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
280화
‘……저자.’
마계에서 내려온 악마처럼 적들에게 무자비하게 포화를 쏟아 내는 레온을 바라보는 세토의 표정은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그녀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아아아!
채챙! 챙!
그러자 계속된 전투에 완전히 탈진해 있는 블루 아이즈의 병사들과는 달리, 힘을 되찾은 쌩쌩한 아슬란의 병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아슬란의 병사들도 그녀의 길드원들과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저들을 저렇게 날뛰게 만든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였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레온이라는 인물의 등장이었다.
단 한 사람의 등장이 전체 병사들의 기세를 이렇게나 뒤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퍼퍼펑-!
콰가강-!
“끄아아아!”
“크억!”
순간 지축이 흔들리더니, 엄청난 폭음과 비명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평범한 들판이던 필드 한쪽이 설원(雪原)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설원에는 꽁꽁 얼어붙은 빙결 상태가 된 투스 연합의 병사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그 참혹한 사태를 만든 주동자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아 하며, 허공에 떠올라 막대한 위압감을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인에게 반기를 드는 자. 오로지 섬멸할 뿐.
단언컨대 현존하는 최강의 소환수일 본 드래곤은 광포한 눈빛을 흩뿌리며, 주인의 적들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 전황을 보고 있던 미튜브를 비롯한 게임 방송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었다.
-ㅎㄷㄷ, 본드래곤 등판이요.
-자, 이제 코르부스 분들 일렬로 박살 나고 집에 들어가실게요.
-끝판왕 등장이냐…….
-에이, 본 드래곤이라고 해도 다섯 마리를 어떻게 이기냐.
-맞음ㅋㅋ 사람이든 소환수든 쪽수에는 장사 없는 법임.
-너무 늦었어. 혼자서 뭘 함, 이미 판은 투스 연합에 넘어간 지 오랜데.
-ㅇㅈ, ㅆㅇㅈ.
-아니, 근데 저놈은 어떻게 벌써 여기에 도착한 거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임팩트 있게 등장한 레온의 모습에 유저들은 다시 한 번 역전극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블루 아이즈와 아슬란의 병사들이 꽤나 많이 희생된 상태이기에, 대다수의 여론은 아무리 본 드래곤이라 한들 판세를 뒤집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매덕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생각지 않은 레온의 등장에 당황한 모습을 보인 그였지만.
‘흥! 그래 보아야 한 마리에 불과해!’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본 드래곤 정도는 충분히 자신이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매덕스가 완드를 흔들며 가루라와 바실리스크에게 본 드래곤을 공격하게 지시하였다.
“가루라! 바실리스크! 저 뼈다귀만 남은 도룡뇽을 어서 해치워 버려라!”
-그와아앙!
-끼이이잉!
그러자 두 소환수가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사뿐히 조무래기들을 휩쓸어 버린 본 드래곤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쐐애애액!
먼저 하늘에서 쏜살같이 날아든 가루라가 양 발톱을 본 드래곤에게 휘갈기고 있었다.
단단한 암석도 종잇장처럼 잘라버릴 정도의 예리함을 지닌 발톱이었다.
하지만.
티팅!
분명히 가루라의 발톱은 본 드래곤의 뼈에 정확히 적중을 하였음에도, 잔기스 하나조차 내지 못하였다.
-끼, 끼에?
가루라의 당황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하나였다.
영혼을 강령시켜 완벽한 본 드래곤으로 탈바꿈되면서, 자체 방어력 또한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본 드래곤이 ‘괴조, 가루라’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본 드래곤이 650의 물리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전체 체력에 비교하면 티도 안 나는 고작 650의 대미지만을 입었을 뿐이었다.
‘에게? 650?’
생각보다도 너무나 저조한 적의 대미지에 레온이 피식, 하고 웃어 보일 정도였다.
가루라의 공격이 무효로 돌아가자, 쾌속하게 기어 온 바실리스크가 자신의 꼬리를 휘둘렀다.
촤아아아!
티팅!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똑같았다.
“서, 석화 스킬을 사용해!”
당황한 매덕스가 바실리스크가 지닌 최고의 상태 이상 스킬인 석화 스킬을 사용시켰다.
-크와아앙!
본 드래곤을 향해 바실리스크의 눈에서 사이한 빛을 띤 안광이 발사되었다.
그러나 투사체가 본 드래곤에게 닿는 것보다.
“베르제브의 식탐!”
레온이 소환한 파크가 스킬을 집어삼켜 버리는 것이 빨랐다.
‘……저건 또 뭐야? 정령?’
하다하다 레온이 이제 정령까지 소환을 하자, 매덕스가 입을 쩍 벌린 채 경악을 하였다.
-아니, 저기요. 정령요? 정령술사요?
-직업 정체가 뭐죠?
-상식적으로 저런 직업이 어딨음. 그냥 아이템에 붙어 있는 거겠지.
-맞음. 초희귀하지만 정령술이 붙어 있는 아이템들 있음.
또 다른 직업 스킬, 정령술의 등장을 시청자들은 아이템에 붙어 있는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리라 잘못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분노에 찬 기운을 쏟아 내고 있는 본 드래곤에게 툭 던지듯이 말을 꺼냈다.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해치워.”
-……주인의 명을 받습니다.
그 말이 끝나마자자, 본 드래곤이 두 보스 몬스터에게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꾸이이, 이!
-끼잉, 끼잉!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던 두 마리는 시종일관 방어에 급급해하며 격한 신음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강한 거지?’
