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
285화
전장의 균형은 이제 완전히 한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한 놈도 남겨 놓지 마라! 모두 죽여라!”
“내 목숨을 아슬란에!”
“우오오!”
당연하게도 승기를 잡고 있는 쪽은 아슬란과 블루 아이즈의 병사들이었다.
이 결과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두 병력 간의 사기 차이였다.
레온이 이른바 ‘무쌍’을 찍는 광경을 실제로 목격한 아슬란과 블루 아이즈의 인원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사기가 급상승한 데에 반해.
코르부스군의 진영은 길드장이란 사람이 모양 빠지게 도망만 치다가 결국 흔적도 없이 처참하게 패배하며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쪽 군세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계속하여 반복되자, 곳곳에서 동일한 한 가지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쿠웅!
채챙!
“투, 투항하겠다.”
“항복한다고, 항복!”
적들이 각자의 무기를 모두 바닥에 던지며, 백기 투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르부스의 간부들은 어떻게든 그 행렬을 멈추려 했지만 흐름을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진작에 이렇게 할 것이지.”
“이리로 와라.”
곧이어 블루 아이즈 길드원들은 그렇게 항복 의사를 내비친 이들을 모두 포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항?”
“……항복?”
아슬란군에게 항복 의사를 밝힌 이들은 조금 다른 대접을 받고 있었다.
“꾸에엑!”
“크헉!”
코르부스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로그아웃이 되고 있었다.
“투항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려면 아까 했어야지, 이 자식들아!”
아슬란의 병사들은 그들의 의사를 모두 모조리 거절하며 똑같이 적들을 박살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블루 아이즈의 길드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또다시 아수라장이 펼쳐지자, 코르부스의 병사들은 발바닥에 불이 붙은 것처럼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곡소리를 내는 그 와중에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이나 부하들이나 마찬가지구나.’
‘……이놈들은 악마야.’
라고 말이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길드장의 색깔을 닮아 가는 듯한 아슬란 길드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후.
-전투를 승리하였습니다.
-최종 승자는 ‘아슬란’, ‘블루 아이즈’ 길드입니다.
-보상으로 적 진영의 영토가 ‘아슬란’ 길드의 소속으로 변경됩니다.
모든 병사들의 눈앞에 승리를 알려 주는 동일한 내용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우아아아!
레온! 레온!
그러자 병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허공에 치켜세우며 레온을 연호하기 시작하였다.
여태껏 전투를 치르던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함성이었다.
잠시 후.
본래 목표했던 영토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멈추지 않았다.
‘절호의 기회야! 이럴 때 뽕을 뽑아 놓아야 해!’
이렇게 병사들이 기세를 탔을 때, 최대한 부려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다.
그 후, 본 드래곤 위에 올라탄 레온의 지휘 아래 병력은 파죽지세로 투스 연합의 세력권에 밀고 들어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레온군의 승리에 그들은 뒤늦게 허둥지둥하며 방비를 하기 시작했지만, 총지휘관을 잃은 그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전투는 무척이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국 레온은 두 개의 영지를 추가로 더 빼앗는 데 성공하였다.
물론 두 곳에는 모두 아슬란의 깃발이 꽂혔다.
당연한 일이었다. 새롭게 얻은 영지는 모두 아슬란의 것이 되기로 협의를 본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레온은 그제야 진격을 멈췄다.
승리의 흥분이 가라앉은 병사들이 체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며칠간은 새롭게 얻은 지역들을 집중 관리하는 시간과 전력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로 했다.
이번 레온의 승리로 인해 투스 연합에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것이 분명하였다.
완전히 장악한 동부 전선에 이어 중부 전선의 영지들도 꽤나 많이 획득하게 되면서, 이제 도리어 아슬란과 블루 아이즈 진영이 양쪽에서 날개를 펼치며 투스 연합을 압박 전개하는 형국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온에게는 무척이나 호재인 상황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 * *
같은 시각, 전쟁터로 진군을 하고 있던 페가수스군의 진영은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두 가지의 충격적인 소식이 진군하던 병사들에게 실시간으로 퍼지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건 바로.
‘코르부스군이 대패하였다!’
‘매덕스가 아슬란의 길드장에게 완전히 박살이 났다!’
페가수스 길드의 병사들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하였다.
자신들과 합류하여 함께 싸우기로 결정을 하여 놓고서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서 싸우기 시작한 것도 이해가 가지를 않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처참하게 지기까지 했다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리로이를 포함한 페가수스의 간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는 리로이의 곁에 간부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동하면서 긴급 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침묵이 감돌던 그때, 리로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꺼냈다.
“……후우, 어떻게 됐다고?”
그러자 그의 눈치를 살피던 간부 한 명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였다.
“……방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투홀 시티와 아라스번까지 뺏겼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곁에 있던 여러 간부들이 동시에 헉, 소리를 내며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예상치 못한 도시의 이름들이 나온 탓이었다.
