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역시 왔군.’
문이 열리고 보댕의 모습이 나타나자, 레온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레온은 그가 이렇게 자신을 방문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
아까 전 첫 만남에서는 흥분한 탓에 물러갔지만, 곧 진정이 된 이후에는 자신이 어떤 자인지 파악하기 위해 직접 올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보댕은 안쪽으로 섣불리 들어오지 않은 채, 레온을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레온이 장난기가 다분한 말투로 말을 꺼내었다.
“온종일 거기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할 거요? 들어오시오.”
말투가 거슬린 듯, 보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잠시 실례하도록 하겠소.”
하지만 이번에는 신경전에서 지지 않겠다는 듯 표정 관리를 하며 보댕이 말을 꺼냈다.
그는 자신의 수하들은 문밖에 대기시킨 채, 홀로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끼익.
쿵.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나자,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보댕 쪽이었다.
“……먼저, 아까의 무례는 사과하겠소. 이종족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모양이오.”
보댕이 한 수 양보하며 말을 꺼냈다.
그가 저자세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어찌되었던 간에 황제가 직접 임무를 내린 다크 드워프들에게 그가 공격을 날린 것은 확실히 잘못된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레온이 상부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 피곤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보댕이 속으로 혀를 차며 생각했다.
‘젠장, 그런 타이밍에 딱 맞춰 올 줄이야.’
하나 그의 걱정과는 달리 보댕의 말이 끝나자, 레온이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을 하였다.
“뭐 신경 쓰지 마시오. 흥분해서 눈알이 뒤집히면 그럴 수도 있지.”
레온의 저속한 표현에 보댕의 한쪽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하오.”
그 후, 한동안 두 사람은 딱 보아도 가식적인 대화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알맹이가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는 내내 두 사람의 눈빛은 흡사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와 같았다.
기 싸움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이쯤에서 한번 찔러 볼까.’
그러다가 순간 레온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불쑥 말을 꺼냈다.
“한데 웃기지 않소?”
“뭐가 말입니까.”
“지진이 나서 무너지려면 전부 다 무너져야지, 왜 터널 갱도만 무너지고 보석을 캐는 곳은 멀쩡한가 말이지.”
훅 들어오는 레온의 날카로운 질문에 보댕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아까 레온이 시장이 가져온 지도를 보고 파악해 본 결과, 보석 채광장과 터널 공사 갱도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진이 일어나면 보석 채광장도 타격을 입는 것이 당연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보석 채광장은 어떠한 사소한 피해조차 입지 않았던 것이었다.
‘100퍼센트 뭐가 있다는 거지.’
레온이 그런 확신이 가득히 담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보댕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짐짓 여유로운 척하며 그 눈빛을 넘겨 내었다.
보댕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답을 하였다.
“위대하신 신의 의지를 하찮은 인간이 어떻게 알겠소.”
그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그에 레온은 보댕이 역시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느꼈다.
‘100년 묵은 너구리 같은 새끼.’
순간 레온은 언젠가 철저하게 짓밟아 주리라 다짐하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뭐, 알겠소. 그럼 그건 됐고, 시장에게 들어 보니 보석 채광장과 터널 갱도에 얼쩡거리는 신전 소속 병사들이 있다고 들었소만?”
“얼쩡거리는 것이 아니라, 고생하는 일꾼들에게 마몬신의 축복을 기원해 주기 위해…….”
보댕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레온이 단박에 말을 끊었다.
“지진이 나서 다 죽게 생겼는데, 그동안의 기원은 쓸데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 아니오? 필요 없으니 모두 철수시키시오.”
“감히 그따위 망발을!”
레온의 말이 끝나자, 보댕이 부들부들 몸을 떨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죽일듯한 기세로 레온과 보댕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의 전신에서 살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레온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꺼내었다.
“뭐, 아니면 더 좋은 방법도 있기는 한데 말이지.”
“……무슨 방법을 말하는 거요.”
보댕은 의아해하며 말을 꺼내었다.
“어허, 이거 다 아는 선수들끼리 너무 그러지 맙시다.”
그에 레온이 능글맞은 태도로 넌지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도 다 알고 왔소. 채광된 보석을 교황청 쪽에서 채 간다던데.”
“……!”
레온의 말이 끝나자, 보댕은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말을 꺼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서로 상생하며 갑시다. 윈윈, 좋지 않소?”
“……어쩌자는 거요?”
레온의 말에 어디 들어나 보자는 식으로 보댕이 말을 꺼내었다.
그러자 레온이 당당한 태도로.
“뭐, 명목상으로 황실에 바쳐야 하는 양이 있으니. 총 채광량의 1할 정도는 본국에 보내기로 합의를 보고, 나머지 중에 내가 4할, 교황청이 5할 어떻소?”
레온의 말을 들은 보댕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한데 그럴 만도 했다.
지금 현재 교황청이 중개 도시, 하반에서 가져가는 채광량이 7할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4할이나 챙겨가겠다고 하면서, 반절인 5할을 넘겨주겠다는 허무맹랑한 제안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보댕이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흥!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순간 실실 웃고 있던 레온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거절로 들으면 되는 건가?”
레온의 말에 보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얼음장 같은 눈빛을 레온에게 쏘아 내며 말을 꺼냈다.