힘겹게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며, 레온이 만들어 낸 그 놀라운 광경을 확인한 세토가 혀를 내둘렀다.
자신도 어디 가서 기죽지 않을 히든피스의 소유자이건만 레온의 저 힘을 보고 있으니 괜스레 허탈함과 함께 작아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정말 첫인상과는 180도 다르네.’
허무맹랑했던 첫 통화에 이상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앗.’
한데 그때, 세토가 무언가에 깜짝 놀란 반응을 만들었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레온과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짧은 눈빛 교환이 끝이 나고 레온이 슬며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처척.
곧이어 레온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면에 착지를 하였다.
고이 날개를 접은 레온은 손가락을 뚜둑, 소리를 내며 풀더니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자, 그럼 나도 시작해 볼까.”
그러곤 곧바로 입술을 달싹이며 스킬을 시전하였다.
우우웅!
슈아아아!
그가 선 옆의 지면에 또 다른 소환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강철의 갑옷이 나타났다.
“장착, 스키르니르.”
위이잉!
철컥! 철컥!
오토마톤 스키르니르가 여러 파츠로 분해되었다가, 이내 레온의 몸을 감싸며 뒤덮었다.
그렇게 변신이 끝나고 나자.
투콰아앙!
투다다다!
레온이 진각을 박차며 브룩 일행을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해 가기 시작했다.
쿠웅! 쿵!
레온이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발자국이 묵직하게 패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강철의 기사로 변모한 레온의 전신에서 음험하기 짝이 없는 보랏빛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건 위험해-!’
순간 심상치 않음을 간파한 매덕스가 간부들을 죽일 듯이 바라보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멍청이들아, 뭘 지켜만 보고 있어! 얼른 막아!”
“네, 넵!”
“막아라!”
그제야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던 간부들이 레온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채챙!
스르릉!
열댓 명이나 되는 간부들이 동시에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중소 길드에 있었다면 충분히 길드장을 했을 만큼의 뛰어난 실력들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다.
우우우웅!
그와아아!
이어 그들의 무기가 진동음과 함께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흐아앗! 삼중극점!”
“회천검무!”
“플레임 샤워!”
스킬 명령어와 함께 레온을 향해 무자비한 스킬들이 난사되었다.
랭커급의 실력자 10여 명이 한꺼번에 쏟아 낸 스킬들이 화려하게 허공을 수놓았다.
위, 아래, 오른쪽, 왼쪽.
사방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었다.
매덕스가 슬며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레온을 비웃었다.
‘겉멋만 든 놈! 뒈져라!’
하지만.
화악!
스윽!
레온은 자신의 효자 스킬을 사용해 가뿐히 그 공격들을 피해 냈다.
“앗?”
“어, 없어졌어?”
그랬다. 레온은 그림자 은신을 사용해 그림자 속으로 제 모습을 감추며 스킬들을 모두 간단하게 흘려 버렸던 것이었다.
만일 레온이 암살자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당연히 주의를 기울였겠지만, 설마 암살자의 힘까지 가지고 있을 줄 전혀 짐작하지 못한 그들은 허점을 완전히 찔리고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를 않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간부들 중 한 사람이 뒤늦게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건 그림자 은……!”
스윽!
촤아악!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레온의 칼날에 치명타를 입고 그대로 게임에서 아웃되고 말았다.
“파크, 베르제브의 식탐!”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레온은 곧바로 파크에게 권능을 시전하게 하였다.
-하앗! 석화의 마안!
파크의 눈에서 아까 전 바실리스크의 그것과 같은 안광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파앗!
화아앗!
그 눈빛은 무방비 상태로 있던 간부들을 그대로 직격했다.
“뭐, 뭣!”
“크억!”
보스 몬스터의 스킬에 강타당한 그들은 모두가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아등바등 거렸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시적으로 전원 스턴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스릉!
그 찰나를 놓칠 레온이 아니었다.
그가 등 뒤에 걸려 있던 흑염룡의 거태도를 꺼내 들었다.
“히익!”
“사, 살려……!”
파밧!
간절한 간부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레온이 위로 도약했다.
지이이이!
그아아앙!
그러곤 허공에서 검에 풀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채, 석상처럼 굳어 버린 적들에게 스킬을 쏟아 내기 시작하였다.
“그랜드 크로스, 연쇄격!”
쐐애애애액!
콰가가가!
레온이 허공에서 잔상이 보일 정도로 검을 연속해서 맹렬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끄어어어!”
귀가 먹먹한 파공성과 함께 수많은 십자 문양의 검격이 적들에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쿠가가가!
콰가가강!
이어 가공할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먼지 구름이 걷히고 나자, 마치 하늘에서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스킬이 강타한 지면이 움푹 패여 있었다.
그렇게 레온은 일거에 코르부스 길드의 간부들을 해치워 버리는 데 성공하였다.
‘마, 말도 안 돼…….’
그 광경을 목도한 매덕스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처척.
휘익.
그러나 이 같은 엄청난 참극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 레온은 아무렇지 않게 발길을 돌려 브룩에게로 질주했다.
슈콰아앙!
-꾸에에엑!
레온이 풀 오러 블레이드로 브룩이 상대하던 보스 몬스터를 강타하자, 몬스터가 괴성을 내지르며 볼썽사납게 바닥에 엎어졌다.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이 브룩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말을 꺼냈다.
“고생했다.”
“……빨리도 왔다, 이 자식아.”
책망하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브룩의 얼굴에는 어느 때보다 반가운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