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67화 (267/332)

# 267

케인이 자기애에 심취해 있자, 레온이 영 못마땅한 눈빛을 띠었다.

‘끄응, 내가 조금만 참자.’

그러곤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저 꼴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머릿속으로 상기하기 시작했다.

레온이 적들을 암습하는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연금술사들의 손을 빌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건 바로.

‘쩝, 내가 저놈들을 처치하면 바로 내 정보가 알려져 버리니까…….’

라는 것 때문이었다.

현재 아슬란은 서부 지역을 모두 제패하고, 블루 아이즈의 본대에 합류한 시점이었다.

이미 투스 연합과 길드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만일 레온이 페가수스 길드의 적들을 처치하게 되면,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자연스레 자신에 대한 정보가 적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저들끼리 자중지란을 일으키려는 레온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 터였다.

그런 문제점을 인식한 레온은 고민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데빌즈 네스트’를 이용하면 문제가 해결됨을 깨달았다.

‘아직 연금술사들은 암스트롱을 구출하지 못해서 완벽한 내 세력으로 편입이 되진 않았어. 그 말인즉 데빌즈 네스트가 길드들을 공격해도 그건 별개의 세력이 암습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뜻이지.’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그의 세력에 완전히 속해 있는 이들을 통해 페가수스 길드를 공격하면, 당연하게도 아슬란 길드가 공격을 가한 것으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데빌즈 네스트는 아직 레온의 정식 세력이 아닌 연금술사들의 독자적인 세력이지 않던가.

그렇기에 적들이 죽어도 시스템 메시지에는 자신을 처치한 상대가 물음표로 나왔던 것이었다.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한 계책이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회색빛 시체의 향연을 보니 확실하게 먹혀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후, 아직 퀘스트를 못 깬 게 도리어 도움이 될 줄이야.’

레온이 그렇게 적들의 시신들을 바라보며,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레온 님, 풀려난 놈들은 다 도망간 것 같습니다.”

케인이 신입 길드원들이 모두 필드를 벗어났음을 확인하고는 말을 꺼냈다.

페가수스 길드에 말을 퍼뜨리기 위해 일부러 살려 보낸 이들이었다.

레온이 순간 씨익, 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자, 그럼 이제 제대로 오줌 좀 지리게 해 줘 볼까.’

그 사악하기 짝이 없는 미소에 케인이 소름이 돋는지, 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레온이 한마디를 건넸다.

“다음 장소로 간다.”

파바밧.

샤아악.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싸아-.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자, 필드에는 을씨년스러운 안개만이 남게 되었다.

* * *

나하르의 페가수스 길드 회의실.

쾅-!

콰직!

갑작스레 내부에 커다란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젠킨스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친 탓이었다.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분노에 찬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젠킨스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부관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젠킨스의 위압감에 압도당한 부관은 벙어리가 된 듯 닫힌 입을 열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젠킨스가 그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소리를 질러 댔다.

“어떻게 한날에 신입 길드원 교육을 나간 모든 담당관들이 전멸을 하냔 말이다!”

한데 그가 그렇게 화가 날 만도 해 보였다.

다섯 군데의 사냥터에서 이루어지던 신입 길드원 교육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이었다.

아니, 실패 정도가 아니었다.

모든 교육 담당 유저들이 몬스터에게 전멸당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젠킨스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힘겹게 받아 내는 부관은 죽을 맛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사냥터에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를 파악하는 일은 모든 일 중에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던가.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

뿌득.

그때 젠킨스가 소리가 나게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완전히 웃음거리가 되고 있겠어.’

안타깝게도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하긴 신입 길드원을 이끌고 교육을 나가 몬스터에게 죄다 처참하게 죽었는데, 비웃음을 안 당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한 코르부스 길드가 작정하고 이 소식을 퍼뜨리고 있어, 페가수스 길드의 이미지가 완전히 실추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젠킨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이상하잖아. 하나도 아니고 어떻게 동시에 다섯 곳이 전부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그는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부관에게 한 번 더 질문을 건네었다.

“후우,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을 해 봐. 다들 어떤 몬스터에게 당했다고?”

그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부관이 대답을 내뱉었다.

“가, 강제 종료 당한 이들에게 물어보니 한결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강철로 된 ‘크라켄’에 당했다고…….”

그 찰나의 순간.

잔뜩 흥분했던 탓에 놓치고 지나갔던 단서 하나가 젠킨스의 머릿속에 벼락처럼 꽂혔다.

‘잠깐만, 크라켄이라고?’

그건 바로 길드원을 처치한 몬스터의 종류였다.

‘분명히 리로이 님이…….’

그러던 그때, 그들의 길드장인 ‘리로이’와 간부들이 은밀히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코르부스 놈들의 비장의 수는 아마 여태껏 보지 못한 소환수들일 거다.

-……소환수 말입니까?

-그래, 지금부터 강력한 소환술사들을 상대할 대책을 찾아 놓도록.

