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이튿날 아침.
유스웰성에 있는 레온의 집무실을 관료 NPC 무리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입을 한시도 멈추지 않고 레온에게 바쁘게 이야기를 쏟아 내고 있었다.
“시장님이 이관한 도시 내 치안 작업에 대한 사안입니다.”
“채광된 보석들의 반출에 관련한 사안입니다.”
레온이 담당관으로서 처리해 주어야 할 여러 사안들을 전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없이 진지한 그들의 태도에 비해 레온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태도가 이렇듯 건성인 이유는 간단했다.
레온의 마음은 이미 터널 개통 현장에 온통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온은 속으로 자꾸만 귀찮게 하는 관료들을 답답해하며.
‘휴, 제발 꺼져 주라. 안 한다고 안 해, 보조 퀘스트!’ 라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띠링.
띠링.
그의 귓전에 효과음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보조 퀘스트 ‘도시 내 치안을 정비하라’를 획득하였습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Y) or (N).
-퀘스트 거절 시, 소량의 명성이 하락합니다.
레온은 관료들이 건네는 모든 보조 퀘스트들을 거절로 일관했다.
페널티로 인해 하락하는 명성이야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현재 50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명성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조 퀘스트들을 완료하면 도시의 공적치가 쭉쭉 쌓이겠지만, 레온은 그런 데에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이 없었다.
‘이 도시에 공적치를 쌓으면 뭐 해. 어차피 잠깐 있다가 떠날 곳인데.’
그의 말처럼 터널만 개통하고 나면, 바로 흑암기사단 활동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떠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때, 마지막 남은 관료가 레온을 바라보며 말을 끝마쳤다.
“……이로써, 아침 정기 보고가 모두 끝났습니다.”
끝이라는 것을 깨닫자, 순간 레온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그래, 그럼 얼른 나가서 각자의 일들을 보게. 난 채비를 마치고 곧바로 공사 현장으로 나갈 것이니.”
그의 말에 모든 관료들의 얼굴에 질렸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저 악마 같은 놈.’
‘그렇게나 빨리 다크 드워프들을 괴롭히고 싶은 거냐.’
‘으으, 지독하다, 지독해.’
공사 현장에 나가 보겠다며 미소를 짓는 레온이 그들의 눈에는 악마의 그것처럼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레온은 거의 쫓아내다시피 막무가내로 관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드디어 홀로 남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레온은 빠르게 떠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자, 얼른 내 어여쁜 보석들을 보러 가 보실까.’
……하지만 그 계획은.
까악.
‘으응?’
전혀 생각지 않은 방문객 때문에 잠시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레온이 갑작스레 들려오는 괴상한 울음소리에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리고 이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통통.
콩콩.
웬 까마귀 한 마리가 발톱으로 그의 창문을 연신 두들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냥 넘겨 버렸을 테지만.
‘……어라, 저건?’
레온의 눈에 까마귀가 지닌 특별한 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그가 성큼성큼 창문으로 걸어가, 까마귀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활짝 열어 주었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온 까마귀는 천장을 한 바퀴 돌더니 레온의 팔목에 조심스레 내려앉았다.
레온은 한눈에 이 녀석이 야생 까마귀가 아닌 누군가에게 철저히 훈련된 종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어 까마귀를 살피던 레온이 아까 눈길을 끌었던 한 부분을 확인하였다.
그러곤 이내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전서구가 아니고 전서오(傳書烏)야?”
까마귀의 발에 작은 대롱이 달려 있었던 것이었다.
대롱을 열자 안에는 여러 겹으로 접힌 쪽지 한 통이 들어가 있었다.
순간 레온은 누가 보냈는지 쉽게 예상이 되었다.
지금 이렇듯 은밀하게 그에게 이런 쪽지를 보낼 이는 한 명밖에는 없었으니까.
이어 발신인을 확인하자, 그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보낸 이는 바로 흑암기사단의 2병단장인 나이저였다.
‘흐음, 근데 이 인간이 이 시점에 왜 연락을 했지?’
레온이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쪽지의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신가, 리온.
허허, 묻기는 했지만 사실 그대가 잘 지내고 있는 것은 이미 소식을 들어 잘 알고 있다네.
먼저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군.
자네가 터널 공사의 진행률을 이전보다 서너 배는 앞당기고 있는 자네의 맹활약 덕분에 그대를 천거한 나도 덩달아 클리라우 님께 큰 칭찬을 받았으니 말일세.
(……중략……)
긴장한 채,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레온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의 걱정과는 달리 쪽지의 내용은 거의 다가 그를 칭찬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200여 년간을 지지부진하던 터널 공사를 엄청난 속도로 쭉쭉 진도를 빼고 있는 것이 대단한 일이기는 한 모양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레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엇! 이거 진짜인가?’
서신에 적힌 말 중에 그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례적으로 황제 페하께서 그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기대가 매우 큰 인재라는 말을 하셨을 정도네.
최대한 빨리 완벽히 터널을 뚫고 돌아오게나.
