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
282화
레온이 매덕스가 사용한 크로우 스펙터 스킬에 의해 검은 빛기둥에 갇히던 순간.
생중계를 시청하던 많은 시청자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열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바로 레온의 팬 카페인 ‘킹 라이온’의 회원들이었다.
그들은 회비를 모아 영화관 한 관을 통째로 대절하여, 한자리에서 함께 전쟁을 시청하고 있었다.
“아니, 강제 텔레포트라고?”
“저딴 사기 스킬이 어디 있어!”
“……이러다가 다시 전세가 역전되는 거 아니겠죠?”
한 명도 빠짐없이 ‘레온 ♥’ 무늬가 새겨져 있는 머리띠를 두르고 그들은 매덕스를 향해 날선 분노를 토해 내고 있었다.
“……아, 사라지셨다.”
“이런……!”
하지만 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레온의 모습은 영상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허공에 떠 있는 수정구가 바쁘게 레온의 행방을 쫓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다.
그러자 회원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다.
레온의 등장이 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한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시금 역전될까 염려가 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한데 그때였다.
“여러분.”
내려앉은 침묵을 뚫고 나지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그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
거기에는 킹 라이온의 회장직을 맡아 수행하고 있는 젊은 여성 한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회장, 김소혜는 창단부터 운영까지 모든 고된 일을 도맡고 있어 회원들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목이 되자, 그녀가 한숨을 내뱉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실망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이렇게나 레온 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시다니요.”
꾸짖는 뉘앙스의 그녀의 말에 회원들이 말없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자, 천천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지금까지 레온 님이 저희의 기대를 저버리신 적이 있으신가요?”
절레절레.
회원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진행된 레온의 동부 지역 전투를 빠짐없이 모두 보았지만, 레온이 패배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신의 몸으로 동부 지역을 제패한 레온 님이잖아요. 저런 놈 하나 정도는 금방 해치우고 돌아오실 겁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걱정이 가득하던 모든 회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회원들이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각자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크흠, 아직 저희의 수행이 부족했나 봅니다.”
“자, 자,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응원이나 열심히 해 보자고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이어 시끌벅적하게 공식 응원가가 펼쳐졌다.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레온 님, 얼른 해치우고 돌아오세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소혜, 아니 판테라의 미츠 본인 또한 열심히 레온을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 * *
‘강제 텔레포트라.’
순식간에 검은 빛기둥이 자신을 가두어 버리자 레온은 일순간 당황했지만, 빠르게 현실을 파악했다.
스윽.
‘읏.’
그가 바깥쪽으로 손을 슬쩍 내밀었지만, 그러자 마치 감전된 듯이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자 레온은 이내 제 어깨를 으쓱하며 쿨하게 탈출을 포기했다.
‘뭐, 부르는데 가 줘야지.’
느긋한 그와 달리 빛기둥의 바깥쪽에서는 브룩이 그를 꺼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슈아아아!
그로부터 5초 뒤, 시스템 메시지의 말처럼 그는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강제로 이동이 되었다.
그를 감쌌던 빛기둥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파바밧!
스킬의 구속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한 순간, 레온은 빠른 발놀림으로 뒤로 물러섰다.
혹시 모를 공격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여기는?’
그러곤 눈을 빠르게 굴리며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찔한 절벽 위의 산꼭대기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흐음, 꽤나 먼 거리로군.’
레온의 시야 한참 멀리로 방금 전까지 전쟁을 치르던 위치가 보이고 있었다.
날개로 이동을 한다고 해도 적잖이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전세가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뭐, 소환수들은 다 두고 왔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의 말처럼 본 드래곤을 포함한 소환수들을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레온이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윈드 블레이즈!”
슈아아아!
쐐애애액!
파공성과 함께 날카롭게 벼려진 바람의 칼날이 레온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밧!
콰아앙!
하지만 전신의 감각을 예리하게 날을 세우고 있었던 레온은 옆에 있던 커다란 돌덩이 위로 몸을 날리며 투사체를 간단히 피해 버렸다.
그러곤 자신에게 공격을 날린 장본인, 매덕스를 확인했다.
매덕스는 연신 음험한 검은 빛을 내뿜고 있는 완드를 손에 쥔 채, 레온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레온이 한 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더니, 말을 꺼내었다.
“이봐, 인사가 너무 격한 것 아니야?”
여유만만인 레온에 비해 매덕스는 흥분한 것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놈이!’
현재 매덕스는 레온을 운이 좋게 히든피스를 두어 개 연속으로 주워 먹은 녀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레온의 강함을 설명할 수 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매덕스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히든피스 몇 개 주워 먹고 기세등등한 모양인데, 히든피스에도 격의 차이가 있다는 걸 보여 주마!”
슈아아아!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완드에서 흘러넘치던 검은 기운이 더욱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이잉!
촤아아악!
