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68화 (268/332)

# 268

블루 아이즈와 투스 연합의 전쟁이 끝난 후, 오랜 시간 평화로웠던 나하르 영지의 분위기는 오늘 그 이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무슨 이유에선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투다다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영지 내의 NPC들이 줄을 지어 삶의 터전을 벗어나 영지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등에는 급하게 싼 것이 확실해 보이는 짐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NPC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불안감과 공포심이 떠올라 있었다.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스가 탄식을 하며 말을 꺼냈다.

“뭐긴 뭐겠어. 영지 곳곳에서 시체가 쏟아지더라니……. 이제는 지들끼리 칼부림을 하려나 보지.”

그러자 자식들을 챙기던 던밀이 말을 꺼냈다.

그랬다. 그들이 이른 아침부터 대피 행렬을 만들고 있는 원인은 페가수스 길드와 코르부스 길드의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던 것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고.”

“휴, 이놈들이 오기 전의 이계인들이 좋았는데.”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떠올려서 뭐 하나. 자 자, 얼른 대피나 하자고.”

대피가 늦어지면 저들의 전투의 여파에 휩쓸릴 수 있었다.

던밀이 빠르게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따르던 한스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상점이 무사할까 걱정이 되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숨만을 푹 내쉬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양쪽에 줄지어 대치하고 있는 페가수스와 코르부스의 길드원들의 모습뿐이었으니까.

싸아-.

수많은 이들이 한곳에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쥐죽은 듯한 정적만이 공간 내에 감돌고 있었다.

중앙 분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페가수스와 코르부스의 길드원들은 서로를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로 완전 무장한 채,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이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을 의미하리라.

하지만 양쪽 지휘관 모두 그 시작을 자신들이 열려는 생각이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칫, 증거는 확실하지만 섣불리 선공을 했다가는 명분을 잃을 수 있어…….’

‘흥, 증거까지 조작해 놓고 선공은 안 하겠다 이거냐? 누구를 멍청이로 알고.’

어찌되었건 두 길드는 현재 동맹 상태이지 않던가.

선제공격을 하는 쪽이 명분을 잃은 것은 뻔할 뻔 자였던 것이다.

양 군의 지휘관인 타일러와 젠킨스는 상대를 죽일 듯이 바라보며, 상대가 먼저 제 풀에 지쳐 칼을 휘두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대형 길드의 간부를 맡고 있는 이들.

쉽사리 인내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눈싸움을 하려고 이렇게 찾아온 거냐? 꼬라지가 우습구나.”

“흥, 이따가 처맞고 꼴사납게 질질 짜지나 말아라.”

그렇게 서로를 향한 도발만이 이어지며, 시간은 계속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에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레온은 혀를 찼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쯧. 자식들, 간 한번 엄청나게 보네.’

밥상은 다 차렸는데, 양쪽이 숟가락을 들지를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순간 레온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후후, 불을 지펴 줘 볼까.’

이어 레온은 조심스레 누군가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쓰레기 같은 코르부스 놈들, 죽어라!”

“죽일 테면 죽여 보시지!”

계속해서 도발이 이어지던 중간에.

피유웅!

피유웅!

갑작스레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성이 모두의 귓전에 울려 퍼지더니.

푹!

푸푹!

“읏!”

“헛!”

곧이어 양측 지휘관이 타고 있던 말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시체가 되어 버린 말을 확인했다.

‘뭐, 뭐야?’

‘화살?’

거기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누가 공격을 한 거지?’

양쪽 지휘관 모두 의아할 따름이었다.

상대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절대 공격을 하지 말라고 당부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한데 누군가 명령을 어기고 화살을 쏘아 낸 것이었다.

하지만 양측 길드원들 모두 지휘관의 명령을 어긴 이는 없었다.

동시에 화살을 쏘아 낸 이들은 바로 레온이 미리 길드원들 틈 속에 침투시켰던 연금술사들이었던 것이다.

