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
난데없이 날아든 한 가지 소식으로 인해 판테라 커뮤니티가 시끌벅적했다.
그 소식이란 동부의 나하르 영지가 아슬란 길드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님들, 그거 암? 나하르 영지 아슬란한테 넘어감.
-……구라도 정도껏 쳐라.
-아, 진짜임. 오늘 갔는데 영주랑 다 바뀌어 있었음.
-멍멍멍멍. 왈왈왈왈.
-개 짖는 소리 안 나게 해라!
하지만 처음 그 소식이 알려졌을 때는 어느 누구 하나 믿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페가수스와 코르부스 연합이 점령한 지 한참 지난 동부 지역을, 그들이 어떻게 수복한다는 말인가.
전생에 홍길동이 아니었다면, 현재 중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 한꺼번에 동부로 이동하는 일은 단언컨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그때.
자신을 코르부스 길드의 생존자라고 밝힌 한 유저가 올린 동영상 하나가 여론을 완전히 반전시켰다.
3분 정도의 짧은 길이의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닌 파급력은 엄청났다.
-사, 살려 줘!
-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영상은 시작되었다.
화질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현재 영지에 엄청난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촬영자의 시선에 이 소란을 만든 주인공이 담겼다.
그 남자는 여섯 장의 검은 날개를 펼치고, 허공에서 광선포를 쏘아 대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장면을 확인한 이들은 정말로 나하르 영지를 공격한 것이 아슬란 길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레온이 외형을 변화시키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진짜 아슬란이 먹었나 보네.
-그니까. 아슬란 길드장 확실함.
-근데 저 님 직업이 대체 뭔가요?
-거너인 듯한데……. 이거 혹시 다른 게임 아님?
-크헉!
곧이어 촬영자 또한 총격에 적중당했다.
그는 전신이 불꽃에 휩싸여 땅바닥에 몸을 뒹굴어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흐릿해져 가는 영상 속에서 레온이 간부를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찍히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총과 검을 함께 사용하는 거지?
-와! 최초의 듀얼 클래스 등장?
-X바, 직업을 두개나 동시에 가지고 있다니……. 개사기 아님?
-개사기까진 아니고, X사기는 맞을 듯.
어느새 레온은 유저들의 추측에 의해 최초의 듀얼 클래스 소유자로 불리고 있었다.
레온이 지닌 직업은 고작 두 개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런데 유저들에게 풀리지 않은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건 바로 왜 영상에 레온 한 사람의 모습만이 있을 뿐.
아슬란의 다른 길드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영상의 소유자에게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질문을 보냈지만, 어떤 답변도 얻지 못했다.
투스 연합 측의 압박 탓인지, 금세 원본 영상이 내려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투스 연합의 그런 행동이 더욱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은 다음에 이어질 레온의 행보에 눈과 귀를 잔뜩 기울이고 있었다.
* * *
북부 대륙.
중부 전선 요충지, ‘무토오’.
무토오 영지는 중부 전선의 길목 역할을 하는 핵심 영지 중 한 곳이었다.
본래 블루 아이즈의 영지였지만, 오래전 투스 연합에게 뺏겼었는데.
오늘 드디어 이곳의 수복을 위한 전투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스스슥!
무토오 영지 인근의 숲속을 한 무리의 유저들이 쾌속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상당한 인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동하며 스치는 수풀에 미동조차 없었다.
다들 각자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암습대를 이끌고 있는 이는 블루 아이즈의 수장인 세토였다.
선두에 앞장서고 있는 그녀의 뒤를 암습대원들이 쫓고 있었다.
순간 그녀가 살짝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대원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리라.
기습의 성공을 위해 일반적인 대로가 아닌 험지만을 거쳐 이동하고 있었다.
레벨과 스킬 숙련도가 낮다면 각종 문제가 생겨날 시점이었다.
하지만 확인을 마치자 그녀의 걱정은 사라져 있었다.
대원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이채가 떠올라 있었다.
그때 그녀가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NPC들을 이 정도 수준까지 육성을 한 거지? 우리 길드의 핵심 전력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잖아.’
암습대는 양 길드의 인원들이 50 대 50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데 전부 유저들을 배속한 블루 아이즈와 달리 아슬란은 NPC들도 함께 배치를 하였다.
세토는 처음에 그 사실을 조금 탐탁지 않아 하였다.
그럴 만도 했다.
유저들이 생각하는 NPC들의 전투력은 한참 아래일 테니까.
‘근데 그게 아니었지.’
하지만 함께 전투를 치르며 세토가 깨달은 것은 아슬란의 NPC들은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때 작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세토가 속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알면 알수록 무서워지는 남자야.’
당연하게도 그녀가 떠올린 것은 이 모든 업적을 이뤄 낸 아슬란의 길드장 레온이었다.
변방에 몸을 숨기고 이런 막대한 전력을 양성하고 있었다니.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비범함을 지닌 남자였다.
처척!
그러던 그때, 세토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뒤따르던 암습대 전원도 그 자리에 멈추었다.
세토가 주먹을 쥔 손을 어깨 위로 살짝 올렸다.
목표 대상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일순간 모두의 눈빛이 달라졌다.
수풀 너머로 짐을 잔뜩 실은 수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보급 물자들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저것들의 강탈이었다.
