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
290화
페이건 영지에서 있었던 리로이의 충격적인 선언은 게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일단 현실 속에서는 리로이의 연설 내용과 마신 퀘스트에 관련한 것들이 모든 방송가와 커뮤니티를 장악하였다.
-판테라 출시 이래, 최대의 이변!
-페가수스 길드의 수장, 리로이. 사실은 마몬의 사도?
-암흑성국의 힘을 등에 업은 페가수스!
-페가수스 길드로 입단, 폭주 상태!
-아슬란 연합의 운명은 풍전등화인가?
그들은 쉬지 않고 기사와 특집 방송, 분석 글을 쏟아 내었다.
하지만 여태껏 마몬의 사도라는 것을 판테라 내에 존재하는 전설 정도로만 여겼던 그들은 리로이가 지닌 힘에 대해 정확한 내용을 짚어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에 반해 마신 퀘스트를 받아 직업이 진화된 이들은 넘쳐 났기에 그들의 인터뷰와 후기 역시 넘쳐 나기 시작했다.
리로이가 자신과 암흑성국과의 관계를 밝혔음에도 직후 페가수스 길드원의 이탈율은 10%를 넘지 않았다.
그 말인즉 나머지 90%의 길드원들이 모두 마신 퀘스트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압도적인 결과가 펼쳐진 이유는 간단했다.
중부 왕국들의 공적이 되는 것보다 눈앞에 펼쳐진 보상이 너무나 달콤했던 탓이리라.
[마신 퀘스트 받고 클래스 업그레이드하자! 생생 후기]
방금 페가수스 신규 입단하고 일반 직업인 ‘궁수’에서 ‘마신의 사수병’으로 진화하는 데 성공함!
두 직업 간의 성능 차이는 비교 불가임. 스킬 하나하나의 위력이 천지 차이임.
그냥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님들.
망설이지 말고 전향하세요! 다 같이 암흑성국을 암흑제국으로 바꿔 봅시다!
게시글에 첨부된 이미지에는 전후 직업의 스텟과 스킬을 비교해 놓은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글의 내용처럼 압도적인 스펙 차이가 드러나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확인한 일반 유저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하늘에서 비처럼 히든피스를 뿌려 주는 것 아님? 전향 안 하는 놈이 멍청한 듯.
-……그래도 위험도가 너무 크지 않나. 지기라도 하면 암흑성국에 틀어박히게 된다고.
-이기면 그만 아님? 개쫄보네.
-윗님 맞는 말 하셨네. 후기들 못 보셨나. 저렇게 클래스가 진화되는데 어떻게 짐.
-아는 랭커 형이 말해 줬는데, 천상계에서도 페가수스로 이적하려는 움직임들이 꽤 있다고 함.
-와, 레알임? 그럼 아슬란은 이제 그냥 끝이네.
-그러니까 얼른 병사로 지원합시다. 대신 한 번 받으면 취소 불가한 건 명심하고요.
-취소할 게 뭐가 있음. 난 지금 전향하러 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페가수스 측에 지원자가 무섭게 쌓이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연승을 기록하며 영지 비율을 7 : 3까지 벌렸을 정도로 크게 유리한 고지까지 점했던 아슬란 연합은 순식간에 5 : 5의 비율까지 다시 내어주고 말았다.
물량의 차이가 벌어짐과 동시에 마신 퀘스트를 통해 병사들이 즉각적인 전력 상승이 이루어지니,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더욱 절망적인 점은 특별히 대책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나오지를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 * *
“크억!”
“으아악!”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비명들은 한쪽 진영에서만 들려오고 있었다.
“다크 애로우!”
“마물 소환!”
“언홀리 스피릿!”
전신에서 아지랑이처럼 마몬의 힘을 발산하는 페가수스의 병사들이 아슬란 연합 측의 병사들을 쓸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세는 며칠 전의 상황과 완전히 상반되게 변화하여 있었다.
마신 퀘스트로 직업이 진화된 페가수스 길드원들은 아슬란의 길드원들에게 밀리던 실력의 격차를 직업빨로 없애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노멀 등급이었던 대다수의 유저들은 레어 등급으로 진화하였고, 소수의 레어 등급 유저들은 유니크 직업을 얻게 되었다.
수많은 시도들로 유니크 등급 이상의 직업으로는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으나, 유니크 등급만으로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슬란 연합의 병력들은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는 모습이 아니던가.
“하하, 리로이 님이 나서시니 연전연승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벌써 빼앗겼던 영토의 절반은 회수했습니다!”
“마신의 힘은 정말 엄청나군요!”
그러던 그때, 전세를 살피고 있던 페가수스의 간부들이 리로이를 바라보며 아부를 떨어 대었다.
그에 리로이는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간부들이 다시금 말을 꺼내고 있었다.
“흐흐, 상대편 길드장 놈도 꽁무니를 감췄습니다.”
“대책을 마련하려고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군요.”
“하하, 답이 나오겠습니까? 현 판테라의 최고 클래스인 유니크 등급이 수두룩한 저희 길드원들을 상대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마신 퀘스트를 통해 힘을 얻은 병사들.
일명 ‘마신병’들이 참전한 이후, 레온은 전장에서 모습을 쏙 감추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어느 곳에서도 흔적을 보았다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모습을 감춘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리로이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순간 그가 음흉하게 미소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흐흐, 마신병들에게 본인이 지기라도 하면 승부가 끝난다는 걸 아는 거겠지.’
그가 예상컨대 레온의 직업 또한 유니크 등급일 것이다.
그 힘을 통해 압도적인 강함을 연출하며 사기를 잔뜩 올렸었는데.
