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
어스퀘이크가 타무딘의 병사들에게 끼친 여파는 대단했다.
“여기 생존자 한 명 더!”
“의무병, 아니 힐러들 좀 빨리 이리로 와 봐!”
“공격조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공격해!”
졸지에 병사들이 두 개 조로 개편되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구출조와 공격조였다.
구출조는 흙의 쓰나미에 습격당해 파묻힌 동료들을 구조하는 데 힘쓰는 중이었다.
돌무더기에 직격당한 이들은 즉시 사망했지만, 흙에 파묻힌 이들은 체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꺼내 주기만 하면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성벽 곳곳에서 구출조원들이 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젠장, 이게 대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던 그때, 병사 하나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했다.
그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맨 처음 전쟁을 치르는 적에 대해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얼마나 우스워했던가.
적이 단 한 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실 때문이었다.
금방 끝내고 사냥이나 가자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현실은 너무나 참혹했다.
“으으, 나는 더 못 싸워…….”
“그, 그냥 포기할래.”
그 한 사람에 의해 타무딘에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쉰 그는 구출 작업에 다시 매진했다.
그리고 이내 흙더미 속에서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는 동료 하나를 구해 낼 수 있었다.
“괜찮아요?”
병사가 진정시켜 주며 말을 건넸다.
……한데 무언가 이상했다.
“으, 으어어어!”
구해 낸 동료가 말을 제대로 못한 채, 식겁한 반응을 만들어 내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공황장애라도 온 건가?’
가상현실게임이라는 특성상, 심약한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끔찍한 경험일 터였다.
하지만 그가 이상행동을 보이는 원인은 그의 예측과는 전혀 달랐다.
덜덜.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는 성벽 너머를 가리켰다.
병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히익!”
그러곤 병사 또한 신음성을 내었다.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하늘에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본 드래곤이 죽음의 신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을 오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크아아아앙-!
고막을 찢을 듯한 드래곤 피어가 타무딘의 병사들을 덮쳤다.
싸아-.
드래곤 피어가 휩쓸고 지나가자, 공간에는 전쟁터라고는 생각 되지 않는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머릿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충격적인 사건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 드래곤이라는 것은 그만큼 막대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소환수였다.
-……주인을 뵙습니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본 드래곤은 이런 목소리가 어울리지.’
그에 레온이 심히 만족스러워하며 제 고개를 끄덕였다.
파크를 강령시켜 놓았을 때는 전혀 매치가 안 되었었는데, 이제야 딱 맞는 영혼을 강령시킨 것 같았다.
스윽.
그때 레온이 적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들은 공격을 하던 것도 멈춘 채, 침묵에 빠져 있었다.
분명 본 드래곤의 출현에 넋이 나간 것이리라.
레온이 가볍게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쯔쯔. 불쌍한 어린 양들.’
하지만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순간 레온이 본 드래곤에게 말을 꺼냈다.
“자, 너도 날뛰고 싶지?”
그러자 본 드래곤의 서리 같은 눈동자가 차가운 빛을 발했다.
-……감히 주인을 해하려는 자들을 먹어 치우는 것만이 저의 기쁨입니다.
만족스런 대답에 레온이 씨익, 하고 웃어 보이며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그래, 간만에 포식 좀 해 봐.”
그렇게 레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본 드래곤이 거친 파공성과 함께 적을 향해 날아들었다.
촤아아아!
후콰아앙!
그저 날갯짓을 할 뿐이었는데,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뭐, 뭐 하고 있는 거야! 얼른 공격해!”
본 드래곤이 자신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지휘관 토드가 비명을 지르듯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이렇게 있다간 자신들도 본 드래곤의 한 끼 식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병사들 또한 차오르는 공포심을 애써 무시하며 바쁘게 공격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동료의 구출도 포기한 병사들의 화살비가 쏟아졌지만.
팅!
티팅!
이내 모두 튕겨 나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본 드래곤의 압도적인 방어력에 티끌만 한 타격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이빨을 드러낸 죄. 죽음으로 갚아라.
본 드래곤은 그렇게 병사들의 공격을 장난하듯 모두 무효로 돌려 버리고는.
“으, 으아아!”
“날아온다!”
거체와 어울리지 않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타무딘의 성벽을 향해 날아들었다.
휘이이익!
그러곤 집채만 한 꼬리를 휘둘러 그대로 성벽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퍼퍼펑!
콰가가강!
어스퀘이크에도 미세한 균열밖에 일어나지 않던 견고한 성벽이 두부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끄아아아!”
“사, 살려 줘어어!”
“컥-!”
파괴된 성벽 아래로 병사들이 추락하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앙상하게 뼈만이 남아 있었지만, 본 드래곤의 날개와 꼬리는 성벽의 경도보다 몇 배는 단단한 듯했다.
크롸라라라!
본 드래곤은 병사들을 짓밟고 유린하며 드래곤 피어를 계속하여 터뜨렸다.
일본 괴수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며 토드가 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곤 안절부절못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고X라야 뭐야. 진짜 본 드래곤이라고? 이게 말이 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상상 속에서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본 드래곤이 확실했다.
그것을 깨닫자 토드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지휘관의 재목이 아니었던지라,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당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솨아아아!
