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
투스 연합과 블루 아이즈.
3대 길드의 전쟁은 사실 유저들에게 식은 떡밥이 된 지 오래였다.
투스 연합의 맹공으로 블루 아이즈의 패배가 기정사실화되며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전혀 생각지 않은 길드의 참전으로 인해 커뮤니티의 게시판이 다시금 뜨겁게 달구어 지고 있었다.
반응에 힘입어 기자들의 기사도 분 단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히든 클래스의 보고, 아슬란! 전쟁에 참전하다?!]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아슬란의 참전. 전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알 수 없는 타이밍. 어째서 지금인가.]
[아슬란의 병력은 어느 정도? 예측을 해 본다!]
그랬다. 아슬란 길드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블루 아이즈의 동맹으로서 참전을 선포한 것이다.
화려하게 거병식까지 열면서 말이었다.
수세에 몰린 블루 아이즈가 반전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냐는 예측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극소수의 의견일 뿐이었다.
아슬란의 참전은 전문가든, 대중들이든 회의적인 반응이 거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길드가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드네.
-레알 트루임. 히든피스 수집꾼인 길드장이 능력이 있는 건 인정하겠는데, 3대 길드의 싸움에 비빌 짬은 안 되지 않나?
-ㅋㅋ딱 봐도 콩고물 주워 먹으려고 덤벼드는 각 안 보임?
-주제 파악 못하면 X 되는 건 시간문제임.
-……아디오스, 아슬란.
-양보단 질임. 거병식은 오지게 화려하게 했던데 거기다가 군비 다 썼을 듯.
-ㅇㅈ? ㅇㅇㅈ.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극단적인 댓글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직업 전직소가 연이어 나타나며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직도 아슬란은 북부 대륙의 서쪽 변두리에 있는 작은 영지라는 선입견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여태껏 아슬란이 북서부에서도 단 한 번의 길드전도 치르지 않은 사실 또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거병식에서 공개된 엄청난 병력의 숫자도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모은 돈을 뿌려 오합지졸들을 잔뜩 모았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게 나오거나 말거나 브룩은 거병식이 끝나자, 곧바로 출정을 하였다.
총지휘권자인 레온이 공석이었지만, 미리 레온이 메시지를 통해 체계를 확실히 잡아 놓았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서쪽 끝에서 중부 지역을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진격 방향이었다.
아슬란 길드원을 제외한 모든 유저들이 자살 행위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었지만.
……그 평가가 완전히 반전되는 것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줄지어 이동하고 있는 아슬란 길드의 병력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행렬의 가장 선두에 레온을 대신해 지휘관을 맡고 있는 브룩이 있었다.
말을 탄 채 병사들에게 위엄이 있어 보이려 한껏 어깨를 피며 노력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끄응, 이제 영지를 빠져 나왔고. 그다음은 뭐더라?’
미리 레온이 그에게 정리해 주었던 행동 지침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전투에 참전을 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병단을 손수 이끌어 본 적이 없는 그는 패닉 상태에 빠질 것만 같았다.
개인 전투와 병력을 운용하여 다대다 전투를 치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정말 레온이 지침서라도 주지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도망을 치고 싶었으리라.
‘오오, 여기 있다.’
그러던 그때, 찾고 있던 단락을 발견해 낸 브룩이 밝은 표정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한데 그렇게 쭉쭉 읽어 내려가며 공부를 하던 그는 문득 머릿속에 드는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건 바로.
‘휴, 그 미친놈은 맨날 솔플만 했으면서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거지?’
라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브룩은 이내 그 해답을 알아차렸다.
‘이게 다 불공평한 재능빨이야.’
역시 세상은 재능충에게 이롭게 돌아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자연스레 브룩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스윽.
그러던 그때였다.
브룩의 곁에서 말을 타고 있던 두 사람이 그에 까이 다가왔다.
늙은 선인과 노집사였다.
“브룩 님,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까?”
“뭘 그렇게 허둥지둥하시는 거죠?”
그들은 바로 도사 태을과 호문클루스 포바였다.
두 사람은 현재 브룩의 가까이에서 책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태을은 원래 영지에서도 내정을 총괄하는 대리 영주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포바가 이곳에 있는 것은 조금 의아하였다.
안 그래도 포바는 다크 드워프들을 이주시킨 후, 곧장 레온에게 돌아가려 했지만, 브룩을 도와주라는 레온의 명령이 떨어지며 합류를 한 것이었다.
레온이 포바를 브룩에게 붙인 이유는 다른 것이 없었다.
유우와 네기, 멜로니와 리안 들은 각각 부대의 대장을 맡아 후방에 자리하여야 했기 때문에, 혹여나 지휘관인 그에게 불상사가 생길까 봐.
가장 든든한 포바에게 호위를 맡긴 것이었다.
그때 뒷머리를 긁적이며 브룩이 태을에게 대답을 하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많은 병력을 지휘하려니 살짝 긴장이 돼서요.”
“걱정 마십시오. 브룩 님은 잘 해내실 겁니다.”
태을이 사람을 안심시키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을 해 주었다.
그에 브룩은 절로 힘이 솟는 것 같았지만.