강철로 이루어진 크라켄이라니.

여태껏 판테라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이 된 적이 없는 몬스터이지 않던가.

게다가 몬스터에게서 처치를 당했음에도, 싸웠던 대상의 이름이 물음표로 나왔다.

그 두 가지 단서와 리로이의 말을 종합해 보자.

젠킨스는 그제야 이 사태의 내막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부들부들.

젠킨스가 참을 수 없는 화에 몸을 떨며 속으로 생각했다.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이 개자식들이.’

그런 젠킨스의 생각은 모른 채, 부관은 계속하여 보고를 이어 가고 있었다.

“……이번 사태의 여파로 신입 길드원들 중 꽤 많은 숫자가 탈퇴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젠킨스가 말을 끊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하달했다.

“신입 길드원을 제외한 모든 길드원에게 은밀히 알려라.”

“네?”

고개를 갸웃하는 부관에게 젠킨스가 말을 꺼냈다.

“……이 모든 건 코르부스 길드의 소행이다. 단언컨대 앞으로 비슷한 류의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할 거다. 앞으로 모든 일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라.”

그에 부관을 포함한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너무 놀란 나머지 한참을 어리둥절해하던 그들은 이내 상황이 파악이 되자 젠킨스와 마찬가지로 분노를 뿜어냈다.

그때 젠킨스가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부관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현재 영지 내에 있는 최정예 전투원들로 팀을 구성해서 나에게 데려와라.”

“……네, 알겠습니다.”

그에 부관이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부관은 자신의 젠킨스를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젠킨스의 눈빛이 진득한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받은 만큼 갚아 주마.’

이 순간, 젠킨스의 마음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 * *

나하르 영지의 분위기가 뒤숭숭하기 짝이 없었다.

페가수스 길드에 이어 코르부스 길드에서도 비슷한 류의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 나하르 영지 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던 탓이었다.

다혈질인 코르부스 길드의 타일러는 젠킨스를 찾아가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였다.

“이 자식들이, 룬테라에서 뺨 맞고 시공에서 트롤한다더니. 감히 애꿎은 우리를 건드려?”

하지만 젠킨스 또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흥,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행패 부리지 말고 조용히 꺼지시지?”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경고를 면전에 쏟아 내고는 타일러는 부하들을 이끌고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두 길드의 분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타일러가 암살자까지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젠킨스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고, 그들 또한 암살대를 조직하여 똑같이 맞불을 놓았다.

나하르의 곳곳에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의문사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망할 페가수스 놈들!”

“뭐? 코르부스 새끼들이! 죽고 싶냐!”

대놓고 칼부림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가만히 물러나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레온은 팝콘을 먹으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완전히 계획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적들은 저들끼리 계속된 싸움으로 인해 빠르게 약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목표했던 데까지 그들이 추락하자.

‘자,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 볼까.’

레온은 다음 순서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두 길드는 갈등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딱 한 가지만은 지키고 있었다.

그건 바로 각자의 간부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일까지 벌어지고 나면 정말 전면전으로 가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을 서로가 아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이 바로 레온이 가장 원하는 바였다.

그날 밤.

“크억!”

페가수스 길드의 처소에서 한 유저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암살을 당했다.

케인이 부리는 오토마톤의 강철 손톱에 젠킨스의 부관의 몸이 관통당해 있었다.

털썩.

바닥에 무너져 내린 부관의 몸이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스윽.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레온이 이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러곤 시체가 늘어져 있는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바람에 살랑거리며 떨어진 그것은 다름 아닌 ‘완장’이었다.

이어 실수로 떨어뜨린 것처럼 살짝 감추어 놓은 레온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자, 도화선에 불은 붙었다.’

그 완장의 정체는 바로.

[코르부스 길드 증표]

분류 : 악세사리

등급 : 無

내구도 : 파괴 불가

팔뚝에 걸 수 있는 완장으로, 착용자가 코르부스 길드에 소속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증표이다.

일전에 뒤치기 삼인조에게서 획득했었던 코르부스 길드의 증표였다.

언젠가 써먹을 순간이 있겠지 하며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역시나 이렇게 너무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와 있었다.

‘땡큐다, 멍청이들아.’

그렇게 레온은 속으로 삼인조를 조롱하고 난 후, 빠르게 범죄 현장을 떠나갔다.

그리고 이튿날.

레온이 암살의 증거를 놓고 떠난 것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그동안 발생했던 비겁한 암살 행위에 확실한 증거가 나타났다! 길드원들의 무고한 희생을 피로써 되갚아 주자!”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한 젠킨스는 눈이 돌아가, 곧바로 타일러에게 선전포고를 날렸으며.

“조작된 가짜 증거를 가지고 감히 우리를 협박하다니! 절대로 넘어갈 수 없다! 본때를 보여 주겠다!”

타일러 또한 전혀 물러서지 않았던 것이다.

나하르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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