우우우웅!
그러던 그때, 공격을 멈춘 본 드래곤에게서 엄청난 진동음이 새어 나왔다.
‘저, 저건!’
토드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본 드래곤의 쩍 벌어진 입에서 푸른빛을 내는 한기가 집중되며 엄청난 속도로 증폭되고 있었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토드는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드래곤 브레스라고?’
가공할 위력을 자랑하는 드래곤의 최대 공격기였다.
저것만은 막아야 했다.
다급해지자 치명적인 실수가 터져 나왔다.
“모든 마법사들은 일제히 본 드래곤을 사격해!”
토드가 큰 소리로 명령을 하달했다.
한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서 있던 부관이 사색이 된 얼굴로 토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이 멍청이가!’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미 떨어진 명령에 타무딘의 모든 마법사들은 각자 스킬을 바쁘게 시전하기 시작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프로즌 샷!”
“어스 슬레이브!”
수백 개에 달하는 마법 스킬의 투사체들이 본 드래곤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레온은 무슨 이유에선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이윽고 허공에 떠올라있는 본 드래곤에게 투사체들이 적중되려던 찰나.
슈아아앙!
위이잉!
위잉!
본 드래곤의 전신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원형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곧이어 놀라운 현상이 발현되었다.
“끄아아아!”
“마, 마법이 돌아온다!”
마법진에 적중된 투사체들이 정반대로 방향을 바꾸어 자신들을 쏘아 낸 마법사들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스킬에 직격당한 병사들이 또 다시 곡소리를 쏟아 내고 있었다.
토드가 한 실수. 그건 바로 본 드래곤에게 대규모의 마법 공격을 함부로 쏟아 냈다는 것이었다.
드래곤에게 섣부른 마법 공격은 뼈아픈 자충수가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업그레이드 된 ‘마력 반발’ 패시브 덕택이었다.
[마력 반발 LV. 2 / 패시브]
(……중략……)
-자신이 받는 모든 마법 공격에 대한 피해량을 55% 경감시킵니다.
-20%의 확률로 받은 마법 공격을 적에게 그대로 반사하여 되돌립니다.
(상대가 본 드래곤의 레벨보다 50레벨, 70레벨, 100레벨 이상 낮을 경우, 30%, 40%, 50%의 확률이 추가로 더해집니다.)
‘스킬의 완전 반사라니. 이런 개사기 소환수가 어디 있냐고!’
레온이 쾌재를 부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마력 반발 스킬이 진화되기 전에는 25%로 경감된 반사 대미지를 주었지만.
진화되자 그대로 모든 대미지를 입힐 수 있게 변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펼쳐진 상황을 보았을 때, 바뀐 스킬이 훨씬 월등한 성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우우우우웅!
드디어 본 드래곤이 스킬의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그러자 레온이 커다랗게 스킬명을 소리쳤다.
“프로즌 브레스!”
투콰아앙!
콰가가강!
그 순간, 공간 자체가 울부짖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모두의 귀를 강타했다.
그러곤 본 드래곤의 벌어진 입에서 극한의 한기를 담은 한 줄기 브레스가 터져 나왔다.
극한의 한기를 담고 있는 브레스가 향한 곳은 토드를 포함한 지휘부가 위치하고 있는 성벽이었다.
‘헉!’
“마, 막……!”
토드가 허둥지둥하며 자신에게 쏟아지려 하고 있는 브레스를 막아 보려 했지만,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본 드래곤의 순백색 숨결이 그를 덮치고 있었다.
슈가가가가!
촤자자자작!
‘이런 시……!’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대미지가 그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약간의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브레스에 잠식되어 하얗게 얼어붙고 있었다.
완성하지 못한 그의 마지막 말이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다.
잠시 후, 뿜어졌던 브레스의 여파가 완전히 잦아들었다.
자신의 소환수가 만들어 낸 진풍경을 바라보며, 레온이 혀를 내둘렀다.
‘……워우, 이거 아이스 버스트 때랑은 비교가 안 되잖아?’
강령을 성공하여 완전하게 된 본 드래곤의 위력은 불완전했을 때의 능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프로즌 브레스에 의해 한쪽 성벽은 반파가 되어 있었던 데다가.
프로즌 브레스가 휩쓸고 간 성벽 너머의 영지는 마치 빙하기가 찾아온 것처럼 변해 있었던 것이었다.
단일 스킬로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 대미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낸 본 드래곤은 레온의 후속 명령이 떨어지지 않자, 허공에서 유유히 날갯짓을 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레온은 조용히 성벽 위를 살피며 예상한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됐는데…….’
그리고 그때였다.
철컹.
쩔그렁.
타무딘의 곳곳에서 쇠붙이가 만들어 내는 청량한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 항복할게요. 살려 주세요.”
“저도요!”
“……전 길드 탈퇴할게요.”
그건 모두 병사들이 자신의 무기를 바닥에 던지며 만들어지는 소리였다.
지휘관을 잃은 병력이 전의를 상실한 것이었다.
양손을 높이 든 타무딘의 병사들이 레온에게 항복 의사를 밝혀 오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온이 슬며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레온의 머리 위로 본 드래곤이 승리의 포효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