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299화
후방 지역에서는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전방과는 달리 약간의 여유마저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채우고 있는 병사들의 대부분은 네기가 이끄는 소수의 지원 마법을 담당하는 샤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레온이 데리고 온 지원군 NPC들이었다.
콰아아앙-!
끄아아아!
전방에서 쩌렁쩌렁한 폭음과 함께 아슬란 연합군 측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즐란 왕국의 기사단장 노마룬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 상황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흠, 역시 전세가 많이 기운 것 같군.’
당연하게도 승기를 잡고 있는 쪽은 자신들 측이 아닌 암흑성국 쪽이었다.
생각지 않았던 몬스터 전차 부대의 등장으로 어떻게 역전을 하는가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지는 못한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노마룬이 굳은 얼굴로 허리춤에 매어진 자신의 검을 어루만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돕고 싶지만…….’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그 검을 뽑아 들지 못했다.
자신의 주인이 이 전장에 자신을 보내며 당부하고 또 당부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계속하여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일세. 전장에 도착하거든 절대로 싸우지 말게나.’
‘……송구합니다만 감히 전하의 의중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자신의 세력을 잃기 싫은 이계인의 호들갑일 뿐. 막상 가 보면 분명히 과거의 기록만큼 마신의 세력이 강대하지는 않을걸세. 레온이라는 자의 목적은 자신의 세력이 피해가 막심하니 우리보고 대신 싸워 달라는 것이란 말이지.’
‘……그렇습니까?’
‘분명하네. 그래서 싸우지 말라는 것일세. 괜한 피해를 입었다가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왕국들에게 위협이나 받을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러니 도착하거든 후방에서 최대한 우리 군의 병력 보존에 힘쓰다가 돌아오도록 하시게.’
노마룬은 주인의 말에 쉽사리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도착하고 보니 다른 왕국의 지원군들 또한 그와 비슷한 명령들을 받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후방 지역에서 싸우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왕국 지원군들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확실히 패배하겠어.’
그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투두두두!
취이이익!
‘으응?’
노마룬의 귓전에 어디선가 너무나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꾸만 가까워 오는 그 원인불명의 소음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건 대체!’
그리고 그 실체를 확인한 노마룬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장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너무나 끔찍한 형상을 지닌 괴물이 등장하여 있었다.
게다가 그 괴물은 엄청난 속도로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뒤늦게 그 모습을 확인한 지원군 병사들의 놀란 반응도 이어졌다.
“히익!”
“뭐, 뭐야 저건!”
“괴, 괴물이다!”
병사들의 사색이 되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안전한 후방에서 마음 편히 있었던 터라, 더욱 놀라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이곳이 공격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리라.
노마룬은 빠르게 그런 병사들을 진정시켜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저 모습은!’
여신교를 믿고 있는 그는 모즈구스의 끔찍한 외형을 보고는 과거의 마신전쟁에서 수많은 영웅들을 죽였던 최악의 비술이 발휘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신의 힘을 이어받은 용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감히 처치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던 마신의 세례를 받은 괴물이 전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 순간, 수많은 벌레 다리를 꿈틀거리며 이동하던 모즈구스가 병사들의 코앞까지 도착을 하였다.
그러곤 폭소를 터뜨리며 말을 내뱉고 있었다.
“크하하하! 더러운 이교도들의 피로 목을 축이겠군요!”
촤아아악!
쐐애애액!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등 위에서 꿈틀거리는 수많은 촉수들을 창날처럼 병사들에게 쏟아 내었다.
치이이익!
취이익!
병사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어 촉수들을 막아 내려 했지만.
“끄아아아!”
“사, 살려 줘!”
극한의 산성을 지니고 있는 촉수들은 그런 무기들뿐 아니라, 병사들의 살까지 모두 녹여 버리고 있었다.
맞서는 병사들이 족족 핏물 신세가 되어 바닥에 고여 버리자, 후방 진영의 동요가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이잇! 물러서지 마라! 얼른 공격해!”
“방어에 치중하면서 약점을 파악해! 섣불리 공격하지 마라!”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왕국 지원군의 특성상, 지휘권이 하나로 잡혀져 있지 않아 명령이 중구난방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모두 뒤로 빠져!”
레온과 브룩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화아아악!
촤르르르륵!
레온의 검날을 푸른 불꽃이 감싸며 맹렬히 타오르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검 위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풀 오러 블레이드와 연금술 오의인 인피니티 이그나이트를 하나로 합친 결과였다.
파바바밧!
타다닷!
그 상태로 진각을 밟으며 허공으로 뛰어오른 레온이 병사들을 장난감처럼 짓밟고 있는 모즈구스에게 두 스킬을 합쳐 만들어 낸 새로운 스킬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그나이트 크로스!”
레온의 말이 끝나자 검에서 타오르던 푸른 불기둥이 한 줄기 칼날의 투사체로 바뀌며 모즈구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콰아앙!
파아아아!
