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
“저, 교수님.”
강의를 마무리하고 떠나려는 노교수의 앞에 유호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에 ‘이건 또 뭐야.’라는 마음속의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표출하며 노교수가 입을 열었다.
“왜, 지난 결석 때문에 그러는가? 진료 확인서는 안 되니까 진단서로 끊어서 조교에게 제출하게.”
그는 이런 상황이 지겹다는 말투로 말을 꺼내었다.
유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아, 전 그것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그러는데요.”
“……그럼 뭔가?”
심드렁하게 노교수가 대답하자, 유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어 말했다.
“그, 제가 모르고 저번 주 과제를 제출을 못해서요. 늦었지만 혹시라도 받아 주실 수 있는지 여쭤 보려고…….”
수업을 듣다가 같은 조원에게 저번 주까지 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던 것.
첫 수업부터 펑크를 내던 유호가 그래도 뒤늦게나마, 과제를 내려고 한다는 사실에 교수는 약간 얼굴 표정이 풀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유호에게 대답을 하였다.
“……뭐 늦게라도 낸다고 하면 받기는 하겠네만,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을 위해서 아무리 잘했어도 높은 점수는 줄 수 없네.”
교수의 말에 유호가 밝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 당연하죠. 전 최저 점수만 받아도 괜찮습니다.”
진심이었다.
어차피 유호는 이제 학교 성적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현재 게임을 통해 대기업에 취직한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달마다 벌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는 어느새 그저 무사히 졸업만 하자는 마인드로 바뀌어 있었다.
하나 이렇게 뒤늦게나마 과제를 내려는 것은 단지 교수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쩝,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게임 하다가 네 번 이상 빠지게 될 것 같단 말이지. 이대로 찍혀 버리면 나중에 아무리 사정해도 무조건 F를 주실 거야.’
유호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노교수가 자신의 손목에 걸린 스마트 워치를 살피더니, 이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자자, 다 끝났으면 가 봐도 되겠나? 내가 지금 조금 급해서 말이네.”
“아, 네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네 아무래도 게임 때문에 늦은 것 같은데, 잘 조절하게. 뭐든지 적당히가 가장 중요한 거……”
그렇게 노교수가 떠나기 전, 유호에게 마지막 조언을 건네려고 하던 그때.
띠리링.
띠리링.
노교수의 스마트 워치에서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노교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는 얼른 스마트 워치의 전원을 끄려 했지만, 미리 설정해 두었던 기능이 먼저 시동이 되었다.
-숙련도 버닝 이벤트 타임이에용. 잊지 말고 로그인하시라구욥!
판테라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캐릭터 ‘채린’의 귀여운 목소리가 둘뿐인 강의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바로 스마트 워치에 설정해 놓을 수 있는 보이스 알람이었다.
싸아-.
얼어붙은 것 같은 정적이 감돌던 그때.
교수가 헛기침을 연달아 하며 유호에게 말을 꺼내었다.
“크흠, 이, 이게 왜 이렇게 소리가. 크흠.”
교수가 바쁘다고 했던 것은 게임을 하러 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유호가 교수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으며 말을 건네었다.
“교수님도 판테라를 하시는가 보네요?”
“……왜, 나 같은 늙은이는 못할 것 같나?”
“아니, 아니요, 반가워서요. 저도 이제 판테라를 하러 갈 거거든요.”
유호의 말에 노교수는 살짝 흥미가 동한 듯 질문을 건네 왔다.
“……그런가? 자네는 직업이 뭔가?”
그 순간, 유호는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노교수의 직업과 같은 직업을 말하면, 조금이나마 더 친밀해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현실 속에 치르는 친밀도 상승 퀘스트였다.
‘그래, 로그아웃을 하면서 분명히 봤었어. 이번 숙련도 버닝 타임 이벤트 대상 직업은…….’
숙련도 버닝 이벤트는 매일 하나의 직업을 바꾸어 가며 진행되는 이벤트였다.
‘맞아! 그거였어!’
마침내 생각해 내는 데 성공한 유호가 사뭇 당당한 목소리로 노교수에게 말을 건넸다.
