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레온의 생각지 못한 대답과 태도에 모즈구스의 얼굴에 일순간 당황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기다리고 있었다라……?’
그가 예상한 레온의 반응은 적개심 혹은 살의를 표출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그에게 암살자를 보낸 집단의 수장이었으니까.
‘재밌군.’
순간 모즈구스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는 슬며시 마몬의 힘을 개방했다.
음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평범한 이라면 기운에 담긴 위압감을 이겨 내지 못하고, 무릎을 땅바닥에 붙이리라.
레온을 시험해 보려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레온의 반응은 또다시 그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때 레온이 그에게 나지막한 말투로 모즈구스에게 말을 꺼냈다.
“이런 어린아이 장난 같은 일을 하려고 애꿎은 까마귀를 죽여 가며 연락을 한 것은 아닐 텐데. 시답잖은 기싸움은 여기까지만 했으면 합니다만?”
레온은 모즈구스의 기운을 가볍게 흘려 내며, 당당하게 서있었던 것이다.
그의 힘이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모즈구스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운이 아니었군. 이자, 가볍게 볼 존재가 아니야.’
직위는 아직 기사단 내에서 부단장도 달지 못한 풋내기였으나, 숱한 전장을 거친 베테랑과 같았다.
이제 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보댕이 암살을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도, 키메라가 처치당한 것도, 모두 온전히 레온이 지닌 실력에 의한 것임을 말이다.
모즈구스는 머릿속에서 미리 내리고 있던 레온의 평가를 한 단계 상향하였다.
그러곤 너털웃음을 내며 레온의 말에 대답했다.
-허허, 죄송하군요. 절 기다리고 계셨다는 말에 놀란 나머지 하려 했던 말이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물론 흩뿌리던 마몬의 힘은 다시 회수한 뒤였다.
레온은 그런 모즈구스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어 말했다.
“……뭐 그럼, 그렇다고 치고. 얼른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요?”
레온의 태도는 그의 목적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듯했다.
그에 모즈구스의 얼굴에 홍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말을 꺼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이렇게 연락을 한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레온이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뒷말을 내뱉었다.
“교황청에서 직접 절 포섭하려는 것 아닙니까.”
레온의 말에 일순간 모즈구스의 말이 사라졌다.
그 반응만으로도 레온이 그의 목적을 정확히 맞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 그는 까다로운 적이 될 것 같으니 회유하라는 라스푸틴의 명을 받아 그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즈구스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을까도 고민하였다.
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 자인 만큼, 어쭙잖은 놈이라면 명을 어기는 것을 무릅쓰고라도 그냥 척살을 해 버릴까 생각도 했던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마음이 싹 바뀌어 있었다.
레온을 반드시 자신들의 편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휘하에 강한 자는 많았다.
하지만 레온처럼 강하면서 똑똑한 인재는 드물었다.
‘보댕과 키메라를 해치울 만한 실력에 이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라면, 라스푸틴 님의 큰 힘이 될 것이야.’
그나마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던 보댕도 목이 날아간 이 시점에서 레온은 상당히 매력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레온이 그의 목적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방법에 기인하고 있었다.
‘진짜로 왔네.’
레온의 눈앞에 자그마한 시스템 창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잠입 스파이 임무 1 / 교황청에 잠입하라]
은밀히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라스푸틴이 당신을 처치하는 것이 아닌 포섭을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머지않아 모즈구스에게서 직접 연락이 올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잠입을 하는 데 성공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임무 목적 : 모즈구스를 통해 교황청에 잠입하자.
‘아스라한산맥에 터널을 개통시켜라’ 퀘스트를 해결한 후, 레온은 보상 중 하나였던 ‘잠입 스파이’로 보직이 변경된 상태였다.
그리고 보직이 변경되자, 자동으로 임무 퀘스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갱신된 새로운 설명을 통해 미리 모즈구스가 연락을 올 것과 자신을 영입하려 한다는 정보를 캐치하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전혀 알 리 없는 모즈구스의 레온을 바라보는 눈빛에 소유욕이 가득 담기고 있었다.
이윽고 모즈구스가 사람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꺼냈다.
-하하하, 놀랍군요. 이미 짐작하고 계시니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맞습니다, 저희는 리온 님이 마몬님을 지키는 검이 되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마몬을 지키는 검.
황제를 지키는 검이 아니었다.
얼마만큼 황제파와 교황파의 사이가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어였다.
레온은 살짝 긍정적인 반응을 담아 대답했다.
“암흑성국에 속한 이 중 마몬님을 지키지 않고 싶은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에 모즈구스의 눈빛이 먹잇감을 찾은 매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레온의 말과는 달리 암흑성국에는 마몬을 믿지 않거나, 그다지 신앙심이 강하지 않은 이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특히나 황제파에 속한 이들은 교황과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편이었다.
한데 레온의 말을 들어 보니, 그는 마몬교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럴 경우, 이야기가 손쉽게 풀릴 가능성이 커졌다.
한데 그때였다.
‘어라? 그러고 보니…….’
레온에게서 무언가를 확인한 모즈구스가 의문이 어린 눈빛을 띠었다.
