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모두가 내일을 위해 잠에 든 깊은 새벽녘.
레온은 잠을 자는 행위 따위에 투자할 시간은 없다는 듯 집무실을 은밀히 빠져나와 오늘도 다크 드워프들을 만나고 있었다.
한데 오늘은 장소가 달랐다.
놀랍게도 공동 속의 마을이 아닌 갱도의 바깥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20여 명의 다크 드워프들은 모두 몸을 숨길 수 있는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다크 드워프들 중 한 명이 눈물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흐윽, 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이곳을 벗어나다니…….”
그 드워프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 또한 같은 마음인 듯, 소매를 들어 눈가를 훔쳤다.
그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레온은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에게 말을 건네었다.
“마음껏 우세요. 하지만 이제 흘릴 눈물은 오늘 이것으로 끝일 겁니다. 단언컨대 제가 안내하는 마을은 여러분의 마음에 쏙 드실 테니까요.”
“흐흑,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레온의 말에 모든 다크 드워프들이 감동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랬다. 오늘이 다크 드워프들을 이주시키는 첫 번째 날이었던 것이다.
한꺼번에 모든 인원을 빠져나가게 하지는 못하였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들킬 가능성이 커질뿐더러, 시간 또한 너무 많이 허비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레온이 이 계획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그럼 부탁할게, 포바.”
레온의 말에 포바가 고개를 꾸벅였다.
“네, 주인님. 걱정 마십시오. 최대한 빠르게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을게.”
그리고 다음 순간.
슈우웅!
공간에 효과음이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포바와 다크 드워프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 모두 사라졌다.
포바가 다크 드워프들을 전부 데리고 ‘트리플 블링크’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스킬이 진화하기 전에는 소환자만을 함께 이동시킬 수 있었지만, 트리플 블링크로 진화하고 난 후에는 최대 30명까지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레온은 블링크 스킬을 활용해 자신의 영지까지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시키겠다는 계획을 짠 것이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바라보며, 레온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흐흐, 정말 호문클루스는 개꿀이라니까.’
일반적인 소환술사였다면 절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여타의 소환수들은 소환자와 일정 거리 이상을 넘어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계 이상의 거리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적으로 역소환이 되었다.
하지만 호문클루스는 그 법칙에서 예외였다.
‘로그아웃이 되도 지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데, 이 정도야 뭐.’
레온은 어깨를 으쓱하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들이 빠져나왔던 통로 구멍을 들키지 않게끔 막았다.
파바밧!
타닷!
그러곤 용무를 마쳤으니, 다시금 유스웰을 향해 이동을 시작하였다.
엄청난 이동속도로 이동을 하면서, 레온은 아무렇지도 않게 눈앞에 퀘스트 창을 띄워 놓았다.
어느새 탈출 퀘스트의 밑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어 있었다.
[200년의 족쇄를 끊어 내라]
(……중략……)
당신은 이제 라무딘의 다크 드워프들을 바깥으로 탈출시켜야 한다.
-현재 탈출 성공 인원 : 0/336
(영지에 도착 시, 자동으로 성공 인원이 갱신됩니다.)
‘흠, 영지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성공 인원이 갱신된다고 적혀 있으니. 갱신되는 걸 보면 포바로 한 번 이동시키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대충 알 수 있겠군.’
마을의 총 인원은 336명.
아무래도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순간 레온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열 번 정도는 반복해야 되나. 쩝, 한동안 포바는 전력에서 제외되겠어.’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이들을 이끌고 영지까지 이동을 하고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퀘스트를 포기하기에는 ‘이종족 교류소’를 포함한 꿀 같은 보상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때 레온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러곤 포바를 사용 못 하는 사태에 대한 대책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그래, 올라가서 연금술사들을 만나는 즉시 녀석들이 모아 놓았을 재료들로 새로운 호문클루스를 하나 추가해야겠어.’
유스웰로 내려오며 조수인 케인에게 부족한 재료를 모아 놓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고 당부를 해 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아직 재료가 안 모아져 있으면 조져 주는 수밖에.’
그렇게 가만히 있던 케인에게 오한을 느끼게 하는 말을 꺼낸 직후.
‘흐음, 그건 그렇고…….’
레온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또 다른 퀘스트에 눈을 돌렸다.
3주 전, 키메라를 해체하고 난 후 얻었던 새로운 히든 퀘스트였다.
순간 레온이 다시 한번 내용을 훑어보다가 놀라운 말을 꺼내었다.
그건 바로…….
“이거야 원.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히든 직업 퀘스트를 또 얻게 되다니.”
이러한 말이었다.
[키메라의 주인이 되는 자 / 히든 / 직업]
당신은 대륙에 전설로만 전해지는 키메라를 발견하였고, 또한 처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건만.
놀랍게도 당신은 탐구욕을 발휘하여, 키메라를 성공적으로 해체하는 데까지 성공하였다.
아무래도 더욱 많은 뼛조각들과 코어를 모아 보면 키메라를 제작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은 이제 더 많은 키메라 실험체들을 해치우고, 그것들에게서 뼛조각과 코어들을 수집하여야 한다.
