룬과 전장의 수많은 병사들이 보았던 순백의 빛줄기가 레온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장에 있는 모든 아슬란 연합군과 페가수스의 모든 병사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그 빛줄기는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크아아아!”
그런데 그와 동시에 느닷없이 모즈구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이이익!
화르르륵!
레온을 꿰뚫으려 하던 촉수들이 빛줄기에 가로막혀 매캐한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모즈구스가 타오르는 자신의 촉수들을 연신 땅바닥에 지지며 불을 끄던 그때.
파아아앗!
촤아아앗!
솟구친 순백의 빛무리가 다섯 갈래로 분열되더니, 곧이어 다섯 개의 빛기둥으로 변화되었다.
하늘까지 이어져 있는 것과 같은 빛기둥들에서는 왠지 모를 고결함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던 그때.
파아아앗-!
화아아!
빛무리 속에서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존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어어? 저건?”
“마, 말도 안 돼!”
‘왜 저것이 여기에!’
양측의 병사들을 물론이고 모즈구스마저 경악한 반응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허공에는, 월계관을 쓴 채 황홀한 오라를 발산하고 있는 천신 나이샤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나이샤는 자애로운 미소를 띤 채, 다섯 줄기의 빛기둥에 자신의 손을 뻗기 시작했다.
“오오!”
“기, 기적이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슬란 길드의 ‘브룩’이 부활하였습니다.
-아슬란 길드의 ‘유우’가 부활하였습니다.
-(……중략……)
빛기둥의 끝에 맞닿아 있는 지면에서 분명히 죽었었던 다섯 명의 간부들이 온전한 상태로 부활을 하였던 것이었다.
‘다중 부활이라고? 그딴 말도 안 되는 스킬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아직 회복이 덜 된 몸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리로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랬다. 레온은 바로 일전에 여신 퀘스트를 해결하고 얻었었던 ‘새크리파이스’ 스킬을 사용하였던 것이었다.
[새크리파이스]
사랑의 천신 나이샤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쳐,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사망한 동료들을 부활시킵니다.
(최대 5인에게 시전 가능.)
-스킬의 대상이 되는 유저는 사망한 지 10분 이내여야 합니다.
-회생한 유저는 사망한 지점에서 본래 체력과 마력의 100% 상태로 부활합니다.
-스킬을 사용한 당사자는 스킬이 완료되면, 즉시 사망 상태가 됩니다.
(레벨 다운의 사망 페널티는 적용받지 않습니다.)
(재접속 시간 지연 페널티는 적용받습니다.)
‘진짜로 되살아났잖아?’
‘대박이다, 오빠!’
‘크으, 그저 빛이십니다, 형님.’
브룩을 포함해 되살아난 다섯 명의 간부들도 이 상황이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모두 포기하지 말고 높이 검을 들어라! 레온의 고결한 희생이 여신님조차 감동시켰다!”
브룩이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준비했던 멘트를 크게 내뱉었다.
우아아아-!
그러자 곧이어 전장이 떠나갈 것 같은 병사들의 거친 함성이 쏟아졌다.
왕국의 지원군들마저 뭉클한 것이 있었는지, 그들조차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흥! 되살아나 보았자 잔챙이일 뿐!”
그 모습을 확인한 모즈구스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꺼냈다.
한데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간부들이 되살아났다고 한들, 그들을 다 합쳐도 레온 한 사람의 전력보다 약했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선택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촤아아아-!
슈아아앙!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 듯했다.
이번에는 또 다른 폭발음과 함께 검푸른 빛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주인공은 레온의 근처에서 스피릿츄얼 키메라와 전투를 치르고 있던 호문클루스 포바였다.
슈아아!
파아아앗!
검푸른 빛줄기가 하나로 뭉치더니 유성처럼 한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로 레온이 새크리파이스 스킬을 사용하던 자리였다.
그 순간, 사망 상태였던 레온의 눈앞에 본인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메시지 몇 줄이 연이어 떠오르고 있었다.
-호문클루스 ‘포바’가 소유주 ‘레온’의 죽음을 인식했습니다.
-호문클루스, ‘포바’가 안식 상태에 돌입합니다.
-‘생명전이’ 스킬이 적용됩니다.
‘됐어!’
순간 레온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레온의 예상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전개가 되고 있었다.
[생명전이(패시브)]
-모든 호문클루스는 5M 이내에 있는 소유주가 사망했을 때, 자동으로 ‘안식’ 상태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15초 후,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대가로 사망한 소유주를 온전한 상태로 부활시킵니다.
(생명전이는 24시간당 1회에 한합니다.)
(생명전이 스킬은 연속된 중복 사용이 불가합니다.)
생명전이는 주인이 죽음을 맞이할 시, 자동으로 시전되는 호문클루스들만이 지닌 고유 스킬이었다.
그 효과란 바로 자기 희생을 통해 주인을 원 상태로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레온은 새크리파이스 스킬을 얻자마자, 생명전이 스킬과 연동시킬 수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 모든 계획을 꾸몄던 것이다.
화아아아-!
파아앗-!
검푸른 빛이 벚꽃처럼 흩어지고 난 후.
처척!
그 자리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레온이 너무나 당당한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자 종전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병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온 님이다!”
“여신님의 기적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지원군들도 영웅의 재림을 반기고 있었다.
레온까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되살아나자, 반대로 적군은 상황을 믿지 못하고 두 눈을 끔뻑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 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이!”
모즈구스마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레온이 피식, 하고 비웃음을 날리며 마지막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좋아, 이제 라스트 씬을 찍어 볼까!’
처억!
그러던 그때, 레온이 비장한 표정으로 하늘 높이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모두에게 들릴 커다란 목소리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바로.
“모든 병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내가 바로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다!”
……자신이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라는 것이었다.
레온의 이 파격 선언은 아군이고 적군이고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할 말을 잃고 경악을 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물론 레온의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NPC들이 믿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레온은 그동안에 쳤던 수많은 사기를 통해 판테라가 유저의 말과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자, 와라!’
레온은 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한 채, 곧이어 몰려올 NPC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이어.
띠링!
띠링!
띠링!
레온의 귓전에 경쾌한 효과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핀 왕국의 지원군 전원이 당신을 ‘여신의 용사’로 인식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명령을 모든 것보다 우선시합니다.
-네크로폴리스의 지원군 전원이 당신을 ‘여신의 용사’로 인식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명령을 모든 것보다 우선시합니다.
-(……중략……)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마즐란의 기사들이여! 용사님을 호위하라!”
“궁정 마법사들이여! 선택받은 자를 지켜라!”
“용사님을 따르라!”
마즐란 왕국의 기사단장, 노마룬의 명령을 시작으로 모든 왕국 지원군의 지휘관들이 레온을 향해 자신들의 병력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레온의 사기극은 대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