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잠시 시간을 되돌아가 유호가 현실 속에서 쪽잠을 자고 있던 때.
흑암기사단 건물의 내부 복도를 바쁜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레온에게 추천장을 건네주었던 2병단 단장 나이저였다.
무슨 이유에선가 그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그러던 그때, 나이저의 옆에서 보필하고 있던 부관이 슬며시 말을 건네 왔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단장 회의라니. 무슨 일이신 걸까요.”
그의 말처럼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에는 아직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부관의 말에 침묵을 지키는 나이저였지만, 사실 그의 머릿속에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소집된 전례가 없었기에, 그 연유가 계속 궁금했던 것이었다.
단장 회의는 각 병단의 단장과 그 부관들이 필수적으로 모두 참석해야 하였다.
분명 가벼운 이유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쉽사리 짐작이 가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
처척.
두 사람은 이윽고 회의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관이 문을 두드린 후, 곧장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나이저의 눈에 비교적으로 작은 체구에 두 눈 아래에 짙은 다크서클이 흡사 너구리와 같이 보이게 하는 한 남자가 확인되었다.
그는 바로 이미 도착해 있던 3병단 단장 ‘휴센’이었다.
나이저와 마찬가지로 그의 뒤에도 부관 한 명이 서 있었다.
휴센은 그렇게 나이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을 꺼내었다.
“쯔쯔, 굼뜨군, 굼떠. 느려 터진 건 자네 검 실력뿐이 아닌가 본데?”
그러자 나이저가 콧방귀를 끼며 검지로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가리키며 받아쳤다.
“흥, 딱 맞춰 온 것이 안 보이나? 시침과 분침 하나 정확히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자네의 두 눈깔의 시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나 보군.”
“뭣? 눈깔? 이 건방진 평민 자식이!”
얼굴을 보자마자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이었다.
귀족 출신인 휴센과 평민 출신인 나이저는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 사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신경전이 계속될수록,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둘의 뒤에 서있는 부관들이었다.
두 사람의 살기가 맞부딪치고 있었다.
스윽.
두 사람이 각자 본인의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던 그때.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올 사람은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사람이 재빨리 각자의 살기를 거두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전신에서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는 거구의 남자가 회의실 안으로 걸어들어 왔다.
짐승의 눈빛을 지니고 있는 남자는 나이저와 휴센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모두 왔군.”
그러자 방 안의 네 사람이 모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동시에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그러곤 나이저와 휴센이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2병단 단장, 나이저가 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3병단 단장, 휴센이 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그랬다. 그가 바로 흑암기사단 1병단 단장이자, 흑암기사단의 기사단장인 클라리우였다.
곧이어 단장 회의가 진행이 되고 있었다.
한데 그때, 클라리우가 어떤 말을 꺼내자 나이저와 휴센이 경악에 찬 표정이 되었다.
“그, 그게 정말 입니까?”
“……어찌 그런 일이.”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클라리우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었다.
“분명한 사실이다. 방금 색출해 낸 배신자에게서 실토를 받고 오는 길이니 말이다.”
클라리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의 전신에서 엄청난 노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앞서 클라리우가 이렇게 말을 한 것이었다.
‘종교재판장 모즈구스가 그동안 기사단 내부에 첩자를 심어 두었었다. 게다가 이번 입단 심사에 미리 선별해 놓은 이들을 참가시킨 상태라고 한다.’
암흑성국은 오래전부터 나라의 최고 권력자로 황제 ‘러셀’을 지지하는 황제파와 교황 ‘라스푸틴’을 지지하는 교황파로 나뉘어 권력 다툼을 해 오고 있었다.
최고 권력끼리의 다툼인 만큼 결코 가벼이 여겨질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권력 다툼은 전면전으로 행해질 수는 없었다.
두 파가 싸움을 시작할 경우 공멸하게 되는 최악의 사태가 백이면 백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수면 밑에서 서로 치열하게 견제를 할 뿐, 각자의 영역에는 침범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말이었다.
기사단 내부에 첩자를 심다니, 이건 분명히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일이었다.
나이저와 휴센이 분노에 차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선전포고입니다!”
“맞습니다. 결코 좌시할 수 없습니다!”
클라리우는 그런 두 사람을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그래, 가만히 당할 수는 없지.”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할 정도의 기운이 뿜어졌다.
두 사람은 기운에 압도되어 감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클라리우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내일 있을 2차 입단 심사는 내가 담당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알고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여태껏 단 한번도 2차 시험을 클라리우가 주관했던 적은 없었기에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였다.
“전할 말은 이게 끝이다. 회의는 이쯤 하도록 하지. 모두 돌아가도록.”
그러자 클라리우는 그로써 단장 회의를 끝마쳤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나이저 또한 부관을 돌려보내고, 홀로 자신의 집으로 향하였다.
‘첩자라니, 망할 종교재판소 놈들 뼈째 씹어 삼켜 주마.’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나이저 님.”
