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45화 (245/332)

# 245

유스웰의 마몬 신전.

언제나 마몬 신을 찬송하는 노랫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이곳에 무슨 이유에선가 고요한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었다.

신전 내부에 무슨 일이 있기는 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신전 기사들과 신관들 모두가 자신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조심조심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였다.

“꺄아아아!”

깔려 있던 적막을 꿰뚫고 날카로운 여성의 신음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목소리를 쫓아가자, 그 끝에는 ‘보댕’의 처소가 나오고 있었다.

그의 방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은촛대를 비롯한 여러 신전의 집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뿐이 아니었다.

그 파편들 사이로 시녀 한 명의 싸늘한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아까 들렸던 비명의 주인공인 듯했다.

방 안에 있는 시녀들이 두려움에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순간 보댕이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얼른 안 치우고 뭘 하는 거냐!”

보댕은 본인이 이 참사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어 보였다.

그때 연신 보댕의 눈치를 살피던 신전 기사가 시녀의 시체를 질질 끌고 방을 나갔다.

그러자 이어 보댕이 방 안의 이들에게 말을 꺼냈다.

“모두 꺼져라, 쓸모없는 것들.”

곧이어 방 안에는 오로지 보댕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쿠웅!

쨍그랑!

보댕이 탁자 위에 놓인 유리를 제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유리가 파열음을 내며 박살이 났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생채기도 생겨나지 않아 있었다.

보댕은 핏줄이 선 눈을 번들거리며 말을 이었다.

“빌어먹을, 도저히 화가 풀리지가 않아.”

그와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짐승의 그것 같은 위험한 살기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신관의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 포악하고 음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었다.

이 순간, 그가 이렇듯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멍청한 놈들이 그까짓 놈 하나를 못 해치우고……!”

오늘에서야 자신이 레온에게 보낸 암살대가 임무를 실패했음을 완전히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가 레온에게 암살대를 보낸 지, 어언 사흘이 지나 있었다.

첫째 날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으니, 천천히 해치우려는 것이구나 생각하고 넘어갔다.

둘째 날에는 화가 치솟았지만, 신중을 기하다 보면 이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겼다.

한데 오늘 셋째 날을 보내고 나자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놈들. 당한 거야.’

자신이 레온에게 보낸 암살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지어 모라한의 팔에 심어 놓았던 ‘블러디 패밀리어’조차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아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모두가 전멸하였다는 뜻이었다.

2기사단 전원이 사망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크 팔라딘들은 초대형 몬스터 사냥이나 전쟁터에 숱하게 보냈을 때도, 온전히 돌아왔던 이들이 아니던가.

단 한사람을 처치하는 것에 보냈는데 실패하였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기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까 전, 레온의 여유가 넘치는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부임하면 사고사가 많다고 하던데. 저는 아직도 멀쩡하니 괜한 걱정이셨나 봅니다.’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제가 뭐 미친개들에게라도 물릴 줄 기대하셨던 겁니까?’

‘껄껄, 아무래도 스트레스는 보댕 님이 많으신 것 같군요.’

멀쩡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나타나 맘대로 지껄여 대는데,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올랐던가.

부들부들.

그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몸을 떨며 속으로 생각했다.

‘벌레 같은 놈이, 꿈틀거리는 재주는 있다 이거냐?’

보댕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본신에 뛰어난 실력은 지니고 있었지만, 오만한 심성 탓에 쉽게 적을 얕잡아 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레온의 도발에 완전히 넘어간 그는 레온의 전력을 다시금 확실히 파악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보댕이 소리 나게 이를 악물며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벌레 같은 놈. 두고 봐라. 터널 공사는 결코 네 마음대로 되지 않을 테니!”

……하지만 그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날을 기점으로 아스라한산맥의 터널 공사는 그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 * *

그로부터 나흘 후.

아스라한산맥 터널 공사 현장.

인부들을 관리하는 유스웰의 병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데 그들은 이상하게도 모두가 공통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꽤나 당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누구라도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끔찍한 광경을 본다면, 자연스레 미간을 좁힐 테니 말이었다.

그러던 그때, 그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말일세. 이종족에게 연민을 느낀 건 처음이야…….”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일세.”

“끄아악!”

“아악!”

그 순간, 터널 공사 현장에서 고통에 사무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찰싹! 찰싹!

그와 날카로운 타격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소리의 정체는 바로 채찍 소리였다.

일을 하는 다크 드워프들이 누군가가 채찍을 쉬지 않고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른 일하지 못할까! 이 노예 놈들아!”

그리고 그들의 앞에서 이런 참혹한 광경을 만들고 있는 것은 담당관.

즉, 다름 아닌 레온이었다.

레온은 미치광이처럼 다크 드워프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정답게 그들과 대화를 나누던 모습과는 천지 차이였다.

냉혹하고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한데 다크 드워프들의 태도도 이상하였다.

