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
#291화
가뜩이나 밀리고 있는 형국에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슬란 연합 측의 병사들이 침음을 내뱉고 있었다.
“크윽, 저놈들은 또 뭐야.”
“……유령 형태의 몬스터인가?”
기워 놓은 누더기 같은 끔찍한 생김새에 압도당한 병사들은 섣불리 공격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요하지 마세요!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그러자 블루 아이즈의 2인자인 리루가 병사들을 챙기고 있었다.
‘……안 돼, 이미 사기가 많이 떨어졌어.’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바닥을 치고 있는 사기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모즈구스가 음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성서를 손에 쥐고 다시금 명령을 하달하였다.
우우우웅!
샤아아아!
그러자 효과음과 함께 스피릿츄얼 키메라들의 눈동자에 마몬의 사기(邪氣)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크롸라라라라!
-키에에에에에에-!
끔찍한 울음소리와 함께 세 마리의 키메라들이 동시에 바포메트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촤아아아!
쐐애애액!
쿠쿠쿵!
기간틱 라이노의 하체를 지니고 있는 키메라가 지축을 뒤흔들며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고.
다크 피닉스의 날개를 달고 있는 키메라가 검은 불꽃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에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깃털을 내뿜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유니크 등급의 길드원들을 상대하던 바포메트는 갑작스런 키메라의 기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푸욱!
콰직!
살갗이 뚫리는 섬뜩한 효과음이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재빨리 블링크를 사용하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친 탓에 실패한 바포메트는 적들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크윽! 이놈들이 감히!
바포메트의 흉부에 깊게 상처가 나 있었다.
이후 바포메트는 반격을 전개해 나갔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그저 이지 없이 폭주하던 웜 히드라와는 달리 이 녀석들은 세 마리가 서로 합을 맞추며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스피릿츄얼 키메라의 특징인 근접 공격 피해가 극감한다는 것 때문에 바포메트의 주 공격 수단인 낫 공격이 모두 헛손질이 되고 있었다.
‘주인님만 곁에 계셨더라면……!’
순간 바포메트가 속으로 레온의 부재를 슬퍼하고 있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바포메트가 밀리고 있던 그때.
‘슬슬 끝내 볼까.’
모즈구스가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로 결정하였다.
그가 성서에 힘을 불어 넣자, 그와 동시에 세 마리의 키메라들이 새로운 스킬을 시전하기 시작하였다.
끼아아아아!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함께 안개처럼 뿌옇던 스피릿츄얼 키메라들의 전신이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화르르륵!
콰아아아!
쩌저저적!
곧이어 불꽃과 번개와 얼음의 정령 마법이 시전되기 시작했다.
“저, 저건?”
“아니, 몬스터들이 어떻게?”
“마, 말도 안 돼!”
그 광경을 확인한 아슬란 연합 측뿐만 아니라, 페가수스 길드의 유저들 또한 깜짝 놀란 반응을 내보이고 있었다.
몬스터가 정령 마법을, 게다가 최상급 정령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상급 정령의 힘은 엄청났다.
순식간에 설산에 온 듯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화산이 폭발한 듯 불덩이가 하늘에서 쏟아졌으며, 벼락이 사정없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지옥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와, 저건 또 뭐임?
-물리 공격은 하나도 안 통하는데, 최상급 정령 마법을 일반 스킬로 가지고 있다고? X바, 이거 밸붕 아닙니까?
-삐빅. 판독 결과, 아슬란 연합의 승률은 0%입니다.
-으아아아! 망했어요! 완전히 망했어요!
암흑성국과의 관계를 발표한 후, 리로이가 곧바로 섭외가 들어온 방송사들과 연이어 계약을 체결한 탓에 전쟁은 생중계가 되고 있었다.
그 탓에 방송을 지켜보던 수많은 유저들 또한 실시간으로 경악한 반응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채팅들이 계속해서 달렸지만 어느 누구 하나 아슬란의 역전을 예상하는 이가 없었다.
전황은 완전히 뒤집혀져 있었다.
그러던 그때, 맹활약을 하고 있는 스피릿츄얼 키메라들을 바라보며 리로이가 감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강력해졌군!’
그의 표정에 만족감이 잔뜩 떠올라 있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더욱 강력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처음 마몬의 사도로 전직을 하였을 때, 모즈구스는 저 괴물들의 프로토 타입을 보여 주었었다.
한데 그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능력은 지니고 있지 않았었다.
그 순간, 리로이가 모즈구스에게 고개를 돌리며 질문을 건넸다.
“키메라의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겁니까? 키메라들이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강력하군요.”
그에 모즈구스가 씨익, 하고 웃어 보이더니 놀라운 내용의 대답을 전해 주었다.
“후후, 보시다시피 키메라의 연구는 완성했지요. 이제 한 단계 더 위의 물건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리로이를 포함한 간부들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저 괴물들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흐흐,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그러자 리로이는 드디어 마음속에 존재했던 조그마한 걱정마저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후퇴하라!”
그때 리루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전장에 울려 퍼졌다.
