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35화 (235/332)

# 235

미친 듯이 질주하던 마차는 어느새 거짓말처럼 멈춰 서 있었다.

‘여긴 어디야?’

잠은 이미 싹 달아나 버린 상태였다.

레온은 마차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황급히 빠져나왔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높은 성벽과 굳게 닫힌 성문이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곯아떨어져 있는 와중에 마부가 다른 곳으로 몰래 데려온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었는데, 그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순간 무언가를 확인한 그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제대로 온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성벽 위로 목적지였던 ‘유스웰’을 상징하는 시기(市旗)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레온은 더욱더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를 않고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암흑성국의 성문 바로 앞에서 폭발을 일으켜?’

최남단 끄트머리에 위치하여 있다고는 하나, 이곳 유스웰은 엄연한 암흑성국의 도시 중 한 곳이 아닌가.

이런 미치광이 같은 짓을 저지른 이가 누구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스윽.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화약 냄새를 느끼며, 레온이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곳에서 50여 명에 이르는 잔뜩 성난 난쟁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판테라의 이종족 중 하나인 드워프들이었다.

한데 그들은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드워프들과는 생김새가 약간 달랐다.

‘검은 피부?’

그건 바로 그들이 하나같이 재를 칠한 듯, 암회색의 피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라, 그럼 저자들은?’

레온의 머릿속에 ‘아스라한산맥에 터널을 개통시켜라’ 퀘스트의 내용 중 한 구절이 떠오르고 있었다.

-분노한 황실은 오래전 사로잡은 다크 드워프 일족들로 하여금 산맥에 터널을 개통시켜, 그 비용을 내지 않으려 하였다.

그렇게 레온은 전혀 예상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터널을 뚫는 인부들인 ‘다크 드워프’들과 만나게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만나게 됐네.’

한데 그때였다.

“……크으윽.”

“으윽.”

레온의 귓전에 신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에 레온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쯧, 드워프들이 호되게 당했군.’

모두 다크 드워프들이 내는 고통에 찬 소리였던 것이다.

곧이어 시야를 가리던 검은 연기가 사라지자, 레온의 눈앞에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폭발에 휩쓸린 다크 드워프들이 처참한 부상을 입은 모습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진 다음 순간.

다크 드워프들이 살기 넘치는 분노를 가득 담아 성벽 위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크윽, 미치지 않고서야 이따위 짓을!”

“이 은혜도 모르는 인간 놈들 같으니!”

그 순간, 레온은 폭발을 일으킨 것이 다크 드워프들이 아니라 그들이 노려보고 있는 성벽 위에 선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레온은 지금 당장 저 혼란함 틈 사이로 들어가도 되었지만.

‘흐음, 조금 더 지켜봐 볼까.’

일단 지금처럼 잠깐 뒤에 물러서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 보기로 결정하였다.

“독수리의 시야.”

그러곤 곧바로 샤먼의 스킬 중 하나인 독수리의 시야를 사용해 자신의 시력을 강화시켰다.

‘좋아, 잘 보이는군.’

그러자 멀리 떨어진 성벽 위의 모습이 망원경이라도 쓴 것처럼,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두 사람이 열쇠겠군.’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일반 병사들을 제외하고 나자, 집중해야 할 두 남자의 모습이 확인되고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시체처럼 안색이 파리해진 채,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남자였다.

작은 체구의 그는 쥐새끼 같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건방진 이종족 놈들이 마몬님의 성은을 받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얼굴에 ‘나 광신도예요!’라고 큰 글씨로 적혀 있는 듯한 뱁새눈의 신관이었다.

구겨져 있는 듯한 표정과 심술궂게 다문 입술이 그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했다.

그 순간, 레온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신관을 바라보며 알아차린 한 가지 사실을 되뇌었다.

‘딱 봐도 저 자식이 다크 드워프들에게 공격을 날렸군.’

그러던 그때,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듯한 신관과 다크 드워프간의 설전이 벌어졌다.

다크 드워프들 중 한 명이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을 꺼내었다.

“젠장! 무너진 터널 갱도에 구출 병력을 보내 달라는 것이 포격을 맞을 일이냐!”

‘뭐, 뭐가 무너져?’

순간 레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뚫어야 하는 터널 갱도가 무너졌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레온의 얼굴이 석고처럼 딱딱하게 굳어 갔다.

이어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머릿속으로 분명히 큰일은 아닐 것이라, 애써 현실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뒤이어 하나둘씩 들려오는 다크 드워프들의 이야기들은 그가 처한 심각한 현실을 여지없이 밝혀 주고 있었다.

“아직 무너진 갱도에 수많은 형제들이 갇혀 있소!”

“안쪽에 물과 구급 식량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얼른 구출 병력을 보내 달란 말이다!”

그때 레온은 왜 다크 드워프들이 이렇게 성문 바깥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터널 갱도가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작업을 하던 동료 다크 드워프들마저 갇히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저렇게 난리를 칠 만도 해 보였다.

하지만 신관은 그들의 애탄 청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신관이 레온이 들어도 어이가 없을 지경의 막말을 내뱉었다.

“흥! 이미 죽었을 시체들을 구출하기 위해 우리의 귀한 암흑성국의 병력을 보내란 말이냐. 어림없는 소리!”

