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61화 (261/332)

# 261

도리토 영지는 북부 대륙의 중부에 위치한 중간 정도 크기의 평범한 영지였다.

하지만 최근에 이곳의 이름은 유저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이곳이 페가수스, 코르부스 길드 연합의 새로운 주 근거지로 선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블루 아이즈 길드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영지의 어느 곳에서도 블루 아이즈 길드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데 오늘 무슨 이유에선가 도리토 영지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평상시보다 더욱 많은 길드의 병사들이 영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현재 블루 아이즈의 밀려 있는 위치를 보았을 때. 이곳은 전쟁이 결코 벌어질 염려가 없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병사들이 이렇듯 긴장한 채 경비를 서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나 전쟁의 최전선에 나가 있던 양 길드의 길드장들.

즉 페가수스 길드의 ‘리로이’와 코르부스 길드의 ‘매덕스’가 동시에 행차하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주관의 회의실.

직사각형의 긴 탁자에 열댓 명이 되는 유저들이 주르륵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각기 페가수스, 코르부스 두 길드의 간부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손쉽게 양쪽이 어떤 길드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듯했다.

각기 풍기는 분위기와 차림새들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코르부스 길드는 하드코어한 악질 PK범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기에, 범죄자 집단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며.

휘황찬란한 아이템들로 중무장한 페가수스 길드 소속의 인물들은 한 눈에도 오만함이 가득해 보였다.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딱 한 가지 공통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빌어먹을 애송이 놈들!’

‘사회의 기생충 같은 놈들 같으니!’

서로 상대방을 극도로 경멸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같이 연합을 꾸리고 있다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원수들을 한 방에 가두어 놓으면 이런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았다.

그러던 그때, 페가수스 길드 쪽에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뭐, 안 올 것처럼 비싸게 구시더니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소.”

한껏 비아냥거리며 말을 꺼내고 있는 이는 페가수스 길드의 2인자인 ‘무라’였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는 그는 페가수스 길드에서 책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라의 말에 코르부스 길드 측 인물들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한 남자가 무라의 말을 받았다.

“공사가 다망하긴 하지만 우리 귀여운 도련님들을 보러 안 올 수가 있나. 서둘러 와야지.”

코르부스의 3간부 중 하나인 ‘트라포’의 말이 끝나자, 코르부스 길드원들이 킬킬거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양측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기싸움을 팽팽하게 이어 가며,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들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한 가지 때문이었다.

“그쪽이 사일란 영지를 가져가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흥! 벌써 공성에 성공하며 깃발을 먼저 꽂은 쪽이 가져가기로 한 약조를 잊은 거냐?”

그건 바로 그들이 점령한 블루 아이즈 길드의 영지들을 분배하기 위해서였다.

본래 이런 영토 분배는 모든 전쟁이 끝난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건만.

그들은 벌써부터 핏대를 세워 가며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두 길드 사람들 모두 이미 블루 아이즈의 모든 영토가 자신들의 수중에 넘어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지금 현재 남아 있는 블루 아이즈 길드의 영토는 전쟁 전의 30퍼센트에 불과했으니까.

짐작컨대 별다른 일이 없다면, 길어도 2주 안에 모든 전쟁이 마무리가 될 터였다.

그런 명확한 결말이 보이게 되자, 삐걱대면서도 억지로 힘은 합치던 그들은 대놓고 맞부딪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최대한 상대방에게 이권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밖에는 있지 않았다.

그때 트라포가 소리를 질러 댔다.

“개소리하지 마라! 그곳을 점령하느라 우리 길드원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되었는데. 그걸 그냥 꽁으로 달라고 하다니!”

그러자 코웃음을 치며 무라가 차분히 맞받아쳤다.

“풉, 요새는 실력이 미천해서 떨거지들처럼 죽은 것을 희생이라고 표현하나 보지?”

“이 개자식이! 정말 죽고 싶으냐!”

극심하게 혼란한 분위기였다.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소동은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들 조용히 해라.”

“아가리 안 닥치냐.”

순간 탁자의 양끝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도 않았건만.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모든 소음들이 일거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리로이 님.”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들이 지닌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각자 자신들의 길드장에 대해 막대한 공포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싸아-.

회의장에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리로이와 매덕스는 말없이 각자의 간부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둘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우르르 회의장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둘만이 이야기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문이 닫히고 난 이후에도 한동안 정적은 깨지지 않았다.

긴 금발의 머리에 앉아 있는 자세만으로도 기품이 느껴지는 귀공자와.

얼굴에 온갖 자상들이 수북한 커다란 덩치의 깡패가 서로를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매덕스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거참, 욕심이 많으시네. 도련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깡패?”

그러자 리로이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깡패라는 말에 한쪽 눈썹이 움찔했지만.

이내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하며 매덕스가 말했다.

“뭐, 경고를 어기고 있는 건 피차 마찬가지인데. 이 정도야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자고.”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피어오른 두 사람의 살기가 어지럽게 맞부딪쳤다.

역시나 양대 길드의 수장이라는 걸까.