‘저놈이 갑자기 왜 저러지?’
그에 레온 또한 의아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러던 그때, 모즈구스가 레온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건네 왔다.
-……혹시 리온 님도 마몬교 신자입니까? 희미하게나마 마몬님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레온은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뭐야, 설마 사도의 기운을 느낀 건가?’
상대를 너무 얕보지는 않았나 싶었다.
모즈구스는 종교재판소의 소장이라는, 교황의 바로 아래에 있는 존재.
숨긴다고 숨겼지만, 흑염룡의 거태도에서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온 기운을 느낀 듯하였다.
레온은 혹시나 들킬까 속이 탔다.
그가 그런 반응을 만드는 것은 간단했다.
물론 모즈구스에게 그가 마몬의 사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도리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일이었다.
오히려 상대는 쌍수를 들고 기뻐하리라.
하지만 차후에 레온은 다른 마몬의 사도를 처치하고 힘을 빼앗아야 하지 않던가.
사도만이 사도의 힘을 빼앗을 수 있기에, 정체를 밝히면 후에 범인으로 지목을 받을 위험이 높았다.
당황하지 말자.
레온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였다.
상대 반응으로 살펴보았을 때, 아직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알아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어찌한다.’
레온은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자신의 침묵이 길어지면, 상대의 의심이 깊어질 터.
얼른 의심을 벗어날 변명을 생각해 내야 했다.
그러던 그때.
‘아!’
레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물건이 있었다.
이어 레온이 곧장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불쑥 그 물건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것 같군요.”
그러자 물건을 확인한 모즈구스가 민망하다는 말투로 말을 받았다.
-……허허, 무엇 때문인가 하였더니 그것이 있었군요.
레온의 손에는 보댕이 스피릿츄얼 키메라를 조종하는 데 사용했던 ‘성서’가 쥐여 있었다.
보댕을 처치하고 드롭된 아이템 중에 성서도 있었던 것이다.
성서를 꺼내 들자, 더욱 진한 마몬의 기운이 방 안을 잠식하기 시작하였다.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쩝, 어쩌다 보니 불가피하게 챙겨 놓기는 했는데. 만나 뵙게 되면 돌려 드리겠습니다.”
-허허,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군요.
상대의 태도에서 의심이 사라져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레온이 속으로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상시의 모즈구스였다면 한 번 떠오른 의심을 결코 지우지 않았겠지만.
지금 그는 레온을 영입하고 싶은 욕심이 마음속에 커져 있던 상태였기에,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 난 후, 드디어 직접적인 스카우트 제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모그구스가 말을 꺼냈다.
-……한데 황제 폐하께서 내린 리온 님에 대한 포상이 너무 약소하신 것 같더군요.
속으로 ‘올 게 왔군!’이라고 생각하며, 레온이 대답했다.
“끄응,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군요. 저만한 인재가 어디에 있겠나 싶습니다만.”
표정과 말투 모두에 불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모즈구스가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꺼냈다.
-후후, 그에 반해 저희는 언제나 인재를 후하게 대접하고 있지요.
‘후한 대접이라. 과연 어떤 것을 제안하려나.’
레온이 내심 기대를 하며 말을 꺼냈다.
“호오, 그렇습니까?”
구미가 당긴다는 레온의 반응에 모즈구스가 드디어 직접적으로 영입 제안을 꺼내었다.
-리온 님, 저희와 함께하시죠. 지닌 가치에 걸맞은 대우와 보상을 약속하겠습니다.
“흐음.”
그에 레온은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좋습니다! 이것 또한 마몬님의 뜻이겠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즈구스 님.”
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쾌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하하, 이렇게 마몬님의 뜻을 따르는 동지가 새롭게 생겨나니 너무나 기쁘군요.
모즈구스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레온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잠입 스파이 임무 1, ‘교황청에 잠입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잠입 스파이 임무 2로 ‘……’를 획득하였습니다.
‘예쓰!’
레온이 조용히 자신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메시지를 통해 첫 번째 잠입 임무를 해결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레온이 커다란 만족감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휴, 이제 하나가 또 끝났구나. 발 뻗고 좀 쉴 수 있겠군.’
그런데 이어진 다음 순간.
모즈구스가 레온에게 한 가지를 더 제안하며, 상황은 레온이 전혀 생각지도 않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리온 님…….
그때 모즈구스가 조심스레 레온을 불렀다.
그에 레온은 속으로 ‘다 끝난 것 같은데, 왜 이리 무게를 잡지.’ 하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네, 말씀하시죠.”
그런데 상대가 놀라운 말을 내뱉었다.
-……조금 더 특별한 보직을 맡아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네? 그게 무슨?”
특별한 보직?
레온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상대의 말에 의아해하며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모즈구스가 이윽고 말을 꺼내었다.
-……기사단에 스파이로 잠입을 해 주십시오.
띠링.
띠링.
레온의 귓전에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퀘스트, ‘흑암 기사단에 스파이로 침투하라’를 제안받았습니다.
-선택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Y) or (N)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레온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미친, 나 이중간첩이 되는 거야?’
라고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