모즈구스에게 정통으로 직격한 푸른 불꽃은 순식간에 그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모즈구스의 살갗이 타들어 가며 역한 냄새가 주위에 풍겨나기 시작했다.
“흥! 이까짓 불꽃 따위!”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그나이트 크로스의 불꽃은 모즈구스가 몸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음험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하자 금세 잦아들기 시작하였다.
회심의 일격이 허무하게 파훼되자 레온 또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목도한 지원군 병사들의 얼굴들에 절망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또한 화면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 또한 뜨거운 반응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아니, 레온 저거 급트롤하네. 후방에다가 모즈구스를 처박으면 어쩌자는 말?
-사망 플래그 제대로 섰죠?
-에이, 트롤은 아니지, 저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지금 그나마 여유가 있는 전장이 후방밖에 더 있음?
-맞는 말임. 다른 데는 여유가 없으니 어떻게든 지원군 이용해야지. 저놈들 계속 시청자 모드로 암것도 안 해서 스태미너 꽉 차 있을 듯.
채팅 창의 여론은 점점 후방에 모즈구스를 데리고 온 것은 레온의 실책이라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현재 레온이 지닌 가장 큰 힘이라고 여겨지는 소환수들인 본 드래곤과 바포메트는 스피릿츄얼 키메라들과 싸우느라 레온에게 합류를 할 수가 없는 상황.
그렇기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시청자들은 레온이 모즈구스를 어떻게 쓰러뜨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를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망적인 결말을 떠올리는 모든 이들과 달리 레온은 모즈구스의 촉수를 회피하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아, 이쯤에서 시작해 볼까!’
생각을 결정한 레온이 미리 세운 플랜의 조연들에게 귓속말을 빠르게 전달했다.
그러자 이어진 다음 순간.
전장에 새로운 전개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무언가를 확인한 시청자들이 채팅을 빠르게 올리기 시작했다.
-어, 어? 뭐지?
-쟤네들이 왜 다 이리로 와?
-으익? 됐고, 일단 모즈구스만 잡자인가?
-……간부들 총출동?
그랬다. 각기 다른 전장들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던 세토와 네기 그리고 유우와 리안이 어느새 후방으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파바밧!
촤아아!
브룩을 포함한 간부 5인은 도착하자마자 산개하며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그러면서 짧은 순간, 레온과 간부들의 시선이 교차하였다.
한데 그 와중에 레온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눈동자에 무언가 떨떠름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간부들은 속으로 레온의 계획에 명확한 확신이 들지를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는 속으로 ‘……이거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동일한 생각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간부들 모두는 레온 하나만을 믿고 곧장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다섯의 간부들이 일시에 자신들의 최강의 공격을 모즈구스에게 쏟아 내었다.
“흰 용이여, 절망을 안겨 주어라! 뉴트론 블래스트!”
“흐앗! 형님을 위하여! 원한 교향곡!”
“공격해, 칠흑의 마법사! 다크 홀!”
“실드 오브 가디스!”
“선더볼트 플뢰레!”
지지지지-!
콰아아아-!
저마다 엄청난 위력을 담고 있는 스킬들의 투사체들과 무기들이 모즈구스에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어느새 아슬란의 간부들은 하나하나의 실력이 전체 상위 랭커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을 수준까지 치솟아 올라와 있었다.
계속된 대규모 전쟁으로 인한 레벨 폭등과 레온의 막대한 지원 덕택이었다.
슈아아아앙!
투콰아아앙-!
얼마나 막대한 파괴력이 모여 있었는지, 공격들이 모즈구스에게 도달하자 폭발이 생겨나며 귀가 먹먹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지원군 병사들은 시야를 가리는 먼지구름 속을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간절하게 지켜보았다.
‘제발, 제발 죽여 줘!’
‘우리보고 저런 괴물을 어떻게 죽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흐흐, 이것이 끝입니까. 벌레들이 발악하는 꼴은 우습기 짝이 없군요.”
먼지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경미한 타격만을 입은 멀쩡한 상태의 모즈구스였다.
그때 모즈구스가 끔찍한 목소리로 간부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제 그만 죽어 주시죠!”
촤아아악!
슈아아아!
그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촉수들이 뭉치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다섯 개의 거대 촉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쩌어어억!
우우우웅!
“애시드 브레스!”
그러곤 그 촉수들은 입을 벌리며 안에서 초록빛의 산성 브레스를 아슬란의 간부들에게 뿜어내었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에 그들은 어떠한 방어 태세도 취하지 못하고, 그대로 독기에 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며 시청자들은 안타까운 심정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이게 뭐죠?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아, 망했어요! 제대로 망했어요!
-……R.I.P 아슬란.
그들의 반응은 당연스러웠다.
애시드 브레스가 뿜어지고 난 후.
아슬란 연합 측에 최악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아슬란 길드의 브룩이 사망하였습니다.
-아슬란 길드의 유우가 사망하였습니다.
-(……중략……)
모즈구스의 애시드 브레스에 정통으로 적중당한 간부들 다섯이 대미지를 이겨 내지 못하고 모조리 전멸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