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유호는 사실 블루 아이즈라는 길드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입단을 하려다가 그들로부터 거절을 당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판테라의 유명한 마조히스트라는 오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인해 아직까지도 약간은 앙금이 남아 있는 유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호는 고심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는 건 위험한데 말이지.’
동석을 도와 블루 아이즈 길드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한데 평상시의 유호를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한낱 동정심 따위에 움직이는 이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동석과 블루 아이즈는 개인적인 인연일 뿐, 그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지 않던가.
그랬다. 유호가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것은 동석 때문도, 그들에 대한 동정심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습을 당한 부분에 있어서는 유호는 블루 아이즈를 한심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호가 고민을 하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중 첫 번째는 블루 아이즈가 상대하고 있는 두 세력들 때문이었다.
페가수스와 코르부스.
두 세력 모두 유호와 연관이 있는 곳들이었다.
순간 유호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악연은 악연이라는 건가.’
페가수스 길드는 그리핀도르 요새 쟁탈전 당시 자신을 계속해서 귀찮게 만들었던 녀석이 속한 곳이었으며.
한 곳은 자신을 두 번이나 PK하려 했던 뒤치기 삼인조가 속해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적의 적은 동료라 하지 않던가.
약간은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이유였다.
레온의 생각을 잡아끄는 것은 이어질 두 번째가 가장 컸다.
‘이대로 블루 아이즈가 망하면 판세가 우리에게 불리해져.’
블루 아이즈가 망해 버리면, 흑풍회와 페가수스 코르부스 연합의 2강 체제가 확고해져 버린다.
그러면 레온의 영지가 확장을 하려 할 때, 매우 불리해질 것이 뻔했던 것이다.
지금껏 레온은 영지에 충분한 힘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산맥 바깥으로 세력 확장을 섣불리 하지 않았다.
그건 1강 3중의 집단이 서로 견제를 하고 있는 상황이 조금 더 오래 지속이 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아랑칼 길드가 흑풍회에 의해 흡수되면서, 3중이 힘을 합쳐 흑풍회와 대항을 하는 균형 말이었다.
‘역시 생각대로 되는 건 없군.’
하지만 자신이 암흑성국에서의 일에 치중하고 있던 사이에 이런 사태가 벌어져 버렸다.
이 순간을 놓친다면, 다른 길드들이 그의 길드가 지닌 힘보다 강해질 수도 있었다.
유호가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피똥을 싸며 영지에 축적시켜 놓은 것들인데, 그냥 날릴 수는 없지.’
유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석에게 말을 꺼냈다.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됐으면 시간이 꽤 많이 지났잖아. 어떻게 돼 가고 있어?”
일단 전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이어 들려온 동석의 대답은 처참했다.
“겨우 중요 요충지들만 지켜 놓은 상황이야.”
“흐음…….”
신음성이 절로 흘러 나왔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듯 보였다.
스윽.
유호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동석에게 말을 꺼냈다.
“안 되겠다, 일단 좀 봐야겠다.”
유호는 동석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동석이 의도를 파악하고는 곧장 자신의 캡슐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유호는 바로 자리에 앉더니 영상과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블루 아이즈 VS 투스 연합’이란 제목으로 올라와 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페가수스, 코르부스 모두 공통적으로 ‘스’가 들어가기에, 투스 연합이라고 불리고 있는 듯했다.
이런 대규모 길드끼리의 길드전은 평범한 길드전과는 달랐다.
한 번 싸우고 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수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싸움이 벌어졌다.
유호는 여태껏 일어난 그 모든 전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창들을 한꺼번에 띄워 놓은 후, 동시에 살폈다.
가능한가 싶었지만, 유호는 해내었다.
그렇게 모두 살펴보고 난 후.
유호는 머릿속으로 파악해 낸 전세를 되짚었다.
‘확실히 많이 밀리는 형세야. 하지만 대부분 쪽수와 보급에서 밀려서 진 경향이 커.’
길드원들의 실력은 블루 아이즈가 확실히 좋았다.
하지만 두 길드가 합쳐진 덩치 차이와 페가수스 길드에서 나오는 금전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배의 요인이었다.
순간 유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 두 개만 해결이 되면 충분히 반전시킬 수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있지 않던가.
이제 볼 것은 모두 보았다고 생각한 유호가 화면을 꺼 버리려 하였다.
‘어라?’
한데 그때였다.
유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저 사람은?’
종료시키려던 동영상 속에서 낯익은 인물 한 명이 보이고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인상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여인.
‘……카이라고 했던가?’
종교재판소에 끌려갈 뻔했던 자신을 구해 주었던 카이가 적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갑옷에 블루 아이즈 길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야, 동석아. 이리로 와 봐.”
“으응?”
“이 사람, 블루 아이즈야?”
순간 유호가 동석에게 고개를 돌려 그녀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동석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응, 카이라고 이 누나가 길드장인데……. 혹시 아는 사이야?”
“길드장이라고?”
그 말에 유호 또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묘한 인연이네.’
언제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했는데, 상당히 기회가 빨리 찾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블루 아이즈에 자원봉사를 해 줄 생각은 없었다.