바포메트가 빠져나올 수 없는 핀치에 몰리자, 어쩔 수 없이 퇴각을 명령한 것이었다.
투다다다!
리루의 명령에 아슬란의 병력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뒤를 돌아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모즈구스가 광오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하하, 감히 마몬님의 큰 뜻을 거역하는 이교도들에게 심판을 내려주어라!”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 마리의 스피릿츄얼 키메라들이 도주 중인 병사들을 덮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아슬란 연합군 지휘 본부.
커다란 막사 안에는 아슬란과 블루 아이즈의 간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단 한 명, 레온을 제외하고 말이다.
내부를 채우고 있는 이들의 표정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런 말없이 침묵만이 감도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은 동일하였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이대로는…….’
‘……하아, 이거 너무 위험한데.’
그들 연합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던 그들이 암흑성국의 지원 때문에 모든 전선에서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스윽.
“브룩 님.”
그때, 막사의 커튼이 걷히며 병사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시선이 병사를 향했다.
“리루 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병사가 소식을 전달하였다.
그러자 브룩을 포함한 간부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젠장, 벌써 거기까지 뚫렸다고?’
전선에 있어야 할 리루가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말은 하나를 의미했다.
그녀가 막고 있던 최전방 전선 중 하나가 함락당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빼앗았던 페가수스의 영토들을 모두 다시금 돌려주게 된 순간이었다.
브룩이 입술을 깨물었다.
‘레온과 예상한 것보다도 진군 속도가 더 빨라. 정말 위험해.’
이후 곧바로 대책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 순간에도 침공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해답이 필요했지만, 안타깝게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마신 퀘스트를 통해 힘을 얻은 마신병들을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이제 스피릿츄얼 키메라라는 끔찍한 소환수와 모즈구스라는 암흑성국의 실권자를 상대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모두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뭐야, 여기 왜 이리 초상집 분위기야?”
한 사람이 소기의 목적을 마치고 귀환을 하고 있었다.
“오오, 레온 님!”
“레온 씨.”
“유호야!”
“오빠!”
등장한 남자, 레온을 보고 사람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나 왔어.”
그러자 레온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한 사람이 등장한 것뿐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만큼 이제 레온이 아슬란 연합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막대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이리라.
그때, 브룩이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건넸다.
“갔던 건 어떻게 됐어?”
그러자 레온이 말없이 엄지로 슬쩍 뒤편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뒤편을 향했다.
처척.
척.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막사 안으로 처음 보는 얼굴의 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아도 그들 모두가 NPC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전혀 다른 형태의 갑옷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수십 명이 동시에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막사가 가득 찬 느낌이 들고 있었다.
‘좋아!’
‘됐다, 됐어!’
NPC들을 바라보는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그에 반해 NPC들은 막사 안을 뚱한 표정으로 한 번 스윽 훑어볼 뿐이었다.
곧이어 NPC들 중 수장을 맡고 있는 듯한 이들이 길드원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폴른 왕국의 제1기사단장 카우란이오.”
“토파즌 왕국의 궁정 마법사 모랄레스입니다.”
“애로우 시티의 1급 레인저 하시우스요.”
“네크로폴리스의 부탑주인…….”
그랬다. 이들 모두는 중부 대륙의 국가들에서 아슬란 연합을 돕기 위해 지원을 온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브룩의 머릿속에 며칠 전 레온과 나눴던 짧은 대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좀 버티고 있어 봐. 갈 데가 있어.’
‘뭐? 지금 어딜 가?’
‘대신 싸워 주는데 억울하잖아. 왕국 놈들한테 병력 좀 뽑아 와야지.’
레온이 리로이의 속셈을 먼저 알아차리고 행동한 일은 중부 대륙의 왕국들에게서 지원군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요 며칠간 어떤 전장에서도 레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본 드래곤을 타고 중부 대륙으로 넘어가 왕국들을 돌고 있었던 것.
띠링.
띠링.
그러던 그때, 지휘관인 브룩과 세토의 귀에 효과음이 울려 퍼지며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폴른 왕국으로부터 지원 병력이 도착하였습니다.
-추가된 병력이 ‘보유 병력’ 탭에 추가됩니다.
-토파즌 왕국으로부터 지원 병력이 도착하였습니다.
-추가된 병력이 ‘보유 병력’ 탭에 추가됩니다.
-(……중략……)
NPC들이 데려온 병력들이 차례로 추가되기 시작하였다.
‘……어라? 잠깐만.’
한데 추가된 내용을 확인한 브룩과 세토의 반응이 무언가 이상했다.
밝았던 그들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간부들 또한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브룩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레온을 바라보았다.
[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그러곤 곧장 레온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왜?]
레온의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에 브룩이 황당해하며, 이어 귓속말을 보냈다.
[……왜는 왜야, 인마. 지원 병력이 적어도 너무 적잖아!]
그가 흥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여러 국가들로부터 받아온 병력이 지원군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소규모 병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는 고작해야 두세 군데의 전장이나 커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무리 보아도 레온의 이번 작전은 완벽히 실패였다.
‘대체 어쩌려는 거야.’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브룩이 그와 달리 여유가 넘쳐나는 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