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
#293화
레온이 도착하고 나서 몇 시간 후.
투다다다.
멀지 않은 전장에서는 두 세력 간의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슬란 연합군 측이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을 페가수스의 병사들이 뒤쫓고 있는 형국이었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허둥지둥 도망을 치고 있는 적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페가수스의 마신병들이 서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어휴, 며칠 동안 뒤통수와 엉덩이만 보고 있으니까 심심해 죽겠네.”
“낄낄, 얼른 또 잡아서 전공 점수나 올려 보자고!”
“아니, 뭐 저딴 녀석들에 그동안 발리고 있었던 거야. 이해가 안 가네.”
옆에서 여태껏 아슬란 연합과 싸워 온 다른 병사들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새롭게 합류한 병사들은 서슴없이 말을 내뱉고 있었다.
마신 퀘스트를 통해 직업이 진화한 이들은 갑작스럽게 얻은 힘에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그때, 후방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며 이동을 하고 있던 리로이가 곁에 있던 모즈구스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모즈구스 님, 너무 진격 속도가 빠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만 해도 많은 성들을 함락시켰으니. 이제 잠시 멈춰서 여유를 가지고 정비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모즈구스는 잠깐의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고, 또 진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병사들 전체의 스태미너 수치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리로이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모즈구스는 제안을 꺼낸 리로이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허어, 지금 마신님의 은총으로 이렇게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거늘. 어째서 쉬자는 말을 꺼내시는 거요?”
“……계속해서 이기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와중에 지친 몸을 회복시켜야 되는 타이밍이 왔다는 겁니다.”
그러나 리로이의 대답에도 모즈구스의 못마땅하다는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도께서는 마몬님께 조금이라도 빨리 북부 대륙의 땅을 주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갑자기 마몬의 이름을 꺼내자 당황한 리로이가 수습하려 곧바로 말을 건넸지만.
“아아, 됐습니다. 이곳의 총지휘관은 바로 저니 제 말을 따르도록 하세요.”
모즈구스는 리로이가 반론을 펼치려는 것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부하를 다루는 듯한 완전한 하대였다.
그에 곁에 있던 간부들이 힐끗힐끗 리로이의 안색을 살폈다.
자존심 강한 그들의 길드장이 느꼈을 치욕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모욕감에 리로이의 눈빛에 살의가 가득 차올라 있었다.
“……네. 그럼 그렇게 따르도록 하지요.”
리로이는 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랐지만, 애써 화를 꾹 참아내고 대답을 마쳤다.
그러곤 말머리를 돌려 자신을 따르는 간부들과 함께 전방으로 이동했다.
부들부들.
그러는 와중에 분노에 가득 찬 리로이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젠장, 개 같은 놈이 감히.’
그가 뿌득 소리가 나게 이를 갈았다.
사실 그가 모즈구스에게 도움을 청할지 말지 계속해서 끝까지 고민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모즈구스가 도착하는 순간 총 지휘권을 빼앗길 것이 자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지휘권을 빼앗긴 결과.
그는 모즈구스에게 명령을 하달받는 부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록 결과는 잘 나오고 있었음에도, 씁쓸한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 리로이가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속으로 한 가지 다짐을 하였다.
‘마신을 소환하고 내가 암흑성국의 권력만 잡게 되면, 그 날 바로 너부터 찢어발겨 주마.’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모즈구스가 이렇듯 진격 속도를 빠르게 앞당기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시선에서 리로이가 사라지자, 모즈구스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흥, 가뜩이나 시간이 없는데. 말 같지도 않은 쉴 시간을 달라고 하다니.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가 이렇듯 시간에 쫓기는 것은 다름 아닌 황제파와 흑암기사단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출정은 교황 라스푸틴의 독단적인 결단이었다.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까닭에 황제파와 기사단이 거센 반발을 쏟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미 도착한 전투 신관들 뒤에 와야 했을 추가 병력의 지원이 늦어지고 있었으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현재의 병력도 다시금 빼야 할 수 있었다.
‘북부 대륙만 성공적으로 점령하면 우리 신관의 세력이 암흑성국을 확실히 지배할 명분이 생긴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접수해야 해!’
그렇기에 모즈구스가 최대한 빨리 북부 대륙을 점령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모즈구스는 이런 사실을 리로이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이후로도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도 리로이는 이용하고 버릴 장기짝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둘 사이에 친밀도가 높았다면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었을 테지만, 리로이는 모즈구스의 친밀도를 상승시키는 데에 노력을 하지 않았었다.
한데 그때였다.
슈아아아!
콰아앙-!
갑작스레 공간에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졌다.
“끄어어!”
“크아아악!”
그리고 동시에 페가수스 병사들이 내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 또한 들려왔다.
곧이어 폭음을 만들어 낸 주인공을 확인한 리로이의 눈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크롸아아아아아!
허공에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본 드래곤이 위풍당당하게 등장하여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 여태껏 전장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던 적군의 수장이 등장을 하였다는 의미이리라.
‘드디어 돌아왔군!’
“가자!”
리로이가 자신과 간부들의 이동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었다.
* * *
영상으로만 보았던 본 드래곤이 눈앞에 나타나자, 페가수스의 모든 병사들은 제자리에 멈추어 있었다.
