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62화 (262/332)

# 262

세토가 갑작스러운 효과음에 어리둥절해하던 그때.

그녀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알지 못하는 상대’에게 화상 채팅 요청이 도착하였습니다.

-연결하시겠습니까?

‘……누구지?’

연락을 건네 온 상대가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 세토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

그녀의 머릿속에 이틀 전 브룩에게서 왔던 메시지들의 내용이 떠오르고 있었다.

-누나, 제 친구가, 아니 저희 길드장이 참전에 긍정적으로 생각을 정했어요. 그에 관련해서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네요.

브룩의 길드장이라는 말에 처음 세토는 조금 머뭇거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마조히스트라고 했었나?’

상대방이 범상치 않은 별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의 이상 취향은 사소한 단점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지금은 설령 썩은 동아줄이라도 가릴 때가 아니야.’

길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녀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라 악마와도 손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고 싶은데……. 지금 너무 바빠서 그럴 상황이 아니네요. 그 친구에게 사흘 안에 누나에게 연락할 거예요! 모르는 번호여도 꼭 받으세요!

생각해 보니 오늘이 그렇게 마지막으로 메시지가 온 후, 딱 3일이 되는 날이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순간 그녀가 이러다가 통화가 종료될 것을 걱정하며, 곧바로 연결을 수락했다.

위잉!

슈웅!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네모난 화상 통화 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연결이 진행 중인지, 물결 표시만 나올 뿐이었다.

상대방의 얼굴은 떠올라 있지 않았다.

‘흠, 그럼 일단.’

스윽.

그러자 세토는 갑자기 분주해진 그녀를 의아해하며 바라보고 있는 리루에게 말을 꺼냈다.

“리루야, 미안한데 잠깐 통화 좀 하게 자리 좀 비켜 줄 수 있니?”

“아, 넵, 언니. 알겠어요.”

한없이 진지한 세토의 표정에 당황해하던 리루는 이내 회의실 바깥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이제 온전히 세토만이 남아 있었다.

띠링.

그러던 그때, 드디어 연결이 완료되었다.

물결 표시가 사라지고, 수더분한 인상의 남자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와, 이거 왜 이리 연결이 안 되냐. 어라? 된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남자는 레온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른 누구의 모습으로 변화한 것이 아닌 제대로 된 본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평범하네.’

서로 보이는 것을 확인하자, 세토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블루 아이즈의 길드장을 맡고 있는 세토입니다.

세토는 일전에 레온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레온을 암흑투기장과 종교재판소 앞에서 만났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위장을 한 상태였으니까.

-……역시 맞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인사 이후에 들려온 레온의 대답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네?

세토가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란 반응을 보이자, 레온이 고개를 가볍게 가로 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닙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브룩에게 연락 받으셨죠? 아슬란 길드의 길드장인 레온입니다.

레온이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레 넘어가자, 세토 또한 금세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통성명을 마친 두 사람의 눈빛이 빠르게 교차했다.

눈이 맞은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면면을 파악하기 위한 전초전이 시작된 것일 뿐이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먼저 세토가 단도직입적으로 레온에게 질문을 던져 왔다.

-……브룩에게 말을 들어 보니, 길드전에 참전을 생각하고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신가요?

훅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오는 상대방의 화법에 레온이 흠칫 놀랐다.

‘이것 보소?’

하지만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 뭐 거의 확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레온의 대답에 애매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상대방을 한번 떠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일부러 그렇게 말을 꺼내 본 것이었다.

그에 세토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거의’라면 안 할 수도 있다는 건가요?

레온이 작게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뭐, 그렇게 될 수도 있죠.

싸아-.

그러자 순간 공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충분히 상대방이 놀리는 것이라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짜증 섞인 말을 내뱉거나,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세토는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차분히 말을 건네었다.

-후, 원하시는 바가 있으시면 바로 이야기를 해 주시죠. 아시다시피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당장 아쉽고 도움이 급한 와중이지만, 그녀의 태도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구차함과 절박함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호오.’

그에 레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섣불리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마음에 드네.’

레온은 오히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만일 그녀가 비굴하게 도움을 요구하고 나왔다면, 정말로 그는 참전을 재고했을 수도 있었다.

‘길드장을 보면 길드원들의 사이즈가 나오는 법이니까.’

레온은 미리 보았던 세토의 전투 동영상을 통해 ‘세토’와 ‘카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흑투기장에서 보았던 뛰어난 실력에 이 정도의 지략이라면, 그 길드원들도 분명히 실력들이 있으리라.

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떠보던 태도를 거두었다.

그러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건넸다.