이제 페가수스 길드의 병사들 중에 그와 필적하는 유니크 등급의 인물들이 생겨났으니, 섣불리 전투에 나서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자신이 지기라도 하면 사기가 바닥을 칠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리로이가 기세등등해져 있던 그때.
콰아앙!
퍼어엉!
전장에서 갑작스레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시선을 돌린 리로이는 이내 미간을 좁혔다.
‘역시 저놈들이 걸림돌이야.’
거기에는 모습을 드러낸 바포메트가 거대한 낫을 휘두르며 자신의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거대 소환수의 힘은 마신병들로도 쉽사리 상대가 되지를 않았다.
더욱 빨리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음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저 바포메트를 비롯한 거대 소환수들 때문이었다.
간부들이 혀를 차며, 답답하다는 듯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에잉, 저것들이 문제군요.”
“망할 놈의 소환수들만 없으면 당장에 점령을 하겠구먼.”
“따지고 보면, 저 소환수들이 저놈들이 가진 최대 전력 아닙니까. 저것들이 잡히는 순간 끝난 거지요.”
‘……그걸 알면 너희들이 가서 잡아 보란 말이다.’
리로이는 자신들이 나서서 처치할 생각은 않고 말만 떠벌리는 간부들을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신 퀘스트를 통해 힘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전의 전투에서 느꼈던 소환수들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우우웅.
지이잉.
‘이건!’
리로이는 갑작스레 자신의 마신의 신물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곤 주변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신물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주변에 마몬과 관련된 인물이 나타난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슈웅!
슈아아!
“헉!”
“뭐, 뭐야?”
간부들의 경악한 반응과 함께 그들이 있던 지면에 갑자기 룬 문자가 새겨진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음험하기 짝이 없는 검보랏빛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안을 바라보며 리로이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왔는가.’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마몬교의 상징이 새겨진 법복을 입고 있는 30여 명의 사제들이었다.
간부들은 어리둥절하였지만, 이내 이들이 암흑성국에서 보내 주기로 했다는 지원 병력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속으로 의문이 차올랐다.
‘이렇게 적은 숫자가 다라고?’
‘……참나, 차라리 지원을 해 준다고 말을 말지.’
암흑성국에서 해 준다는 지원치고 사제 30명은 너무나 적은 숫자였기 때문이었다.
척!
처척!
모습을 드러낸 사제들은 그들의 가운데에 한 명의 고위 사제를 두고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털썩.
그러자 놀랍게도 리로이 또한 그 고위 사제에게 한쪽 무릎을 땅에 대며 인사를 건넸다.
“하찮은 마몬의 종이 대사제, 모즈구스 님을 뵙습니다.”
놀랍게도 공간이동 마법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는 종교재판관들의 수장인 모즈구스였다.
교황 라스푸틴이 보내기로 한 지원 병력이 바로 모즈구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리로이에게 직접 사도의 힘을 부여했던 것이 바로 모즈구스였기에, 리로이는 이토록 예를 갖출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길드장이 극도로 정중하게 상대를 대하자, 뒤에 있던 간부들이 뒤늦게나마 따라서 무릎을 굽혔다.
그 모습을 오만하기 짝이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모즈구스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꺼냈다.
“후후, 꽤나 오랜만이군요.”
“……네. 한데 모즈구스 님이 직접 오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리로이의 말투에서 불편함이 잔뜩 느껴지고 있었다.
NPC에 불과하지만, 그 속을 알 수 없게 영악한 모즈구스가 껄끄러운 것이리라.
모즈구스가 리로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을 띠고는 이어 말했다.
“교황 예하께서 한시바삐 북부 대륙의 정벌을 완료하기를 원하시더군요. 그래서 부족한 실력이지만, 제가 왔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겸손 떨기는. ……뭐, 그래도 이자가 암흑 성국의 최강자 중 한 명이니까 잘된 일인가.’
“부족하다니요, 저희에겐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그에 리로이는 속으로 역겨울 따름이었지만, 겉으로는 애써 티내지 않으며 잘 받아넘겼다.
리로이의 대답에 모즈구스는 말없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제 고개를 돌려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바포메트가 학살극을 벌이고 있었다.
그에 모즈구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꺼냈다.
“흐음, 저 염소에게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럼 일단 저것부터 처리하도록 할까요?”
바포메트를 처치하겠다는 놀라운 말에 순식간에 간부들의 시선이 모즈구스에게로 향했다.
이어진 다음 순간, 모즈구스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마몬의 성서에 다른 손을 얹으며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위대하신 마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부르노니, 깊은 잠에서 깨어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라. 서몬즈 키메라.”
모즈구스가 스킬을 시전함과 동시에 병사들과 바포메트가 전투를 벌이던 전장에 이변이 달생하였다.
슈아아아!
촤아아아!
앞서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의 검보랏빛을 내는 마법진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키에에에에에-!
-크와아아아-!
그리고 마법진에서 듣는 이를 소름 돋게 만드는 울음소리들이 연이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법진에서 머리를 꺼내고 있는 소환수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바포메트 또한 퍼붓던 공격을 멈추고 마법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존재들과 눈을 맞추었다.
‘저건 도대체?’
리로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소환수들의 모습에 두 눈을 커다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마치 유령처럼 반투명한 형체를 지닌 괴수들은 여러 몬스터들의 부위를 잘라 내어 합쳐 놓은 듯한 흉악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모즈구스가 소환한 것은 바로 레온이 탄광 도시 유스웰에서 싸웠었던 스피릿츄얼 키메라였던 것이다.
-크롸라라라라!
-키에에에에에에-!
-크와아아아아!
세 마리의 스피릿츄얼 키메라가 내는 포효가 전장에 공포를 안겨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