이내 이어진 포바의 한마디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쯔쯔, 뭐 저리 몸이고 정신이고 약해 빠졌는지, 참. 아무리 봐도 고결하신 주인님과 맞지 않는 부하란 말이지.”
레온에게 대하는 예의 있는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포바는 브룩을 벌레 쳐다보듯이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브룩이 부들부들 떨며 포바에게 소리를 쳤다.
“누가 부하야! 난 친구라고!”
하지만 포바는 코웃음을 치며 제자리에 돌아갔다.
태을은 그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포바가 브룩을 호위하게 된 이후로 항상 벌어지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포바가 저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주인의 곁에 돌아가지 못한 분노 때문이었다.
브룩이 약해 빠진 까닭에 자신이 주인도 아닌 이를 호위해 주어야 된다는 사실이 그를 짜증의 화신으로 변화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때 브룩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오, 유호한테 쥐 잡듯이 패 놓아도 되냐고 물어볼까.’
브룩이 포바를 보며 솥뚜껑 같은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문클루스 대 브룩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을 듯했다.
스르륵!
슈악!
갑작스레 브룩의 눈앞에 검은 형상 두 개가 솟구쳤다.
그들은 일렁이는 그림자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으응? 무슨 일이지.”
브룩이 놀란 기색 없이 그것들에게 말을 건넸다.
촤아악!
그러자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사람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이윽고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의 정체는 카피탄과 밍시아였다.
평범한 영지민에 불과했던 두 NPC는 암살 길드의 교육과 유우가 전담한 실전 전투로 실력이 급상승.
어느새 영지 내에 새로이 만들어진 암살대의 대장과 부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 굳은 얼굴로 카피탄이 말을 꺼냈다.
“전방의 영지의 병력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암살대를 이끌고 전방에서 정찰 업무를 진행 중이던 두 사람은 가까이에 있는 영지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었다.
그의 말에 브룩이 한없이 진지하게 변화했다.
출정을 하고 난 후, 첫 전투에 돌입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순간 태을과 브룩의 눈이 마주쳤다.
브룩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을이 일사분란하게 명령을 하달했다.
둥둥!
곧이어 커다란 전고(戰鼓)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채챙!
채채챙!
그와 동시에 병력이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고 이동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싸아-.
아슬란의 대군은 서부 지역을 횡단하며 처음으로 적들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코르부스, 페가수스 길드가 아니었다.
중부로 이동하는 길목에 영토를 지니고 있는 또 다른 군소 길드였다.
행렬을 이룰 정도의 대군이 자신들의 영지를 통과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리라.
말문을 먼저 연 것은 브룩이었다.
“길만 내 주시면 조용히 지나가겠습니다.”
브룩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할버드 길드의 수장 헤이치아는 콧방귀를 끼며 대답했다.
“흥,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역시나 상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대군을 그냥 들여보냈다가 갑자기 안에 들어와서 난리를 친다면 결코 이길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이해한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브룩이 다시 한 번 정중히 제안을 건넸다.
“죄송하지만 그쪽의 영지를 건너지 않으면 많이 돌아가야 합니다.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헤이치아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 말을 무시했다.
“낄낄, 개소리 말고 영지를 건너가고 싶으면 돈을 내놔라. 두당 100골드씩 내면 내 흔쾌히 발을 딛게 해 주지.”
두당 100골드는 보내 줄 생각이 없음을 의미했다.
상대의 비아냥거림에 브룩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스윽.
이어진 다음 순간.
‘자, 이제 마지막 걸 확인해 볼까.’
브룩은 지침서의 단락을 확인했다.
[15. 서부 영토들이 길을 비켜 주지 않을 시.]
-‘……’.
거기에는 문장도 아닌 단 하나의 단어만이 적혀 있었다.
피식.
브룩의 표정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미친놈.’
그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수호 기사의 힘을 끌어 올렸다.
투콰아아!
브룩의 전신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쏟아지자, 시시덕거리던 적들의 표정이 일시에 조각상처럼 굳었다.
브라움 대산맥에서의 전투로 브룩은 최상위 랭커 수준까지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이어 브룩이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쏟아 내었다.
“다들 들어라! 영주님의 명령이다!”
레온의 명령.
그 한마디에 모든 병사들의 눈과 귀가 브룩을 향했다.
“건방지게 우리를 가로막는 자!”
레온이 지침서에 적어 놓은 해결책.
그건 바로.
-대학살
그 세 글자였다.
“한 놈도 남기지 마라!”
브룩의 말이 끝난 그 순간.
슈아아아!
흰 가면을 쓴 암살자 부대가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고.
처처척!
투다다다!
백인대들이 자신의 몸에 스켈레톤을 두른 채, 적들에게 맹렬히 돌진했으며.
슈와아앙!
태양 샤먼들이 버프 스킬을 미친 듯이 쏟아 내었고.
크와아앙!
달 샤먼들이 각기 다른 짐승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달려들었다.
따다닥!
따닥!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네크로맨서들이 소환한 거대한 스켈레톤들이 적들을 향해 진격을 해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지 곳곳에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장엄하기까지 한 지옥도가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