“전 대장장이입니다.”
그 순간, 노교수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졌다.
“어라? 자네도? 이거 반갑구먼, 나도 대장장이라네.”
‘예쓰!’
유호가 정답을 맞히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말요? 휴, 교수님도 숙련도 올리느라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저도 죽을 맛…….”
한데 그렇게 레온이 넉살 좋게 한마디를 덧붙이던 그때였다.
“휴우, 자네 말이 맞네, 이러다가 정말 죽겠다 싶네. 숙련도가 정체기에 들어서서 명장 NPC의 제자로 들어가야 하는데, 아니 그런 이들은 모두 대형 길드와 국가에서 선점을 하고 있지 뭔가. 이게 말이 되는 일인…….”
노교수는 그동안 쌓인 울분이 많았던지, 완전히 캐릭터가 바뀌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순간 유호는 식겁했지만, 일일이 모두 고개를 끄덕여 가며 경청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방청객처럼 호응을 해 주는 와중에, 유호는 교수가 지금 처해 있는 문제를 캐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면 높은 수준의 대장장이한테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거 아냐.’
그러자 그때, 레온의 머릿속에 자주 얼굴을 비추지 않는 제자 때문에 시름이 가득하다는 대장장이 NPC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유호가 노교수의 말을 끊으며 한마디 말을 건네었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제가 어떻게 해결을 해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유호의 말에 노교수의 얼굴이 대번에 환하게 밝아졌다.
“엇, 그게 정말인가?”
“네, 제가 ‘간곡’하게 부탁하면 저의 ‘명장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스승님이 제자로 받아 주실 것 같거든요.”
유호가 거짓을 살짝 보태고, 몇 가지 부분에 강조를 하며 말을 꺼내었다.
“그, 그래 줄 수 있나?”
노교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잠시 후, 그는 고심이 가득한 얼굴로 유호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아, 근데 제자에게서 이런 도움을 받아도 될지…….”
‘마지막 고비다!’
유호가 순간 어깨를 쭉 펴며 당당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말을 건넸다.
“에이, 제가 뭐 금전적인 걸 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게임 내 NPC를 소개시켜 주는 건데 이게 문제가 될 리가 있나요.”
게임에서 NPC에게 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말빨을 세우는 유호였다.
“그, 그렇지? 그래, 내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에 곧이어 욕심에 넘어간 노교수가 유호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유호가 들키지 않게 악마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요. 자, 제가 영지 한 곳을 알려 드릴 테니까 지금 가셔서 로그인하시면 곧장 그곳으로 가세요. 그리고 마을의 대장간으로 가서 제 이름을 대시면 친절하게 도와드릴 거예요.”
“허허, 정말 고맙네. 유호 군.”
그 순간, 노교수의 표정에는 참을 수 없는 순수한 기쁨이 떠오르고 있었다.
“별말씀을요, 교수님.”
그러나 그에 반해 미소를 짓고 있는 유호의 속마음은 시커멓기 짝이 없었다.
곧이어 신이 나서 강의실 문을 열고 떠나는 교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호가 속으로 생각했다.
‘흐흐, 교수님. 세상만사 모든 것은 등가교환입니다.’
* * *
그로부터 이틀 후.
“자, 모두 이쪽으로 들어가도록.”
기사단 건물에 도착한 입단 심사 통과자들이 기사의 안내에 따라 내부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많았던 심사자들 중에 오로지 다섯 명만이 남아 있었다.
2차 시험을 보았던 곳보다, 더욱 깊숙한 곳까지 이동을 하고 있었다.
‘흐음, 이렇게 생겼단 말이지.’
그러던 그때, 레온은 건물의 내부 구조를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언젠가 잠행을 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 행동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흐아암. 아우, 죽겠네.’
온몸에 쌓인 피곤이 그의 눈꺼풀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두 눈에 짙은 다크서클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가 이렇듯 극도의 피로에 가득 차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레온 님! 재료 가져왔습니다!’
‘저는 할당량의 두 배를 가져왔습니다!’