“서로 간에 할 이야기는 다 나눈 것 같으니 난 이만 물러가겠소.”
“끌끌, 그러쇼. 마중은 멀리 안 나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댕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보댕이 갑작스레 레온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섬뜩한 말을 꺼내었다.
“조심하시오. 여태껏 공사를 주도하던 이들 중에 스트레스로 인한 ‘사고사’가 굉장히 많았으니까.”
노골적인 경고였다.
‘귀여운 자식. 아주 쥐어 터지려고 발악을 하네.’
하지만 레온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심 얼른 기습이라도 해 오지 않나 바라는 것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에 성공한 호문클루스의 힘을 빨리 사용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이 피식하고 웃어 보이며 마지막 말을 꺼냈다.
“당신 걱정이나 하쇼. 난 지금껏 한 번도 피로를 느껴 본 적이 없으니까. 근데 안 가시오? 이만 좀 자고 싶은데.”
“흥! 그 잘난 척하는 태도가 얼마나 갈지 지켜보겠다.”
쿠웅!
레온이 당당하게 말을 끝마치자, 보댕이 문이 부서져라 소리 나게 닫고는 그대로 떠나갔다.
잠시 후, 레온은 창을 통해 보댕이 완전히 떠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혀를 차며 말을 꺼냈다.
“쯔쯔, 어쩜 예상과 하나 다를 것 없이 진행되는지.”
그랬다. 그는 어차피 보댕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 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온이 그렇게 무모한 딜을 시도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보댕과 그의 뒤에 있는 교황청에 레온의 조작된 이미지를 심어 내기 위함이었다.
‘너무 유능하고 뛰어나게 보여도 안 좋아. 금전적인 이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소인배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 베스트야.’
적이 자신을 얕잡아 보게 만들려는 작전임과 동시에 훗날 스파이로 교황청에 잠입하게 될 때 도움이 되리라 예측하고 실행한 작전이었다.
이로써 사전 작업은 모두 완료가 된 듯하였다.
레온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꺼냈다.
“휴우, 오자마자 바쁘군, 바빠.”
일 하나를 끝내고 나니, 피곤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레온은 침대에 눕지 않았다.
아직 쉴 시간이 없었다. 한시바삐 갈 곳이 있었다.
순간 레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두둑, 하고 뼈 소리를 내며 손을 풀었다.
“자, 그럼 이제 한번 터널로 가 볼까.”
레온은 곧장 갱도가 무너져 내렸다는 터널 공사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 * *
쨍그랑!
어느새 신전으로 돌아온 보댕이 유리병을 벽에 던져 깨트렸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의 눈빛에 위험해 보이는 살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뿌득, 하고 그가 소리 나게 이를 갈며 말을 꺼내었다.
“시건방진 녀석이 감히!”
당연하게도 그는 레온을 향해 분노를 쏟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쉽사리 분이 안 풀리는 듯, 한동안 방에 있는 여러 물건들을 다 깨부수었다.
바깥에 있는 다른 신관들은 이런 일이 다분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한데 그때였다.
위잉!
위잉!
갑작스레 방 안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엇!’
그에 난장판을 만들고 있던 보댕이 깜짝 놀라 하더니, 이내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거대한 거울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가 거울에 손을 가져다 대자, 마치 호수에 파문이 생기듯 거울에 기묘한 변화가 발생했다.
그러곤 곧이어 그 파문은 점점 한 남자의 형상으로 변화해 가기 시작하였다.
거울은 바로 교신 장치였던 것이다.
곧이어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자 보댕이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가 이렇게 예를 갖추며 재판장이라 부를 인물은 단 한 사람밖에는 없었다.
그랬다. 거울 속에 떠오른 남자가 바로 피에 미친 종교재판장이라 불리는 모즈구스였다.
이제는 완전히 선명해진 모즈구스가 인사를 전했다.
-그래, 잘 지냈는가.
“제, 제가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모즈구스 님의 기도 덕분에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에 레온에게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보댕은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며 대답하였다.
모즈구스의 오른팔로서 가장 가까운 자라고 평가되는 보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즈구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탓이었다.
한데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모즈구스는 저 인자한 인상과는 정반대로 정말 잔혹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사소한 실수 한 번에 목이 날아간 이들을 수도 없이 보았던 보댕이지 않던가.
그러던 그때, 모즈구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 기사단 쪽에서 사람을 새로 보냈다고 하던데. 만나는 보았는가.
“네, 안 그래도 방금 만나고 왔습니다.”
-어떤 자이던가?
“재판장님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멋모르는 애송이일 뿐입니다.”
순간 보댕이 레온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모즈구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어 보댕은 레온이 자신에게 건넸던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모즈구스에게 전하였다.
-4할? 끌끌, 탐욕에 미친 작자로군.
모즈구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쯧쯧, 자네가 한시바삐 마몬님의 은혜를 내려 주어야겠구먼.
마몬은 죽음의 신.
그가 내릴 은혜란 한 가지밖에는 없었다.
보댕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자네만 믿고 있겠네, 보댕. 마몬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마몬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슈웅.
그 말을 끝으로 작은 효과음과 함께 거울에 비치던 모즈구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렇게 교신을 마친 이후.
“후후.”
보댕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모즈구스에게서 레온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순간 보댕이 레온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차라리 죽는 것을 바랄 정도로 철저하게 고문을 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