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
길드 간의 싸움은 레온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가 되어 있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레온을 바라보는 두 길드원들의 눈빛은 당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놈은 대체 뭐지?’
‘어디서 나온 거야?’
‘라운드 걸인가?’
한데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만도 해 보였다.
저들끼리 치열하게 싸우던 와중이었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제3자에게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았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시스템 메시지에 적혀 있는 ‘아슬란’이라는 적의 소속 길드 또한 그들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아슬란이라면 이번에 새롭게 전쟁에 참전한 놈들이잖아.’
분명히 이제 막 중부 전선에 참전했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지 않던가.
어떻게 이들이 벌써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지휘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두 지휘관의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교차하였다.
그들의 눈에는 동일한 의심이 실려 있었다.
그건 바로.
‘……설마 싸움에 다른 길드를 끌어들인 건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심은 곧이어 발생한 상황에 씻기듯 사라졌다.
“이 개자식이! 네놈은 뭐냐!”
“겁도 없이 감히 우리를 공격해? 당장 죽여 버리겠다!”
양쪽의 길드원들이 동시에 새로 등장한 ‘레온’이라는 불청객에게 살기를 내뿜었던 것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양쪽의 길드원들은 당장에라도 레온을 도륙 내려 달려들 기세였다.
아무리 보아도 한쪽 편을 돕기 위해 등장한 것은 아닌 듯 보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젠킨스와 타일러는 서로 싸우던 것도 멈추었다.
스윽.
그러곤 각자 부하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들의 의중을 파악한 부하들이 탐색 스킬을 사용해 주위를 빠르게 살피기 시작했다.
지휘관들의 의도는 동일했다.
‘다른 동료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
어딘가 근처에 숨어 있을 레온의 동료들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어디에서도 아슬란 길드원의 모습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명령을 수행하던 부하들이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젠킨스와 타일러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페가수스와 코르부스, 둘 모두 최상위의 길드인 만큼 양측 길드원들이 지닌 탐색 스킬의 숙련도는 매우 높았다.
암살자 랭커 정도가 아니라면,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서쪽 변방의 길드 따위가 암살자 랭커들을 데리고 있을 턱이 없기에.
이 상황이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설마 저 미친놈…….’
‘혼자 온 거야?’
그 순간, 두 지휘관이 어이없어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레온은 정말로 장내에 혼란을 일으켰던 연금술사들도 모두 멀리 후퇴시켜 놓고, 단신의 몸으로 전장에 돌입했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였다.
레온이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고 있는 적들을 둘러보더니 피식 하고 웃어 보였다.
“단체로 얼음땡이라도 한 거야? 왜 이리 죄다 굳어 있어?”
단신으로 두 길드의 전투에 끼어든다는 엄청난 일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여유로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길드장이 얼굴에 비웃음을 떠올렸다.
이제야 그들은 이것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완전 미친놈이군.’
‘그냥 또라이였어.’
그들이 레온을 파악한 바는 이러했다.
탐욕에 눈이 돌아간 미친놈 하나가 자신들의 전투에 콩고물을 주워 먹으려 겁도 없이 참전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그들의 머릿속에서 길드원들을 한 방에 죽였던 사실도 방심을 틈타 수작을 부린 것으로 격하되고 있었다.
그때 레온이 양측의 길드원들에게 손을 까닥까닥 흔들며 도발을 건넸다.
“눈앞에 적이 나타났잖아. 얼른 해치우라고, 쫄보들아.”
‘주제도 모르는 자식이!’
‘이 시건방진 놈이!’
발끈한 두 지휘관의 눈빛에 살의가 맴돌았다.
적이 동료가 없다는 것을 파악했으니, 망설일 것이 없었다.
“죽여!”
두 사람 모두 같은 명령을 하달했다.
파바바밧!
투다다다!
“파환보!”
“윈드 워크!”
양측의 길드원들이 서로 싸우던 것도 잠시 잊고 레온에게 동시에 달려들고 있었다.
계속된 전투로 대다수의 인원이 리타이어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길드 모두 50명 정도씩은 남아 있었다.
1 대 100.
어느 누구라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만한 극명한 차이였다.
하지만 레온이 길드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간단했다.
‘자, 오랜만에 손 좀 풀어 볼까.’
이딴 100명의 잔챙이들 정도야 손쉽게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박살을 내 주마!”
두 세력 중 먼저 레온에게 빠르게 접근하는 데에 성공한 것은 페가수스 쪽이었다.
거리를 빠르게 좁히며 근접 전투를 벌이는 일에 특화된 격투가 클래스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레온의 코앞까지 당도한 적들이 스킬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아이언 피스트!”
“연환 강격!”
쿠와아아!
쐐애애액!
귀가 얼얼한 파공성을 만들며 온갖 투사체들과 권격들이 사방에서 습격해 오고 있었다.
역시나 고위 길드의 일원들이라는 걸까.
완벽히 훈련된 합공이었다.
어디에도 도망칠 공간이 없어 보였다.
그에 레온은 어떠한 회피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길드원들의 눈에는 두려움에 석상처럼 굳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면 그렇지!’
‘뒈져 버려라!’
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의 동공을 커다랗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저건?’
‘……무슨?’
갑작스레 레온의 몸이 황금빛의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하더니.
슈아아아!
촤아아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어?”
“뭐, 뭐야!”
잔상이 남을 정도의 엄청난 움직임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투콰아앙!
퍼어엉!
쏟아진 그들의 공격은 애꿎은 지면과 허공을 강타했다.
레온은 아스트랄 바디 스킬을 사용해 가볍게 모든 공격을 회피하는 데 성공하였다.