-그렇게 바로 말씀해 주시니 빠르게 교섭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요구는 그쪽에 크게 부담되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 말 다음에 레온이 약간 뜸을 들였다.

그러자 세토의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레온이라고 했나? 이자, 대체 뭘 원하는 거지.’

당최 짐작이 가지를 않았던 탓이었다.

북부 대륙의 모든 영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직업 전직소를 지닌 곳의 수장.

아슬란은 영지의 많은 것들이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분명히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으리라.

세토가 고심을 거듭하고 있던 그때.

드디어 레온의 제안이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제가 원하는 것은 ……입니다.

한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레온의 제안을 들은 세토가 별안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어라?’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결코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요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들은 까닭이었다.

두 눈을 끔뻑이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정말 그게 다예요?

그에 레온은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로 시큰둥하게 말을 꺼냈다.

-왜요, 해 줄 수 없습니까?

-아뇨, 그 조건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게 가능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세토의 말이 이어지자마자.

-오케이, 그럼 받아들인 걸로 하고 바로 계약을 진행해 볼까요?

레온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그에 세토는 다시금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었다.

레온은 일사천리로 정식으로 길드 간에 이루어지는 계약 시스템 메시지를 전송했다.

‘뭐지 대체?’

계약서 적힌 내용은 그들의 입장에서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세토는 잠시간 고민을 하다가 곧바로 승낙을 하였다.

띠링.

띠링.

그러자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력 간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블루 아이즈 길드와 아슬란 길드의 사이가 ‘동맹’ 관계로 격상하였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니, 정말로 계약이 성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세토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그녀가 레온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 보니까 브룩에게 부탁을 받고 그냥 도와주려고 했던 건가.’

그 와중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떠오른 것이었다.

한데 그때, 계약서를 흐뭇하게 모두 읽어 내려간 레온이 말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제가 좀 바빠서 이만 끊어야겠네요. 참전은 ‘최대한 빨리’ 하도록 하죠. 그럼 이만.

그렇게 급작스럽게 끊어 버리려 하자.

-자, 잠깐만요.

여태껏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며 그녀가 말을 건넸다.

피융.

하지만 화상 채팅 창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표정에는 황당함만이 떠올라 있었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레온이라…….’

레온. 그런데 그러고 보니 최근에 그와 비슷한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였더라.’

곰곰이 생각하자 떠오를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그 생각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벌컥.

“언니!”

갑작스레 닫혀 있던 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며 리루가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세토는 방금 아슬란과의 동맹이 이루어진 것 때문에 그녀가 놀랐으리라 예상했다.

세토가 설명을 해 주기 위해, 말을 꺼냈다.

“놀랐지?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타다닷.

하지만 말을 끊고 리루가 세토에게 한걸음에 다가왔다.

“그럴 때가 아니에요. 언니, 이거 좀 봐 봐요!”

그러곤 그녀에게 메시지로 링크를 하나 보냈다.

‘왜 저러지?’

세토는 고개를 갸웃하며 리루가 전송한 링크를 따라 들어갔다.

그건 바로 한 라이브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였다.

‘이건!’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의 내용을 보자마자,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영상 속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규모의 영지에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영상을 찍는 이가 영상의 시점을 계속하여 이동시키고 있음에도, 다 찍히지가 않았다.

한 곳의 영지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압도적인 병력이었다.

순간 세토가 혀를 내두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정도면 코르부스 길드나 페가수스 길드에 절대 밀리지 않는 정도인데.’

그러던 그때, 낯익은 얼굴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저건!’

그건 바로 브룩이었다.

그녀가 그제야 영상의 제목을 제대로 확인했다.

[아슬란 길드, 거병식 현장]

그랬다. 이 영상은 바로 아슬란 길드가 전쟁에 나서는 거병식을 촬영한 영상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최대한 빨리라고 하더니, 곧바로 참전하는 거였어?’

그때 리루가 흥분하여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 이 정도 병력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세토 또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을 보면 볼수록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설마 아슬란이 저 정도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 줄이야.

그러던 그때였다.

‘그래서……!’

놀란 그녀의 머릿속에 잠시 전, 레온이 요구했던 계약의 내용이 떠오르고 있었다.

-전쟁을 치르면서 원래 블루 아이즈의 영토였던 곳은 돌려주도록 하죠. ……하지만 그 외의 모든 새롭게 얻는 투스 연합의 영토들은 모두 저에게 넘겨주세요.

역전하는 미래를 전혀 그리지 못했기에, 허무맹랑하게 느꼈던 레온의 말이었다.

물론 지금도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기는 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근데 왜일까.’

그녀는 왜인지 그가 해낼 것만 같은 이상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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