그때 세토의 귓전에 또랑또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대박! 언니, 진짜 따라잡았네요! 마차를 따라잡다니. 가능할까 했는데.”
옆을 바라보자, 복면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신이 난 것이 느껴지는 암습대원이 하나 있었다.
아슬란 쪽의 지휘관인 유우였다.
이런 과하게 활발한 스타일의 사람을 평소에 버거워하는 세토였지만, 유우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따뜻했다.
‘이상하게 밉지 않단 말이지.’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는 유우를 바라보며, 세토가 말을 꺼냈다.
“네, 근데 이제부터가 문제네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전방을 샅샅이 살폈다.
투스 연합의 병사들이 경계를 활발히 하고 있었다.
공간이 트여 있어 접근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게다가 그림자 은신 스킬을 시전하기에는 사정거리가 닿지 않았다.
‘흐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지 않은 악조건에 세토가 고민을 하던 찰나.
“후훗, 언니. 제가 해결해 드리죠.”
유우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세토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처척.
유우가 한쪽 팔에 카드 디스크를 장착하였다.
‘저건?’
그것을 확인한 세토의 눈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세토의 당황한 모습을 뒤로하고, 유우가 조그맣게 입술을 달싹였다.
“마법 카드 발동, 흑마도의 커튼.”
슈우웅!
촤아악!
스킬이 시전되자 그녀의 머리 위로 거대한 카드 한 장이 떠오르더니, 곧이어 카드 속에서 칠흑의 망토를 두른 리치의 형상이 나타났다.
슈아아아!
음험하게 빛나는 리치의 망토가 암습대원들 모두를 뒤덮었다.
자신과 똑같은 히든 직업을 지니고 있는 유우의 모습에 세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띠링.
띠링.
그 순간, 모두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오며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흑마도의 커튼’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위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암습대원들이 놀란 반응을 만들었다.
공간에는 어느 누구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투명 망토를 두른 것처럼, 그들은 주변에 완벽히 동화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헤헤, 어때요. 꽤 괜춘하쥬?”
기세등등해진 유우의 말을 들으며 세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나와 똑같아. 얘도 듀얼리스트야.’
그러던 그때, 세토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번뜩이며 떠오르고 있었다.
‘잠깐만……. 그럼 혹시?’
듀얼리스트라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던 암흑무투전에서 만난 의문의 남자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자신의 히든 직업을 아는 것일까 계속 의아했었는데, 단서를 찾은 것 같았다.
‘그자와 아는 사이인 걸까?’
그녀는 당장이라도 유우에게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유우를 비롯한 암습대원들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명령을 하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천천히 물어보면 되겠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는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바로 가죠.”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스스슷!
투명 망토를 두른 암습대원들이 숲을 벗어나, 적들에게 슬금슬금 다가서고 있었다.
* * *
콰앙!
거대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코르부스 길드의 수뇌부가 모두 모여 있는 막사 안이었다.
공간 내에는 싸늘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분노를 못이긴 매덕스가 탁자를 내리친 까닭이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그때, 매덕스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간부들에게 말을 꺼냈다.
‘이 능력도 없는 쓰레기들이. 고작 한 놈에게 영지를 뺏겨?’
레온에게 동부의 영지를 빼앗긴 사실에 격분한 것이었다.
그에 간부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금방 수복할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실수입니다, 실수. 페가수스 놈들과 전투를 치른 탓에 본래 전력의 20퍼센트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간부의 입에서 페가수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매덕스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그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을 페가수스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전쟁만 끝나기만 해라. 바로 네놈의 목을 따 주마.’
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곤 간부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능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런 놈들이라도 굴려야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매덕스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금방 수복할 수 있다는 말. 믿어도 되겠지?”
간부들이 죽다 살아났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믿어 주십시오. 동부의 영지들에게 명령을 내려 진압대를 만들겠습니다.”
“네, 네, 동부는 걱정 마시고 중부 전선에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계속된 그들의 말에 매덕스가 그제야 조금 인상이 펴졌다.
이어 그는 간부 중 한 명에게 눈을 맞추며 명령을 하달했다.
“그럼 나하르의 수복은 말큐스에게 맡기기로 하겠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돌아오도록.”
호명된 말큐스가 고개를 꾸벅이며 대답을 이어 갔다.
“걱정 마십시오. 금세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말큐스는 막사를 빠져나왔다.
매덕스의 명령은 곧바로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재 위치한 곳에서 동부 영지까지 이동하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이틀은 소요가 될 터였다.
말을 타고 이동을 하며, 말큐스가 눈앞에 동부 지역의 지도를 펼쳐 보았다.
‘흠, 놈의 다음 목적지는…….’
그러곤 나하르 영지에서 가장 근접한 영지를 확인했다.
영지의 이름을 확인하고 말큐스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졌다.
그가 한껏 마음이 편해진 표정을 띄웠다.
‘후후, 이거 천천히 가도 되겠는데?’
나하르에서 진격할 수 있는 영지는 ‘타무딘’이었다.
그곳은 이름보다 ‘강철 거성’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했다.
별칭만큼이나 견고한 방어력의 성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블루 아이즈가 지니고 있던 동부 영지 중에 투스 연합이 정복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영지가 아니던가.
‘흥, 혼자서 그곳을 뚫는다니. 말도 안 되지.'
견고한 성벽을 박살 낼 공성 병기라도 있지 않은 이상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