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메시지에 적혀 있는 발신처를 보니, 유호가 그렇게 당황할 법도 해 보였다.
유호에게 메시지를 보낸 곳은 바로.
‘뭐지? NT에서 연락이 왔잖아?’
다름 아닌 판테라의 개발사인 NT였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아차린 순간, 유호의 머릿속에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 무한 되살리기 등 그동안 자신이 벌였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의 마음속에.
‘……쩝, 설마 그동안 이득 본 걸 회수해 간다는 건 아니겠지.’
라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버그성 플레이와 창발적 플레이는 종이 한 장 차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가 그렇게 당황한 것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이윽고 제대로 메시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자.
‘오오!’
곧이어 자신에게 온 이 메시지가 전혀 생각지 않은 희소식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수신]
안녕하십니까.
NT의 유저관리팀장인 정하일입니다.
먼저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판테라에서 이룬 ‘레온’ 유저님의 놀라운 업적을 매우 크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상호 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 관계를 맺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면, 하단에 첨부되어 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신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여 빠른 시일 내에 미팅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레온’ 유저님과 꼭 만나 뵙기를 희망하며,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NT 유저관리팀장 ‘정하일’
유호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가 있었다.
‘NT에서 콘택이 오다니!’
그가 그렇게 기뻐할 만도 했다.
이렇게 NT에서 파트너 제안 연락이 온다는 것은, 판테라 내에서 거물이 되었다는 척도였으니까 말이었다.
메인 시나리오의 키를 쥐고 있는 유저와 극소수의 최상위 랭커 유저들에 한하여, NT는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었다.
메인 시나리오의 원활한 진행과, 랭커급이 되면 연예인과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NT와 파트너가 되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아직 세간에 공개된 것이 없었다.
딱 하나만을 제외하고 말이었다.
그건 바로 NT가 파트너를 맺은 유저들끼리 서로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파트너를 탐내는 유저들이 수두룩하였다.
그도 그걸 것이 다른 최상위권의 랭커들과 사석에서 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정보가 돈보다 중요하였으니까.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은 분명 유호와 그의 길드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 순간 유호는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걸 거절하면 바보겠지.’
라고 말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는 바로 첨부되어 있던 전화번호로 승낙의 뜻을 담은 답신을 보냈다.
‘후후, 이거 동석이한테 말해 주면 그 자식, 부러워 죽으려고 하겠는데?’
이어 유호는 이 소식을 전해 주면 부러움에 가득 찬 얼굴을 띄울 동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자 약 올려 줄 생각에 벌써부터 사악한 미소가 자연스레 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홀로 기쁨을 만끽하던 유호는.
‘아, 잠깐.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곧이어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자신의 본래 목적이었던 흑암기사단의 입단 심사에 대한 정보글의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그가 정보글을 클릭하자, 내용이 화면에 떠오르고 있었다.
[암흑성국의 최강 병력 흑암기사단에 입단해 보자]
어차피 들어오면 후배들이니, 말투는 편하게 쓰겠다. 맘에 안 들면 나가도록.
암흑성국 최강의 기사단인 흑암기사단에 들어오고자 하는 너희들의 이유는 간단할 거다.
너무 많이 쌓여 버린 악명은 골칫덩이고, 매달 막대한 골드를 준다고 해서일 테지.
일단 먼저 좋은 것부터 얘기해 주면, 골드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받는다. 기대해도 좋다.
그런데 네가 누구든 한 번에 흑암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그게 필수다. 안 그러면 멘탈 보장 못한다.
입단 심사는 현실의 취업 과정과 비슷하다.
1차 시험은 서류, 2차 시험이 면접이다.
그런데 이 1차 시험이 시X 정말 더럽고 치사하게 저급하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이 1차에서 광탈을 기록하고 있다.
웬만큼 높게 지명도를 쌓아 갔다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나중에 다시 오란다.
내가 앞서 저급하다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서 밝혀진다.
백이면 백. 서류 접수관이 뇌물을 요구한다.
근데 그 액수가 장난이 아니다. 억 소리 날 정도다.
지명도가 높을수록 줘야 하는 뇌물의 액수는 줄어든다.
돈이 없으면 몸이 고생해야 된다. 자, 지명도 노가다 시작해라.
그래도 다행인 건 1차 시험을 통과하는 순간, 2차 시험은 편하게 생각해도 된다는 거다.
간단하게 각 병단의 부병단장들과 대련을 거치고, 최저 기준을 충족해 내면 입단 성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싸우면 안 된다.
전투 평가가 뛰어나면 보직이 좋은 곳으로 떨어지니까.
아무튼 들어오는 데에 성공하면 알은척해라. 난 3병단의 ‘나달’이다.
그렇게 내용을 모두 읽어 내려간 유호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고 있었다.
‘이거 개꿀이잖아?’
정보글의 작성자는 1차 시험에서 무수한 이들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자신은 나이저에게 받은 추천장으로 인해 1차 시험이 무사통과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하마터면 NPC한테 돈을 뜯길 뻔했는데 그것도 잘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추천장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1차 시험만 통과하면 2차 시험은 손쉽다는 뉘앙스로 적혀 있는 것까지 확인하자 유호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유호는 정보글을 꺼 버렸다.
그러곤 하품을 내쉬며 말을 꺼내었다.
“흐암, 별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어우, 이제 그럼 좀 자러 가 볼까.”
