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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무한전직-292화 (292/332)

# 292

#292화

“자, 그럼 인사는 여기까지로 하고. 그간에 이동하느라 피로가 쌓였을 텐데 얼른 쉬러 가 보도록.”

휴식을 취하라는 레온의 말이 끝나자, NPC들은 짧게 목례를 한 후 빠르게 막사를 빠져나갔다.

싸아-.

그러자 막사에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지원군이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하나 쉽사리 말을 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역시나 브룩이었다.

브룩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얼른 이 상황을 설명 좀 해 주겠니.”

그러나 레온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응, 뭐가?”

레온의 그 반응이 기폭제였다는 듯, 막사 안에 있던 아슬란의 간부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형님, 소수 정예로 데리고 오신 것 맞죠? 저 NPC들 모두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 거겠죠?”

“……레온 님, 설마 저 인원이 끝인 겁니까?”

“크흑, 추가 병력은 언제 오는지 제발 얘기 좀 해 주세요.”

간부들의 쏟아지는 질문들은 모두 같은 것을 묻고 있었다.

그가 데리고 온 NPC들이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지, 아니라면 추후에 추가 병력이 언제쯤 더 도착을 하는 지였다.

그에 레온이 아무런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간부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하나같이 실낱같은 희망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레온의 대답은 그런 모두를 벙 찌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니, 쟤네는 별 도움이 안 될 거야. 아무리 높게 쳐도 우리의 2군 정도의 실력밖에는 안 되니까.”

레온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꺼내자, 다시 한 번 싸늘한 침묵이 공간을 뒤덮었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모두는 속으로 동일한 생각을 하였다.

그건 바로.

‘……망했다.’라는 것이었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암흑성국 측에서는 흑암기사단장과 더불어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최강의 이교도 심판관 모즈구스가 나타나지 않았던가.

중부 대륙의 왕국들 쪽에서도 그에 맞먹는 인물들을 보내 주리라 생각하였는데 겨우 2군급이라니.

……그러나 레온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더욱 충격적인 한 발이 남아 있었다.

레온이 다시금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추가 병력은 없을 거야.”

그 내용은 바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추가 지원 또한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브룩조차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레온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직은 말이지.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거든.”

그 순간,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레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레온이 모두에게 왜 이런 상황이 펼쳐지게 됐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기 시작하였다.

* * *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레온은 북부 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중부 대륙의 국가인 그리핀 왕국에 맨 처음으로 도착하여 있었다.

그리고 곧장 그는 왕궁으로 이동해 암흑성국이 북부 대륙을 정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왕궁 NPC에게 전하였다.

그러자 메인 스토리의 전개에 포함이 되어 있는지, 레온은 곧바로 국왕이 있는 대전으로 안내되었다.

“안으로 들이시랍니다.”

잠시 후, 신하의 말과 함께 대전의 문이 활짝 열리자 레온은 속으로 긴장감을 가라앉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우, 이제 시작이군.’

레온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갔다.

그러자 그의 눈에 그리핀의 국왕인 세베루스의 모습이 담겼다.

그는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때, 세베루스가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자네가 북부 대륙을 암흑성국이 침략했다는 소식을 들고 온 자인가.”

“네, 맞습니다.”

웅성웅성.

레온의 말이 끝나자 대전에 있던 모든 신하들이 경악한 반응을 보이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있어 암흑성국이란 악몽과도 같은 존재이니, 저것이 당연한 반응일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전하, 저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십시오. 자신의 세력을 위해 거짓으로 떠드는 이계인의 헛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던 그때, 신하 중 몇몇이 레온의 진실성을 의심하며 잇따라 말을 꺼내었다.

그러자 세베루스가 그 말들을 조용히 듣다가, 레온에게 말을 내뱉었다.

“자네의 말을 증명할 것이 있는가.”

그러자 레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속에서 한 가지 물건을 꺼내어 두 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건 바로 흑염룡의 거태도였다.

이때에는 아직 모즈구스가 등장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레온은 사도 전용 아이템을 통해 암흑성국의 세력들이 등장했음을 알리려 했던 것이었다.

궁정 마법사 하나가 레온에게 다가와 물건을 살피기 시작했다.

“헉!”

그러곤 그는 이내 몸을 덜덜 떨며 거친 신음성을 내뱉었다.

이어 그는 세베루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몬의 사도가 등장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자, 대전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의심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레온이 다시금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저와 싸우고 있는 적들에게 회수한 물건입니다. 보시다시피 그들은 마신의 사도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의심은 거둔 듯한 세베루스가 레온에게 질문을 건넸다.

“……자네가 해치웠으면 끝난 문제가 아닌가. 한데 우리에게는 왜 찾아온 것인가.”