투홀 시티와 아라스번은 요충지 중의 요충지였다.
한 곳만을 뺏겨도 몹시 피곤해지는 판국이었는데, 코르부스 놈들은 두 곳을 동시에 모두 잃어버린 것이었다.
“하아, 아라스번까지?”
“이 자식들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아니, 왜 말도 없이 혼자서 싸움을 시작하냐고!”
간부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눈이 돌아가 소리를 빽빽 지르고 있었다.
그 상황 속에서 리로이 또한 매덕스에 대한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리로이는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매덕스, 이 자식은 정말 머릿속에 우동 사리가 대신 들어가 있는 건가?’
혹시나 했지만, 정말로 홀로 적진에 돌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같은 목적을 지닌 마몬의 사도이기에 지금까지 가만히 놔두었지, 그것만 아니었더라도 첫 만남에 짓밟아 주었으리라.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
순간 리로이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러던 그때, 간부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리로이에게 여러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매덕스가 처참한 꼴을 당한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저희 쪽의 길드원들까지 겁을 집어먹고 있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금 간다고 해도 두 영지를 되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일단 다시 회군해서 전면적으로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병사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일명 레온 공포증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지금 진군 중인 것을 멈추고 회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로이는 침음을 내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였다.
삐이!
삐이!
‘으응?’
갑작스레 모두의 귓전에 뾰족한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리로이를 포함해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들의 눈앞에 생각지도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 미친 새끼가!”
얼굴이 시뻘게진 리로이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거칠게 분노를 뿜어내고 있었다.
* * *
한 가지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자, 각종 커뮤니티와 게임 웹진에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사들의 헤드라인은 이러했다.
-대분열! 끝을 보기 전에는 끝내지 않겠다는 코르부스!
-페가수스를 향한 갑작스런 코르부스의 선전포고!
-페가수스와 코르부스. 둘의 싸움은 왜 지금인가?
-페가수스 길드, 내전에 자본 추가 투입 결정!
그랬다. 충격적인 소식이란 바로 투스 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코르부스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동맹을 파기하더니, 공동 소유하고 있던 영지 곳곳에서 내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저들 모두는 예상하지 못한 이 급작스러운 사태에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나온 반응은 코르부스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근데 왜 갑자기 코르부스는 페가수스랑 동맹을 해제한 거임?
-레알, 개 뜬금포.
-방귀 낀 놈이 성낸다더니. 지가 대패하고 돌아와서 왜 갑자기 애꿎은 페가수스 뒤통수를 침?
-지인 피셜이긴 한데, 페가수스가 미리 적이랑 내통을 했다던데?
-헐, 근데 그게 말이 되나?
하지만 몇몇 유저들은 코르부스 길드의 구성이 거의 대부분 PK범들로 이루어진 점을 꼽으며 예상된 수순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페가수스와 코르부스의 내분은 하루가 다르게 격화되고 있었다.
매덕스와 리로이는 한쪽이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전투를 벌이는 듯 보였다.
그 상황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것은 당연하게도 아슬란 측이었다.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에서 알아서 싸워 주자, 레온군은 자동으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레온이 매덕스에게 뿌린 작은 오해의 씨앗이 완벽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 * *
아라스번에 위치한 펍.
주정뱅이 올빼미.
그곳에서는 커다란 건배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짠!”
“모두 짠!”
주점의 특성상 평상시에도 시끌벅적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오늘은 특히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 자, 우리들의 승리의 마스코트 레온 님을 위해 건배!”
“건배!”
오늘이 바로 코르부스에게 대승을 거두고 나서 처음으로 가지는 블루 아이즈, 아슬란의 공동 회식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레온이 가게를 하루 통으로 전세를 내어 모두에게 술과 안주를 무한 리필로 뿌리고 있었다.
시끄럽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병사들과 간부들이 한데 뒤섞여 요란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양쪽 엄지를 척 세우며 우철이 레온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찔끔 오줌 지리면서 개망했다고 생각할 때 떡하니 형님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후훗,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지.”
그에 유호가 장난 섞인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듣고 있던 동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꺼냈다.
“주인공은 무슨. 분명히 어디 숨어서 최적의 타이밍을 재고 있었을걸. 내 친구지만 숨길 수 없는 관종이야, 관종.”
사람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유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쩝, 왜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지? 이거 인정해야 하나?”
순간 동석이 아빠 미소를 지어 보이며 유호의 어깨에 한쪽 손을 올렸다.
그러곤 다른 손으로 술잔을 들어 올리며, 크게 목소리를 냈다.
“아니야, 그래도 오늘만큼은 네가 주인공이지! 자자, 모두 잔 채우시고 건배합시다! 혼자서 다 해 처먹는 우리 길드장을 위하여!”
“위하여!”
그 후, 양쪽 길드 모두에 속해 있었던 동석의 노련한 진행으로 양 길드원 간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왁자지껄했던 술판이 더욱 시끄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