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이윽고 드러난 승자의 모습을 확인한 입단 심사자들의 얼굴에 안타까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쩝, 역시 무리였나.”
“그러니까 말이야. 뚫리나 했는데, 막혀 버리네.”
“저 사람도 떨어질 정도면, 그냥 난 다음에 시험을 치를래…….”
그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승패는 클라리우의 승리로 결정이 나있었다.
갑옷에 흠집이 생기고 얼굴에 약간의 생채기가 생기기는 하였으나, 클라리우는 대체로 멀쩡한 상태로 서 있었다.
반면 레온은 상당한 타격을 입은 듯,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던 것이다.
레온은 클라리우를 주시하며 속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젠장, 역시 전력을 드러내지 않으면 힘들군.’
역시나 암흑성국을 지탱하는 두 세력 중 한 곳의 주인이라는 것일까.
유니크 직업 두 개의 힘을 동시에 쏟아부었는데도, 결국 뚫지 못하고 말았다.
설마 이대로 탈락인가.
자신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레온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한데 그때, 레온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크하하하.”
갑작스레 클라리우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뭐지?’
그에 레온을 포함한 입단 심사자들 모두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서히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난 후, 클라리우의 말이 이어졌다.
“좋군, 좋아. 얼마 만에 오러 피스트를 사용해 봤는지 모르겠군.”
클라리우의 반응은 그 전까지 심사자들과 전투를 치르고 난 후와는 완전히 달랐다.
얼굴에 실망감이 아닌 만족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가 레온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레온이 얼떨결에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어 클라리우가 레온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쏘아 내며 말을 건넸다.
“더욱 정진해라. 황제 폐하를 위해 큰 역할을 할 때가 올 것이니.”
그러곤 말이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굳은 얼굴로 뒤를 돌아 시험장 바깥으로 사라졌다.
순간 기사 중 한 명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말을 꺼냈다.
“2차 시험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진행하겠다! 그때까지 남은 심사자들은 이곳에서 대기하도록!”
기사의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장내는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레온은 아직까지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이거? 된 거야 안 된 거야.’
당최 자신의 입단 심사 결과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불쑥 말을 건네었다.
“수고했네.”
그는 바로 추천장을 써 주었던 흑암 기사단 2병단 단장 나이저였다.
다른 심사자들은 흑암 기사단의 고위 인사인 나이저가 레온에게 다가오자,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레온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무언가 더 보여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울 뿐입니다.”
그러자 나이저가 호탕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껄껄, 충분하네 이 사람아. 단장님이 지닌 본신의 힘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네.”
순간 나이저의 말에 레온의 눈이 반짝였다.
‘충분하다고? 그럼 설마?’
그가 꺼낸 말의 뉘앙스가 그가 간절히 원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씀은……?”
나이저가 레온의 어깨를 토닥이며 기쁜 목소리로 말을 꺼내었다.
“흑암기사단의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하네.”
띠링.
띠링.
나이저의 말이 끝난 순간,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퀘스트 ‘흑암기사단이 되는 길’을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정식으로 흑암 기사단의 단원이 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악명 20,000이 증가합니다.
-칭호, ‘충직한 암흑기사’를 획득하였습니다.
메시지의 내용을 모두 보고 나자, 레온은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흑암기사단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기쁨을 온전히 만끽할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레온의 마음속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클라리우……. 다음번에는 압도적으로 짓밟아 주마.’
걱정이 해결되고 나자, 클라리우에 대한 승부욕이 다시금 차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모든 힘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 것은 진 것이었다.
나이저를 앞에 세워 두고 있었기에 표정 관리와 기뻐하는 연기는 계속하고 있었지만, 레온의 머릿속은 온통 클라리우를 해치울 방법으로 가득하였다.
순간 그가 두 가지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였다.
첫 번째는 바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또 한 번 인장을 사용하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에픽 직업을 만드는 게 베스트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고. 그래, 최소한 레전드리 직업을 하나 더 추가로 만들어 보이겠어!’
레전드리 직업을 얻으며, 약간은 만족감에 취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하였다. 본 드래곤과 호문클루스는 그만큼 강력하였으니까.
그러나 이번에 클라리우와 맞상대하여 보니, 그에 필적하고도 남는 상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소환수들로도 승리를 단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완전한 격차로 녀석을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또 하나의 레전드리 직업의 힘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렌탈 클래스로 사용할 새로운 유니크 등급의 직업을 추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두 개 이상의 남이 지닌 유니크 직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여태껏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렌탈 클래스에 노력을 들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무투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직업을 지닌 자가 있는 지 샅샅이 정보를 찾아보리라.
순간 레온의 눈이 먹잇감을 찾는 짐승의 그것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니크 직업을 지닌 이들이라면, 랭커들밖에는 없겠지.’