퀘스트 난이도 : SSSS
퀘스트 임무 :
-혼종의 뼛조각 : 1/15
-키메라의 코어 : 1/15
퀘스트 조건 : 스피릿츄얼 키메라에서 정령을 해방시킨 자 / ‘혼종의 뼛조각’과 ‘키메라의 코어’를 채취한 자
퀘스트 보상 : 히든 직업 ‘키메라 제작사’ 전직 가능, 키메라 제작사 직업 전용 아이템 획득, 알 수 없음
당시 레온의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는 바로 ‘키메라 제작사’라는 히든 직업으로 전직할 수 있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읽어 내려간 레온의 표정은 무언가 미묘하였다.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쩝, 그래 봤자 나는 전직하지 못하지만.’
인장의 제약 때문에 보나마나 키메라 제작사로 전직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도사’로 전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때도 실패하지 않았던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이어 가던 레온이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제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야, 실망하긴 일러. 직업 전용 아이템이 획기적인 힘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지.’
자신은 직업 제한 없이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 레온의 표정이 다시금 밝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어느새 유스웰의 성문 앞까지 도착하여 있었다.
처척.
레온은 일전에 PK범들에게서 빼앗았던 섀도우 워커의 직업 전용 아이템인 ‘그림자 사신의 반지’를 장착하였다.
“투영환신.”
그러곤 그 안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인 투영환신을 사용하여,
스르륵!
촤아앗!
성벽 속을 자유로이 뚫고 자신의 집무실까지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 * *
털썩.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무실로 돌아온 레온은 방에 마련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흐아암.”
그러자 자연스레 하품이 흘러나왔다.
긴장이 풀리자, 밀렸던 잠이 몰려오고 있었다.
‘끄응, 이대로 로그아웃하고 현실로 나갈까?’
순간 머릿속으로 이대로 종료를 할까 하는 갈등이 생겨났다.
나가서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흐음, 상인도 찾아 봐야 되고…….’
그는 능력 있는 ‘상인’을 물색하여야 했다.
공동의 창고에 모아 놓은 보석들과 재료들을 매매하기 위함이었다.
아직까지 레온은 채광한 물건들을 하나도 팔지 못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물건들이라면 쉽게 시장에 가져다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보석들은 전 대륙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생산이 되었다.
그런 물건을 자신이 앞장서서 판로를 찾아다니면, 눈치를 챈 황실에서 추적이 들어올 것이 뻔하였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지금까지 한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암흑성국 바깥에 전국적으로 팔아넘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상인이 필요했다.
레온은 끄응, 하고 신음성을 흘리다가.
“앗!”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리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맞아! 분명히 예전에 동석이가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상인 랭커가 있다고 했었어.’
레온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브룩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레온이 답답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녀석, 생각해 보니 요새 학교도 잘 안 나오고. 뭐가 이리 바쁜 거야?’
최근에 무슨 일인지, 도통 연락이 닿지를 않았다.
순간 레온의 머릿속에 브룩이 이렇게 바빠지기 시작할 즈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흐음, 과거에 소속되어 있던 전 길드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했었…….’
한데 그때였다.
까아악!
‘뭐, 뭐야!’
갑자기 들려온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레온은 하고 있던 생각이 끊어졌다.
그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까마귀?’
그러자 창문 바깥에 까마귀 한 마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레온은 까마귀를 보자마자, 그것이 결코 평범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그거랑 똑같네.’
자신을 암습했던 다크 팔라딘의 떨어진 팔이 변형되었던 것과 동일하였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레온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하게 변화되었다.
‘올 게 온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레온은 겁 없이 성큼성큼 창문으로 걸어갔다.
끼이익.
그러곤 서슴없이 창문을 열어젖혔다.
촤아악!
그러자 까마귀가 기다렸다는 듯이, 레온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이어진 다음 순간.
퍼펑!
‘읏.’
까마귀는 허공에서 폭음과 함께 폭발하였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레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진행에 자신의 예감이 들어맞았음을 깨달았다.
슈아아아!
까마귀의 피가 허공에 거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역시 연락을 보내 왔군.’
곧이어 그 피의 거울에 사람의 형상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지만, 레온은 상대가 누군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 이제는 완전히 선명해진 존재가 레온에게 말을 건네왔다.
-혹 놀라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군요, 리온 님. 반갑습니다, 종교재판관들을 이끌고 있는 모즈구스라고 합니다.
그랬다. 그는 바로 보댕의 상관이자 레온이 처치해야 하는 상대인 ‘모즈구스’였다.
상대의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바라보며, 레온은 말없이 조용히 상대를 지켜보았다.
자신의 오른팔로 불리는 인물을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모즈구스는 레온을 대하는 데 조금의 동요도 없어 보였다.
보댕이 너구리 같았다면, 이자는 맹독을 품고 있는 독사와 같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자신의 목줄을 물어뜯을 살벌한 기세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 기사단장 놈과 자웅을 겨룰 만하다는 건가.’
역시나 이자 또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래 보아야 어차피 자신의 검 아래 죽어 나갈 제물.
레온은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얼굴에 띄워 보였다.
그러곤 상대를 향해 가볍게 예를 갖추며 당당하게 말을 꺼내었다.
“생각보다 조금 늦으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