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가면 속에 숨겨진 카이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기권하겠습니다.
‘뭐?’
자신의 8강전 상대인 리온이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을 꺼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를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스킬로 확인한 리온의 실력은 분명히 자신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비축한 채로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던가.
‘무슨 생각인 거야, 대체.’
순간 그녀는 의아함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리온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회자와 짧은 대화를 마친 그는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곤 자신의 뒤에 있는 출구를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어진 다음 순간, 가면을 쓰고 있는 그녀와 리온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러자 그 순간.
그녀는 번개가 머리에 꽂힌 것과 같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 웃음은?’
리온이 자신을 바라보며 씨익, 하고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단순한 성질의 것이 아닌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미소였다.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그제야 그녀는 리온이 경기를 포기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그때 도와줬던 답례라는 건가!’
그녀는 레온이 일전에 종교재판소에서 도움을 주었던 것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해 보였다.
본신에 그런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저렇게 쉽게 포기를 해 버리는 이유는 그것으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어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었는지를 함께 깨닫고 있었다.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그를 들여다본다는, 어느 책의 한 구절이 있었다.
‘……저자, 내 정체를 알아채고 있었어.’
그녀 자신만이 리온의 진짜 정체를 알아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만.
리온 또한 이미 가면 속에 가려진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경악한 그녀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던 그때.
리온은 얼굴에 그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대로 지속한 채로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윽고 그렇게 리온이 유유히 사라지고 나자.
“8강전의 승자는 카이 님입니다!”
승자를 알리는 사회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기뻐하지 못했다.
그녀가 가면 속으로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보답과 동시에 입막음 비용이라는 건가.’
아직까지도 저런 실력자가 존재하다니.
그녀는 세상은 넓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무서운 자.’
그녀는 사라져 가는 레온의 뒷모습을 뇌리에 기억해 두겠다는 듯,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 * *
반면 그렇게 경기장을 벗어난 레온은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룰루랄라.”
심지어 그는 오랜만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곧장 샴발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기뻐할 만도 해 보였다.
점점 질려 가던 혈석 토너먼트도 마무리를 하였던 데다가, 흑암기사단에 잠입할 기회 또한 성공적으로 얻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또 다른 궁극의 소환수를 만들러 가는 길이지 않던가.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처척.
그러던 그때, 레온이 목적지에 도달하여 있었다.
‘분명히 저번에 다들 여기로 들어갔었지.’
그녀의 눈앞에 커다란 오크통들 여러 개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랬다. 이 폐업한 주점 뒤에 쌓여 있는 커다란 술통이 바로 12시간 마다 바뀌는 샴발라로의 연결 통로였던 것이었다.
스윽.
레온은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바로 한 오크통의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쑤욱.
그러자 저번에 마차 밑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크통 속으로 이동되기 시작하였다.
차착.
그리고 곧이어 레온은 공간을 빠져나와, 샴발라의 지면에 가볍게 착지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자 레온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얼른 우리 노예들을 보러 가 볼까.’
곧장 연금술사들의 본단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 * *
그로부터 잠시 후.
본단 건물에 있던 모든 연금술사들이 한 곳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커티스의 명으로 지하에 있는 대실험실에 모든 연금술사들이 소집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긴 행렬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다.
“끄으으. 너무 힘들어.”
“아이고, 삭신이야.”
“크흑, 얼마 자지도 못했는데.”
그들은 바로 레온과 함께 사냥을 나갔었던 전투요원 연금술사들이었다.
그들의 눈 밑에 퀭한 다크서클이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좀비처럼 기어가듯 걸어 내려가는 그들의 전신에서 엄청난 피로감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휴, 그나저나 무슨 일이래?”
“그러니까 말이야. 이틀은 깨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비몽사몽한 상태의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그때, 케인이 잔뜩 굳은 얼굴로 한마디를 꺼내었다.
“……레온 님이 돌아오셨대.”
라고 말이었다.
그러자 연금술사들이 헉, 하는 신음성과 함께 표정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꿀꺽.
그들은 긴장감에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도 잠시, 연금술사들이 애써 태연한 척하며 서로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서, 설마 벌써 또 노가다에 데리고 가시려는 건 아니겠지……?”
“허, 허허. 설마 우리 레온 님이 그렇게 악독한 짓을 하시려고…….”
“그, 그렇지? 양심의 소유자라면 설마 벌써 그러시진 않겠지?”
순간 그들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각자의 머릿속으로 환청처럼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자식들아! 더 힘차게 몬스터들한테 공격 안 할래! 내가 너무 많이 재워 줬지? 수면 시간 더 줄여 줘?
……그건 바로 그들을 쥐 잡듯이 잡던 레온의 목소리였다.
그들의 몸이 부르르 떨려 오고 있었고, 동시에 걱정과 두려움이 함께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그들은 대실험실의 문 앞에 도착하여 있었다.
“휴우.”
끼익.
이윽고 용기를 낸 한 연금술사가 지하 대실험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헉!”
“이, 이건?”
그들은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리 하였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곧이어 연금술사들이 입을 쩍 벌린 채, 각자 말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저렇게 거대한 기어 골렘이라니……!”
“생전 처음 본 것 같아.”
그랬다. 그들의 눈앞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청난 크기의 기어 골렘이 나타나 있었던 것이었다.
공간 확장 마법으로 인해 웬만한 건물의 5~6층에 달하는 높이와 초원처럼 드넓은 크기를 자랑하는 지하 대실험실이었는데도.
기어 골렘의 머리 부분이 천장에 거의 닿을 만큼 거대하였다.
게다가 그들이 놀란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저 열린 흉부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 그거 맞지?”
