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이놈의 꿈은 왜 이리 안 깨는 거야.’
보댕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흐리멍덩해진 그의 두 눈은 완전히 초점을 잃어 있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에 진입하여 있었다.
한데 어쩔 도리가 없어 보였다.
그에게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악몽으로밖에는 이해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크에에에!
그때, 보댕의 귓전에 높은 옥타브의 비명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고통에 찬 그 소리는.
퍼펑!
콰앙!
곧이어 터져 나온 수많은 폭음에 덮여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쿠웅!
“히익!”
느닷없이 보댕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신음성을 흘렸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의 발치에 산산조각 난 웜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날아와 떨어져 있었다.
하나 남은 웜 히드라의 눈알이 힘없이 핑그르르 돌다가 멈추어 보댕의 시선과 마주쳤다.
싸아-.
그러자 보댕은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 왔다.
그에 보댕은 마른침을 꿀꺽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제, 젠장. 역시 꿈이 아니잖아.’
겨우 패닉 상태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제대로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슈아아앙!
처척!
퍼퍼펑!
그러자 그의 눈에 황금빛의 기운을 흩뿌리며, 쉬지 않고 포격을 쏟아 내고 있는 레온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제대로 레온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육안으로 쫓을 수 있는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은 레온의 속도 탓에 잔상을 쫓고 있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순간 보댕이 어이없어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키메라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존재가 있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그가 쉽사리 레온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에게 물리적인 타격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 상급 정령의 힘을 체내에 지니고 있는 몬스터.
대륙을 제패할 병기로 만들어 낸 키메라가 이렇듯 손쉽게 격퇴당하고 있다니,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키메라보다 저자가 더한 괴물이란 뜻인가.’
마치 천상의 전신(戰神)이 현세에 강림한 것과 같은 광경에 보댕이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레온은 이제는 머리가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웜 히드라를 농락하며 여전히 커다랗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동굴에서 정의가 빗발친다! 이 웜즈 녀석들아!”
……녀석들아, 녀석들아.
레온의 목소리가 공동에 메아리침과 동시에.
-크에에에에!
또 한 번 웜 히드라의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승기가 완전히 넘어가 버린 그 모습에 보댕이 자신의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곤 이내 그는 이후 자신이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할지 결론을 내렸다.
그건 바로.
‘……이건 안 돼. 가능성이 전혀 없어. 일단 후퇴해서 다시 전략을 짜야 해.’라는 것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머리를 바쁘게 굴려 보았지만, 도출되는 결론은 항상 자신의 패배만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웜 히드라로도 상대가 불가능한 존재를 자신이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마몬의 교리에 이교도와의 전투에서 도망을 치는 것은 즉각 사형이 될 사안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그런 구절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생사가 달린 상황에 신앙심은 종적을 감추어 있었다.
스윽.
순간 보댕이 슬그머니 레온을 살폈다.
다행히 상대는 전투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이 기회를 틈타 빠르게 도망가면 될 것 같았다.
‘그래, 난 도망가는 게 아니라 잠시 전략적인 후퇴를 택한 거야. 조금만 기다려라! 기필코 모든 병력을 이끌고 와 네 놈의 숨통을 끊어 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며 보댕이 자신이 들어왔던 구멍을 향해 조심스레 한 발짝, 한 발짝 고양이 걸음으로 이동을 해 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좋아, 이제 한 걸음만……!’
그렇게 들키지 않고 도망에 성공하려나 싶던 찰나.
부우웅-!
쐐애액-!
어디선가 파공성이 커다랗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퍼억!
“끄어어어.”
보댕이 우스꽝스러운 신음성을 토해 내며, 다시 한 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검 한 자루가 그의 코앞에 있는 벽에 박혀 있었다.
그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후드득.
그때 잘려 나간 그의 앞머리가 눈 밑으로 떨어졌다.
조금만 가까웠다면 그의 목이 달아났으리라.
보댕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는 두 동공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곳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마지막 남은 웜 히드라의 머리를 겨드랑이에 끼운 채.
그를 향해 검지를 까닥거리고 있는 레온이 있었다.
“어허, 안 되지, 안 돼. 섭섭하게 어딜 그리 급히 가시나.”
사신과도 같은 아우라를 전신에서 뿜어내는 그가 보댕에게 한마디를 건네고 있었다.
* * *
잠시 후.
보댕은 두 팔과 다리가 줄로 포박된 채, 레온의 앞에 무릎이 꿇려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레온은 한없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보댕은 비굴하기 짝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무언가를 심사숙고하던 보댕이 레온에게 슬며시 존댓말로 질문을 건네 왔다.
“……방금 하신 말씀 정말이십니까?”
보댕의 얼굴에 의심스러워하는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자 레온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대답을 해 주었다.
“참나, 속고만 살았나. 정말이라니까.”
“……정말 묻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만 해 드리면 절 살려 주신다는 말씀이지요?”
“그래, 인마. 내가 널 죽여서 뭐 하냐. 어차피 같은 암흑성국의 식구인데 말이야. 그리고 내가 교황청과 굳이 척을 질 필요가 어디 있겠어.”