스킬을 사용해 모습을 변신한 그들은 들킬 일이 없었다.

그리고 레온은 자신이 신호를 보내면 혼란한 틈에 지휘관의 탈 것에 공격을 하라고 명령을 내려 놓았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젠킨스와 타일러는 펼쳐진 상황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곧이어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되었다.

우아아아!

화살 공격을 적들의 전투 개시 신호로 받아들인 길드원들이 이내 함성을 지르며 적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측의 지휘관들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어차피 시작된 일이다.

우리 편의 누가 쏘았는지 같은 사소한 것은 잠시 뒷전으로 밀어 두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쪽이 먼저 화살을 당겼다는 것이 중요해!’

젠킨스와 타일러 두 사람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적들이 야욕을 드러냈다! 모두 공격하라!”

“동맹을 저버린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철퇴를 내리찍어라!”

파바밧!

채챙!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도 자신의 무기를 빼 들며 전투에 참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레온이 음흉한 미소를 머금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둘이 힘 좀 빼시라고.’

나하르 시가지 전투의 시작이었다.

끄아아!

콰가강!

처절한 비명과 고막을 울리는 폭음이 한데 뒤섞이고 있었다.

페가수스와 코르부스 모두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 길드라는 것일까.

그들의 숙련된 전투원들과 이끄는 간부의 전투 실력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연환 충파격!”

“가로막는 적을 재로 만들어라, 블러스트 번!”

그들이 쏘아 내는 강력한 스킬의 위력에 도시의 건물들이 불타오르고 붕괴되고 있었다.

양측 길드의 전투부대가 지닌 특성은 확연히 달랐다.

페가수스 길드는 너클과 각반을 장착하고 있는 격투가로 이루어진 이들이 쉴 새 없이 돌진하고 있었고.

그에 반해 코르부스 길드는 긴 로브에 지팡이를 지니고 있는 마법사들이 그 공격을 피하며 캐스팅을 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각 길드에서 현재 활약을 하고 있는 주공격 부대라는 것이지, 다른 클래스를 지닌 유저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유롭게 전황을 살피던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일반 길드원들 중에 크게 신경 써야 할 놈들은 없는 것 같긴 한데…….’

한데 그때, 고개를 돌려 젠킨스를 바라보는 레온의 눈에는 이채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미친 듯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젠킨스에게서 전혀 생각지 않았던 특이점이 발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 희미하지만 사도의 힘이 느껴져. 뭐지?’

그랬다. 젠킨스에게서 느닷없이 사도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흑염룡의 거태도가 희미하게나마 진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전에 사도들을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미약한 정도에 불과했다.

레온이 차오르는 궁금증을 숨기지 못하며 흑염룡에게 질문을 건넸다.

“야, 저놈도 사도인거야?”

하지만 그에 대한 흑염룡의 대답은 조금 이상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 있소이다, 주인.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고개를 갸웃하던 레온이 재차 물었다.

“그게 뭔 소리야. 자세하게 좀 말해 봐.”

그러자 상당히 놀라운 대답이 이어졌다.

-말 그대로 이외다, 주인. 마신의 사도 중에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에게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이가 있소이다.

추종자에게 사도의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레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 히든 클래스의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으니까.

순간 레온의 눈에 탐욕의 빛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이 힘을 잘만 이용하면, 떼돈을 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기 때문이었다.

히든 피스를 얻고자 천금을 아끼지 않는 흑우들은 세상에 잔뜩 널려 있지 않던가.

순간 레온이 젠킨스를 바라보며 군침을 다셨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저놈의 윗대가리면 페가수스 길드의 수장이겠군.’

레온은 머릿속에 자신의 먹잇감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회색빛 시체가 도시 곳곳에 늘어져 있었다.

막대한 피해가 양측 모두에 누적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양쪽의 전력은 비등했기에, 쉽사리 한쪽으로 승기가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분명히 전세에 커다란 영향을 줄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후우우!