“……맞아. 보스 몬스터를 사냥할 때 보여 주셨던 최강의 소환수라고!”
“……본 드래곤을 재료로 사용하실 줄이야!”
개복되어 있는 기어 골렘의 내부에 본 드래곤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연금술사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커티스가 자신들을 부른 이유가 레온이 호문클루스를 만들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들은 연이어 탄성만을 내뱉고 있었다.
본 드래곤과 기어 골렘의 융합이라니.
단언컨대 호문클루스가 탄생될 것이 분명하여 보였다.
……한데 그러던 그때.
곧이어 상기된 표정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레온을 바라본 연금술사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어라?’
‘……왜 저러시지?’
무슨 이유에선가 레온의 표정이 그들처럼 밝지 않았던 것이었다.
모두가 의아해하던 그때, 레온이 굳은 표정으로 기어 골렘에게 다시금 손을 뻗고 있었다.
우우웅!
위이잉!
엄청난 공명음과 빛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호문클루스 제작에 돌입한 것이었다.
레온의 눈앞에 연이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조합 재료, 현자의 돌을 기어 골렘에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조합 재료, 영원의 허브를 기어 골렘에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중략……)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호문클루스의 제작에 돌입합니다.
오토마톤을 만들 때와 동일한 방식이었다.
모든 연금술사들이 탄성을 내뱉기 시작하였지만, 레온의 표정은 똑같이 굳은 상태였다.
곧이어 그가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까닭이 밝혀지고 있었다.
띵!
띵!
갑작스레 레온의 귓전에 뾰족한 효과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호문클루스 제작에 실패하였습니다.
제작에 실패하였다는 충격적인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레온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끄응, 이럴 수가. 본 드래곤을 호문클루스로 만들 수 없다니.’
라고 말이었다.
기어 골렘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사그라지자, 연금술사들은 영문을 알지 못하여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순간 레온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 올랐다.
그는 실패의 원인을 밝혀 주고 있는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를 살피고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소환수와 영혼의 격이 맞지 않습니다.
-상위의 영혼으로 다시 시도하여 주십시오.
-소환수와 기어 골렘의 격이 맞지 않습니다.
-상위의 기어 골렘으로 다시 시도하여 주십시오.
실패의 원인은 간단했다.
‘젠장, 본 드래곤을 호문클루스로 만들려면 7성 영혼과 더 강력한 기어 골렘이 필요하다니.’
재료로 삼은 기어 골렘과 6성 영혼이 본 드래곤에 비해 능력치가 떨어졌던 탓이었다.
레온은 허탈할 따름이었다.
커티스를 닦달해 만들었던 저 초거대 기어 골렘이 도움이 안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해 보였다.
앞서 시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의 실패 결과가 나오자 레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속으로 단념하며 생각했다.
‘본 드래곤의 호문클루스화는 잠시 미뤄 두는 수밖에 없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호문클루스로 만들 다음 타자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레온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휴, 그럼 첫 호문클루스는 진화시킨 ‘녀석’으로 하기로 하고……. 아쉬운 대로 강령부터 해 볼까.”
6성 영혼으로 호문클루스를 만들지는 못하여도, 강령은 가능하였다.
차후에 7성 영혼을 얻으면 호문클루스로 만들며 영혼을 교체하자 맘을 먹은 레온은.
일단 강령으로 본 드래곤의 제약이나 풀자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지은 그는 이어 본 드래곤을 기어 골렘의 기내(機內)에서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러곤 곧바로 본 드래곤에 선택해 두었던 6성 영혼을 강령하기 시작하였다.
“강령, 본 드래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령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강령에 사용할 영혼 혹은 영령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본 드래곤에 영혼을 강령 시, 6성 이상의 영혼이 필요합니다.
“영혼 지정, 드래곤 슬레이어, 가르츠.”
순간 레온의 품속에서 강대한 기운을 내뿜는 영혼의 구슬이 나타났다.
그 구슬은 곧이어 본 드래곤에게 날아들더니, 서서히 체내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기어 골렘에서 빼내느라 잠시 본 드래곤의 체내에 들어가 있던 파크가 질색을 하며 빠져나와 레온에게 달라붙었다.
-우왁, 주인아. 이상한 녀석이 들어온다!
[드래곤 슬레이어, 가르츠]
등급 : 6성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빼앗아 간 화이트 드래곤을 찾아내어 죽이기 위해 평생토록 드래곤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던 최강의 검사.
인간 최초로 드래곤 슬레이어의 칭호를 얻은 자이다.
오로지 복수를 위해 광기에 물든 상태를 유지하였다고 하며, 버서커 상태가 되면 피아를 식별하지 못하고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였다고 전해진다.
보유 영력 :
1. 용 학살자
2. 반룡의 증표
3. 세비지 버서커
순간 레온이 재미있다는 듯, 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본 드래곤에 영혼을 빙의시키는 게 드래곤 슬레이어의 영혼이라니. 아이러니하구먼.’
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우우웅!
지이잉!
엄청난 공명음과 검은 광채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레온의 눈앞에 그 결과가 떠오르고 있었다.
-현재 진행도 100%.
-본 드래곤에 ‘드래곤 슬레이어, 가르츠’의 영혼이 강령되었습니다.
-6성 영혼을 강령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본 드래곤의 지속 시간 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본 드래곤이 영구적인 이지를 획득하였습니다.
-본 드래곤의 스텟이 증가합니다.
-본 드래곤이 신규 스킬을 획득합니다.
레온이 연달아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의 내용을 보고는 함박웃음을 얼굴에 띄웠다.
호문클루스를 만들지 못하였다는 안타까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난 더욱 강해질 수 있어!’
순간 레온의 눈에 뜨거운 열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