함께 수도로 갈 날이 머지않았네.
이러한 것이었다.
황제 폐하.
레온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하고 눈을 비비고 반복하여 다시 읽어 보았다.
하지만 글자는 그대로였다.
‘암흑성국의 황제가 내게 주목을 하고 있다라…….’
자신의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일이 진행이 되고 있었다.
만일 성공만 한다면, 암흑성국의 거물이 될 수 있는 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황제를 직접 만날 수 있다면, 클라리우가 자신에게 지니고 있는 일말의 의심을 완전히 없앨 수 있지 않겠는가.
레온의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생각했다.
‘후후, 점점 클라리우의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는 자리로 쭉쭉 나아가고 있구먼.’
자신에게 굴욕을 선사한 건방진 기사단장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 넣을 순간이 착실히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만족스런 감상을 끝낸 레온은 정성스런 답장을 적었다.
그러곤 쪽지를 대롱에 넣은 후, 까마귀를 다시 하늘에 날려 보냈다.
그러고 난 후.
‘후후, 일단 공사가 모두 완료되고 난 후의 일. 얼른 뽕 뽑을 수 있을 때 맥시멈으로 뽑아 놓자.’
그는 한껏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터널 공사 현장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소동이 일어날 지는 전혀 모른 채 말이었다.
* * *
공사 현장으로 이동한 레온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일을 진행하였다.
채찍을 치고, 사망자를 만들고, 희생자를 들쳐 업은 후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심층부까지 들어온 후, 다크 드워프에게 가사 상태 회복약을 먹였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이전과 동일하였다.
“으으, 레온 님.”
“자, 이제 괜찮아요. 좀만 버티면 되…….”
정신을 차린 다크 드워프가 신음을 쏟아 내기 시작했고, 레온이 진정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바로 그 시점부터였다!
두두두두웅!
구우우우우!
콰가아아앙!
갑작스레 공간에 울려 퍼지는 엄청난 소음!
‘뭐, 뭐야?’
갑작스레 공간에 울려 퍼지는 엄청난 소음에 레온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빠르게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지축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자.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 빠르게 감이 잡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뿌득.
‘보댕, 이 개자식. 날 파묻어버리려고 작정했군!’
레온이 소리 나게 이를 갈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투콰아앙!
콰아앙!
지진이 발생하자 갱도의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천정이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돌덩이들이 떨어져 내리기도 하였다.
쿠구궁!
그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레온이 있던 옆 벽면을 뚫고 너클즈가 나타났다.
“아부지! 큰일 났다. 지진이다!”
너클즈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레온은 빠르고 정확하게 명령을 지시했다.
“넌 이자를 라무딘 마을에 내려주고 돌아와!”
“알았다, 아부지!”
투두두두두!
너클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떠나갔다.
그러자 레온 자신도 생각을 다잡으며 행동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바로 죽은 목숨이야! 신속하게 하자!’
레온은 곧바로 숨겨 놓은 얕은 벽을 검으로 부서뜨렸다.
구멍이 드러났다.
파바바밧!
레온은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구멍 속으로 진입해 갔다.
이 구멍은 공동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지진이 발생하면 곧바로 마을로 도망가라고 전해 두었으니, 공동에는 아무도 없을 거야.’
그가 공동으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무너질 위험이 가장 적고 넓은 곳에서 싸워야 해!’
공동은 다시금 지진이 나더라도 최대한 늦게 무너질 수 있도록 미리 방비를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레온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선 좁은 통로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쾌속하게 이동하면서 레온은 이 지진을 만들어 낸 근원은 분명히 자신을 쫓아올 것이라 예상하였다.
두드드드드.
구멍이 뒤편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레온이 전력을 발휘해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허억, 헉.”
레온이 마침내 공동에 도착하여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온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에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이 기운 실화야?’
단언컨대 지금까지 그가 상대하였던 몬스터 중에 가장 강력한 기운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쪽이냐!’
몬스터의 출현으로 공동의 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상상하며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그때.
‘뭐, 뭐야. 저건!’
레온은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스르르륵!
샤아아악!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너클즈처럼 땅을 뚫고 등장하지 않았다.
녀석은 마치 혼백처럼 땅 속을 자유롭게 통과하여 거대한 신체를 드러내어 있었다.
처척!
‘유령이야, 뭐야?’
레온이 어이가 없어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부유하고 있는 히드라의 몸이 반투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크에에에에!
아홉 개의 머리를 지닌 히드라가 포효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머리들이 모두 어스 웜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레온은 곧바로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하였다.
[스피릿츄얼 웜 히드라]
레벨 : 278
분류 : 키메라
등급 : 전설
어스웜과 히드라를 토대로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키메라 몬스터.
몬스터로 키메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이라 칭해지고 있었지만, 체내에 상급 정령을 억지로 융합시켜 가능하게 만들었다.
대신 만들어 낸 존재조차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탄생되어 버렸다.
‘……키메라가 실재하는 거였어?’
레온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던 그때.
띠링.
띠링.
갑작스레 그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