‘전 저의 실험 도구까지 팔아서 사 왔습니다!’
‘얼른 저에게 오토마톤을!’
‘저도 오토마톤을!’
신 노예, 아니 연금술사들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뛰어나게 명령을 완료해 놓았던 탓이었다.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게임 시간으로 닷새가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공약 때문에 연금술사들에게 오토마톤을 만들어 주는 작업에만 붙잡혀 있어야 했다.
‘……휴, 각자 자신의 기어 골렘에 바라는 제작 방향이 어찌나 확고한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요구 사항을 늘어놓는 통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
연금술사들에게 있어 기어 골렘이란 단순한 골렘의 의미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레온을 달달 볶듯이 하며 귀찮게 괴롭혔다.
결국 레온은 날밤을 꼬박 새워 가며, 모든 전투직 연금술사들의 기어 골렘을 오토마톤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켜 준 후, 이곳에 도착을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레온이 피곤함을 이겨 내려 얼굴을 손으로 비비던 그때.
함께 걸어가고 있는 다른 유저들의 대화 소리가 레온의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휴, 떨려 죽겠네. 난 몇 병단으로 가게 되려나.”
“글쎄, 신입 기사가 곧바로 1병단에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 하니 그건 제외하고, 어떻게든 2병단에 들어갈 수 있기를 빌어야 하지 않겠어?”
2병단에 들어가야만 한다.
사실 그들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
흑암기사단도 다 같은 흑암기사단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병단과 2병단은 전투 병단이었다.
반란군이나 이교도들과 전투를 벌이는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만큼 자신의 활약에 따라 악명과 지명도를 쌓기가 쉬웠다.
하지만 3병단으로 가면 몇 달은 귀족의 시다바리나 하면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고 했다.
‘쩝, 3병단은 아니겠지?’
이야기를 들으며 레온은 살짝 걱정이 차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털어 내었다.
처척!
그러던 그때, 이윽고 그들의 걸음이 멈추었다.
레온의 시야에 넓은 연무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어 그들을 인도해 온 기사가 그들을 향해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일동 차렷!”
차착!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다섯 사람은 기사의 말에 일순간 자세를 정비했다.
그러자 곧이어 나이저가 연단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자네들의 병단과 보직을 알려 주겠다. 호명된 이들은 앞으로 나와 배정된 갑옷과 무기를 받아 가도록.”
그는 간단한 축하 인사도 없이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케일. 3병단, 귀족 호위,”
“라오이. 3병단, 시내 치안.”
그런데 어찌 된 것이 줄줄이 호명되는 이들이 모두 3병단이었다.
그에 레온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끄응, 3병단부터 시작하면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데.’
그렇게 다시금 걱정이 고개를 들던 그때.
“리온.”
나이저가 레온을 호명하였다.
꿀꺽.
레온은 침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그의 입에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레온의 병단은 바로,
“2병단. 임무 수행.”
‘예쓰!’
다섯 명 중 유일하게 2병단이었다.
레온이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가 갑옷과 무기를 양손에 받았다.
띠링.
띠링.
순간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흑암기사단의 2병단 소속 ‘일반 기사’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직속 상사로 ‘나이저’가 지정되었습니다.
-‘흑암기사단 칠흑의 갑옷’을 획득하였습니다.
-‘흑암기사단 칠흑의 대검’을 획득하였습니다.
레온이 자꾸만 지어지는 미소를 힘겹게 참고 있던 그때, 기사가 다시금 큰 소리로 말을 꺼내었다.
“이제 각자 자신의 소속 병단의 단장실로 이동하도록! 각 병단장님께서 각자의 역할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실 것이다!”
기사의 말에 따라 레온을 포함한 다섯 명의 새로운 흑암 기사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나머지 네 사람은 유일하게 2병단에 배속된 레온을 부러움과 질투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에 레온이 한껏 콧대를 세우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훗, 남자의 질투는 보기 흉하군.’
라고 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순간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로부터 잠시 후.
‘……이거 실화야?’
‘임무 수행’이라는 자신의 특수한 보직에 대해서 나이저에게 설명을 듣는 레온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