그들은 불같은 성질과 힘을 지니고 있어 병사들도 감시만 할 뿐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한데 지금은 정말 노예가 된 것처럼, 레온의 말 한마디에 순순히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병사 중 하나가 설설 기는 다크 드워프들을 살피다가 의아한 말을 꺼냈다.

그건 바로.

“쯔쯔, 저놈들도 불쌍하지. 난 저 목걸이를 차게 되면 그냥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야.”

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다크 드워프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채찍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저 목걸이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모든 다크 드워프들의 목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동일한 목걸이가 모두 달려 있었다.

혀를 내두르며 병사들이 놀라운 말을 주고받았다.

“담당관도 대단해, 정말.”

“그러니까 말이야. 저런 흉악한 물건을 화해의 선물이랍시고 속여서 모두에게 주다니…….”

“그러니까 말이야. 누가 알았겠냐고, 저 목걸이에 폭발 장치가 달려 있다니.”

그들은 불같은 다크 드워프들의 성질을 봉인 시킨 것이 바로 저 폭발 장치 목걸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때, 병사 중 한 사람이 주변 눈치를 살폈다.

그러곤 제 입술에 검지를 스윽 가져다대며 입을 열었다.

“쉿, 조용히들 하게. 이러다가 담당관에게 걸려서 우리가 대신 저 신세가 되고 싶은 거야? 조용히 하고 맡은 바 감시들이나 잘하라고.”

그의 말에 병사들이 헉, 하며 놀라고는 금세 뿔뿔이 흩어지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살짝 곁눈질로 살피며 레온이 속으로 크게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런 뒤,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좋아, 이 정도 됐으면 모두 속아 넘어간 것 같군.’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고 연극이었다.

목걸이는 폭발 기능 따위는 내장되어 있지 않았다.

목걸이는 그저 인벤토리에 있던 재료들로 대장장이 스킬과 연금술 스킬을 활용하여 외형만 그럴싸하게 대충 만든 잡템일 뿐이었다.

광기 어린 연기를 보이고 있는 레온의 속마음은 이러했다.

‘쩝, 아프지 않으려나. 살살 치고 있기는 한데 미안해 죽겠네.’

채찍을 휘두름에도 다크 드워프들이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여야,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기에 이런 행동을 벌인 것이었다.

그가 이런 연극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크 드워프들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탈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담당관님. 또 한 명이 죽었습니다.”

……이처럼 사망자를 만들어야 했다.

레온이 자신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건넨 부관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동굴 안에다가 묻으라니까!”

그러자 부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는 푯말에 붙은 종이의 내용을 슥슥 지우고 다시 썼다.

[작업 현황]

금일 사망자 8명.

금일 부상자 5명.

전체 완공도 54%.

부관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담당관이 오기 전에는 사망자가 일주일에 한 명이 생길까 말까였는데, 이제는 매일같이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부관이 답답해하는 것은 희생자의 생명이 안타까워서가 아니었다.

이러다가 다크 드워프들이 모두 죽어 자신들이 황제 폐하의 분노를 받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사망자가 늘은 이유는 하나였다.

원래는 작업을 하지 않던 어린아이와 여성, 노인까지 모두 동원하여 현장에 몰아넣고 있었던 데다가.

업무 강도와 시간을 1.5배에 가깝게 늘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또한 드워프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키기 위함이었다.

순간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드워프들이 하루에 10여 명씩 죽어 나가도 의심을 않지.’

그러던 그때, 레온이 부관과 병사들을 바라보다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왜 동굴 안에 안 들어가는 거냐.”

다크 드워프의 시체를 동굴 안에다가 묻으라는 레온의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아무도 내부로 들어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아니, 저기를 어떻게 들어가.’

‘나도 갇혀서 죽으면 어떻게 하라고.’

지진이 일어나고 나 다크 드워프들이 갇히는 사태가 벌어진 후.

병사들도 혹여나 자신들도 빠져 죽을까 봐, 겁에 질려 터널 내부로 절대 발을 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마운 자식들.’

레온의 입장에서는 두 손 들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이 속마음을 숨기고 다크 드워프의 시체를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는,

“에잇! 겁쟁이 놈들. 됐다, 내가 던져 놓고 작업 현황을 확인하고 오겠다.”

라고 말하며 터널 내부로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온 레온은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빠른 발걸음으로 이동해 들어갔다.

그러곤 심층부까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들쳐 메고 있던 다크 드워프를 땅바닥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여기 있구먼.’

그러곤 자연스레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푸른 빛깔의 액체가 든 포션 하나를 꺼내었다.

“자, 자, 삼키세요.”

이어 그 포션을 그대로 드워프 시체의 입을 열고 들이부었다.

……그러자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쿨럭, 콜록,”

……분명히 숨을 다 한 시체였던 다크 드워프가 기침을 내며,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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