신관의 말에 머리끝까지 분노한 다크 드워프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젠장! 그러면 우리가 직접 가서 구하겠다!”

“최소한 우리를 보석 채광 작업에서 빼 줘라!”

그들의 작업은 두 가지가 주 업무인 듯했다.

보석 채굴과 터널 갱도를 뚫는 것 말이었다.

하지만 신관은 얼굴에 냉소를 지으며, 비웃는 듯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너희들 쓰레기들이 마몬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빼 달라니. 절대 그럴 수 없지.”

다크 드워프들이 한계까지 다다른 분노에 부들부들 몸까지 떨고 있었다.

순간 레온이 안타까워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쯔쯔, 저놈은 너희들을 절대 보내지 않을 거야.’

레온은 신관이 왜 드워프들을 터널 복구와 구출 작업에 보내지 않으려는지 알고 있었다.

‘저놈들은 터널이 뚫리는 걸 원치 않으니, 보낼 리가 없지.’

터널을 만드는 것 자체가 교황을 따르는 이들의 이득을 줄이기 위한 일인데, 허락을 해 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신관이 드워프들을 향해 억지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다 너희들이 자초한 잘못 아니냐. 알아서 잘 대피했어야지. 쯔쯔, 지진 하나를 예측하지 못하다니. 네놈들이 진짜 드워프들은 맞는 건지 의심이 드는구나.”

그의 말이 끝나자, 다크 드워프들이 발끈하여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들이 눈 먼 장님들인 줄 아는 거냐! 그 지진은 절대 자연적으로 생긴 지진이 아니었다!”

“그래! 지모신(地母神) 가이아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가 지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

그들의 당당한 태도에 말을 내뱉은 신관의 얼굴에 일순간 살짝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다가 사라졌다.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어쭈, 저것 봐라?’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집중하여 보고 있던 레온만은 캐치할 수 있었다.

인공적인 지진이라.

레온의 머릿속에 가설 하나가 슬그머니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신관이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을 몰수하며 버럭 화를 내었다.

“흐흥! 그럼 누가 인공적으로 만들기라도 했다는 건가? 멍청한 소리!”

점입가경으로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눈이 돌아간 다크 드워프들이 신관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개처럼 부려 먹을 땐 언제고! 얼른 형제들을 구해 달란 말이다!”

“이 정신 나간 마몬의 노예야!”

다크 드워프의 마지막 말에 신관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이 건방진 혼종(混種)놈들이 감히 마몬님을 모독해!”

혼종이란 인간이 다른 이종족들을 혐오하며 표현하는 용어였다.

이어 신관은 전신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일으키더니, 한 손에 이글거리는 검은 불덩어리를 생성하였다.

아까 전, 폭발을 일으켰던 것이 이 스킬인 것 같았다.

“불경한 자에게는 오직 신의 철퇴뿐!”

우우우웅!

슈아아앙!

진동음과 공기를 찢는 듯한 파공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다크 드워프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전의 공격보다 더욱 거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신관 옆의 쥐새끼남이 경악하며 신관을 다급히 말렸다.

“시, 신관! 미치셨소! 저들은 어찌 됐든 황제 폐하를 위해 일하고 있는 이들이오! 그 정도면 위협사격이 아니라 전부 죽소!”

“빠지시오, 머독 시장! 신을 망령되이 내뱉은 쓰레기들에게 자비란 없소!”

하지만 신관은 조금도 스킬을 물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크 드워프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모두 반격을 준비해라!”

수장으로 보이는 다크 드워프가 먼저 소리를 지르자, 다른 이들이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안 되겠다 싶어, 앞으로 달려가 이 상황을 정리하려던 레온은 다크 드워프들의 그 모습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저자들 수중에 무기도 없는데 뭘 하려는 거지?’

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정말로 그들에게 일반적인 드워프들이 쓰는 도끼류의 무기가 하나도 없었다.

스윽.

처척.

그저 그들은 난데없이 각자의 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어라, 잠깐만. 저건?’

레온의 표정에 놀란 감정이 떠올랐다.

다크 드워프들의 드러난 소매 안쪽에서 공통된 한 가지 물건들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순간 레온은 속으로 ‘다크 드워프들이 어떻게 저것을 가지고 있지?’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자신이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몬이시여!”

“공격 준비이이!”

어느새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도달하여 있었던 것이었다.

‘쳇, 궁금해 죽겠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러던 그때, 레온이 아쉬움에 혀를 차며 행동을 개시했다.

레온이 전력을 다해 진각을 밟았다.

콰아앙!

그러자 앞서 발생했던 스킬의 폭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굉음이 터져 나왔고, 레온이 발사된 총알과 같은 속도로 앞으로 날아갔다.

난데없이 벼락이 내리꽂힌 듯한 소리가 들려오자.

“헉!”

“뭐, 뭐야?”

모두는 화들짝 놀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누구?”

“……저자는?”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두 세력 사이에 레온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어 있자, 전투를 준비하던 양쪽의 모든 이들이 식겁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어느새 신관이 시전하던 스킬의 캐스팅은 해제되어 있었고.

다크 드워프들은 모두 벙 찐 상태로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싸아-.

거침없는 침입자의 등장에 시끌벅적하던 공간에 갑작스레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이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순간.

“자, 모두 거기까지다.”

레온이 나지막하지만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말을 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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