뒤편에서 갑작스레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
나이저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클라리우의 부관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그는 놀라운 말을 나이저에게 전하였다.
“……클라리우 님이 찾으십니다.”
‘이건?’
클라리우가 무슨 이유에선가 은밀히 그를 다시금 찾고 있었다.
* * *
그리고 레온이 2차 시험에 돌입한 순간으로 되돌아오자.
“크아아악!”
또 한 사람의 유저가 클라리우의 잔인한 손 속에 엉망진창이 되어 쓰러지고 있었다.
상대를 얼마나 극한까지 몰아붙였는지, 전신에 한 군데도 빠지지 않고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선물을 선사한 당사자인 클라리우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가 아니었다.
“다음.”
그는 그저 저승의 염라대왕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로 다음 희생양을 호명할 뿐이었다.
“……으으.”
그러던 그때, 레온은 두 기사들에 의해 끌려가듯 치워지는 유저를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순간 그가 어이가 없어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니, 1차만 통과하면 2차는 그냥 몸 풀기 수준이라며. 이게 몸 풀기냐?’
두 번 풀었다가는 몇백 사람이 죽어 나가리라.
그 순간, 레온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암살 목표 대상과 빠르게 맞붙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스윽.
그때 레온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엄청난 숫자의 기사들이 빽빽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레온이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쓰읍, 하지만 여기서 암살을 시도하는 건 완전 무리야.’
이곳은 적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적으로 압도적으로 불리하였다.
여기서 난리를 부렸다가는 결국에는 제압당하여 지하뇌옥에 갇히게 되리라.
게다가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그리고 싸운다고 해도 저 괴물 놈을 이길 수 있을지 장담을 하지 못하겠고 말이야.’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클라리우가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이었다.
레온이 새로이 시작된 심사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레벨이 250이라고 큰 소리 뻥뻥 쳤던 남자가 클라리우의 손에 장난감 신세가 되어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레온이 이전에 들었었던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였다.
‘클라리우의 레벨이 250이라고? 절대 아니야. 저 자식 단언컨대 300레벨은 그냥 넘을 거야.’
거대한 창을 휘두르는 클라리우는 삼국지의 여포와 초한지의 항우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레온이 지금까지 보았던 NPC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과 몸놀림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레온이 전력을 다해 상대한다고 해도 승패를 장담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아니었다.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레온이 처음 클라리우를 발견하였을 때, 들려온 거태도에 깃든 흑염룡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흑염룡은 지금까지 중에 가장 들뜬 목소리로 놀라운 사실을 전하여 주었다.
-본룡은 놀랐소. 주인이여, 저자 또한 마신의 신물을 두 개나 가지고 있소!
레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도의 신물을 빼앗은 이가 그 자신 외에 있을 것이라곤 상상을 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순간 레온이 이로 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젠장, 창과 갑옷인가? 운 좋게도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들만 입수했구먼.’
흑염룡이 알려 준 신물은 창과 갑옷 두 가지였다.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마창과 아까부터 적의 모든 공격을 튕겨 내고 있는 칠흑의 갑옷이었다.
클라리우는 공격과 방어 양측에 도움이 되는 신물들을 손에 넣어 있었던 것이었다.
‘흑염룡의 거태도에 담겨진 힘 때문에 샤먼 때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데. 두 신물의 힘이 동시에 쏟아지면 결코 쉽게 이길 수는 없을 거야.’
호문클루스와 본 드래곤으로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했던 어제의 자신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순간 레온이 제 눈에 이채를 띠며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든 입단을 성공해서 지근거리에서 힘을 파악해 보는 수밖에.’
그것 밖에는 없을 듯싶었다.
그리고 그때 때마침 레온을 호명하는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음 참가자, 리온은 올라가라.”
그리고 다음 순간, 레온이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여기서 형편없이 발려 버리면 입단이 힘들어. 이기진 못하더라도 눈에 확실히 들 정도의 저력을 보여 줘야 해.’
이윽고 레온과 클라리우의 눈빛이 교차했다.
이어 클라리우가 레온을 위아래로 훑더니, 툭 던지듯 말을 꺼내었다.
“궁수인가? 금방 끝나겠군.”
그의 말처럼 레온은 무기를 정령왕의 바람살로 바꾸어 들고 있었다.
혹여나 신물들끼리 맞부딪쳤을 때, 기현상이 발생이라도 생겨날까 염려가 되었던 탓이었다.
“……뭐, 그건 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을 무시하는 클라리우의 말을 레온은 가볍게 맞받아쳤다.
클라리우의 눈빛에 흥미롭다는 감정이 살짝 떠올랐다.
처척.
그러곤 클라리우는 자신의 마창을 고쳐 잡으며 말을 건넸다.
“그 말 지킬 수 있을지 보겠다.”
레온은 말없이 온몸의 긴장감을 끌어올릴 뿐이었다.
드디어 레온과 클라리우의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