그랬다. 레온은 앞서 보댕에게 자신이 건넬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 주면 목숨을 붙여 주겠다는 제안을 건넸던 것이다.
레온의 말에 보댕은 아직까지도 반신반의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교황청과 척을 두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약간은 진심이 묻어나는 것도 같았다.
고민을 계속하던 보댕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쉰 후, 말을 꺼냈다.
“……후우, 알겠습니다. 물어보십시오.”
그는 결국 일말의 가능성에라도 희망을 걸어 보기로 결정을 하였다.
곧이어 레온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자, 그럼 저 키메라는 어떻게 만든 거야?”
그의 첫 질문은 역시나 자신이 상대했던 키메라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보댕의 대답이 레온의 관심을 잡아끌었다.
“붙잡아 와 세뇌를 시킨 고위 연금술사가 저희를 돕고 있습니다.”
‘연금술사?’
고위 연금술사라는 말에 레온은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레온이 티내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 연금술사의 이름은?”
“……흐음, 아마도 암스트롱일 겁니다.”
‘역시!’
레온이 눈을 빛냈다.
지하 뇌옥에 갇혀 있다고 했던 커티스의 스승이 세뇌를 당한 채, 키메라를 만드는 일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레온의 표정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야, 다행인데? 이러면 지하 뇌옥은 안 가도 되겠어!’
교황청의 일을 돕고 있다면, 퀘스트 내용에 적혀 있던 지하 뇌옥에 잠입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레온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래, 그럼 키메라는 어디서 만들어지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말에 머뭇거리던 보댕의 말이 이윽고 내뱉어진 순간.
레온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이런 미친놈들이 장난하나!’
그러곤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생각했다.
한데 바뀐 장소를 들어 보니, 그가 그렇게 분노를 표출할 법도 했다.
암스트롱에 의해 키메라가 생산되고 있는 장소는 바로.
“……성도 신전의 지하에 있는 비밀 예배당입니다.”
암흑성국의 수도에 교황 라스푸틴이 거처하고 있는 본 신전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지하 뇌옥에 잠입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오히려 구출 난이도가 두 단계는 더 상승하여 있었다.
교황이 거처하고 있는 곳에 침투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뿌득.
레온이 소리가 나게 이를 악물었다.
‘그래, 그렇게 쉽게 엠브리오 호문클루스를 넘겨줄 리가 없지. 망할 게임사 놈들.’
레온이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꾹 참았다.
레온의 태도가 이상해지자, 보댕은 살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휴우, 하고 심호흡을 한 레온이 이내 그런 그에게 다음 질문을 건네었다.
“그럼 그곳에 현재 키메라들이 총 몇 마리나 있는 거야?”
“네? 아, 저 녀석이 시제품 격인 녀석이라. 이후에 몇 개가 더 만들어졌는지까지는…….”
정말로 결과를 알지 못하는 보댕이 뒷말을 흐렸다.
그러자 레온이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보댕의 뒷말을 되뇌었다.
“……까지는?”
그러자 당황한 보댕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야, 양산을 해내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는 한데, 실패작이 거듭 나오고 있어서 현재 완성품이 몇 개나 더 나왔을 지는 자, 잘 모르겠습니다.”
싸아-.
보댕의 말이 끝난 순간, 공간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심각한 분위기를 느낀 보댕이 눈을 파르르 떨었다.
그때 정적을 깨고 레온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몰라? 쩝, 그럼 어쩔 수 없지.”
레온이 보댕에게 터벅터벅 다가오기 시작했다.
‘휴우.’
이제 풀어 주려는 것으로 생각한 보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이후의 상황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스르릉.
칼집에서 검이 나오며 청아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레온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보댕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별수 있나. 모르면 죽어야지.”
그에 식겁한 보댕이 무릎을 꿇은 채 질질 뒷걸음질을 쳤다.
드드득. 드드득.
레온이 망나니처럼 바닥에 검 끝을 끌며 다가오자, 보댕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 아니. 왜 이러십니까. 하나만 빼고 다른 건 다 얘기했지 않았습니까.”
레온이 고개를 자그맣게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맞아. 근데 제일 중요한 걸 모르잖아. 휴, 허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어쩔 수가 없네. 너라도 죽여서 기분 전환을 좀 해야겠어.”
자신의 목숨이 한낱 기분 전환용이라니.
보댕이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이이! 그런 억지가! 이 빌어먹을 놈! 처음부터 살려 줄 생각이 없었구나!”
그에 레온이 피식하고 웃어 보이며 대답해 주었다.
“후후, 지금 알았어? 가서 좀만 기다려. 곧 모즈구스도 라스푸틴도 보내 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레온이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으아! 이 개자……!”
서걱.
추욱.
쿵!
레온의 깔끔한 참격과 함께 적이 지면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띠링.
띠링.
-종교재판관, 보댕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중략……)
보댕은 상당히 고레벨의 NPC였던 까닭에 꽤나 많은 경험치를 뱉어 내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자, 그럼 이제 방해꾼도 없어졌겠다. 마음 놓고 해체해 볼까!’
유용한 정보도 얻고, 경험치도 얻고 기분이 한결 좋아진 레온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