콰아앙!

여태까지의 것들과 비교가 되지 않은 엄청난 폭음에 전투를 치르던 양측의 길드원들이 깜짝 놀라 그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개자식, 드디어 만났구나!”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그러자 거기에는 양쪽의 지휘관들이 서로와 맞붙어 있었다.

파바밧!

먼저 움직인 것은 젠킨스였다.

돈의 힘으로 유명한 페가수스 길드의 간부답게, 그의 전신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고가의 아이템 장비들이 풀세팅되어 있었다.

타닷!

덩치와 맞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돌진한 그는 땅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허공에 떠올라 캐스팅을 하고 있는 타일러에게 공격을 쏟아 내었다.

“흑암 참풍각!”

엄청난 속도로 휘두르는 그의 다리에 검은 소용돌이가 감싸져 있었다.

가공할 위력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타일러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프로즌 배리어!”

히든 직업, ‘엘리멘탈리스트’을 지니고 있는 그는 자신의 방어 마법을 젠킨스 따위가 깨뜨릴 수 있겠느냐고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순간, 백색의 빙결 방어막과 검은 폭풍이 격돌했다.

“크악!”

그러나 상대를 얕잡아본 대가는 컸다.

배리어가 산산조각 나며 충격을 못 이기고, 타일러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처척.

그에 반해 사뿐히 착지하는 젠킨스는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로이 님의 힘을 받은 내가 질 리가 없지!’

“……윽, 이 개자식이.”

타일러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리타이어할 정도의 피해는 아니었지만, 가볍게 볼 손해도 아니었다.

그가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는 아연실색하였다.

타일러가 밀리자 사기가 떨어진 코르부스 길드원들은 속수무책으로 페가수스 길드원들에게 썰리고 있었던 것이다.

‘크윽, 안 되겠어. 길드장님이 말리셨지만 그걸 꺼내는 수밖에.’

그 상황을 확인한 타일러가 고민 끝에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젠킨스가 성큼성큼 그런 그에게 다가오며 오만한 눈빛을 쏘아 내며 말을 꺼냈다.

“후후, 이제 다 끝난 것 같은데 항복하시지?”

“개소리하지 마라!”

그렇게 소리를 치며 타일러는 품속에서 한 가지 물건을 꺼내었다.

그에 순간 흠칫한 젠킨스였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비웃음을 띄웠다.

“풉, 뭐냐. 구세군 활동이라도 할 생각이냐?”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타일러가 난데없이 품속에서 핸드 벨을 꺼냈던 탓이었다.

‘언제까지 그 거지 같은 웃음이 이어지는지 보겠다!’

타일러는 그 반응을 무시하며, 곧바로 핸드 벨에 봉인된 소환수를 꺼내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위이잉-!

타앙-!

탕!

갑자기 두 지휘관의 귓가에 선명한 총성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뭐지?’

‘……총성?’

이어진 다음 순간.

전투를 속행하려던 두 사람은 뒤이어 펼쳐진 광경에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투둑.

털썩.

자신의 길드원들이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바닥에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원 샷 원 킬?’

‘한 방에 죽어 간다고?’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귓전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삐이!

삐이!

-길드원 ‘마룬’이 ‘아슬란’의 ‘레온’에게 처치당했습니다.

-길드원 ‘헤본’이 ‘아슬란’의 ‘레온’에게 처치당했습니다.

충격적인 상황에 그들의 사고가 일순간 멈추었다.

‘아슬란……?’

‘잠깐만, 아슬란이라면?’

잠시 후, 힘겹게 제정신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고 있었다.

뚜벅뚜벅.

한데 그때였다.

그들의 눈앞으로 한쪽 손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총구를 달고 있는 의문의 남자가 그들에게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두 길드의 전투원들은 하던 전투도 멈추고 모두 시선을 그에게 고정했다.

그러자 남자는 그들에게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2라운드 시작이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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