적들이 어안이 벙벙해 하던 그때, 어느새 레온은 한 민가의 지붕에 올라 있었다.
처척!
그러곤 헤븐즈 플레어의 총구를 적에게 겨누며 입을 열었다.
“파크야, 준비됐지?”
-당연하지, 주인아!
그러자 파크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슈우웅!
파크가 망설임 없이 헥스테크 건틀릿에 스며들었다.
‘……뭐지 저건?’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적들은 레온의 무기가 영롱한 빛을 발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들의 맘속에 싹 트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타아앙!
타탕!
타탕!
사격 자세를 취한 레온이 지붕 위에서 적들에게 엄청난 속도로 총탄을 쏟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끄아아!”
“크억!”
“피, 피해라!”
공격이 실패한 무방비 상태의 격투가들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자, 젠킨스가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대체. 저 말도 안 되는 공격 속도는?’
그가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레온의 헤븐즈 플레어는 일반적인 유저의 상식을 넘어선 초당 공격 속도를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의 눈앞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연이어 떠오르고 있었다.
-연사 성공으로 공격 속도가 5% 증가합니다. (8중첩)
-연사 성공으로 공격 속도가 5% 증가합니다. (9중첩)
-연사 성공으로 공격 속도가 5% 증가합니다. (10중첩.)
-연사가 성공할 때마다 10중첩 효과가 유지됩니다.
10중첩으로 50%까지 올라가는 헥스테크 건틀릿의 연사 성공 보너스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것이 아스트랄 바디 스킬의 공격 속도 증가 버프와 합쳐지며 현재의 가공할 공격 속도를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페가수스의 격투가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자.
뒤에 있던 코르부스의 마법사들이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들!”
“비켜라, 우리가 상대한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은 힘을 합쳐 한 가지 스킬을 발동하였다.
“앱솔루트 배리어!”
그건 바로 강력한 방어막을 형성하는 스킬이었다.
이윽고 그들 모두를 뒤덮는 반투명한 반원형의 거대한 배리어가 나타났다.
수십 명의 고위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발동한 앱솔루트 배리어는 무척이나 견고했다.
티팅!
팅팅!
마력 탄환이 배리어를 강타할 때마다 격한 진동이 생기고는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총격이 모두 튕겨 나가고 있었다.
처척.
그렇게 자신의 공격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있자, 레온이 슬쩍 공격을 멈추었다.
그러자 기세등등해진 코르부스의 마법사들과 페가수스의 생존자들이 레온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거 방탄 배리어야! 이 개XX야!”
“왜 안 쏘냐! 이제 총알이 다 나갔냐!”
“넌 이제 뒈졌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저런 무지막지한 위력을 갖춘 아이템에 제약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사가 멈춘 것이 아이템에 과부하가 온 것 때문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조용히 총구를 거두고 있던 레온이 다시금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 레온이 조그맣게 입술을 달싹였다.
“장착…….”
그리고 그 말이 끝난 순간.
촤아악!
펄럭!
“……어라?”
“……뭐야, 저건?”
길드원들의 눈앞에 전혀 생각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건 바로,
“악, 마?”
“아니, 천사……인가?”
난데없이 레온의 등에 갑자기 여섯 장의 검은 날개가 솟아난 것이었다.
그랬다. 레온은 이전에 보스 몬스터 ‘아리스’를 잡고 획득했던 ‘타락천사의 울부짖는 천둥의 날개깃’을 장착했던 것이었다.
날개 아이템이라니.
이런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길드원들은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펄럭!
촤아아!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레온은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여섯 장의 검은 날개를 활짝 편 레온의 모습은 가히 마족과 비견할 만했다.
“떠, 떨어뜨려!”
“얼른 죽여!”
그 레온의 모습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젠킨스와 타일러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힘겹게 제정신을 차린 코르부스의 마법사들이 배리어를 유지하는 동시에 공격 마법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다크 라이트닝!”
“트로픽 선더!”
그들은 여러 속성 마법 중 가장 강력한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번개 마법을 택하였다.
파지지직!
촤지지직!
그들의 손을 떠난 전류의 줄기가 레온에게 직격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잠시 후, 그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최악의 결과가 나타났다.
-다크 라이트닝이 ‘레온’에게 1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트로픽 선더가 ‘레온’에게 2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 말도 안 돼.”
“……내 최대 마법의 대미지가 고작 25라고?”
번개 마법 저항력을 추가로 235나 올려 주는 날개깃 아이템의 부가 효과로 인해 토끼가 때린 것과 같은 수준의 약소한 대미지만이 레온에게 들어갔던 것이다.
다음 순간, 레온이 무슨 공격이 있었느냐는 듯한 여유로운 모습으로 앱솔루트 배리어 앞까지 날아갔다.
처억.
그러곤 헤븐즈 플레어의 총구를 배리어에 닿게 가져다 대었다.
탕!
타탕!
타타탕!
레온이 쉬지 않고 마력 탄환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탄환이 맹렬하게 배리어를 직격해 댔다.
천둥 벼락이 치듯 굉음이 쏟아졌다.
“지, 지켜!”
“막아 내!”
마법사들은 공격을 하던 것도 멈추고 배리어의 유지에 모든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콰지직!
빠직!
견고했던 배리어에 금이 가며 산산이 쪼개졌다.
총소리가 멈췄다.
찰나의 순간, 공간에 얼어붙은 것과 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려오던 그때, 레온이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모두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그때 레온이 목소리를 높이며 한 가지 스킬을 발동하였다.
“플레어 버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