그는 행복한 마음으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르렁.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일까, 그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바로 잠에 들어 버렸다.
* * *
이튿날 아침.
제에의 한 곳이 오늘 따라 더욱 시끌벅적했다.
아니, 시끌벅적이라는 표현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인파가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들이 수많은 줄을 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데 그러다 보니, 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 거참 밀지 좀 맙시다!”
“아씨, 당신 방금 새치기한 거야?”
“누가 새치기를 했다고 그래! 잠깐 화장실 다녀온 거라고!”
“화장실은 개뿔, 한번 이탈하면 거기서 끝이지! 뒤로 꺼져!”
“뭐 이 자식아! 넌 방광도 없냐! 한판 붙어 볼래?”
그리고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싸움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레온이었다.
쪽잠을 자고 일어난 그는 곧바로 시간에 맞춰 나이저가 말한 흑암 기사단 건물 앞으로 이동하여 있었다.
한데 도착하고 보니, 이런 장면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었다.
스윽.
‘근데 여기는 이럴 수밖에 없게 만들어져 있네.’
순간 주변을 훑어본 레온이 그렇게 생각하였다.
“어라? 여기 행정관 지원 줄 아니에요?”
“뭔 소리야, 이 줄은 간수 지원 줄이야.”
“아씨, 왜 이리 복잡하게 되어 있어. 잘못 섰네.”
알고 보니, 이 장소에는 흑암 기사단의 입단만이 치러지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사제, 행정관, 간수 기타 등등 수많은 다른 암흑성국의 직장들도 접수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인파의 원인은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유저들이 몰려든 탓이었다.
그때 레온이 미간을 좁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이걸 왜 한날한시에 뽑고 난리야.’
꽤 오래 걸리리라 예상이 되고 있었다.
그에 레온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슬금슬금 그림자 은신으로 자신도 슬쩍 새치기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데 그때였다.
‘어라? 저자는?’
주위를 살피던 레온은 우연하게 낯익은 얼굴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야, 신입. 이제 접수 네가 받아라.”
“네넵, 다녀오십시오.”
레온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뇌옥의 간수(看守)가 되는 신청을 받고 있는 담당자들이 있었다.
한데 그중에 신입이라는 호칭을 듣는 고릴라 같은 인상의 유저가 바로 레온이 알고 있는 이였다.
레온이 순간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남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흐음, 이름이 아마 우탄이라고 했었지?’
그의 이름은 우탄.
일전에 레온이 불멸자의 협곡을 진행하였을 때, 레온의 캐리로 큰 이득을 보았던 유저였다.
그러던 그때, 레온의 머릿속에 우탄이 그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전했던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흐흐, 진짜배기를 내가 몰라봤군그래. 큰 빚을 졌어. 내 다음에 자네를 또 만나게 되면 꼭 신세 갚도록 하지.
자신이 혈석 토너먼트에 참가하면서 여러 시간을 보낸 동안, 그는 그동안 쌓은 지명도로 간수가 되었나 보았다.
순간 레온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호오, 뇌옥의 간수라.’
그의 머릿속에 우탄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계획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접수를 받고 있던 우탄이 갑작스레 오한이 드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레온은 우연히 좋은 패 하나를 알아내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관심을 돌렸다.
그렇게 시간은 금세 흘러갔고.
“다음.”
어느새 레온의 차례가 도착하여 있었다.
순간 1차 심사에서 탈락한 유저가 레온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대체 얼마를 더 달라는 거야. 이 도둑놈의 NPC 놈들.”
레온이 불쌍한 눈빛으로 그런 그를 쳐다보았다.
아까 보니, 담당관에게 슬쩍 동전 주머니를 찔러주던데 처참하게 까인 모양이었다.
이어 다음 순간, 레온이 염소수염을 한 담당관에게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자, 여기 수정구에 손을 가져다 대라.”
그러자 담당관 NPC가 반말을 찍찍 내뱉었다.
레온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면전에다가 추천장을 들이밀었다.
그에 담당관은 얼굴에 ‘뭐야, 이 자식은.’ 하는 표정을 띄웠다가 추천장을 확인하였다.
“이, 이건.”
그러곤 이내 지진이라도 난 듯 두 동공이 흔들렸다.
아무래도 추천장이 지니고 있는 위력이 생각보다 더 뛰어난 것 같았다.
2병단 단장이 보증한다는 직인이 찍혀 있기 때문일까.
이어 담당관이 잔뜩 졸아붙은 목소리로 레온을 안내하였다.
“이, 이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런 담당관의 저자세에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레온을 바라보았다.
‘후후, 이제 널널하다는 2차 시험만 통과하면 바로 기사단 입단이다!’
레온은 아랑곳 않고 당당한 자세로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투콰아아앙!
건물 내부에서 무언가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음의 근원지는 건물 내에 마련된 커다란 대련장이었다.
그곳이 바로 2차 시험이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우욱, 쿨럭.”
그러던 그때, 한쪽 벽에 볼썽사납게 처박혀 있던 한 유저가 한 움큼 피를 토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걱정해 주는 이가 없었다.
싸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순간 중저음의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시험자들은 약골만 뽑은 건가. 영 시원찮군. 다음. 올라와라.”
그 순간, 시험을 가볍게 보았던 레온이 경악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혀,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라고 말이었다.
그의 눈앞에 암살 대상인 기사단장이 서슬 퍼런 창 한 자루를 맹렬히 휘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