문 바깥에 서 있는 호위대들이 힘겨워할 정도의 기운이 쏟아졌다.

이대로 영주관 건물이 내려앉는 것이 아닌가 싶던 그때.

“킬킬, 역시 도련님은 만만치 않다니까.”

매덕스가 기분 나쁜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제 힘을 풀었다.

그러곤 이어 한 손으로 제 턱을 쥐며 말했다.

“흐음, 이미 전세는 우리 쪽에 넘어온 것 같은데. 이러다가 우리끼리 싸움이 크게 일어날 판이란 말이지.”

사실이었다.

남은 적들을 해치우는 것보다 서로 간에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그러던 그때, 매덕스가 리로이에게 생각지 않은 제안을 건넸다.

그건 바로.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대로 연합은 유지하되 이제부터는 병력을 섞지 말고 각자 따로 운용하도록 하지?”

현재 연합군 편제로 하나로 뭉쳐 있는 그들의 병력을 본래처럼 두 갈래로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잠시 후, 리로이는 그 제안의 의도를 금방 파악해 내었다.

“……이제부터 서로에게 떨어질 영토들을 각자 능력대로 가져가자는 거군.”

그의 말에 매덕스가 감탄성을 내며 대답했다.

“호오, 역시 배운 분이라 그런지 똑똑하시네.”

그랬다. 이제부터 개인전으로 땅따먹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분명 이렇게 한다면 양 길드 간에 영지를 서로 분배하느라 다툼은 생기지 않으리라.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매우 큰 단점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연합군의 힘이 약화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두 길드의 병력이 지닌 특색이 전혀 달라, 섞어 운용하는 것이 훨씬 전쟁을 치르는 데에 다방면으로 훨씬 좋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거 괜찮군. 그렇게 하지.”

리로이는 순순히 그 제안을 승낙했다.

이렇게 한다고 한들,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던 그때였다.

“좋아 좋아, 이대로 공동의 목표를 빠르게 끝내 보자고.”

매덕스가 뒷말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킬킬, 좀만 있으면 우리가 내준 길로 암흑성국이 남부 왕국들을 탈탈 털어먹겠구먼.”

듣는 누구든 경악할 내용이었다.

그는 획득한 영토를 열어 암흑성국이 남부 대륙을 침공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리로이의 반응 또한 일반적이지 않았다.

리로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미친놈, 아예 큰 소리로 우리가 마몬의 사도라고 만천하에 공개하지 그래.”

그의 말에 매덕스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랬다. 리로이와 매덕스 두 사람이 바로 마지막으로 남은 마몬의 사도였던 것이다.

레온이 모즈구스에게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두 사람의 회의는 곧이어 종료되었다.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둘의 살의를 가득 담은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리고 그 순간.

‘흑풍회까지 마저 잡는 순간. 기필코 네 미간에 칼을 꽂아 주마.’

‘……전쟁이 끝나는 순간. 네놈의 힘은 내 것이 될 거다.’

두 사람은 각자 서로에게 칼을 꽂을 날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블루 아이즈의 주 영지, ‘도미노’.

이곳 영주관의 회의실 분위기는 다른 의미로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2시간 전, 라파트 영지가 점령당했습니다.”

“말라트 영지도 한계입니다. 이대로 가면 오늘 밤을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블루 아이즈의 길드원들이 내뱉는 절망적인 내용들에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것 하나 승전보가 없었다.

이미 어두운 길드원들의 낯빛이 까맣게 변해 갔다.

결국 그렇게 회의는 암담하게 끝이 났다.

침통하기 짝이 없던 그때, 낭랑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요, 여러분! 분명히 우리는 역전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목소리의 근원지를 쫓아가자.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는 158cm의 아담한 여인 하나가 보였다.

그녀는 주먹을 쥔 양손을 가볍게 흔들며 의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래 봬도 블루 아이즈의 2인자이자,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리루’였다.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의 귀여운 파이팅에 회의장에 있던 모두가 작게나마 힘을 얻으며 방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리루의 미소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빠져나가고, 길드장 ‘세토’와 자신만이 남자 아까 전 다른 이들처럼 얼굴이 굳어 버린 것이다.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던 그때.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세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그녀가 말하는 것은 그들의 ‘최후’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 리루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서글픈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잘 버텨도 2주요.”

짐작했지만 역시나였다.

세토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씁쓸한 감정이 드러났다.

암흑투기장을 통해 얻은 힘을 사용하여 끝까지 막아 낸다고 막아 내었었지만.

한 사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연이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자신들의 패배를 예견하는 기사와 패전을 거듭하는 영상물들 때문에 자신들 쪽에 서려는 용병도, 참전하려는 길드도 하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녀의 시선에 축 처진 어깨의 리루가 보였다.

이어 누구 하나 성한 상태의 이가 하나 없는 다른 길드원들의 모습들도 비추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염원으로 만든 길드였으나.

점점 세력이 불어나며 욕심이 생겼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고의 길드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기까지인가.’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내려앉았던 그때.

띠리링!

띠리링!

갑작스럽게 요란하기 짝이 없는 효과음이 그녀의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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