그러나 본 드래곤이 내뿜는 위용에 압도된 그들은 몇 번이고 각자의 무기를 고쳐 잡고 있을 뿐, 달려들지를 못하고 있었다.
푸른 불꽃처럼 일렁이는 본 드래곤의 눈을 확인한 그들은 그저 침만 꿀꺽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 반복되자, 뒤편에서 지켜보던 지휘관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저딴 뼈만 남은 도마뱀에 쫄지 마라! 마신의 힘을 믿어라!”
마신의 힘.
그 말에 겁을 집어먹었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레어 클래스로 진화했잖아. 저딴 소환수 하나에게 질 리가 없지!’
‘내 유니크 직업의 힘을 보여 주마!’
그러곤 곧이어 각각 레어와 유니크 등급으로 진화한 병사들이 한꺼번에 포효를 쏟아 내었다.
“죽여 주마!”
“흐아아앗!”
투다다다!
파바밧!
수십, 수백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본 드래곤에 달려들었다.
“아케인 에임!”
“샤이닝 버스터!”
“레이징 블로우!”
각자가 얻은 히든 직업의 힘이 본 드래곤에게 동시에 쏟아지고 있었다.
수많은 스킬 투사체들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지만, 본 드래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레온이 미리 내려 놓았던 공격 명령을 실행에 옮길 뿐이었다.
우우우우웅!
슈아아아앙!
쩍 벌린 본 드래곤의 입안에서 푸른 빛무리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귀가 먹먹해지는 진동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면을 박차고 검을 휘두르기 위해 공중에 떠올라 있는 병사들의 낯빛이 까맣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크와아아아아!
본 드래곤의 포효와 함께 가공할 냉기를 품고 있는 프로즌 브레스가 발포되었다.
콰아아아아!
쩌저저저적!
일직선으로 뿜어진 얼음의 숨결은 페가수스의 병사들을 그대로 집어 삼켰다.
내뿜은 브레스 한 번에 그들이 발붙이고 있던 지형이 설원으로 바뀌어 있었으며, 병사들은 얼음 기둥으로 화하여 있었다.
가까스로 브레스를 피한 병사들이 하드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는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고는 하얗게 질린 채 신음성을 토해 냈다.
“으으, 으어어.”
“괴, 괴물이야. 저건.”
패닉에 빠진 그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본 드래곤의 제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멍청하면 용감하다더니. 고맙게 알아서 죽어 주네.’
그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며 레온이 피식, 하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흑마조의 딱총나무 완드를 마치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경쾌하게 움직이며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물론 리로이와 모즈구스에게 들키면 안 되기 때문에 외형은 연금술 스킬을 통해 변경시켜 놓은 상태였다.
‘이 완드, 진짜 개꿀이야!’
레온은 새롭게 얻은 사도 전용 아이템에 큰 만족을 하고 있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한 스펙이었다.
-본인이 소환한 모든 소환수의 자체 능력치 30% 상승
-본인이 소환한 모든 소환수의 소환 지속 시간 50% 추가 지속
보유하고 있는 소환수가 무려 30퍼센트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가뜩이나 강력한 본 드래곤이 홀로 무쌍을 찍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자, 그럼 소환수 파티를 시작해 볼까.’
슈우우웅!
지이이잉!
레온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소환수들을 모조리 꺼내기 시작하였다.
-따닥, 따닥.
-꺄호, 다 죽었다낭!
지면에 수많은 소환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 안에서 튀어나온 스켈레톤과 기어 골렘 그리고 호문클루스가 나타났다.
“레온 님을 도와라!”
“적들을 물리치자!”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등장한 아슬란 연합의 병사들로 인해 전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레온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데 그때, 무언가를 확인한 레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쯧, 자식들. 역시 하는 둥 마는 둥 하는구먼.’
레온의 눈에 중부 왕국들에게서 받아온 지원군들이 담기고 있었다.
그들은 한눈에 보아도 티가 날 만큼 설렁설렁 싸우고 있었다.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라는 듯이 전투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옆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아슬란 연합 측의 병사들이 답답해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도움은커녕 짐짝처럼 거슬리기만 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지켜보는 레온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러곤 곧이어 순수한 악의를 담아 속으로 한 가지를 다짐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저지른 행동은 나중에 열 배로 받아 내 주마.’
그러던 그때였다.
‘으응?’
촤아아!
콰앙!
갑작스레 들려오는 파공성과 함께 레온에게 스킬이 날아들었다.
처척!
다행히도 빠르게 알아차린 레온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그 공격을 피해 내었다.
그가 원래 서 있었던 곳이 운석에라도 맞은 듯이 움푹 파여 있었다.
레온이 스킬이 날아든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리로이와 간부들이 등장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레온과 눈이 마주치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리로이가 말을 꺼냈다.
“어디에 꽁무니를 빼고 도망쳤나 했더니, 다시 돌아오기는 했구먼?”
하지만 레온은 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 여기에 있다는 건, 모즈구스도 여기에 있다는 거군.’
리로이는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레온은 자신이 처치해야 하는 두 표적 중 하나인 모즈구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저 개자식이!’
레온이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자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던 리로이가 분노를 표출했다.
“……네놈, 날 무시하는 거냐.”
그러자 레온이 귀찮다는 듯, 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그를 도발하였다.
“아아, 미안. NPC한테 넙죽 지휘권을 넘긴 쫄보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