레온이 그렇게 바쁘게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던 그때.
나이저의 말이 끝이 나고 있었다.
“……자네의 병단과 보직이 결정되는 것은 엿새 후라네. 그때 보도록 하지.”
엿새 후, 현실 시간으로는 이틀 후였다.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게 레온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엿새 후에 뵙겠습니다!”
“후후, 그럼 난 이만 단장님께 가 보겠네.”
그 말을 끝으로 나이저 또한 클라리우가 갔던 방향으로 이동해 갔다.
‘휴우, 끝났군.’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스윽하고 레온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어느새 내부에는 레온만 남아 있었다.
‘이틀 후라.’
생각지 않게 꽤나 긴 시간이 주어져 있었다.
이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나 그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끄응, 역시 가 봐야겠지.”
11시 30분.
현재 시각을 확인한 순간, 게임을 하는 내내, 한편에 제쳐 두었던 일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로그아웃.”
곧이어 레온이 곧장 현실로 로그아웃을 하고 있었다.
레온이 현실로 나가고 난 후.
나이저는 흑암 기사단 단장실에서 클라리우와 독대를 나누고 있었다.
단장을 지키는 은밀한 호위 병력까지 뒤로 물린 상태로, 공간에는 온전히 둘뿐이었다.
싸아-.
무슨 이유에선가 방 안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나이저였다.
나이저가 슬며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셨는지요?”
그의 말에 클라리우가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을 하였다.
“자네 말대로 잠재력과 실력 하나는 확실하더군.”
그의 말에 나이저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남들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완벽히 속일 줄도 아는 자입니다. 단언컨대 단장님의 그 계획에 최고로 적합한 인물일 것입니다.”
“……흐음.”
나이저의 말이 끝나자, 클라리우가 턱을 괸 채 고심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다가, 클라리우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다만 이자가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이 진실한지를 믿는 것이 쉽지 않단 말이지.”
그의 말에 나이저 또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생각은 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나이저가 한마디를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딱 한 단계만 더 시험을 거쳐 보도록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마땅한 것이 있는가?”
클라리우가 묻자, 나이저가 한 가지 제안을 꺼내었다.
“……의 임무를 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들은 클라리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꽤나 그럴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이저가 말한 것을 해결해 낸다면, 그자의 실력과 충성심 모두 동시에 검증이 가능할 것이었다.
클라리우가 나이저에게 말을 꺼냈다.
“좋네, 그가 임무를 해결하는 즉시 그 계획을 실행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 순간, 나이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리온, 그 녀석은 기사단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거야.’
라고 말이었다.
* * *
로그아웃을 한 유호는 오랜 만에 바깥에 나서 있었다.
좀비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어가던 그가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더니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아, 햇살 참 맑네. 후후, 너무 싫다.”
그런 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갔다.
그가 현실로 나와 처음 한 일은 학교의 강의에 출석하는 일이었다.
지난주 너무 바빴던 나머지,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수업을 모두 통으로 빠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유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끄응, 이미 두 번이나 빼먹었네. 위험해, 위험해.’
그의 학교는 네 번을 결석하면 자동으로 F가 되는 시스템이었다.
끼익.
유호가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침 수업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에잉, 제 시각에 좀 다니게.”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가 무슨 이유에선가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교수와 눈이 마주치자, 유호는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3조라고 했지?’
그러곤 조용히 동석에게 미리 건네 들은 자신의 조별 그룹 자리로 향했다.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신과 동석의 자리였다.
매번 수업 좀 나오라고 칭얼거렸던 동석이었지만, 이번에는 본인이 결석을 하였던 것이었다.
-야, 미안하다. 예전 길드 사람들이 급하게 찾아서 아무래도 만나러 가야 될 것 같아.
‘무슨 일일까?’
동석이 보냈던 문자 메시지를 다시금 떠올리자, 궁금증이 차올랐지만.
‘오옷!’
자신의 자리에 앉은 순간, 그 사실은 머릿속에서 단숨에 사라졌다.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이게 웬 횡재야!’
그가 첫 OT 날 보았던 엄청난 미녀와 같은 조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유호가 뒤늦게 자신의 자리에 앉는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라?’
한데 그때, 유호는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그녀의 두 동공이 세차게 떨려 왔던 것이었다.
이어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는 것 같은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뭐지?’
무적의 솔로 부대원 유호는 도통 영문을 모르겠는 나머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러나 유호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잠시 뿐이었다.
‘으아아아.’
이 수업은 특히나 학생들 사이에서 빡세기로 유명한 수업이었다.
그런데 남들보다 일주일분이 뒤쳐져 있다 보니, 뒤늦게 수업을 따라가느라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남녀 사이의 수수께끼를 풀어 낼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유호가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동안, 수업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도둑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후다닥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유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쩝,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는 가방을 싸고 있는 교수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