곧이어 검은 기운은 매덕스의 전신을 둘러싸는 둥근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동시에 지면에 처음 보는 룬 문자로 이루어진 소환진을 그려 내고 있었다.
끈적끈적한 마몬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눈에도 결코 평범한 소환진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이라면 재빨리 매덕스에게 접근하여 캐스팅을 끊었겠지만, 레온은 조용히 검을 들어 올리고 방어 태세를 유지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매덕스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멍청한 놈! 겁에 질린 거냐.’
그는 소환진에서 배어 나오는 마몬의 힘에 레온이 압도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착각이었다.
‘좋아! 얼른 마몬의 힘을 꺼내 보라고!’
그때 레온은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매덕스가 사도로서 지닌 마몬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기다려 준 것뿐이었다.
촤아아아!
슈우우우!
이윽고 완성된 검은 소환진에서 레온이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환수를 확인한 레온의 눈빛에 의아함에 떠올랐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인간?’
소환수가 몬스터가 아닌 완전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환수는 처음 보는 디자인의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전신에서 고고한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소환수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곤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누가 감히 나를 불러낸 거냐.
털썩.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매덕스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더니, 놀라운 내용의 말을 꺼냈다.
“접니다. 위대하신 마계의 존재시여.”
레온의 눈이 커다랗게 커졌다.
마계의 존재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설마 마족이라고?’
매덕스가 지닌 사도의 힘은 바로 마족을 소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 마계 콘텐츠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판테라 속에 남겨진 문헌과 몬스터 설명에 적힌 내용들을 읽어 보면 마족이 지닌 힘을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후후, 이거 재밌게 돌아가는데?’
강대한 적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축제에라도 온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매덕스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열한 인간 따위가 감히 마계의 자작인 나를 불러내다니. 네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무슨 이유에선가 불러낸 마족이 오히려 그를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소환수처럼 맘대로 통제를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매덕스가 쩔쩔매며 말을 꺼냈다.
“슬레인져 님, 저는 마몬 님을 따르고 있는 종으로서 그분의 명을 따라 슬레인져 님을 소환한 것뿐입니다.”
마몬의 이름이 나오자 슬레인져가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족에게 마신의 이름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자, 매덕스가 이때다 하며 슬레인져에게 말을 건넸다.
“저 시건방진 녀석이 감히 마몬 님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저놈을 해치워 주시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스윽.
그러자 슬레인져가 고개를 돌려 레온과 눈을 마주쳤다.
‘호오.’
그러자 레온은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것을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던 그때, 결정을 내린 듯한 슬레인져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쯧, 이번 단 한 번뿐임을 명심해라.
“감사합니다!”
매덕스가 왕의 곁에 선 간신배처럼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소환수와 소환술사의 위치가 뒤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레온은 그 꼴사나운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우, 뭐 저리 꼴보기가 싫냐.’
하지만 그러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후우우우!
파아아앙!
‘엇!’
갑작스레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슬레인져가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히며 돌진했던 것이다.
-영광인 줄 알고 죽거라!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접근한 슬레인져가 검보랏빛의 마기가 넘실거리는 자신의 주먹을 레온에게 내질렀다.
콰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공격을 받은 레온의 몸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돌덩이에 날아가 처박혔다.
어찌나 힘이 강력했던지, 웬만한 집채보다 커다란 돌덩이가 산산이 부서져 내리며 레온이 그 속에 파묻혔다.
그 모습을 보며 매덕스가 입을 쩍 벌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잖아!’
사실 그가 마몬의 권능을 사용해 마족을 소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태까지는 다른 소환수들이 지닌 힘만으로도 충분했기도 했거니와, 마족의 소환이라는 것은 남들 앞에서는 절대 보일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족을 소환할 수 있는 힘을 본다면 어느 누구라도 암흑성국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으니까.
‘흐흐, 그 난리를 피우던 놈을 단 한 방으로 해치우다니!’
매덕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자 슬레인져가 레온이 파묻힌 돌무더기로부터 등을 돌리며 말을 꺼냈다.
-자, 됐지. 그럼 이제 난 다시 마계로 돌아가겠……?
그런데 그가 말을 끝마치기 직전.
투콰아앙!
돌무더기들이 사방으로 폭발하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끄악!”
매덕스가 식겁하며 급하게 방어막을 다시 전개하여 날아드는 파편들을 방어해 냈고.
티팅! 팅!
슬레인져는 손가락을 까딱까닥하며, 파편들을 허공에서 치워 버렸다.
그러곤 슬레인져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 돌무더기를 향해 다시금 시선을 보냈다.
-저놈……!
처척.
거기에는 파묻혔던 것치고는 너무나 말끔한 모습의 레온이 떡하니 자리를 하고 있었다.
마족과 인간의 시선이 집중된 그 순간.
레온이 탐욕이 가득한 눈빛으로 슬레인져를 바라보며 한마디 말을 꺼내고 있었다.
“좋아, 너도 내 콜렉션에 넣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