그러자 레온이 속으로, ‘여기서 부터가 중요하지.’라고 생각하며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어 말하였다.

“적들에게는 또 하나의 사도가 있습니다. ……게다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며칠 후, 암흑성국의 본격적인 지원군이 합류한다고 합니다.”

암흑성국의 본대가 북부 대륙을 침공할 것이라는 레온의 말이 끝나자,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세베루스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지원군을 요청하러 온 것이겠군.”

그러자 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리핀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후 모든 중부 대륙의 왕국에 찾아가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북부 대륙이 함락당하면 그다음은 중부 대륙일 테니까요.”

순간 레온은 우리가 밀리면 다음은 너희 차례야.라고 은은한 협박을 건넸다.

대전의 어느 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세베루스조차 그저 침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다.

레온은 그 상황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자식들아, 그만 좀 튕기고 얼른 내놔. 지원군!’

그는 세베루스가 지원군을 내어주지 않으리라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고 있었다.

암흑성국이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가장 큰 위협일 테니까 말이었다.

이윽고 고심을 거듭하던 세베루스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겠군. 최대한 빨리 병력을 준비하도록 하지.”

‘좋았어!’

긍정적인 답변이 들려오자, 레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네.”

“네?”

갑작스런 세베루스의 말에 레온은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조건? 무슨 조건?’

어리둥절해하던 그때, 세베루스의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우리에게 총 지휘권을 넘겨주게.”

그건 바로 자신들에게 모든 병력의 총지휘권을 넘겨달라는 것이었다.

‘이건 무슨 개소리야!’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레온이 속으로 천불이 차오르던 그때, 세베루스가 말을 이어 갔다.

“암흑성국은 모두의 공적이니, 당연히 힘을 모아 해치우는 것이 맞지. 하지만 그 모인 병력의 지휘권을 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 않나. ……여러모로 생각해 볼 때, 중부의 왕국들 중 가장 세력이 큰 우리가 총 지휘권을 갖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나.”

레온은 세베루스의 제안에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이 생양아치 자식이 뭐라는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지휘권이 넘어가면 지금까지처럼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끝나고, NPC에게 휘둘리는 결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레온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세베루스가 저런 제안을 하는 까닭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러자 크게 두 가지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계인인 레온에 대해 신뢰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 듯했다.

상대편 측의 사도 또한 이계인인데 너를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혹시라도 다른 왕국이 지휘권을 잡으면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까 걱정하며 선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쯧, 이 상황에서 생각하는 것 하고는.’

레온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 세베루스가 나지막하게 말을 꺼내었다.

“우리에게 지휘권이 없다면 우리는 많은 병력을 내어줄 수는 없네. 자네가 선택하게.”

띠링.

띠링.

그의 말이 끝나자, 레온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조건부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선택지 중 하나를 선정하여 주십시오.

[조건 1. 지휘권을 넘긴다.]

-총 지휘권이 ‘그리핀 왕국’에 넘어갑니다.

-최대치의 지원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건 2. 지휘권을 넘기지 않는다.]

-총 지휘권이 유지됩니다.

-극소수의 병력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추가 지원군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세력의 ‘신뢰’ 혹은 확실한 ‘명분’을 획득해야만 합니다.

내용을 모두 읽어 내려간 레온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 것이다.

레온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선택이 차후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결정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분명 가장 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는 그리핀에게 총지휘권을 넘기는 것이 나은 선택일 것이리라.

그러나 레온은 그쪽에 영 손이 가지를 않고 있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자신의 활약이 크게 줄어든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뢰와 명분이라.’

그러던 그때, 레온은 조건 2에 있는 마지막 항목을 거듭 다시 읽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레온이 결정을 내렸다.

“결정했습니다. 제 선택은-.”

* * *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브룩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레온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진짜 그걸 선택한 거야?”

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맞아, 두 번째를 선택했어.”

순간 모두가 침음을 내뱉었다.

레온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총 지휘권은 분명히 놓치기 싫은 것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것과 교환하여 데리고 온 병력이 너무나 적지 않던가.

게다가 추가 병력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인 ‘신뢰’와 ‘명분’은 달성하는 것이 매우 모호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처럼 시간이 급박한 순간에 성립 방법이 잘 떠오를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레온은 아직도 여유 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때, 유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오빠, 생각해 놓은 건 있는 거야?”

모두의 시선이 레온에게 닿았다.

그들의 눈빛에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담겨 있었다.

항상 이런 최악의 상황을 타개하였던 레온을 마지막으로 믿어 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방법은 하나야.”

모두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의 말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죽으면 이 전쟁은 끝나."

……레온의 갑작스러운 자살 선언에 모두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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