‘뭐, 그래도 사안이 중대한 만큼 받을 건 받을 거지만.’
생각의 정리가 끝난 유호는 옆에서 궁금해하고 있는 동석을 무시하고는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일단 길드 회의를 소집해 보자.”
* * *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유호와 동석은 게임 속으로 로그인했다.
그러곤 길드의 간부 멤버들과 단체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사실 간부라고 해 보아야, 길드의 초기 창립 멤버인 네기, 유우, 브룩, 레온과 뒤늦게 합류한 멜로니와 리안이 전부였다.
화상 채팅 기능을 작동시킨 탓에 레온의 눈앞의 허공에 다른 다섯 명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각자 현재 위치하고 있는 공간이 서로 너무나 멀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만나기에는 레온과 브룩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모인 이들 중 먼저 말문을 튼 것은 역시나 유우였다.
-오빠! 너무 오랜만인 거 아냐? 이러다가 얼굴 까먹겠어!
유우의 말에 레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20년이 넘게 지겹도록 봐 왔는데, 까먹으면 치매 아니냐.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순조롭게 쭉 이어졌다.
레온이 먼저 블루 아이즈 길드전에 개입하려 한다는 화제를 꺼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주제였기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어진 반응은 다양했다.
-흠, 블루 아이즈는 저희와 동맹 관계도 아닌데 굳이 다른 두 길드와 척을 질 필요가 있을까요?
네기는 상당히 신중한 편이었고.
-난 찬성이야! 재밌을 거 같아!
……유우는 생각이 없었다.
-저도 찬성이에요. 레온 님의 말을 들어 보니 정말 이대로 양강 체제가 구축되어 버리면 우리가 진출할 시점을 잃을 것 같아요.
-나도 언니가 찬성이면 찬성.
멜로니와 리안이 현실적인 의견을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레온은 모두의 말을 전해 들은 후, 말을 꺼내었다.
-자, 그럼 다수결로 해서 찬성으로 결정된 걸로 할게.
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 얼른 촬영 장비 점검하러 가야겠다!
-길드원들이 난리가 나겠네요.
-전쟁이다!
그렇게 마침내 아슬란 길드가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이어 레온이 브룩에게 말을 건넸다.
-자, 그럼 네가 그쪽 길드장에게 이야기를 전해 줘.
-응, 알았어. 어차피 만날 수 없으니까 메시지로 주고 받자고 할 거지?
브룩의 대답에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의아해하며 동시에 질문을 건넸다.
-근데 레온 님은 참전하시려면 거기 퀘스트들 모두 포기하고 와야 되는 것 아니에요?
-오빠, 이동하고 나면 전쟁이 끝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레온은 암흑성국에 있지 않던가.
전쟁이 시작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중부에서 동쪽으로 영지를 확장해 나간 블루 아이즈 길드는 암흑성국 근처에도 영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근방에 있던 블루 아이즈 길드의 영지는 모두 적들에게 함락당한 뒤였다.
중부로 이동을 안 하고 그곳에서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면, 그곳을 차지한 수많은 적들과 홀로 맞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그렇다고 중부로 이동을 하자니,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컸던 컸다.
하지만 모두의 걱정 어린 얼굴에도 레온은 씨익, 하고 웃어 보이며 말을 꺼낼 뿐이었다.
-난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후, 레온이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설명을 시작하자.
-……그게 가능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계획인데.
-역시 갓형님. 범인(凡人)의 행보와는 전혀 다르시군요.
모두는 경악한 반응을 만들며 각자 말들을 꺼냈다.
하지만 레온은 자신의 계획을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 엄청난 자신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말을 꺼냈다.
-자, 전투에 개입하는 것은 사흘 뒤부터로 하자고.
사흘 뒤에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모두 자신들이 한 예상보다 너무 빠르자, 신음을 내뱉었다.
-헉! 그렇게나 빨리?
-너무 빠르지 않아요?
하지만 레온은 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계속 속사포처럼 쏟아 내었다.
-지금부터 각자가 준비해야 할 일들은 개인 메시지로 보내 놓을게. 자, 불가능해도 무조건 가능하게 해 줘.
-그게 무슨……!
-자, 잠깐……!
-불가능의 뜻을 잘 모르……!
뚝!
레온은 할 말을 마치자 바로 채팅방을 끊어 버렸다.
저렇게 약한 소리를 하지만, 모두 잘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안 해 놓으면 조지면 되지 뭐.’
라고 말이었다.
그렇게 한 가지 일을 마친 레온이 뚜둑 하고 관절 소리를 내며 손을 풀었다.
그에게도 남은 일이 있었다.
‘……사흘인가. 그 동안 전쟁에 참여하고 올 수 있게 상황을 좀 만들어 놓아야겠군.’
그건 바로, 그의 직책에 대한 문제였다.
현재 직책을 가지고서는,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몰래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레온은 별로 걱정이 없었다.
‘후후, 자, 이중간첩이라는 걸 활용해 보실까.’
이미 그의 머릿속에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